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고양이

고양이

밤의 하늘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똑같았다. 어느 때는 별빛이 흐드러지게 피고, 어느 때는 달조차 구름 덮고 잠을 청하곤 하는 밤하늘이지만, 매일 이맘때쯤 나를 짓누르는 피로 속에서는 한결같이 화가 날 정도로 컴컴한 장막일 뿐이었다.

삶이 어두컴컴하지 않았다면 느낌이 다를까. 분명 예전에는 밤하늘을 보며 예쁘다, 감상에 젖었던 것 같다. 집안이 대충 망하고 난 뒤로는 하지 않는 생각. 몽환적인 동경의 대상은 불과 몇 년 만에 내 인생의 우울한 은유가 되어 있었다.

그 장막 속을 걷다 보면 느끼게 된다. 네온 사인조차 꺼진 거리를 오로지 발걸음 소리만을 길동무 삼아 걷는 사실을. 그건, 어떤 날이면 사무치는 외로움의 표상이 된다.

언제까지 이 하늘 아래를 걸어야 할까.

오늘따라 그 생각이 유난히 짙다.



부스럭.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 홀로 연주하던 외로움 속에서, 그것은 지나치게 튀는 불협화음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희끗희끗한 형체. 그건.......

"고양이?"

내 목소리를 들은 걸까. 녀석도 나를 바라보았다. 작고 갸름한 녀석의 눈이 나와 마주친다.

뭐랄까.

"예쁘네."

사실, 녀석은 예쁘다는 말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티없이 맑았을 녀석의 흰 몸뚱이는 오랜 길바닥 생활에 더럽혀져 있었고, 제법 굶고 지냈는지 한 눈에 봐도 볼품없이 말라 있었다.

그래도 내 눈엔 예뻤다. 아니, 작고 앙증맞은 생명이 나와 같은 시간을 걷고 있다는 것에 감격한 것일지도. 상관없었다. 기묘한 충동에 사로잡힌 채 나는 녀석을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야옹.

전봇대 밑에서 식빵 자세를 취하던 녀석은 내가 다가가자 벌떡 일어섰다. 짧게 울며 슬금슬금 걷는 꼴이, 더 이상 가까이 갔다간 어디론가 숨어버릴 기세였다.

조금 성급했나. 입맛이 썼다. 이 동네 고양이들은 겁이 많다는 걸 알았는데도 아무 생각없이 거리를 좁혀버렸다. 지금이라도 방식을 바꿔볼까? 나는 조심스레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녀석이 놀라지 않도록, 그렇게.

"착하지. 해치지 않아요."

짐짓 선량하게 목소리를 꾸민다.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 녀석에겐 어려운 사람의 말일지라도, 그 속에서 안전의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길 빌었다.

금방이라도 달음박질할 것 같던 녀석이 잠잠해진다. 내 의도가 통한 걸까?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호박색 시선을 홀린듯 바라보고 있으면 녀석의 자그마한 머리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해하고 있니?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나를 향해 매섭게 꽂히는 녀석의 시선. 반면에 녀석의 몸은 긴장에 겨워 잔물결이 치듯 일렁였다. 어쩐지 서글퍼진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널 해치지 않아. 나쁜 사람이 아닌 걸.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아.”

허공을 짚은 손이 움찔한다. 신기루를 쥐려 노력하던 소년처럼, 내 손은 아련하게 녀석이 있던 자취만을 움켜쥐었을 뿐이다. 달음박질하는 녀석의 모습은 언제 나를 바라보았냐는 듯 매몰찼다. 입술을 깨문다. 바로 눈 앞까지 밀려왔던 교감의 순간은 파도가 지나간 모래성마냥 허망했다.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은 힘들어하고 있었다. 매정한 세상을 걷는 건 녀석 또한 같아서, 지치고 무너져가는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값싼 동정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너를 예뻐하고 아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런 마음을 한껏 담아 손을 뻗었다. 녀석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그러나 녀석이 받아왔을 상처를, 나는 이길 수 없었다.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 놓인 커다란 간격을 메우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그렇게 정해놓았는지도.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면 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녀석에게서 너를 보았다. 너와 보냈던 그 처절하리만치 아름답던 실패의 나날들이 떠올라서-

아니.

다 아니다. 한낱 고양이에 네 상(像)을 멋대로 대입했던 것뿐인데.



그때도 그랬다. 한참 어두운 길을 너와 나는 걸었다. 비단 하늘만이 어두운 게 아닌 세상 속을 함께 걸었다. 마치 고양이처럼, 너는 끊임없이 나를 의심했었다. 나 또한 너를 스쳐지나간 잔인한 인연들 중 하나가 아닌지.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하염없이 흘렸던 눈물의 무게를 짊어진 너는 한 발, 한 발을 신중하게 내딛고자 했다.

나는 그런 네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쓰러웠다. 그 속에서 꿋꿋한 네가 너무나도 눈부셨다. 언제까지고 너와 함께 걷고 싶었고, 네가 아파할 때 같이 견뎌내고 싶었다. 그래, 난 널 사랑했다.

너에게 증명하기엔 모자랐던 모양이지만.



다시 세상은 조용하다. 고양이 소리도, 발걸음 소리도 멈춘 적요(寂寥). 억지로 깨어내려 발을 내딛는다. 뚜벅, 뚜벅. 그러나 진득하니 달라붙은 외로움, 괴로움. 갑작스레 휘둘러진 과거의 발톱에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으며 나는 걸었다.

너도 이 하늘 아래를 걷고 있을까.

오늘따라 그 생각이 유난히 짙다.

1개의 댓글

2018.07.22
냐아옹~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조회 수
32451 [그림] 에라. 그냥 올림 6 rulru 7 12 시간 전 70
32450 [그림] 호인 뿔난용 2 2 일 전 79
32449 [잡담] 8월 일페부스 같이나갈 개붕이있니 10 뀰강정 3 2 일 전 155
32448 [그림] 자세를 창작해서 그리는건 힘드네 뿔난용 3 3 일 전 127
32447 [그림] 코하루 모작 연습 3 뀰강정 5 3 일 전 158
32446 [기타 창작] 3D 븜 열심히 진행중 1 에오리스 4 3 일 전 99
32445 [그림] ddsdsdsds 7 구파 10 4 일 전 96
32444 [그림] 블렌더 배경연습 한장 6 끠자치킨 6 4 일 전 119
32443 [그림] 플러스터 토마+포세이혼 3 뿔난용 5 8 일 전 127
32442 [그림] 플러스터 토마+포세이혼(스케치) 뿔난용 1 8 일 전 59
32441 [그림] 오랜만에 샤프 낙서 장윈영 2 8 일 전 114
32440 [그림] 야밤 동탄 3 프로수간충 7 9 일 전 363
32439 [그림] 플러스터 간+기가듈 뿔난용 1 9 일 전 60
32438 [그림] 플러스터 간+기가듈(스케치) 뿔난용 1 9 일 전 25
32437 [기타 창작] 개다, 요루시카 권주가 1 9 일 전 56
32436 [그림] 플러스터 간+테라 뿔난용 3 10 일 전 74
32435 [그림] 플러스터 간+테라(스케치) 뿔난용 1 10 일 전 32
32434 [그림] 스윽 5 구파 9 10 일 전 105
32433 [그림] 플러스터 간+바로제 뿔난용 4 11 일 전 55
32432 [그림] 플러스터 간+바로제(스케치) 뿔난용 1 11 일 전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