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은빛으로 빛나는 별의 마법소녀

은빛으로 빛나는 별의 마법소녀

 

 

 술에 취해서 밤의 거리를 걷다가, 커다란 금빛의 열쇠를 주웠다. 약간 까칠한 느낌의 그 열쇠는 진짜 열쇠 같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림으로 그려지는 형태의 상징화 된 단순한 형태의 열쇠였다. 그래, 마치 5사단 부대 마크 처럼. 또는 행운의 상징 같은 도금된 열쇠 선물 처럼. 비싼 걸까. 그래, 이거 금인 것이겠지.

 "아, 잠깐만요! 그것 줏으면 안된다구요!"

 어린 여자아이의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쇠를 쥔 손 끝에서 부터 짜릿한 감각이 심장을 흔들었다. 여자아이의 외침에도 이미 늦었다. 비싸보여서 이미 줏어버렸다. 아저씨는 돈이 아니면 살 수 없는 흔해 빠진 어른쟁이라서 이익을 보고 피할 수 없는 속물이 되었단다.

 "이미 늦었어. 그 아저씨 줏어 버렸는 걸."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이어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바라 보았다. 밤의 거리에, 아주 작은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보다 거대한 대형견이 서 있었다. 대형견의 목줄은 아이의 손에 단단히 붙들려 있었으나. 개가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여자아이를 원하는 곳으로 질질 끌고 갈 수 있을 듯 했다.

 "뭘 멍청히 쳐다보는 걸까."

 또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휴, 은빛아. 그런 말투를 쓰면 안된다니까?"

 여자아이는 강아지의 등짝을 가볍게 탁 때리며 대답했다. 이 대형견이 말하는 것이었나. 마치 만화 같다.

 "별은 마법소녀로서의 자각이 없어. 솔직히, 장난이라고 가볍게 여기고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아무 곳에나 열쇠를 떨어뜨리고 다니고. 마법세계는 그런 아르바이트가 필요한게 아니라고. 우린 좀 더 사명감이 있는 진정한 마법소녀를 원해."

 개가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지금 좀 취한 것은 사실인 것 같네. 열쇠는 네 것이니? 돌려 줄게. 아저씨는 돌아가봐야겠다."

 열쇠를 아이에게 내어 주었다.

 "미안하지만, 아저씨 여기서 돌아가지 못해."

 개가 말했다.

 "어른을 놀리면 못써."

 "하지만 사실인걸. 여긴 이미, 격리 공간이니까. 아저씨가 열쇠를 손댄 순간부터, 열쇠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격리 공간을 만들어 냈어."

 개가 말했다. 별이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는 열쇠를 쥐고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격리. 공간. 내가 갇혀 있다는 이야기 인 듯 하다. 머리가 아찔한게 토 할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평소와 같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고. 밤거리의 불빛은 반짝이며 행인은 드문 드문 걸어다니고 있다. 차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같은 차가 또 지나간다. 그리고 또 지나가고 행인은 또 지나간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 힘들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차의 번호를 보았다. 2606. 다음에 지나가는 차 역시 2606이다.

 "그래서 건들지 말라고 한건데요……."

 별은 말꼬리를 흐린다.

 "허, 그럼 너희도 못 가는거야?"

 별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든다.

 "아뇨, 저는 원래 열쇠의 주인이기 때문에 격리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 들 수 있어요. 이건 방범 시스템 같은 것이니까요."

 뭐야. 나만 여기 갇힌 거라는 이야기인가? 술이 좀 깬다.

 "아, 그런거야? 그럼 여기서 어떻게 나갈 수 있는데?"

 대답이 없다. 설마, 정말 없나.

 "미안하지만, 자주 찾아올게."

 개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단정적으로 말했다. 화가 울컥 치밀어 올라서 소리쳤다.

 "개소리 하지마!"

 "하지만 개인걸."

 "아무튼! 그런게 어디있어. 난 할 일이 있단 말이야. 집에 가서 게임도 해야하고. 잠도 자야하고……."

 내가 말 꼬리를 흐렸다.

 "별 거 없네."

 "어휴 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래도!"

 별이 또 은빛의 허리를 때리며 말했다. 그리고 목줄도 확 잡아 당겼다. 대형견은 중심을 잃고 별의 발 앞에 엎드렸다. 이 정도는 여유로운지 꼬리를 흔들고 있다. 개는 그 상태에서 나를 올려다 본다.

 "뭐, 나가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야."

 "뭔데?"

 "우리의 스폰서가 되면 되는거야."

 이 어린 여자아이의 스폰서가 되라는 말인가? 영 어감이 좋지 않은데.

 "스폰서라니. 뭔가, 꿈과 희망을 주면 되는 그런 거야?"

 "아? 바보야? 꿈과 희망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준다는 거야. 스폰서란 말 몰라?"

 개가 말했다. 뭐야. 설마.

 "아 그래, 돈. 돈이 필요해. 마법소녀가 어둠과 절망과 싸우려면 돈이 필요하지. 있잖아 아저씨. 마법 세계에서 온 나는 이 세계의 돈이 없어. 나를 파견하면서 활동금을 준다는 개념도 없는 꽃밭의 나라라니까. 그러니까. 아저씨가 스폰서가 되어 줬으면 해. 그래, 이렇게 고생하는 마법소녀에게 바나나 하나 못사주는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나에게 오는 이익은?"

 내 질문에 개가 빤히 쳐다본다. 어느새 내 앞에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왜? 별이 서비스 해주길 바래? 무슨 서비스?"

 나는 별을 쓱 쳐다보았다. 얼굴을 붉히고 있다. 뭐야. 이거, 이거 뭔가 속물적인 이야기가 되는 거 같은데.

 "아저씨, 별은. 솔직히 스폰서 같은거 필요 없어요. 그런데 은빛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제 스폰서가 되어 주시면 잘 해드릴게요. 음. 매일 편지도 써드릴게요. 또, 또……. 또 뭐가 있을까요. 그래요, 노래도 불러드릴까요?"

 별은 우물쭈물 말했다. 뭔가 생각해 둔 것이 없는 모양이다.

 "하. 이거 원. 날강도 구만."

 "말 조심해 아저씨. 우린 마법소녀와 그 마스코트님이라구."

 "알았어 알았어. 약속 할게."

 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내 굵은 새끼 손가락을 그 가늘고 여린 새끼손가락과 엮었다. 까짓거 바나나 하나 못사주겠나. 세계를 위해 싸우는 마법소녀에게 과자 하나 못사주겠나. 옷 하나 못 사주겠나.

 "자. 그럼 여기서 나가게 해줘."

 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커다란 열쇠의 고리를 양손으로 다소곳히 쥐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양 팔을 당겨 열쇠의 끝이 여자아이의 작은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파고 들었다. 단단한 열쇠가 부드럽게 여자아이의 가슴 가운데로 스며 들어갔다. "끙." 별은 조금 괴로운지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나의 가슴 속 - 새로운 꿈의 세계를 열어주세요] 열쇠를 꽉쥐고 힘껏 돌렸다. "하-아." 숨을 뱉어냈다. 별의 가슴의 중심에서 부터 밝은 빛이 나면서 빛의 균열이 퍼져 나갔다. 세일러문. 그래. 그거다. 빙빙 돌지는 않았지만. 별의 옷이 형태를 바꾸었다. 동화속 공주님 같이, 별은 눈을 뜨고 가슴에 박힌 열쇠를 다시 역으로 꺼냈다. 들어갈 때 보다 가늘고 길어진 열쇠는 지팡이의 형태를 띄고 빠져 나온 자리에는 검은색 구멍 그림이 남았다.

 "어때? 놀랐어?"

 개가 뿌듯한 듯 말했다.

 "아, 어쩐지. 세일러문 같아."

 "정확해. 우리는 이 시대의 세련된 마법소녀의 의상을 만들기 위해 그런 걸 참고 했거든."

 개가 의기양양하게 말해서 조금 촌스럽다는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민망하니까 자세히 보지 말아주세요 스폰서 아저씨."

 별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스폰서 아저씨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여튼 격리 공간 해제부터 해줘."

 별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작고 여린 손을 잡았다. 이런 아이가 마법소녀인가. 하긴, 정말로 싸움을 잘 할 것 같은 마법소녀는 본 적이 없긴 하지.

 "따라오세요."

 별은 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저 택시가 사라지는 곳 까지. 어느 시점에서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든다.

 "끝이에요."

 "간단하네."

 "제가 격리공간의 주인이니, 제 손을 잡으면 따라 나올 수 있는거에요."

 별은 웃으면서 올려다본다.

 "그래, 뭐 되었어. 그래. 아저씨가 뭔가 사줄까? 빵? 아이스크림?"

 "아니에요, 그런것 보다는. 음- 그래. 럭키 스트라이크가 좋겠다. 부탁해요 아저씨."

 별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하…… 그래?"

9개의 댓글

2014.10.25
원래 창작글 걍 후딱 훑기만하는데 재밌는데? 뭔가 망화로 그리고싶다
0
2014.10.25
@순수한불순물
만화
0
2014.10.25
@순수한불순물
오, 그래? 이런 단순한 짧은 이야기도 만화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네 ㅋㅋ
0
2014.10.25
@htthetetie
더써줘! 나는 몰입감 있게 흥미진진해져서 좋앗듬
0
2014.10.25
@htthetetie
나레이션만 초반에 주구장창 하질 않아서 쓱 보고 지나치지 않은거같당
0
2014.10.26
@순수한불순물
초반에 서술이 길면 인터넷에서는 읽기 싫어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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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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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6
그래? ㅋㅋ 고맙다.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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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7
요건 만화나 라노벨 장르에 어울릴 법한 이야기인데.
흔한 소재로 흥미있는 이야기를 만든 그 능력이 부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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