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방구석, 밝게 켜져 있는 모니터 하나를 두고 치루는 고독한 전투.
손이 한 자 한 자 키보드에 뭔가를 적어넣을때마다, 오른손은 귀신같이 '백스페이스'라는 키를 가차없이 두들긴다.
마치 타인의 손처럼 움직이는 사지의 말단.
근육발작은 아니였고, 오른손에 마귀가 쓰인것도 아니였다.
그냥, 그냥 내 문제였다.
김철수. 몰락한 일류 소설가.
"씨발..."
백 자를 쓰면, 오른손은 이백 자를 지웠다.
세 줄을 쓰면, 첫 문단부터 모조리 고쳐야했다.
소설가의 말로.
담배를 연거푸 반 갑이나 피고 돌아왔다. 토가 쏠려서 도저히 컴퓨터 앞에 다시 앉을 자신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위만 바라보았다.
천장을 보는 건 아니였다. 아직도 입에서 머금어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속에서,
-마치 옛날 동화처럼- 자신의 찬란했던 전성기를 되찾아줄 지니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상상만 머릿 속에 맴돌았다.
"하하..."
요정 대신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동안 부정하고 있었다- 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내가 미쳤음을. 내 인생이 끝났음을.
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없었다.
난 소설 속 세계의 창조자가 될 자격이 없었다.
한번 그렇게 인정하자,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게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동안 벽에 써왔던 설정들을 모두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데이터로만 남아있는 글자 혼합물들도 남김없이 삭제시켰다.
소설가였다는 추한 흔적을 깨끗이 씻어내자,
한 달 전에 연재중지한 내 최후의 소설만 남았다.
독자들에겐 너무 미안했다. 못난 나를 믿어준 사람들. 내 못남을 핑계로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주고 싶진 않았다.
소설가가 아닌 인간 김철수의 판단이었다.
공지를 올리자.
구구절절한 사연은 덧붙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단 다섯 자를 적고 나는 그대로 책상에 엎어졌다.
내일은 소설도 다 내리고 아이디도 탈퇴할 것이다.
때맞침 알람이 울렸다. 여섯 시간을 맞춰놓고 천 자 쓰기로 한 알람.
역시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저 멀리서 땡그랑, 땡그랑 하는 쇳소리를 들으면서 푸념에 젖었다.
'정말 끝이구나.'
...
"야."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던 행인이 알람에라도 맞은 것일까. 나는 모른체 하기로 했다.
"시발아, 끝은 개뿔, 나 세계정복 시켜준다며!"
?
무슨...
"이 새끼, 안되겠네. 창조주놈. 잠깐 면담 좀 하자. 일리아스, 준비해."
"네 마왕님. 받들겠습니다. 대(對) 창조주 역소환술 마법진 구축 완료."
남자의 목소리에 이어, 여성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 생각하기도 전에 일리아스라는 이름이 먼저 내 간담을 서늘하게 파고들었다.
마지막으로 쓴 소설의 조력자의 이름.
그리고 그녀가 부른 남자의 명칭- 마왕은 그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시작해.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자고."
"시동하겠습니다. 99%, 100%."
나는 이 모든게 꿈이라고 부정하기도 전에, 모니터속으로 양자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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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작. 잼썼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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