창작 글

기계적 낭만




 "정말로, 하나도 재미없는 세상이 되었어."
 그가 시가를 물며 불평했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대로 두꺼운 옛날 담배를 편의점에서 찾느라 고생해야 했다. 그가 그런 담배가 아니면 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담배를 사다가 갖다줬더니. 이딴건 기집애들이나 피면 어울릴 거라고 집어 던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맛도 없었다나.
 "퉷."
 지금 피고 있는 것도 상당히 그의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저씨. 여긴 아저씨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구요. 심지어 아저씨가 살던 나라도 아니에요. 집 바닥에 침 뱉는건 관둬 주시겠어요?"
 "아, 미안, 바닥에 침뱉는건 내가 있던 곳에서도 안됬었어."
 "그럼 왜 여기선 뱉는거에요!"
 "그야, 그야~ 그야. 짜증나니까."
 그가 자신의 까슬까슬한 턱수염을 왼손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좋은 단어를 찾다가 그냥 짜증난다고 대답한 것이다. 나이가 이제 막 들기 시작한 아저씨와 달리 그녀는 대학에 들어온지 고작 1년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숙녀였다. 그는 화장실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처음에 기절했었다. 자신의 자췻방 화장실에서 코스프레라도 한 듯한 신사가 툭 튀어 나오면 기절이 뭔가 심장이 멎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짜증나는건데요? 빨리 침이나 닦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대충 물을 짜낸 걸레를 그의 앞에다가 홱하니 던졌다. 그는 시큰둥하게 미동도 안하고 발 끝으로만 바닥의 침을 닦았다.
 "모든 것이 알 수가 없어. 난 이곳을 미래라고 생각하지 않겠다. 그렇게 정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전 이제 학교 갈거니까."
 "뭐? 전자기기? 전자? 전기? 하. 기술이란 그런 어줍잖은 마법 같은게 아니라 찰칵 찰칵 돌아가는 금속의 맞물림으로 부터 나오는거야."
 그가 말했다.
 "아니, 전 그런거 잘 모르고 저에게 이야기 하셔도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외투를 입고 두꺼운 책을 들었다. 그가 책에 관심을 보였다.
 "그 책은 뭐지? 자네는 대학생이라고 했던가?"
 재료공학 책이었다. 기계과인 그녀가 공부하는 책이다. 그는 어린 숙녀에게 가까이 달라 붙었다. 키가 큰 남자였다. 갑자기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그의 숨결이 느껴질만치 가까운 거리였다. 어린 숙녀는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는 더 관심을 가지며 밀어 붙였다. 결국 더 뒤로 갈 수 도 없이 벽에 착 달라 붙었다.
 "왜, 왜 이래요. 소리, 칠 거니까."
 "그 책 줘봐."
 그가 책을 뺏었다. '아, 뭔데.' 그녀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흠. 흐음."
 그가 촤르륵 책을 펼쳤다.
 "뭐 어느 정도의 진보는 있었던 건가. 솔직히 하나도 모르겠군. 어쨌든 저급한 오토마타 같은거랑은 다른 차원의 물건임은 알겠어."
 "뭐라고요?"
 "아 관심 없어도 돼. 여자들이란 찰칵 찰칵 돌아가는 기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아주 무지한 족속들이니까."
 그가 재미없다는 듯이 책을 휙 던졌다. 무거운 책은 허공에서 멋대로 펼쳐지며 바닥에 철푸덕. 찌부러졌다. 그녀는 재빨리 가서 책을 잘 펼쳤다.
 "정말. 아저씨. 짜증나게 하지 말고 원래 세계로 가버리세요."
 "나도 몰라. 그냥 난 일하다가 문을 열어보니 여기로 온 것 뿐이라고. 그런데 여기가 미래라고 하면 믿겠냐 이거야. 이 내가 고작 건물 좀 높아졌다고 놀랄 줄 알았나? 너의 그 조그만 전화기에 놀랄 줄 알았나?"
 "많이 놀랐잖아요. 왜 안놀라신 척 해요."
 "뭐 처음이니까. 그 정도는 놀라도 괜찮을거야. 내가 아니라 다른 남자였다면 기절했을거라고."
 그가 허세를 있는 힘껏 부렸다.
 "비교대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에구, 수업 늦겠다."
 숙녀는 뒤돌아 서서 현관 문을 잡았다.
 "아 좋다. 그대는 여자임에도 기계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 좋아. 그대가 다니는 대학에 나도 참관 하러 가보도록 하지."
 "아저씨가 뭔데 맘대로."
 "나 정도 되는 사람이면 된다니까."
 "아저씨가 누군데요 대체."
 "오티스."
 "모르거든요?"
 어디서 들어 본 적도 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구시대의 옷을 입고 그 녀의 뒤를 쫄래 쫄래 따라왔다. 잘생긴 아저씨가. 하는 짓은 바보 같았다. 그는 처음에는 정교한 기계장치의 매력에 대해서 숙녀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명해주며 따라왔다.
 "그래, 알겠어? 난 어느날 오래된 시계탑에 올랐지. 그런데 마침 그때 해가 떠오르는 거야. 아! 느낄 수 있겠어? 그 미치도록 정교한 시계에서! 태양 빛이 시계의 거대한 태엽을 비추었지! 난 본능적으로 알았어. 이것이. 미래라는 것을. 오래된 시계탑에서 미래를 본 거야. 내가 평생을 바쳐 나아가야 할 그러니까 무언가. 무언가를 말이지!"
 "아. 예. 아저씨의 미학에 대해선 충분히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서 걸어주세요. 민망하거든요."
 숙녀가 그렇게 말하며 밀어냈다. 튕기는 줄 알고 남자가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굴었지만 계속 밀어내자 족므 상처 받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상처 받은 티를 내지 않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그래요. 좋아. 어린 숙녀의 말이라면 응당 들어야 마땅한 법이지. 내가 에스코트 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를 모르니까. 아가씨가 날 에스코트 해줘요. 난 방해가 되지 않게 그대의 뒤에서 조용히 따라갈테니."
 "신사 납셨네."
 그녀가 비아냥 거렸다. 걷다가 뒤를 힐끔 힐끔 보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주 느긋하게 웃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뭔가 거리랑 안 어울리는 위화감. 민망하다.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민망하다. 그녀는 모퉁이를 파팟 뛰었다. 그리고 숨었다. 그가 모퉁이를 돌자마자 딱 멈칫했다. 앞에 숙녀가 안보이니까 분명 당황 한 것이다. 생판 모르는 미래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겠지. 그가 길잃은 개 처럼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은 것 처럼 침착하게. 왠지 불쌍해져서 그녀는 다시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 걷는다.  뒤를 슬쩍 보니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것 처럼 침착하게 다시 또 걷는다. 휘파람 까지 부르면서.
 낡은 센스. 제발 그만 둬 주면 안되겠나.
 "여기가 아가씨가 다니는 대학인가? 제법 크군. 뭐 아주 큰 건 아니지만."
 "제발 여기선 조용히 따라와주시겠어요?"
 "난 아까부터 말 없이 따라왔었는데."
 "……뭐, 그랬죠."
 정문을 지나서 공대까지 간다. 사람들은 남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시대착오적 복장의 잘생긴 서양인. 그리고 그 앞을 걷는 시시한 공대녀. 그녀는 이토록 불편한 마음으로 등교 한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보면 뭐라고 해야하지? "응, 우리 집에 사는 서양인 아저씨야.", "뭐? 너 자취 하잖아.", "그게 그러니까 이 아저씨는 과거에서 왔는데." 그녀는 생각을 관뒀다. 뭐라고 해도 이상하니까.
 "흠. 여기가 이 시대의 엔지니어들이 모이는 곳인가. 좋군. 재미있군."
 "아저씨, 전 수업하러 가야 하거든요? 부탁인데 강의실 안에는 안들어 오면 좋겠거든요."
 "오, 그런가. 이해하네. 그럼 난 마음껏 둘러보고 있겠네. 그런데. 언제 아가씨를 어디서 보면 좋지?"
 그녀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탁 감쌌다. 수업이 끝나고 약속있었는데. 이 아저씨를 떼놓을 수도 없고. 꼴이 한심하게 되었다. 머리가 아프다. 
 "뭐. 저 엘리베이터 앞에 조그만한 홀 있지요? 거기서 보지요. 저 시계 바늘이 5를 가리킬때요."
 "엘리베이터라고?"
 "예. 저거요."
 "저것? 저것인가? 오, 이런. 알았네."
 그는 묘하게 흥분한 모습으로 달려갔다. 이상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수업에 들어갔다. 조금 더 있다간 지각해버릴지도 몰랐다.

 

 -- 
 
 해가 제법 내려 앉았을때. 그녀는 강의실 밖을 나왔다. 어쩐지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웅성웅성. 그녀는 엘리베이터 앞 홀로 간다. 아저씨가 없다. 약속도 취소하고 나왔는데, 이 아저씨는 어디 간거야? 그녀는 문득 엘리베이터에 눈을 반짝이는 아저씨의 모습을 기억해내고 엘리베이터를 바라보았다.
 "아."
 그녀가 다니는 공대의 공학관 엘리베이터는 투명하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모습을 밖에서 볼 수 있다. 오티스 아저씨는 엘리베이터 앞에 털썩 주저 앉아서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내려오며 추가 내려갔다 올라오며 도르래가 돌아가고 로프가 감기고 풀리는 정교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민망함을 참아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 있는 아저씨의 어깨를 잡았다.
 "아저씨. 여기서 뭐하시는 거에요."
 "쉿. 중요한 순간이야."
 뭔가 했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있었다. 대체 뭐가 중요한 순간이라는건지. 그녀는 중얼거린다.
 "아름답지. 아름답지? 그래, 전자니 나발이니 해도 이 시대에도 기계적 아름다움이 살아 숨쉬고 있었구나."
 "아저씨 설마 아까부터 하루종일 내내 여기서 이걸 바라보고 계신거에요?"
 "물론이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이전에 본 적이 있어?"
 그는 탈탈 털며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조금도 떼지 못했다.
 "멋져, 이것이 이 시대의 엘리베이터구나. 그래, 정말 지독하게 멋져."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어린 숙녀를 바라보았다. 어린 숙녀는 그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실제 오티스랑 관련이 없습니다.

4개의 댓글

2014.10.27
와 이건 좋은 데? 그 전에 족므라고 오타 낫성ㅋ
암튼 이건 진짜 좋다. 조금 더 장편이면 즐겨볼 맛이 있을 텐데 어디 연재해도 될 정도. 오티스라는 남자의 캐릭터성이나 여자의 캐릭터성이 글 읽을 맛이 있게 해주고 오티스라는 캐릭터는 짧은 글에서 매력이 철철 넘치네.

다만 오티스의 복식을 설명할 때 막연히 구시대라고 하기 보단 이미지로 상상할 수 있도록 어느나라의 어디시대 라고 했으면 좋았을 거 같아. 단편이지만 초반부에 깔아둔 결말로 이어지는 소재를 더 쓰지 못한 느낌이랄까. 결말이 왠지 찝찝해.

뭔가 더욱 더욱 흥미로워진 시점에서 갑자기 뚝 끊긴 느낌이야. 개인적으론 네가 더 연재해주길 바래 ♡.♡
0
2014.10.27
@진달래
재미있게 봐줘서 고마워! 본래 오티스는 엘리베이터로 유명한 사람이지. 당장 아무 엘리베이터를 타면 구석에 OTIS라고 적혀있을걸. 또한 옛날의 기술자는 톱니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물론 오티스는 그때보다는 나중 사람이지만.. 또한 시가의 시대적 문제도 있고. 결국 여러가지 시대를 섞어서 오티스라는 기계에 환장한 까칠한 캐릭터를 만들었지. 나 역시 공학도로써 정밀히 움직이는 기계 앞에서 멍하니 보게 되는데. 옛날 사람이 본다면 하루종일 앉아서 보겠거니.. 하고 쓰게됬지.
본래 단편, 2편으로 계획된 것인데. 한 편으로도 끝날 수 있도록 썼어. 반응이 너무 없어서 미루게 됬네, 맘에 든다니 좀 더 써볼까
0
2014.10.27
@htthetetie
좀더 쓴다면 하악 거리며 보겟서
0
2014.10.27
더부러 나두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게 해주네 글 잘 읽었어!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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