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압,노잼주의] 이슬람의 정복활동 (3) 알라의검의 페르시아 공략

안녕 ㅎㅎ 거두절미하고 저번에 소개한 알라의 검인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에 대해 이어서 설명할게.

 

저번편에서 할리드의 데뷔전에 대해 소개 했었지?

이번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그의 업적에 대해 이야기 해줄게.

 

이후 1대 정통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가 즉위해. (632~634)

당시 할리드의 나이는 40세였지.

그리고 곧바로 리다전쟁(632~633)에 투입돼.

 

이 전쟁은 배교자의 전쟁이라고 불려.

Riddar War인데, Riddar가 한번 무슬림이 되었다가 떠나간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네.

난 처음엔 지명인 줄 알았어 ㅋㅋㅋ

리다 전쟁은 예언자 무하마드가 죽은 후 아랍에 퍼져 있는 수 많은 부족들이

'우리가 왜 메디나의 통치를 받아야 하지? 걔네가 뭐가 잘났는데?'하면서 반기를 들게 되었고,

무하마드의 뒤를 이은 아부 바크르가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서 발발한 전쟁이야.

이 당시 할리드는 아부 바크르의 가까운 조언자이자 군대의 총 지휘관이었지.

그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장 민감하고 가장 강한 부족들이 모여 있는 아라비아 반도 중앙부로 들어가게돼.

당시 할리드의 진격로야.

 주 퀴사(Zhu Qissah)에서 출발한 할리드는 타이(Tayy)에 위치한 부족을 향해 진군해.

근데 이때 예언자 무하마드의 동료였던 아디 이븐 하팀(Adi ibn Hatim)의 중재로 다시 타이지역의 부족은 알라의 품으로 돌아와.

뒤이어 잘리다(Jalida)의 부족 역시 아디 이븐 하팀의 중재로 순순히 알라의 품으로 돌아오지.

 

그뒤 632년 9월 중반, 할리드는 6,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부자하(Buzakha)로 진군해.

그곳에서 스스로를 예언자라 주장하는 툴라이하(Tulaiha)가 이끄는 반란군 15,000을 무찌르지.

부자하와 감라의 위치.

그리고 곧바로 그 달의 3주차에 감라(Ghamrah)에서 또 다시 툴라이하의 군대를 격파하고 주변의 많은 부족들을

알라의 품으로 인도해.

 

그리고 이어서 바로 남쪽으로 이동해 나크라(Naqrah)에서 바누살림(Banu Saleem) 부족을,

그해 10월엔 자파르(Zafar)에서 여주인 살마(Salma)가 이끄는 반군을 격파해버려.

나크라와 자파르의 위치.

 

반군들을 여러 차례 격파한뒤 할리드는 셰이크 말리크 이븐 누웨이라(Sheik Malik ibn Nuwayrah)가 이끄는

바누 타밈(Banu Tamim)부족을 향해 군대를 움직여.

바누 타밈 부족은 쿠라이시 부족의 한 일파로,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영향을 가진 부족 중 하나였어.

 

당시 족장이었던 말리크는 관대함으로 유명한 전사이자 동시에 유명한 시인이었어.

당시 아라비아에서는 용맹, 관대함, 시적감각은 가장 존중 받는 덕목들이었지. 그 중 두가지나 가졌으니 얼마나 명망이 높았겠어.

그는 무하마드 시절 바누 타밈 부족에서 세금을 걷는 역할을 맡았었는데, 무하마드가 죽자,

자기가 걷은 세금을 부족민들에게 돌려줬었어. 그리고 메디나에선 이 행위를 반역으로 보았지.

그 뒤 할리드가 반도 안쪽으로 들어오며 반군들에게 연전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를 한거야.

말리크가 얼마나 똥줄이 타들어 갔겠어ㅋㅋ 

그래서 말리크는 부족민들에게 '우리 큰일났으무ㅜ 할리드한테 개기지 말고 항복해라ㅜㅜ'라고 명했고

다시 메디나에 바칠 세금을 걷어서 보냈어.

하지만 할리드가 군사를 데리고 그를 체포 했을때, 신앙적인 시험을 받았고, 그것을 통과하지 못해 결국

할리드의 손에 알라를 뵈러 가게 되지.

*당시 말리크는 위에서 말했듯 상당히 명망 있고 추앙받는 인물이었어. 그래서 뒤에 아부 바크르를 이어

2대 칼리프가 되는 우마르가 그의 처형에 반대하는데 결국 할리드는 말리크를 처형해 버려. 그래서 우마르는

이후 할리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돼.

 

말리크까지 정리되자 아라비아 중앙부의 부족들은 어느정도 정리가 끝나.

이제 아부 바크르는 가장 큰 위협이자 툴라이하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예언자라 주장하는 무사이리마(Musaylima)를

토벌하기 위해 할리드를 파견해.

632년 12월, 아크라바(Aqraba)평원에서 무사이리마의 40,000 반군과 할리드의 13,000 메디나 군이 격돌해.

이 전투가 야마마(Yamamah)전투야. 당시 전투를 살펴볼게.

 

양측 군대는 첫날 호각지세로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할리드는 맹렬히 저항하는 적들을 보며,

저 광신도들을 꺾기 위해선 반군의 머리인 무사이리마를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지.

오랜시간 지속되던 전투가 잠시 중단되고, 양측은 휴식을 위해 서서히 물러나.

이때, 우리의 할리드가 튀어나가 1:1 결투를 신청해.

모든 병사들이 이 장면을 보고 있었고, 너무 대담했기 때문에 무사이리마 측은 물러설 수가 없었어.

여기서 거절하면 정말 개쪽팔리고 사기가 주가 떨어지듯 팍팍 바닥을 향해 내리꽂을게 뻔했거든.

할리드는 결투에 응해 뛰쳐나오는 무사이리마 측 전사들을 하나 둘씩 알라 곁으로 보내며

서서히 무사이리마 쪽으로 다가갔고, 더 이상 그에게 맞설 전사는 남아있지 않았어.

이때쯤 할리드가 무사이리마에게 대화를 청하지.

근데 할리드는 이미 그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가 응해서 자기 앞으로 다가오자마자

나비처럼 날아가 벌처럼 검을 휘두르지. 이에 무사이리마는 깜짝 놀라 데굴데굴 구르며 도망쳐.

어떻게 되었겠어??

적의 대장은 영웅 처럼 서있고, 예언자라고 떠벌리던 우리 대장은 비굴하게 땅바닥을 구르고 있으니 말야.

무사이라마의 군대는 난로 앞의 솜사탕 마냥 순식간에 녹아서 사라져 버렸지.

 

야마마 전투는 할리드가 이끄는 이슬람 군의 대승으로 끝났고, 가장 큰 규모의 무사이라마가 와해되자

리다 전쟁도 자연스레 마무리 되었어.

 

633년 내부가 정리되자 아부 바크르는 사산조 페르시아로 눈을 돌렸어.

아부 바크르가 왜 갑자기 사산조 페르시아와 동로마 제국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아.

두 제국이 1편에서 설명한대로 오랜기간의 전쟁으로 많이 기가 빠져 있었다고는 해도

이슬람 제국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거든.

커피와 T.O.P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아니, 그보다 더 심했을꺼야. 지금으로 비유하면 멕시코가 미국에게 전쟁을 건 꼴이니까 말야.

만약 그때 두 제국 중 하나라도 이슬람을 명확히 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했다면 이슬람은

채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사그라 들었을거야. 그만큼 위험한 도박이었지.

아부 바크르는 이런 엄청난 도박에 쓸 패로 당연히 할리드를 뽑아들었지.

아부 바크르는 지원자로 모인 18,000여 군세를 할리드에게 안겨서 지금의 이라크 지역으로 파견해.

당시 할리드의 첫째 목표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방어하는 이라크 방어선의 핵심도시 히라(Hira)였어.

히라와 크테시폰의 위치.

 

633년 3월, 할리드는 18,000병력을 이끌고 이라크에 들어서게 되지.

첫째 목표는 우발라(Uballa)라는 강 하구의 도시였어.그해 4월 달에 할리드는 우발라를 방어 하기 위해 출동한 20,000여 가량의 페르시아 군대를 만나게 돼.

할리드의 이슬람군은 대부분 낙타나 말을 보유하여 기동성이 뛰어난 반면 페르시아 군은 당대 최고라 할만큼의 중무장을 갖추고

있었지. 다만 그에 따라 기동성은 많이 떨어졌어.

할리드는 이를 잘 이용해먹었어. 우발라로 가는 길은 후파이르를 통하는 길과 카지만을 통하는 길이 있는데,

카지만에 나타나서 페르시아 군을 그리로 유인하고, 페르시아 군이 카지만에 나타나면 다시 후파이르에서 나타나는,

매우 치사한 짓거리를 하지. 그런데 전쟁에 치사하고 말고가 어딨어 ㅋㅋ 이기면 장땡이지.

마치 두더지 잡기처럼 몇차례 왔다갔다를 반복해.

페르시아군은 우발라를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양쪽 통로를 모두 지켜야 하는데 적이 왔다갔다 거리니 따라갈 수 밖에.

이 짓거리를 두세번 반복하자 페르시아 군은 진이 쭉 빠져버렸지. 중무장이면 갑옷 무게만 10kg안팎일텐데 이것저것 더하면....

그런 짐을 메고서 왔다갔다 수백키로를 쫓아다녔으니, 지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지.

페르시아 군이 충분히 지쳤다고 판단되자, 할리드는 카지만에 진을 치고 느긋하게 기다려.

그리고 적들이 카지만 근방에 나타났을 때, 총공격을 감행해.

불쌍한 페르시아 군은 반격조차 제대로 못해보고 담배연기 흩어지듯 사라져 버리지.

이 전투가 Battle of Chain이야. 해석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연쇄전투? 연계전투? 그런 의미 인것 같아.

그리고 곧바로 4월 3째주에 메소포타미아 남쪽에서 또다시 20,000가량의 페르시아 군을 한번더 격파하지.(Battle of River)

Battle of Chain과 Battle of River가 벌어진 위치.

 

두번의 패전은 크테시폰에 있는 황제 아르다시르(Ardashir)3세에게 전해지지.

아르다시르3세는 곧바로 동로마제국과의 최전방 수비군을 제외한 곳에서 병사들이 징집되었어.

그리고 안다르자그하르(AndarZaghar)장군에게 주어 1차 수비부대를 보내지.이 군대는 앞선 전투의 패잔병과

당시 이라크 지역에 살던 아랍부족민들이 합류 한뒤 왈라자(Walaja)에 도착하지. 

그리고 1차 방어군 외에 바흐만(Bahman)장군을 2차 수비군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보내지.

헌데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차일피일 미뤄지다 한참이 지나서야 출발하게되.

할리드는 그 사실을 전역에 뿌려둔 첩자들을 통해 알게 되고, 두 군대가 합류하기 전 격파하기로 해.

곧 할리드는 바흐만이 예상한것 보다 훨씬 빨리 왈라자에 도착해.

633년 5월 바흐만이 도착하기도 전에 할리드와 안다르자그하르의 군대가 맞붙게 되.

할리드의 군대는 기병5,000에 보병이 10,000이었고, 안다르자그하르의 군대는는 30,000이었지만 대다수가 보병이었지.

할리드는 페르시아 군이 중무장군임을 감안해 기병 2천 씩을 각각 페르시아 진영 뒷편 언덕뒤에 숨겨놔.

왈라자 전투의 진형도. 붉은색이 이슬람군대. 푸른색이 페르시아군대야.

 

다음날 전투가 시작되고 양 진영이 나서서 맞붙게 되지.

전투가 한참 진행되자 비교적 경무장인 이슬람 군이 밀려나기 시작했고, 특히 중앙부분은 크게 밀려나기 시작했어.

전장은 자연스레 초승달 모양이 되어갔지. 그때, 할리드가 숨겨놓은 기병대가 한참 이슬람군을 밀어 붙이고 있는

페르시아군의 응딩이에 불침을 놓기 시작했어.

돌격-퇴각-재조직-재돌격을 반복하자 페르시아군의 양익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그걸 확인한 할리드는 중앙을 독려하며 다시 밀고 나갔지.

완벽한 포위망이 형성되고 페르시아군은 응딩이에 불이 붙은 채로 도망도 못치고 알라 곁으로 가게 돼.

지휘관 안다르자그하르는 간신히 도망치지만 유프라테스강쪽이 아닌 엉뚱하게 아라비아 사막으로 도망가 부하들 따라 알라 곁으로 가게되지.

 

왈라자 전투는 뒤에 나올 야르무크 전투와 함께 전술적으로 가장 정점에 있는 전투 중 하나로 꼽혀. 그의 장기인 빠른 기병대를 잘 활용했지.

이 패전으로 인해 페르시아 군대는 계속 방어적 전략으로 할리드에게 끌려다니게 돼.

 

왈라자에서의 대패 이후, 페르시아 군의 패잔병들 은 울라이스(Ullais)로 도망쳐. 그곳에는 페르시아인들보다 아랍인들이 더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무슬림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어. 그래서 히라와 울라이스 사이에 사는 아랍인들이 무슬림과 싸우기 위해

울라이스로 우르르 몰려들었지.

당시 군대를 이끌던 바흐만(앞의 그 2차 수비부대 지휘관)은 패전 소식을 듣고 그 휘하 장수인 자반(Jaban)에게 소수의 병사를 주고 울라이스로 보내.

그리고 자기가 가기 전까지는 절대절대절대 싸우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이 문제를 토의 하기 위해 크테시폰으로 군대를 돌려버리지.

완전 병신이 따로 없어. 전선을 맡길 거면 군대를 많이 주고 자기만 가던가. 병력도 쥐꼬리 만큼 줘놓고선 총사령관이 되서

토의 하겠다고 군대를 돌려버리니. 보는 내가 답답할 정도야.

그렇게까지 병신짓을 해서 수도로 돌아 와보니 황제는 병석에 누워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지.

바흐만은 자기가 한 병신짓도 있고 해서 속만 바싹바싹 타들어갔어.

 

이때 울라이스에 있던 아랍인들을 이끄는 자는 압둘 아스와드(Abdul Aswad)인데, 이 자는 자기 두 아들을 왈라자 전투에서 모조리 잃은 사람이야.

따라서 할리드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품고 있었지. 그는 할리드가 울라이스로 향해 다가오자 전투를 벌이기로 마음먹어.

 

할리드는 정찰병을 통해 울라이스에 매우 적대적인 아랍인들이 다수 존재한다고 듣게 되었고, 이들이 페르시아군과

합류하기 전에 격파하려 하지만 실패하게 돼.

그래서 이렇게 된 이상 두 군대가 효과적으로 재편성 되기 전에 때리기로 마음먹고 막 합류해서 엉성한 다음날 바로 공격명령을 내려.

 

할리드의 군대가 배치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흐만이 울라이스를 맡기고간 사령관인 자반은 급하게 달려가 양익에 아랍인들을 배치하였고,

곧 전투가 시작되지.

전투는 엄청나게 치열했고, 전투 중 할리드가 직접 압둘 아스와드를 그가 믿는 신에게 1대1 소개팅까지 주선해줬음에도

적들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지. 어느 정도였냐면, 무슬림연대기에 '마지막까지 싸우는 군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울라이스의

페르시아 군대다.' 라고 전해질 정도야.

 

할리드는 적들의 처절한 저항에 지쳐 알라에게 기도하지. '알라시여, 만일 저에게 승리를 주신다면, 이 강이 피로 물들기 전에

결코 그 어떤 적들도 이곳을 살아나갈 수 없게 하겠나이다.'

 

오후가 넘어가자 페르시아군과 아랍인들은 무슬림 군세를 막아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후퇴하기 시작해.

할리드는 곧바로 놓치지 않고 기병을 풀어 그들을 모조리 무장해제 시켜 전장으로 끌고와.

그리고는 강을 둑으로 막아 놓고는 포로들을 모조리 강가에서 처형하지.

처형은 3일 씩이나 계속 되었고, 강물은 시뻘겋게 되어 둑에 막혀 고여있었지. 

보다 못한 부하 장수인 콰카 이븐 아므르(Qa'qa ibn Amr)가 이제 그만 하시는게 어떠냐고 조언했고,

할리드는 처형을 멈추고 둑을 텄고, 강물은 피처럼 붉게 흘러가지.

이후 이 강은 피의 강(River of Blood)이라고 불려. 

 

전투가 끝나고 울라이스에 입성하자, 페르시아인들이 앞다퉈 공물을 바치고 항복하지.

그러나 할리드는 공물들을 모아 페르시아 군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보내.

'무타에서 난 9개의 검을 부수며 싸웠소, 하지만 페르시아인들과 같은 적을 만나지 못했고, 그런 페르시아인중에서,

울라이스의 군대와 같은 적을 만난적은 결단코 없소.'

왈라자와 울라이스, 그리고 히라의 위치.

 

울라이스에서의 참패 이후, 페르시아의 황제 아르다시르3세는 조로아스터교의 신과 데이트 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페르시아는 더 이상 이라크를 되찾기 위한 군대를 모을 여력이 없었어.

그 이후 633년 6월, 안바르(Anbar)와 에인 웃 타므르(Ein ut Tamr)마저 치열한 저항 끝에 함락되지.

안바르와 에인 웃 타므르의 위치.

 

두 도시의 함락후 7월 아라비아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급히 소환되어 반군을 격파하고, 8월에 다시 이라크로 돌아오자,

무지야(Muzayyah), 산니(Saniyy), 주마일(Zumeil), 하나피즈(Hanafiz)에서 상당한 규모의 페르시아 군대가 모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돼.

그래서 그들이 모두 모여 거대한 군세를 이루기 전에 군대를 3갈래로 나눠 한번에 하나씩 한밤 중 모두 자는 시간에

3방향에서 기습공격하는 방식으로 모두 격파해버려.

순식간에 간신히 짜내던 병력을 모조리 잃어버린 페르시아는 완전히 방어능력을 잃었고, 수도인 크테시폰과 동로마제국과의 접경도시인

피라즈(Firaz)밖에 안남게 되었지.

 

633년 12월, 할리드는 피라즈에 당도했고, 그곳엔 국경도시인 만큼 근방에 동로마 제국군이 주둔하고 있었어.

그들은 무슬림이 벌인 엄청난 정복전쟁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고, 페르시아의 몰락을 막기 위해 피라즈로 이동하지.

덕분에 피라즈에는 동로마 제국군+페르시아군+그리고 앞선 전투들의 생존자들이 합세하여 전하는 바로는 10만~15만의 군세에 육박했다고해.

 

할리드는 대규모의 적들을 보자 일단 군대를 뒤로 물린 후 적들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오게 끔 유인하지.

적들이 강을 건넌 후, 무슬림군대와 연합군의 1열이 맞부딪치자, 할리드는 일부 부하들에게 강둑을 점령하게 시키고,

강둑을 점령하자 곧바로 둑을 파괴해버려.

이후는 고구려-수나라 전쟁때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을 생각하면 돼.

아래가 군세를 모으다 격파당한 도시들, 위가 피라즈의 위치야.

*피라즈 전투때 연합군의 규모는 정확하지 않아. 10만~15만은 당시 기록이고, 현대사가들은 당시 저 수치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해.

아마 현실적인 수치는 3~4만 정도일거야. 그래도 무슬림 군대의 2배 정도야.

 

시원하게 물청소를 한뒤 할리드는 히라로 되돌아가서 군대를 정비하고, 크테시폰으로 향하는 길의 핵심요새인

콰디시야(Qadissiyah)를 공격하지만, 아부 바크르에게서 '시리아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할리드는 곧바로 군대를 거둬

히라로 돌아가 재정비를 하고 시리아(동로마제국)로 진격하지.

 

할리드 편이 꽤 길고 앞으로도 더 남았어. 

이렇게 긴 이유는 내가 할리드의 정복전쟁이 이슬람의 정복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할리드가 없었다면 이슬람은 지금처럼 널리 퍼지지 않았다고 평가 될 정도로 할리드가 이슬람 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커.

그러니 관심있다면 꼭 읽어주길 바랄게. ㅎㅎ

여기 까지 읽느라 정말 수고 했어. 다음편은 동로마제국과의 일전이야.

4개의 댓글

frfrf
2013.05.13
위대한 알라여
0
2013.05.15
닥치고 추천 누르는거다
0
2013.05.16
헠헠 역사 짱짱맨
0
2013.06.30
다음글 언제 올라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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