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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70년 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2018년의 잣대로 평가하더라도 흥미롭고 뛰어난 영화입니다. 뭔 말이 필요할까요? 그냥 너무나도 재미있습니다. 감정과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음악부터, 인물들의 심리를 극대화하여 표현해주는 카메라워킹에, 광기와 한 서린 배우들의 연기까지 뭐하나 빠짐없이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아서 한 시간 반의 러닝타임이 금방 지나가는 그런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정확히 반영하고 예측한 시대상인데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1950년대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950년대는 우리 한민족에게는 동족 산장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된 해이지만, 지구촌 사람들에게는 2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극심한 이념 대립이 찾아온 해였습니다. 


얼마나 지치고 불안하고 힘들었었을까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이성(理性, 영어로는 reason)에 대해서 의심과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산업혁명 이후로 계속 과학과 이성이라는 가치를 믿고 그대로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결국에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상을 낳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2차 세계대전이 또 연이어 일어나고, 게다가 그 상처가 다 회복되기도 전에 이제는 전 세계를 둘로 가른 이념 대립의 장이 펼쳐졌으니까요. 


역사가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이 이성이라는 것이 과연 계속 추구해도 가치인지를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이성이라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거부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건축 등의 예술에도 반영되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과 경향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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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은 도적과 사무라이, 사무라이의 아내 그리고 나무꾼 4명의 엇갈린 시선으로 이뤄진 이야기이다. 


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영화 <라쇼몽>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관점주의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요인물인 4인은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관리 앞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각자 유리한 대로 증언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도적은 자신이 용맹하고 사내다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무라이의 아내는 자신이 가련하고 불쌍한 피해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무라이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배신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무꾼은 자신이 값비싼 단도를 훔친 것을 숨기기 위해서 다들 지멋대로 증언을 하게 되죠.


이를 통해서 이 영화는 단 하나의 진실보다, 여러 개의 주관적인 시선이 더욱더 실존과 가깝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한 가지로 정확히 박혀있는 이성과 팩트보다는 관점과 상대주의가 현실과 실존에 가깝다는 것을 주장하듯이 말입니다. (종교와 과학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엔 절대적인 진리란 한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유일신, 과학적 명제)이라는 인식이 있었죠. 그리고 그러한 인식에 반항하듯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라는 것은 천의 얼굴을 한 상대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가집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러한 철학적 기조는 이성의 실패를 극복하고 한 차원 너머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과학적인 근거로 무장하여 열등한 민족과 유전자를 개조하자는 식의 우생학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었고, 효율적으로 최대한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단조롭고 닭장 같은 건축 양식에서 벗어나 곡선과 열린 공간이 있는 비효율적이지만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기존의 권위를 깨부수고 거부하는 혁명적인 분위기를 통해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여러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가 등장하여 흑인 인권에 대한 기존 인식을 깨부수기도 하였으며, 참정권 이후로 역사적으로 별 볼 일 없던 여성주의가 급진적 페미니즘, 사회적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등의 여러 갈래로 발전하여 꽃피우기 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백인 남성만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세계에 흑인, 여성, 동양인, 동성애자들이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이 꽃피우기 시작한 지 70년이나 지난 지금, 저는 얼마 전에 <라쇼몽>을 처음 봤습니다. 아... 정말 명성대로 너무나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특히 이 영화가 1950년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50년대 이후로 정말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제대로 때려 맞췄다는 점에서는 정말 소름이 다 돋았다니까요.


그런데 영화의 감상만을 떠나서 세상을 둘러보다보면 지금의 2018년의 세상에는 아직도 70년 전의 감상에 빠져서 <라쇼몽>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라쇼몽>을 통해서 진실은 없다,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지금 2018년 이 시대에도 하나의 사실보다 각자의 시선과 체험, 경험이 실존에 가까울까요? 삼백안의 소름 끼치는 눈빛으로 처절하게 말하는 것과 남성미 넘치는 거칠고 야생적인 모습으로 말하는 게 실제로 일어난 현실보다 가깝냐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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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물이 진짜 증거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상대주의, 관점주의는 진실보다 각자의 체험과 경험이 더욱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2018년에도 이러한 상대주의와 관점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진짜 증거가 주는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나의 체험, 상대적인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을 말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화장실에 몰카가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SNS에 점주가 몰카 촬영과 유포를 하는 성범죄자라고 협박하며 우기기다가 역관광 당한 트인낭의 사례나, 사실관계에 따라 보도하는 것이 아닌 감성과 눈물을 더 강조하며 "당신의 눈물이 그 증거"라며 사실관계를 흐리게 하는 언론사나, 통계와 철저한 계산보다는 자극적인 사건과 일반화를 통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우리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2018년에도 1950년의 시대정신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정확히 1950년 그 당시의 시대정신을 따라가고 있다고 하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따라가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1950년대의 시대정신이 낳은 친자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가진 관점주의에는 관점주의의 잣대를 들이대려 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 자신들이 가진 해체주의를 해체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요? 도대체 왜 자기부정을 통해 탄생한 사상에 자기부정의 잣대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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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의 엔딩에서 스님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함을 고백하고, 나무꾼은 아이를 안고 무너져내리는 나생문을 떠난다. 


저는 50년대 이후로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미 기득권이 되어버린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의 종말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을 진실에 대한 종교라고 한다면 지금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마치 종교개혁 직전의 로마 카톨릭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겁니다. 자기부정의 연속으로 생명력을 이어가는 기독교의 역사처럼 이제는 자기부정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야할 시대정신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제 모습이 아닐까하고 말이죠. 이제 사람들은 사실보다 관점과 체험이 중요하다는 말과함께 포스트모던식으로 현실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포스트모던이 낳은 마지막 자식인 정치적 올바름과 현대 여성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현실에서 어떤 부작용을 낳고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듯이요.


애초에 구로사와 아키라는 <라쇼몽>을 통해서 50년 이후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갈지를 예상하고,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를 피해 나생문에 앉아서 스님과 나무꾼처럼 황망한 눈빛으로 앉아만 있을 것인지, 비가 그치고 나서 아이를 안고 웃으며 일어나 무너져가는 나생문을 벗어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