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16층에 이사왔습니다.

큰 소리는 나지 않는다.

어차피 모두들 알고 있고.    

 이미 당연하듯 여겨진다.    

누군가     1 층에서 버튼을 누르면 와이어가 움직여 엘리베이터를 옮긴다.    

천천히, 하지만 눈에 보이는 속도로.    LED로 번쩍이는 숫자들은 위에서 아래로 카운트다운을 해나간다.

숫자가 1에 달하면, 버튼을 눌렀던 누군가는 항상 있는 일인 듯 알면서도 기묘하고 기분 나쁜 모습에 흠칫 놀라버리고 만다.  

   어이없게도 벌써 몇 달은 된 것 같은데.    

아무도 그가 어디서 무얼 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른다.    

 몇 달이 지났으니 당연히 그의 모습은 처음보다 훨씬 초췌하고 쇠약해 보인다.   툭 건들면 열대 거리에 놓아둔 얼음조각처럼 녹아 내릴 듯 한 안쓰러운 얼굴, 표정으로 항상 하던 일을 해낸다.

어떻게 보면 이젠 더 이상 무서워할 이유도 없는 약간 익숙한 그는, 쇠약한 얼굴에 밝은 미소를 만개하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16층에 이사 왔습니다.”

 주민은 또 이 사람이야? 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에 들어간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사를 무시하고. 난 당신을 견제한다는 마음을 담아 자신이 사는 8층을 누른다. 

1층부터    15층 사이의 한 층을 누른다.

이제 여기서 이상함을 느껴야 한다.

우리 아파트는 15층까지 밖에 없다. 16층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이사를 온 그는 항상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분 나쁜 인사를 건 낸다.

물론 대부분 무시해버리는 지경이지만.

8층을 누른 주민은 그가 두려운 모양이다. 그녀는 벽과 하나가 되려는 듯 벽에 붙어 기묘한 그를 쳐다보며 온몸에 돋는 소름을 어떻게든 주체해본다.

8, 겨우    8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이렇게나 길었던가? 이런 사람이랑 같은 공간에 이렇게 오래 있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 아닌가? 생각은 스쳐 지나갈 뿐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몰라 말은 하지 않는다.

 이제 6층을 지나 7층에 다다른다. 동시에 내심 주민은 안심한다. 괜찮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집에 들어가면 한동안 보지 않아도 돼. 하며 다시 한번 자기암시를 건다. 그때 누군가 전격을 울리는 파지직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를 흔들었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를 흔들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주민은 그렇게 느꼈다.

드디어 저 공포스러운 이가 정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불은 꺼져서 엘리베이터 내부는 어두워졌지만, 어떻게든 앞은 볼 수 있었다. 무서워서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주민은 그제서야 정신을 잡고 사고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것 이다. 기묘한 그와 함께. 밀폐된 공간에 갇혀버렸다. 미약하게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간신히 앞이 보이는 어두운 공간에서도 그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었다.

주민은 긴장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석화마법에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또한 그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니 더더욱 불안했다.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기분 나쁜 상상을 지워버리며 끈적한 점액질이 휘젓는 듯한 위장을 움켜쥐며 엘리베이터 벽을 타고 천천히 일어섰다.

여전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정신은 못 된다. 주민의 눈에 가장 처음 들어온 것은 그의 표정이었다. 그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2의 세계를 발견한 듯 멍하고 동공은 커져 있었지만 숨소리는 규칙적이었다. 주민은 그가 별다른 의미 없이 놀란 것뿐 일거라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비상벨을 누르고 싶었지만 비상벨을 누르려면 그의 옆까지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주민에게 그것은 조금 두려운 일이었다.

그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의 분위기는 위험을 경고하는 표지판처럼 다가오지 말라는 것을 알린다.

주민은 깊게 심호흡했다.

비상벨을 누르려면 움직이지 않고선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갇혀있기도 싫고. 뱃속에선 기어 다니던 점액질들이 분해와 분해를 거듭한다. 발을 때려는 찰나에, 낮지만 거슬리는 높이의 소리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면 쓴 살인마의 웃음소리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의 웃음소리였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 하하하, 푸 하하

이유 없는 폭소는 주민의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곧이어 그는 폭소를 멈추고 이젠 실소를 흘렸다. “푸흐흐흐흐, 흐흐

 도저히 멀쩡한 웃음소리로는 들어줄 수 없는 기분 나쁜 소리였다. 그는 곧 멍하고 퀭한 얼굴로 표정 없이 킥킥거리며 실소를 흘려댔다.

동시에 주민은 귀에 흘러 들어오는 웃음소리에 혐오감을 느꼈다.

 딱히 그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어도. 엘리베이터에 갇히곤 폭소하는 사람에게는 겁을 먹었을 것이다. 상대가 그이니 더욱 마음은 조급해졌고. 뱃속은 상상 속의 점액질을 씻어내려는 듯 위액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의 소름 돋는 실소는 멈추지 않았고. 겁에 질린 주민은 벽에 미끄러지듯 쓰러져선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비상벨을 눌러 버리고 싶었다.

만약 힘이 있었더라면. 그를 쥐어 패버리고 싶었다. 빨리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벗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하며 치유 받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엔 힘이 들어가지 않고 이따금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귀를 틀어막으려는데. 그의 웃음소리가 멈칫 하였다. 하지만 다시  푸 흐흐, “ 하며 약간의 실소를 터트렸다.

주민은 귀를 틀어막아야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렸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저 그가 진정하길 기다려야 했는데.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씨발 멈췄잖아.”

소름이 엘리베이터 안의 모든 공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그 주변의 모든 원자들이 닭살이 돋지 않았을까. 낮은, 또 화난, 딱딱한 목소리, 가면 쓴 살인마. 싸이코패스의 무미건조한 한마디.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주민의 심장소리와 숨소리는 이미 격하게 흔들리고 불규칙해져 있었다. 그의 중얼거리는 소리는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결국 주민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공포에 질려 미쳐갈 때 나오는 아무 생각 없는 웃음을 내질렀다. 다시금 배가 쓰라려 왔고, 온몸에 힘을 빼버렸다.

 뭔가 호르몬이 분출된 듯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서야 편안히 사고할 수 있다. 겁쟁이인 자신을 한없이 질책해 본다. 멍청하게 겁먹긴. 이제 늦어버렸어. 반고리관을 울리는 간지러운 어지러움. 기절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포기해버린 주민의 고막에 다시는 듣기 싫을 음성이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16층에 이사 왔습니다.”

주민은 그를 쳐다봤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열대의 얼음조각 같은 쇠약한 얼굴에 미소를 만개했다.

멈췄어요.”

그가 말했다. 주민은 그가 대화를 걸어온 게 놀라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편안하던 사고에 약간 혼란이 왔다. 진짜 말은 한 건지 환상이

보이는 건지 몰랐지만. 그녀는 대답해 본다.

, 멈췄어요.”

두려움이 남은 걸까.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내 목소리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라고 주민은 생각했다.

어떻게 해요?”

주민은 그게 질문인걸 눈치채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조금 힘을 내서 대답한다.

 그럼……”비상벨을 설명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럼 저기 맨 위에 종 모양 보이시죠? 그걸 눌러보세요.”약간 안심한 주민은 갈라진 목소리로 다시 얘기했다.

소리가 나면, 멈췄다고 말씀하세요.”

주민은 더 이상 말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편안해졌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점액질들은 이미 위액에 쓸려갔고. 심장도 숨소리도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앞이 간신히 보이는 이 어둠이 편안해지기 시작했고, 이제 나른함을 느낀다.

, 경비실 입니다.”

그가 비상벨을 잘 찾았나 보다. 곧 경비실에서 구하러 오겠지. 주민은 안심했고. 지금 들어보니 깔끔하지만 어색한 발음으로 그가 말한다.

안녕하세요, 16층에 이사 왔습니다.

여기 엘리베이터가 ………”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충분히 편안해졌고. 다른 소리들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나른하게

조금 …… 의식을 잃는다.

 덜컹덜컹 하는 소리에 주민은 잠에서 깨어났다. 조금 무서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고.   곧이어 엘리베이터에서 환한 햇빛이전등 이었을 지도 모르는주민의 눈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그것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아름다운 햇빛의 전경인 듯 아름답게 빛나는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잠시 쓰러져 있으니 경비아저씨가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많이 놀라셨나 보네. 우셨어요? 이젠 괜찮습니다. 그냥 합선문제인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경비가 그녀를 위로했다. 다른 한 명의 경비는 기묘한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는가 보다. 하지만 듣고 싶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관심 없다.

괜찮습니다. 이제. “

이제는 갈라지지 않는 목소리로 그녀는 경비를 떠나 보내고는. 계단에 걸터앉아 앞머리를 위로 쓸어 넘겼다. 아마 그녀는 그와 처음으로 대화한 아파트 주민이 되겠지. 어이가 없어서 그녀는 실소를 터트렸다. 가볍게 웃음을 뿜어냈다. 얼마나 무서웠길래 정장은 너무 더러워졌고 스타킹 뒤꿈치는 찢어졌다. 흑역사로 남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전혀. 전혀 보고 싶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16층에 이사 왔습니다.”

주민은 생각한다. 이제 내가 최초로. 아무도 말해주지 않던걸 내가 말해야 한다고. 이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6…… 여긴 16층 없어요……”라고. 사실 그대로 말해버렸다.

……  

그는 이제서야 알겠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짓고 터덜터덜 계 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주민은. 약간의 웃음을 입에 머금고 집으로 올라갔다.

 주민은 이사하기로 했다. 그런 꼴을 당하고도 거기서 더 살수 있으면 상당한 강심장일 거라고 생각하며 집을 옮겼고. 마지막으로 그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8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녀는 흠칫 놀랐다. 그가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이사온 그는 이제 떠난 것이다.

 내심 안심하며. 웃음을 만개하며 그녀는 떠난다. 이것저것 생각해보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그는 정신지체장애 2급의 정신이상자였다고 한다. 그 이외의 정보를 듣지는 못했지만. 그가 정신이상자였다는 걸 알고는 그렇게 그를 대한 것이 창피하고 후회되었다. 이제는 힘 빠지는 옛 이야기가 된 그의 생각을 지웠다. 그녀가 지금부터 살게 될 아파트에 도착했으니. 그 일은 잊어버리려 하며. 처음 보는 엘리베이터를 불러본다.

문은 경쾌하고 깔끔한 여성의 목소리 안내와 함께 열렸고. 저번에 살던 아파트 보다 넓고. 최신형처럼 보였다.

기분 좋게 숨을 들이쉬며 그녀가 이사 갈 13층의 버튼을 누르려는데. 그녀는 흠칫 놀라버렸다.

안녕하세요, 16층에 이사 왔습니다.”

그가 ……  그가 그곳에 있었다.

처음 놀이기구를 발견한 6살 어린이 같이 신난 얼굴에 미소를 만개하며, 그곳에 있었다.  이젠 쇠약하지 않은 얼굴에 미소를 만개하며, 그는 웃는다.

여긴…… 여기는……

 18층까지 존재하는 아파트였다.     

그녀는 조금…… 의식을 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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