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단편]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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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대장 후인 티 로안 소위는 병사에서부터 군 생활을 시작해 여기까지 올라온 백전노장이었다. 대대의 그 어느 부사관도 소위라고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병사들이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압 박 전투와 후에 시가전, ‘람손 719’ 작전등 굵직한 전투들을 거쳐온 백전노장이었다.


 그가 상의를 벗었을때 상반신 곳곳의 끔찍한 흉터를 처음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전쟁과 함께 나서 자라온 내가 보기도 끔찍한 그런 흉터들이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로안 소위야 말로 레인저가 가진 모든 가능성과 투지의 상징과도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 로안 소위가, 소총은 잠시 어깨에 걸고서 66밀리 대전차로켓을 한 손으로 들고, 벽에 몸을 단단히 밀착시켜 은엄폐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 지목당해서, 소대에 단 두 발 남은 LAW 중 다른 한 발을 들게 된 나 역시 같은 모습이었다. 전차 궤도 굴러가는 소리는 심장을 쪼이게 만들고, 엔진의 기동음은 공기를 진동시킨다. 문제는, 이 전차가 우리의 전차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3층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어.” 잠깐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소대장이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목소리가 아주 작지는 않았지만, 전차 소리에 묻혀서 아래에선 들리지 않을 터이니 괜찮다. “적 전차 2대. PT76이 아니라 T55야.”


 “골목에 숨었다간 본전도 못 건졌겠네요.” 내가 그렇게 대답했다. T55쯤 되면 어설프게 맞춰서는 오히려 화만 돋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곳 3층에서 상면이나 엔진 배기구를 직격해버린다면, 일격에 기동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다. 람손 719작전때 얻은 귀중한 교훈이었다.


 “남, 무전기 가져와.” M16의 총열덮개가 부서져라 꽉 쥐고 있던 남 일병이 앉은 자세로 나를 지나쳐서, 벽돌보다 조금 더 큰 워키토키를 소대장에게 넘겨줬다. 소대장은 다른 지점에 흩어져 매복중인 다른 소대원들에게 작전의 세부사항을 지시했다. 무전기를 다시 응우옌 반 남 일병에게 돌려주고, 그가 내게 말했다.


 “뚜완, 잘 들어. 너랑 내가 로켓을 쏘면 소대원들이 사격을 개시할거야. 적 전차는 두 대고, 당장 수중에 남은 로켓도 두 발 밖에 없다.” 재보급이 대충 두 시간정도 남았다. 내 기억으론 지금 소대의 기관총 탄약이랑 대전차로켓이 모자란게 문제였었다. “적 전차가 우리 위치를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대열 후미의 전차가 우리 좌측 길에 진입하는 순간, 내가 앞질러간 대열 선두 적 전차를 맞출거야. 넌 바로 아래의 적 전차를 잡아라.”


 간단히 말해 앞뒤를 전차 잔해로 틀어막고 집중사격으로 월맹군 중대 하나를 녹여버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철모는 거추장스럽다며 베레모를 눌러 쓴 지압은 벌써 구멍 밖으로 M60 기관총의 총열이 튀어나오지 않게 유의하며 사격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잠깐 고개를 내밀어, 맞은편 건물의 우리 소대원들을 슬쩍 살펴봤다. 가끔 철모 일부가 보이는 것을 빼면 전혀 움직임이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부대였으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나만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을까’ 가슴을 졸이겠지. 우리 부대는 달랐다. 도망쳐서 안 보이는게 아니라, 기도비닉이 철저한거다. 우리는 진짜 싸움꾼들이었다. 그래서 이 부대가 좋았다. 월급은 박봉에 최전선을 전전하는 신세지만, 겁쟁이나 VC의 스파이같은 것들은 적어도 우리 부대에선 안 키운다.


 아무튼, “내가 쏘면 너도 쏴라.” 로안 소위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어깨를 한번 탁 치고 방 문 밖으로 나서 다른 모서리로 향했다. 담배 한 모금이 간절했지만, 전투지역에선 금연하는게 습관이 된지도 오래였다. 대신 한 숨을 한 번 내뱉고, 안전핀을 제거한 뒤 발사관 후미를 잡아뽑았다. 어느덧 선두 전차가 내 위치를 한참 지나치고, 공산군 보병 대열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다시 가까워지는 궤도음과 엔진소리로 떨리는 공기. 쇳덩이와 서로의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해야 하는, 여러번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상황. 잡념을 날려준 폭발음.


 소대장이 사라진 방향 쪽에서, 제법 익숙해진 소리가 들리자 마자, 나는 곧바로 벽에서 등을 떼고 뒤돌아서서 외부로 몸을 드러냈다. 포격에 지붕 일부와 벽이 날아가버린, 후폭풍 걱정 없이 로켓을 쏘기 완벽한 환경이었다. 포탑 해치를 겨누려는 순간, 기관총에 팔뚝을 올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전차병과 언뜻 눈이 마주쳤다. 그 영겁과도 같은 찰나의 순간, 녀석은 이런 경우가 익숙치 않은 듯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입도 못 벌리고 있었다.


 난 익숙했다.



* * *



 보급물자를 수령하러 갈 겸, 잠시 뒤로 빠져 대대의 예비대로 대기하라는 명령이 우리 중대에게 떨어졌다. 교과서같은 완벽한 기습으로 전차 두 대와 보병 중대를 괴멸시킨 우리 소대는 트럭의 빈칸에 노획한 화기들을 꾹꾹 쑤셔담아왔다. 대대장과 중대장은 전차를 격파시킨 소대장과 나를 따로 찾아 악수를 청하며 말뿐이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투지역에서 고작 한 블록 후방의 관공서 건물에 자리잡은 우리는 그제서야 군장에서 C레이션 깡통을 주섬주섬 꺼냈다. 처음엔 입맛에 영 안 맞았어도 몇 년 먹다보니 이젠 그럭저럭 먹을 만 했지만, 이맘때 쯤이면 국물이 시원한 쌀국수를 한 사발 먹고 그늘가에 해먹을 쳐서 한 시간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게 최고인데.


 군번줄에 매달아놓은 깡통따개를 돌리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서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 부이 득 뚜완, 1950년생, 올해 스물 한살, 우리 나라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에도 전쟁이란 걸 하고 있었다. 평화가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평화를 상상하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평화란 뭘까?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을 배불리 먹고, 스콜이 내려 시원한 시간을 틈타 낮잠 한 숨 푹 자는 것? 그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의 누군가는 항상 즐기는 삶의 망중한이었다. 나 자신도 열일곱 나이에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 정도 삶의 여유는 즐기며 살았다.


 “Corporal Tuan!”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날 부르기에 고개를 돌리자, 플라스크 한 병이 내게 날아오고 있었다. 캐치볼 하듯 자연스레 낚아챘다. 그린베레와 호랑이 줄무늬 위장복이 잘 어울리는 남자, 대대 미군 고문관인 제이슨 하코트 상사였다.


 “훈장감이래서 축하해주려고 챙겨왔는데, 뭐 그리 분위기가 심각해?” 유창한 베트남어. 그도 그럴것이 이 사람은 10년도 넘게 여기서 살아온 고참 특수부대원이었다. 북베트남과 라오스를 밥먹듯이 넘나드는 비밀 부대에서 몇 년 연속으로 작전하다가, 제작년부터 우리 대대로 파견된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서로 제법 친해진 사이였다. 대단한 건 아니다. 당신도 누군가와 서로 한번씩 목숨을 빛 지면 계급에 상관 없이 이 정도 사이가 될 수 있다.


 “맥주나 한 병 갖다 주시지 그래요. 독한 술 먹고 뻗어버리면 곤란한데.”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한 직후 뚜껑을 열고, 독주 몇 모금을 입 안에 넣고 우걱이며 술맛을 음미했다. 향긋한 냄새가 콧가까지 올라와 아른거리고, 구내염이 생긴 자리가 살짝 따끔한 것이 소독이라도 되는 것 같아 묘한 쾌감이 들었다.


 “맥주래봤자 구할 수 있는게 ‘바바바’밖에 없더라. 양심이 있으면 그딴걸 어떻게 갖다주겠냐.”


 “그냥 저냥 먹을 만 하던데. 베트남 생활 12년차 되는 양반이 현지 식품을 그렇게 가려서야 게릴라 육성 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미국에서 더 오래 살았어. 이봐 젊은 친구, 난 베트남인과 그들의 식문화를 존중하는 군사 외교관이지만, 너희 나라 맥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큼털털한 오줌 맛이란 말야. 한국군 맥주가 차라리 낫더라.”


 바로 그 직후, 찰나의 비행음에 이어 창 밖에서 폭발이 연달아 일면서 공기마저 무참하게 난도질했다. 포격을 알리는 경고는 언제나 타이밍이 조금 늦기 마련이다. 튼튼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 죽치고 있던걸 다행으로 여기며, 가장 가까운 기둥 근처로 몸을 날려 바짝 엎드렸다.


 땅바닥이 쿵쿵 울리고 있었다. 오장육부가 흔들리는 기분이다. 요즘들어 혼자 생각하는거지만, 지진이 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비겁하게 게릴라전이나 하지 말고 정규전으로 붙어보자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런 양상으로 전투가 진행되니 이건 이거 나름대로 못 할 짓이었다. 최소한 DMZ가 아니면 중포 사격을 받을 일은 없었지.


 그 때, 바로 옆에서 하코트 상사가 나를 툭툭 쳤다. 온몸이 흔들리는 와중에 외부의 자극이 오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뭐라고 말하는지는 잘 안 들렸지만, 나에게 내민 그의 손에는 언제 다시 주웠는지, 아까 그 위스키가 담긴 플라스크 병이 들려있었다.


 미군 장거리 자주포의 대포병사격이 있기 전까지, 계속되던 포격의 와중에서, 그렇게 우리는 독주를 한모금씩 돌려 마시며 자기도 모르게 시시덕거렸다. 1972년 5월 3일. 영원히 잊지 못할 한 순간의 기억이다.



* * *



 여기저기 움푹 패여 달표면같은 비포장도로. 그 위로 우리 중대는 기갑부대의 M48 전차 소대를 앞세워 전진하고 있었다. 스콜이 내려 제법 시원하지만 이미 땀에 절은 전투복 위로 판초우의를 걸치고 있노라면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다. 군인, 그것도 정예 레인저 부대원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몸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불쾌감이었다.


 그나마 나은 점이라면, 이렇게 전차 뒤쪽에 올라타도 덜 불쾌하다는 점이다. 차가운 빗물이 엔진 위쪽 상판을 적셔주고 있으니 말이다.


 전차병 헬멧 대신 M1철모를 눌러쓰고, 큐폴라 위로 빼놓은 .50구경 중기관총을 잡고 있는 이 전차장 양반, 그리고 그 외 다른 전차병들은 레인저 외의 우리 군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자신의 직책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었다. 이들도 못 미더운 아군때문에 피를 본 경우가 꽤 많았는지, 출발하기 전에도 이 전차부대의 중대장은 우리 레인저들을 모아놓고, 전투가 벌어졌을때 제발 자기들과 붙어 있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빨갱이들 전차는 우리가 두들겨 팰 테니까, 너희들은 언제라도 우리의 눈이 되어줘야해. 너희들이 도망가면, 우리는 RPG에 소사체가 되거나, 따라서 후퇴할 수 밖에 없거든.”


 “악어와 악어새 같은 거에요.” 우리가 탄 전차의 전차장이 소대장에게 부연설명을 늘어놓았다. “악어새가 없으면 악어는 충치에 걸려 고통받다가 굶어죽게 되죠. 전차와 보병도 상호 보완 관계라서, 보병 엄호가 없으면 시야 확보가 안 돼서 어이없이 죽어나가거든요. 특히 이런 시가전이면 더더욱.”


 그런 이야기를 귀로만 들으며, 나는 전차 우측 후방에 걸터앉아 M16을 지향사격 자세로 거총하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들리는 전차장의  비유가 제법 이해가 잘 된다 싶었다. 이렇게 또 새로운 것을 알았다. 기분전환을 위한 우천중 담배 맛은 제법 삼삼했지만, 역시 별 도움이 안 됐다.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찝찝하고 끕끕한 ‘사소한’ 기분을 전부 잊게 해 주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차라리 조금 불쾌한게 낫다 싶은 그 순간,


 라고 생각한 그 순간, 눈에 방서모와 카키색 전투복의 불청객이 들어왔다. 손에는 RPG가 하나.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2인지 7인지 까지는 미처 못 알아봤다. 그저,


 “적 보병 후미 4시 방향!” 을 외치며 반사적으로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큰지 깜짝 놀라는 때가 전쟁중에 몇 번 있었는데, 이번도 그 중 하나였다. 전차에서 이탈한 이유는 간단했다. 2이든 7이든, 이 위치에서 후방을 때리면 전차는 못해도 기동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 이전에 나도 죽는다. 그맘때쯤의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차 사냥을 질리게 해 봐서 너무나 잘 알았다.


 뛰어내린 나는 몸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총을 그대로 갈겨버렸다. 조정간 연발에서 탄창 하나를 비워버릴 즈음 다른 이들도 전차에서 앞다퉈 뛰어내린 것 같았다. NVA의 RPG 사수가 급하게 방아쇠를 당겼지만, 나의 지향사격에 몸이 움츠러들어 조준이 틀어지고 말았다. 반대편 건물의 창문 속으로 로켓탄이 쑥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들을 수 있었다.


 “4시 방향! 4시 방향!”


 “11시 방향에 RPG!”


 대열 앞쪽에서도 RPG의 격발음과 짧은 비행음이 들리긴 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탄두가 폭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내가 발견을 못 해서 저들이 자기들이 노린 타이밍에 RPG를 쐈더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겠지. 하지만 난 앞의 RPG가 어딘가에서 터졌다고 생각했었다. 큰 폭발이 들렸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폭발의 주인공은 아군의 81밀리 불발탄를 개조해 만든 부비트랩이었다. 뛰어내린 누군가 엄폐위치로 이동한답시고 서두르다 인계철선을 건드렸고, 폭발에 휘말린 사상자들 중 두 사람이 시체도 못 찾을 정도로 인수분해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대열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 교전에 들어갔다. 다행히 첫 주도권은 이쪽에서 부분적으로나마 탈취했기에, 화력이 강한 우리 쪽으로 승리의 저울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저항이 심한 건물 한 채에 용케 몸을 우겨넣는데 성공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저항에 막히던 순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패튼 전차가 2층 창가에 대탄을 한 방 먹이는 연계 플레이까지 진행되었다. 아마도 우리 사정을 헤아렸다기 보다는 어쩌다보니 아다리가 맞아 돌아간 것일 테지만.


 포탄이 폭발한 충격 직후, 우리는 던지려던 수류탄을 대충 건빵주머니에 우겨넣었다. 선두에 있던 나는 지향사격 자세로 미친듯이 뜀박질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90밀리 전차포의 고폭탄이 폭발한 실내는 전쟁 경험 여러번 해 본 내가 보기에도 엉망진창이었다. 너무 잔인하게 시신이 난도질당한 광경을 보게 되면 그 비현실적인 모습때문에 의외로 별 감흥이 없었다. 다만, 창자가 터진  적병의 시신에서 나는 구리구리한 암모니아 냄새가 현실감을 적당히 보정해주고 있었다.


 원래 술집이었던 자리인 듯, 바텐더가 술 한잔을 내 줘야 할 그 자리에 몸을 숨기고 있던 월맹군 두엇이 비틀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5.56밀리 십여발을 맞고 쓰러졌다. 뒤따라 들어오던 인원들이 다른 방들을 살펴보러 가던 그 순간, 난 방금 사살한 적병의 주검을 뒤적였다. 계급장을 보니 한 놈은 상위, 한 놈은 일병. 상위의 시신에서 지도가방을 챙긴 직후, 저 구석에서 있던 등에 메는 사이즈의 소련제 무전기가 내 눈에 들어왔다.


 “소대장님! 무전기입니다!”


 로안 소위는 내가 넘겨준 지도가방을 판초우의 위로 대충 엇갈려메면서, 무전기를 가져올것을 지시했다. 다른 때였으면 시원한 맥주가 한 잔씩 올라왔을 테이블에 무전기가 올라왔고, 그는 송수신기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송수신기를 내팽개치듯 내려놓은 그는 적의 사격따위는 아랑곳않고 창가로 줄달음질쳤다. 아까의 전차장이 상반신을 내 놓은채로 기관총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지만, 눈에 띄는 표적은 없는지 사격을 하진 않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다행이었다. 그 귀청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으면 이쪽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았을 테니까.


 “중사! 전차 안으로 들어가! 적이 여기로 진내사격을 요청했다!” 그리고 로안 소위는 소대원 전원에게, “적의 포격이다! 1층으로 내려가! 엄폐!”라고 외치고 손에 잡히는 소대원들을 계단 아래로 잡아당겨 밀어댔다.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나도 판초우의를 그의 손에 잡혀 다시 1층으로 떠밀렸다. 전차들 엔진소리가 확연하게 시끄러워졌음을 나는 그때쯤 자각했다. 자기들 나름대로 살 궁리를 하는 것이겠지. 내 뒤에서 남 일병이 워키토키를 붇잡고 포격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언뜻 들렸다.


  “소대장님! 빨리 내려와요!” 유탄수 민 상병이 엎드린 상태에서 소리를 질렀다. “가고 있어!” 라는  대답과 함께, 한 손에는 구식 카빈총을, 다른 한 손에는 노획 무전기의 어깨끈을 들고 계단에서 올라갈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 소위의 모습이 보였다. 다연장 로켓포탄의 끔찍한 비행음이 들리기 시작 한 것도 그 때 쯤이었다.



* * *



 비가 그치던 무렵에 포격도 그쳤다. 처음엔 방사포 포격, 그 다음은 야포의 차례였다. 포격은 건물을 무너트리기엔 의외로 그 위력이 약했지만, 그래도 외부에 상처를 줄 정도는 되어서, 괜히 2층 3층같은 위에서 알짱대다간 골로 가기 딱 좋았다. 그나마 가옥 소탕의 단계라 외부에 나와있던 인원들은 얼마 없던게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처참한데, 이거.”


 아까는 선두 전차에 올라타있던 제이슨 하코트 상사가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전차전에선 한번도 져 본적 없다는 M48 전차 세 대가 고철이 돼서 글 여기저기 쳐박혀있었다. 사전 경고를 받아서 이탈을 하려던 덕분에 길을 완전히 틀어막은 차가 없다는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행인 점을 또 하나 이야기해보라면, 방금 우리가 노획했던 적의 작전지도 덕분에 근방의 적 포병 위치와 규모가 아군에게 간파당했다는 점이었다.  전폭기들은 네이팜을, 위험을 무릅쓰고 주간에 출격한 공군의 건쉽들은 20밀리 발칸포탄을 적 포병대 머리 위로 쏟아부었다. 장군들이 보기에 이 근방에서 아군을 두고두고 괴롭히던 요소 하나를 완전히 일소한것에 비하면, 건쉽은 좀 아까울지 몰라도 전차 서너대와 레인저 삼십여명의 희생은 감당할만한 피해에 불과하겠지. 이젠 이해한다. 아니, 이해한다기보단, 익숙해졌다.


 “빌어먹을.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하던가. 그랬으면 차라리 속 시원했을텐데.” 그 지독한 포격을 직접 당하고도 저런 말을 하는 로안 소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연설명을 들어보니 이해가 된다.


 “미군들이 발 빼기 전에, 이런 식으로 덤볐어봐. 3차대전을 준비하던 미군들이 화력으로 튀겨버렸을거야. 게릴라전으로 미군들 진을 빼 놓으니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저렇게 덤비는거잖아. 제공권도 없는 건방진 것 들이!”


 맞는 말같다. ‘67년, ‘68년즈음엔 이런 전면 침공은 상상도 못 했다. 아군을 제외하고서도 40만 대군의 미군이 하늘과 땅에 득시글대는데 제까짓것들이 어딜 감히 덤볐을거란 말인가?


 “그런 식이면,” 하코트 상사가 대화에 끼어든 것도 그 때 쯤이었다. “무슨 말인들 못 하겠습니까. 라오스에서 67년쯤 지상군 파병 요청을 했다면 호치민 루트는 진작에 잿더미가 됐겠죠. 프로젝트 피닉스를 65년도쯤에 했다면, 무고한 희생은 어쩔수 없어도 테트 공세 이전에 미리 VC의 씨를 말릴 수도 있었을겁니다.”


 그가 평소 좋아하던 쿠바산 시가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고서 말을 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 저 놈들이 소위님 말씀하시는 것 처럼 행동할 머저리들이었으면, 우리가 이 지경으로 밀리지도 않았겠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도 나름 생각을 해 봤다. 역사엔 만약도 없고, 저들은 그런 머저리들도 아니었다. 그러면 하코트 상사의 말같은 그런 조치들이 초기에 이뤄졌다고 과연 전쟁이 우리 뜻 대로 흘러갔을까?


 “… 웨스트모어랜드의 탐색/격멸이 라오스까지 확대된 수준에 불과했을테고, 당신네 빨갱이 언론은 몇 년 일찍 전쟁의 부도덕성을 고발할 소재를 찾았겠죠. 말씀 대로, 저들은 머저리들이 아니니까요.”


 그 주제는 그쯤에서 어색한 침묵으로 유야무야되고, 다시 우리는 바쁘게 움직여야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 그쯤돼서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짓거리를 우리는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걸까. 이길 수 있긴 한 걸까. 시작하던 순간부터 절대 이길수 없던, 무익한 싸움이 아니었을까… 라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언제부턴가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의식하지 못 했을 뿐.


 그 순간 나는, 언젠가 생길 내 아들과 손자들이 레인저의 흑표범이 그려진 철모를 쓰고 전쟁에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진저리쳤다. 현실이 그보다 끔찍한지, 차라리 나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 * *



 건쉽을 격추시켰던 대공화기의 정체가 밝혀졌다. SA-7이라는 소련제 최신형 대공미사일이었다. 어떻게 그 큼지막한 대공미사일을 여기까지 옮겨왔는지 의아해하는 병사들도 많았다.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RPG만한 유도탄이라 이거지. 저런게 후방으로 반입되면 제공권도 끝장이겠구만.” 그 소식을 들은 60사수 지압이 혀를 차며 그렇게 말했다. 북베트남을 폭격하는 미군기들이 미사일에 맞아 심심찮게 추락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언론보도 된 지도 오래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앞으로는 공중지원을 불러도 그것이 적을 맞추기 전에 적이 비행기를 격추시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공군의 폭격은 부정확해 질 것이고, 적은 그만큼 기동이 자유로워 질 것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우리 대대는 전차중대와의 협공으로 꽤 좋은 전적을 거두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아군은 공세 초기단계에 시가지를 점령했던  공산군들을 외곽으로 밀어내는데 성공했고, 적의 포격은 그 비오던 날의 폭격요청 이후 많이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공세 초기에 이 도시의 방어를 위해 투입된 것이 레인저단 두 개와 전차대대 하나. 그 이후 적의 증원병력들이 시가지를 에워싸면서 사실상 이곳은 포위된 상황이었다. 공군 수송기들이 보급물자를 공급하고 있었지만, 앞서도 말한 대공미사일로 강화된 대공화력때문에 골치를 썩히고 있었다.


 대공화망을 피하기 위해 고고도에서 내린 화물 팔레트들은 너무 멀리 퍼져서 적이 주워서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판이었다. 보급물자를 고고도에서 내려 저고도에서 낙하산이 산개하게 트릭을 쓰기 이전에는 미 공군이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보급을 해주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아무튼, 대공미사일 소식을 전해듣고 혀를 차던 지압이 갑자기 내게 물었다. “분대장님. 화물 낙하산 떨어질때 나와있지 말라는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까?”

 

 “아니. 무슨 일 있었어?”


 “어이가 없습니다. 그저께, 3대대 작전장교가 나와서 구경하고 있다가 그거에 깔려서 압사했대요.”


 거 참, 듣는 사람도 기가 막히는 한심한 죽음이군. 전장에선 전투로 죽는 사람보다 사고사가 더 비일비재 하다는건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죽음은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왜 그걸 나와서 구경하다가 깔려? 나와서 볼거면 피하기라도 잘 피하던가.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하라는 나의 명령에, 그는 내게 오전중 종교인들이 선두에 선 학생 반전 시위대가 기관총 살상지대에서 반전 집회를 열어서 잠깐 시끄러웠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 또 나왔어? 깡따구 하나는 대단하다니까.” 네 번째쯤 되니깐 로안 소위도 처음처럼 감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심드렁한 말투였다. “그 스님들, 대학생놈들말야. 걔들이 그 정신으로 빨갱이들이랑 싸웠으면 아마 우리 소대는 오늘 점심을 하노이에서 먹었을거야.”


 “그러게 말이죠. 그래도 그 덕분인지 요즘 이쪽으로 적 공격이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가능한 좋게 생각하려고요. 보급은 꾸준한데 사용을 안하니 탄약이 넉넉합니다.”


 “빨갱이들인지, 순진한건지… 해산하는 시위군중들 잘 살펴보라고 소대원들한테 전달해. 인파에 섞여서 VC가 시내로 재진입을 시도할지도 모르니까.”


 용케 시내에서 적을 내쫒은 게 불과 일주일 전 이야기였다. 그 독종들이 다시 콘크리트 정글에 몸을 숨긴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날 저녁, 적의 야습이 시작됐다. 포격은 이전에 비해 강도가 확연하게 줄어들긴 했지만, 적의 규모는 여전히 이쪽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것도 선두에 전차를 앞세운 공격이었다.


 우리 부대는 벽돌과 시멘트로 튼튼하게 지은 공립 고등학교 부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운동장은 헬기장이 되었고, 학교 부지 외곽엔 교통호와 유개호들이 거미줄처럼 여기저기로 파여있었다. 사낭을 잔뜩 쌓아올린 전차호에 엄폐중이던  전차들이 전진 후진을 반복하면서 적의 조준을 방해하며, 틈틈이 정확한 사격솜씨로 적 전차들을 야금야금 잘라먹고 있었다. 하지만 전차들이 멈칫하더라도, 보병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조명지뢰와 전차에 달린 서치라이트가 달 하나없는 방 하늘을 대낮처럼 새하얗게 밝히고,  구획 하나를 침범당할 때 마다 치밀하게 세팅해 뒀던 클레이모어 지뢰들이 차례대로 격발되었다.


 적의 녹색 예광탄과 아군의 붉은색 예광탄이 오락가락하는 한차례 접전이 끝나고, 적들은 끝내 우리 철조망을 넘지 못했다. 재정비를 위해서인지, 그들이 잠시 병력을 뒤로 물린 순간에 짧은 해프닝이 일어났다. 희극이라고 해야할지, 비극이라고 해야할지. 난 아직도 구분을 못 하겠다.


 전쟁의 폭음이 가까운데서 들리자 민간인들도 잠에서 깬 것이 화근이었다. 잠에서 깬 민간인들 사이에 섞여있던 순진한 이상주의자들은 지금이야말로 자기들의 ‘킹 목사식 비폭력운동’을 통해 교전을 중지시킬 기회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렇게 마지막 반전시위가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집회의 선두에는 스님들과 신부님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신론자들이고 종교를 혐오한다는 점 말이었다.


 아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딫힌 적들이 잠시 병력을 물린 그 틈을 타서, 모인 사람들이 조명탄 불빛 아래 반전 피켓을 들고 다시 살상지대로 나왔다. 널부러진 적병의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기가 찰 지경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들을 동정하게 되었다. 적의 포격이 데모대를 정확하게 조준해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 미친놈들. 포병도 모자라는 놈들이 아까운 포탄을 왜 자기들 적도 아닌 민간인한테 쏘는거야?”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저러는거야.” 소대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테트 공세때 후에 시가전 있던 애들은 다 알지? 놈들이 시내를 장악하자 마자 제일 먼저 했던게 반동분자 학살이었잖아. 조국해방전쟁을 중단하라는 종교인들이 저들 눈에 뭐로 보이겠나?”


 소대장이 말을 이었다.”명심해라, 제군들. 우리는 저런 놈들이랑 싸우고 있다. 우리가 옳아.” 뒤에 덧붙인 이야기는, 자기변호의 성격이 짙었지만,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린 실수를 한 적은 있어도, 적어도 일부러 민간인에게 총을 조준하진 않아.”


 소대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군 생활중 처음 겪은 실전인 ‘68년도 구정때의 후에 시가전에서 학살당한 시체를 본 뒤에도, 그리고 그 후의 여러 전투에서도, 소대장 로안 소위는, 그리고 그와 함께 활동한 우리는 일부러 양민을 학살한 적은 없었다.


 다만 실수의 빈도가 어느정도였는가는 별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때도 지금도 항상 하고 있다. 그게 남들이 보기에는 실수였을지도 같이 말이다. 혼자서, 머리 속으로만.


 

* * *



  두 달 남짓동안 진행됐던 사실상의 포위가 풀린 것은 5월 말경의 이야기였다.


 미 공군의 B-52 융단폭격이 결정적이었다. 공산군이 전선까지 가지고 올 수 있던 저고도 방공체계로는 전투기와 헬기를 상대할 수는 있어도 고공에서 구획 전체를 갈아엎는 전략폭격기를 상대할 방법이 전무했다.


 폭격 초기에는 아군 전선에 바짝 달라붙은 적 주력부대를 격멸하기 위해 정말 아슬아슬한 범위까지 융단폭격 대상으로 잡았다. 어느 대대인가는 코앞에서 퍼부어진 융단폭격에 대원들이 단체로 기절을 해 버려서,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린 대대장이 무전으로 욕설 섞인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도시를 포위하다시피했던 지역 베트콩 조직들과 2개 사단의 월맹 정규군은 모든 사단장과 사단본부의 참모들이 전사하는 등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바짝 조이고 있던 올가미가 통제력을 상실하고 느슨하게 풀어지자, 그 틈을 타 아군 공수부대와 미군 병력들이 대대/연대단위 헬기 강습으로 아군 본대와 우리 주둔지역 사이의 통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피난민들이 후방(개전 이래 처음으로 ‘전선’이 눈으로 보이기 시작한 때였다.)으로 빠지고, 반대쪽 도로에서는 공수부대가 장악한 통로를 통해 증원부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세는 압도적이었지만, 정규전에는 영 미숙했던 공산군은 전 전선에서 교착상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점차 소모되기 시작했고, 피해를 감당할 수 없던 적은 결국 공세를 중지하고 병력을 캄보디아로, 라오스로, DMZ 너머로 빼거나 지역 게릴라 조직에 합류시켰다. 그렇게 또 우리는 승리했다. 아무도 승리했다고 보지 않는 그런 허무한 승리 말이다.


 승리의 근거랍시고 들먹이는 ‘바디 카운트’가 허상에 불과하단 점을 잘 알고 있던 우리들은 다른 쪽으로 긍정적인 면모를 찾아 승리의 근거를 굳히려고 했다. 대표적인 부분은 역시 적의 전략목표를 분쇄했다는 점이었다.


 “다들 너무 기 죽지 마. 전차와 포병으로 중무장한 2개 사단의 포위를 이겨내고 목표 지역을 사수했잖아. 거기가 뚫리면 사이공이 목전이었어.”


 소대 막사로 버드와이저 캔맥주 세 박스를 케네디 지프에 싣고 온 하코트 상사가 위로하듯 말했다. 신병들이나 몇몇 다른 소대원들은 악전고투 끝에 살아남아 다시 주둔지에 돌아온 것 만으로도 만족하며 미제 맥주 선물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술판은 흥겨웠다. ‘승리’를 억지로, 혹은 진심으로 자축하며, 베트남인과 미국인이 다같이 레인저의 모토, ‘비엣 - 동 - 쿠안! 삿!’을 연호했다. 하지만, 난 결국 둘만 있는 자리에서 내 속 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상사님, 솔직해집시다. 당신도 나도 알잖아요. 이건 유예에 불과한 거 말이에요.”


 “이봐, 뚜완. 자네들은 할 만큼 했어. 남은건 결국 정치 문제야.”


 “싸구려 동정은 그만 좀 하라구요.” 확실히 그때 나는 취기가 좀 올라있었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습니까. 저들은 다시 본진으로 돌아갔을 뿐이고, 적은 여전히 건재해요.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헛소리는 꺼내지 마요. 쟤들은 더 징집하면 그만이니까. 중국과 소련은 소총과 탱크와 미사일을 다시 공급할테고, 전력은 다시 보강되겠죠. 그리고 당신들의 ‘단계적 철수’는 여전하고요.”


 3분의 1쯤 남은 캔맥주를 마저 목구멍에 털어넣고 말을 이었다. “‘베트남전의 베트남화’? 헛소리 집어 치우라 그래요. 결국 이번에도 남베트남을 지킨건 미국이었어요. 공중보급이 없었고 B-52가 없었다면 우린 말라 죽었을거고 사이공 대통령궁에 붉은 깃발을 건 전차가 쳐들어갔겠죠. 꽝찌, 다낭, 후에, 나짱, 다 시간문제였을겁니다. 단계적 철수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이봐 꾸완. 자네나 나나 군인이지 정치가가 아니야. 우리 권한 밖의 일에 대해서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겠나.”


 “적어도 결과물을 보고 촌평할 자격은 있습니다. 나는 이 나라 사람이고, 하코트 상사 당신은 우릴 위해 10년 넘게 여기서 싸웠으니까요.”


 새 맥주캔을 따기 전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그거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불이라도 붙여주려나 싶었는데, 애지중지하는 쿠바산 여송연이었다.


 “고마워요, 하코트.” 기꺼워하며 굵직한 고급 담배를 입에 물자, 그는 바로 라이터를 꺼내 내개 불을 붙여주고 자기도 반쯤 태운 시가를 꺼냈다. 나도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불을 붙여줬다. 서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네들은 들러리가 아니었어. 나도 가망없는 전쟁터에서 세월만 낭비하고 내 심신을 망친게 아니야. 우린 최선을 다했으니…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런 문제는 생각하지 말자고.”


 결국 우리는 거기서 우울한 대화를 멈췄다. 하지만 대화를 멈추고 생각을 멈춘다고 문제가 사라지진 않는 법이다.


 미국인들은 ‘부활절 대공세’로 마지막남은 인내심마저 사라졌다. 73년부로 대사관 경비대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미군과 연합군이 베트남에서 자취를 감췄다. 예상했던 바였다. 테트 공세때 베트콩을 완전히 갈아버리고도 전의를 상실해 병력 감축을 시작했던 나라가, 이번이라고 다를 리가 없었다. 하코트 상사도 그렇게 베트남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우리는 속에서부터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미국인들은 군대만 철수시킨게 아니라 경제적 지원까지 끊어버렸고, 자동소총을 든 병사들이 총알을 한 발 씩 헤아리며 싸워야 했다.


 로안 소위는 이듬해 중위가 되고, 언제나  장교가 모자라는 부대답게 중위 계급에도 불구하고 중대장이 되었다. 사이공 최후의 날, 레인저의 상징과도 같다던 그가 전사하던 날, 레인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베트남 공화국도 사라졌다.


 재교육 캠프에서 탈출하고, 조각배 자리값을 구할 돈도 없어서 두 다리로 캄보디아 국경을 건너기로 결심한 날부터, 중부고원지대의 인적없는 수풀을 헤치면서, 이젠 아무도 쓰지 않아 잡초가 무성해지는 호치민 루트의 흔적을 지나면서 나는 항상 생각했다. 우리는 남들 생각만큼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고, 저들은 세간의 평보다 훨씬 나쁜 녀석들이었다.


 세상이 마냥 권선징악이 아니라는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억울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였을까. 희생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위해 태어났던걸까. ‘72년 5월 초순에 처음으로 자각한 스스로에 대한 의문.


 하코트 상사의 말이 맞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난 패배자이고, 다른 가능성은 무의미한 가정일 뿐이다. 아마 나는, 평생 내 자신이 품고 사는 의문의 해답을 찾지 못 할 것이다.







< 끝 >



=======================================================================================================

'72년 부활절 공세당시 월남군 레인저부대 소속의 주인공 입장에서 썼습니다. 창작의 자유를 위해(사실 존나 무식해서) 부득이 특정 전투를 재현하려고 하진 않았지만, 부활절 공세 기간의 안 록 전투를 모티브삼아 적었습니다. 반전시위대에 대한 월맹군의 의도적인 포격이나, 재보급 팔레트에 깔려죽은 월남군 장교, B-52의 융단폭격 인접지역에서 작전하다 폭격의 충격으로 대부분이 기절한 월남군 부대 등은 실화를 토대로 각색한 것입니다.

6개의 댓글

2018.07.21
네가 쓴거여?
0
2018.07.22
@켄트지
그럼 창작판에 창작하지 않은걸 올리겠냐
0
2018.07.22
@ㅇㅇb
너무 현장감있게 잘써서 말여
0
2018.07.22
@켄트지
칭찬 ㄱㅅㄱㅅ
0
2018.07.23
님 혹시 베트남인이세요?
0
2018.07.23
@아침밥
토종 킴취맨입뉘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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