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캐슬러 신드롬 - 그레이스


 금발의 땋은 머리가 인상적인 그레이스는 혼자가 아니다. 그레이스에게는 포라고 불리는 쌍둥이 동생이 있다. 그레이스와 그레이스 포는 마음씨 좋은 누군가에 의해 지상에 간신히 내려온 후, 혜성에게 보내졌다. 어째서 이 시골의 작은 천문대에 쌍둥이를 보냈는지는 잘 모른다. 앞으로도 알기 힘들 것이다. 

 데브리가 쏟아지는 것이 적나라하게 보이던 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밤. 그 외국인은 오랜 여행에 지쳐 잠들어 있던 쌍둥이 자매 그레이스와 그레이스 포를 안고 왔다. 그는 다짜고짜 독일어로 뭐라 말하고 둘을 천문대의 소파에 눕혔다. 어리둥절해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혜성은 한국어로 적힌 작은 쪽지 하나만 받았다. 보아하니 이 자매에 대해서 적혀 있는 듯 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여기로 찾아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 피로에 찌든 얼굴을 보아하니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은 듯 했다. 안으로 들어와서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그는 자매가 잠들어 있는 소파 주변을 두리번 거려 천문대를 보더니, 뭔가 안도한 듯 한숨을 쉬었다.

 "한국말 할 줄 모르세요?"
 혜성이 물었다.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그는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대신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혜성의 손을 잡고 소파에 누워 무슨 일인지 모른채 잠들어 있는 자매를 가리켰다. 반드시 맡아달라는 의미인데, 이미 천문대에 오코와 노아가 있는 혜성으로서는 두 명을 더 맡지 못할 것도 없지만,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맡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 혜성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는지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채 둘은 잠들어 있었다. 한 아이가 시끄러운지 잠에서 깰듯한 신음을 냈다. 그러면서 손을 더듬거렸는데, 옆에 잠들어 있는 다른 아이의 손에 닿자 그 손을 꽉 잡았다. 그러더니 안심한 듯 바로 조용히 잠들었다. 혜성이 그걸 보고 있을 때 독일인은 달아나 버렸다. 안절부절 못하고, 산만한 것이. 마치 뭔가에 쫓기는 사람 같았다. 그가 어떻게 이 구석의 천문대를 알고 독일에서 부터 찾아 왔을까. 혜성은 찝찝하기 짝이 없다.

 '하기는 이런 시대에 천문대라니. 외국에서도 알고 있을 법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딱히 이 천문대에서 하고 있는 일을 숨기려 한 적은 없다. 혜성은 단지 우주를 향해서 끊임 없이 신호를 보내고 살아 있는 인공위성을 찾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으로선 취미의 연장으로 하고 있는 연구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그 와중에 우주의 소녀들을 찾는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통신 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숨긴 적이 없으니까, 어디선가 그 대화를 듣고 멀리서 찾아와서 냅다 와서 소녀들을 맡기고 갈 수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 이미 엎질러진 일, 혜성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낯선 장소에서 깨어난 둘이 한참을 울어댔다. 오코와 노아가 달래려고 애를 썼음에도 그날은 하루 종일 울었다. 신기한 것은 둘은 그 와중에도 절대로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은 눈이 붉어져 퉁퉁 부을 때까지 울었다. 실컷 울고 나서 지치면 현실이 닥쳐온다. 오코도 노아도 그랬듯이 그레이스 자매는 금방 적응했다. 이들이 강인한 정신을 가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없는 우주에서 고독하게 미쳐버렸을 테니까. 가혹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혜성은 어째서 그레이스 자매가 손을 항상 잡고 절대로 놓지 않으려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식사를 할 때도 씻을 때도 마당을 걸어다닐 때도 놀때도 잠들때도 항상 손을 잡고 있었다. 그레이스 자매의 신상에 대해서는 그 독일인이 주고간 쪽지에 적혀 있는 것이 전부였고, 지난 전쟁때 관련 자료들이 모두 소실되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전쟁때 데이터와 서버들이 많이 파괴되었다, 현대의 인터넷이란 이전에 비해서 빈약할 수 밖에 없었다.  자세한 것은 몰라도 그레이스와 그레이스 포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종합했다. 둘은 지구의 중력을 측정하기 위해서 올려보낸 아이들이다. 이것이 전부다. 혜성은 어디에 쓰려고 중력을 측정하는지, 중력을 측정하는 일에 자매가 같이 올라가야 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전에 슬쩍 물어 본 것에 따르면, 둘은 자매인데 하나는 미국에서 하나는 독일에서 자라났다고 했다. 둘의 부모는 실종되었고, 의지할 것은 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에 의해 서로 찢어져 미국와 독일에서 따로 시설에서 성장하는 건 고독한 일이 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항상 같이 있었을 텐데, 정말 그것 만으로 둘이 항상 손을 잡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걸까. 

 자매는 산을 좋아했다. 둘이 천문대에서 사는 것에 금방 적응 한 것도 분명 그것 때문이다. 산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산에 있으면, 우리가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어요."
 언니 그레이스가 그렇게 말했다. 둘은 그말이 맞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며 끄덕였다.
 "왜? 산이랑 가까이 있는 거랑 무슨 관계야?"
 준하가 물었다.
 "그건요 말이에요… 중력이 강하니까요."
 그레이스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을 건드린 것 같았다. 자매가 마음이 여린편이었지만, 언니 그레이스는 더욱 그랬다. 혜성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포가 끼어들어 그레이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오빠가 무슨 의미인지 못알아 들었으니 설명해 달라는 의미였다. 포그레이스에 비하면 포는 좀 더 활기차고 싹싹한 성격이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임에도 음침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레이스가 입술을 뗐다.
 "우리는 항상 가까이 있었지만, 영원히 가까워 질 수 없었어요."
 그레이스가 말했다.
 "우리는 우리 사이의 거리를 측량해서 중력을 측정했어요.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데도 영원히 가까워 질 수 없었던 거에요. 하지만 중력이 강한 곳에 간다면 조금이라도 가까워 질 수 있었어요."
 포가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서 팔을 뻗었었죠. 하지만 안 됐어요. 우리를 만든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을 것을 염려해서 설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손을 잡아버린다면 중력 측정은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고, 우리의 존재가치는 없어지니까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떨리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말하기 힘든 시간을 억지로 되짚어서, 솔직하게 혜성에게 말했다. 그게 그레이스가 자신들을 받아줘서 고맙다는 표현이었다.
 "처음엔 대화라도 할 수 있었지만요, 포는 데브리에 맞아서 무전기가 고장나버렸어요. 눈 앞에 있는데도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고, 미국과 독일에서 따로 성장해 간신히 만난 동생을…… 침묵 속에 방치헤야 했어요…… 이제 우리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에요."
 그레이스가 결국 울었다. 포는 그레이스를 안아줬다.
 "말해줘서 고마워."
  준하는 중력과 거리에 대해서 곧바로 감이 오지는 않았지만 둘이 어째서 떨어지지 않는지는 조금 이해 할 수 있었다. 자매가 서로 떨어져서 다른 대륙에서 성장하다가 간신히 만났는데 손도 잡을 수 없고,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우주를 맴돌아야 했다면 누구라도 이 자매처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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