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요한복음이
저자는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사도 요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아서, 나사로나 막달라 마리아 또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제자가 저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역사비평/본문비평적으로
볼 때, 단일 저자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요한 공동체’라는 전체 공동체의 독특한 신앙고백이 덧입혀진 창작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그
동안 조사해오고 생각해왔던 것들과 나의 순전한 추측을 조금 보태어서 요한복음의 저자문제를 밝혀보고자 합니다. 저한테는
나름 흥미진진한 주제인데, 아무래도 본인이 이과출신이라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재미가 없다면 양해를 바랍니다.
우선, 요한복음 저자 문제에 앞서 12사도에 대해 알아봅시다. 12사도라 하면 예수의 가장 측근이었던 12제자를 말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하고는 사도행전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물론
가롯 유다를 대신한 맛디아 이야기가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12사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후대의 창작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쓰여진 바울의 서신서들 중 예수 부활의 목격자들을 설명하는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 그 열둘 (The
twelve)’이라고 명확히 명시되어 있어, 적어도 복음서가 작성될 시기 이전에 열 두
제자가 있었다는 전승자체는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열 두 제자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전설의 영역에 속합니다. 가톨릭 전승에 따르면 모두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제 검증할 방법은 없으나, 확실한 것은 초대 기독교가 형성될 당시에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한 다른 제자들의 초기 공동체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서기 44년에 있었던 헤롯 아그립바의 박해로 인한 위기로 인해 그나마 영향력이 있던 12사도의
권위는 예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이 때 12사도
중 하나였던 야고보(대 야고보-사도 요한의 형)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후로는 바울로 대표되는 디아스포라 기독교 공동체와 예루살렘의
야고보가 수장으로 있는 아직 유대교에서 독립하지 못한 기독교 공동체가 공존하다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유대-기독교는
사라지고 새로운 종교로써 기독교가 형성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사도 중에
그래도 사도행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인데 이들은 복음서에서 묘사된 12사도 중에서도 예수의 최 측근 3인에 해당됩니다. 셋 다 어부이면서 12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제자가 된 이들입니다. 이 들은 예수가 변화되는
모습과 야이로의 딸의 소생을 볼 수 있었던 12제자 중에서도 이너서클을 형성하였던 그룹입니다.
문제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는 이 이너서클의
인물이 아닌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나다나엘이나 니고데모, 나사로, 막달라
마리아, 아리마대 요셉 등 공관복음과는 명백히 다른 제자그룹이 언급되며, 따라서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는 이들과 밀접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요21:2에 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이 따로 언급되는 것으로 볼 때 요한복음이 편집 될 때, 편집자들은
요한복음의 원저자인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를 사도 요한과 다른 인물로 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요한 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가집니다. 만약 그가 요1:35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두 제자 중 한 명이라면(나머지 한 명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베드로보다 예수를 먼저 만났으며, 대사제와 아는 사이라서 예수가 붙잡히던 날 밤에 예수와 함께 대사제의 저택 안쪽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인물이며, 유일하게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 당할 때 옆에 있으면서 그의 어머니를 부탁 받았던 제자이며, 빈 무덤을 목격하였고, 부활 이후에도 예수를 만났던 인물입니다. 그러면서도 12제자에는 속해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러한 조건에
맞는 사람이 장수한 사도 요한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모순점이 해결되기 때문에 이 때까지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의 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만일 사도 요한이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빨리 순교하였고 그
이후에 다른 ‘요한’이라는 인물이 현재 알려진 사도 요한의
위치를 차지했다고 추정한다면 어떨까요?
사도 요한이 순교하였다고
암시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20:20 이하의 구절인데,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와서 자기 아들들을 후에 예수의 좌우에 앉혀달라고 청탁하는 장면입니다. 이에 예수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묻고 그들은 할 수 있다고 하자 예수는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이미 마태복음이 기록 될 당시에 세베대의 아들들이 예수의 잔을 마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사도 야고보와 요한은 이미 순교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을
적은 요한은 누구일까요? 바로 에페소의 장로 요한입니다.
기독교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이미 장로 요한을 요한 계시록의 저자로 알고 있었으며, 장로 요한과 사도 요한을 구별하였습니다. 그가 언급한 초대 교부 파피아스는 장로 요한의 제자였으며, 파피아스는 AD60년경에 태어난 인물로, 만일 사도 요한이 일찍이 순교하였다면
파피아스가 사도 요한의 제자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에페소의 장로
요한은 그 스스로 예수의 제자였으며, 예수의 어머니를 모셨고,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작성한 인물일 것입니다. 후대로
갈수록 그의 위치가 올라갈 필요가 있었고, 자연히 행방이 묘연한 (아마도
순교하였을) 사도 요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공관복음에
나오는 사도 요한은 ‘보아너게(천둥의 아들)’로 불릴만큼 성정이 급하고 불과 같은 인물이었으며, 갈릴리의 어부였습니다. 요한복음의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차분하고 지적인 인물이면서 대사제와 관련이 있는 인물입니다. 후대에 와서 이 두 인물이 하나로 합쳐진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시기경제학
Clesis
소리벗고빤쓰질러
순교 자체는 암시 할수있다고 하지만
언제 어디서 순교할지는 전혀 짐작 할수가 없는게 정상인데
내 잔을 마시려니와..가 어떻게 그렇게 해석이 되지
Clesis
마찬가지로 세베대의 아들들의 순교 예언도 실제 순교 이후에 삽입된 구절이 아니냐하는게 내 주장이야. 실제로 사도 야고보는 헤롯 아그립바의 박해 때 순교했다고 사도행전에 나오고...
저 마태복음을 읽은 독자들은 당연히 세베대의 아들을이 '그래서 순교했구나 또는 순교했겠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도 요한이 만약에 살아있었다면 베드로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일텐데 저 구절이 요한이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데 삽입되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옻패킹
Clesis
Clesis
그렇게 생각하면 왜 그런사람이 12사도가 아닌가 궁금하겠지만, 간단히 대답할 수 있어. 장로 요한은 예수 제자 시절에는 너무 어린 사람이었던거야! 12제자가 되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의 품에 기대어 응석(애교?)을 부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거지. 그래서 예수가 잡혀서 재판받을 때 오히려 성인 제자들보다 위협을 덜 느끼고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
요한계시록이나 요한복음 서기 90~100년정도에 쓰여졌다고 본다면 예수 제자시절에는 정말로 어린 사람이었을꺼야.
사도 요한은 사도 야고보의 동생이자 베드로의 동료니까 나이 대가 비슷하지 않을까. 베드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12사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도 요한도 그렇게 행방이 묘연해졌다는게 더 그럴 듯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The Fact
Clesis
The Fact
마마쉐리
그럴싸하게 도망자들의 신이되어주는 얘기를 지어서 글로쓴거임
구라쟁이들 말을 믿냐?
니가랸아
혹시 요세푸스 관련된 서적중에 괜찮은 책 있으면 소개좀 시켜줄 수 있어? ^^
Clesis
니가랸아
댓츠노노
결국 사도요한니 쓴거 맞음 본인이 기록했다고 한 것 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딨음 ?
Cle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