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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소설) 리뷰

20180609_152135.jpg : 위대한 개츠비(소설) 리뷰

우리는 누구나 낭만이라는 것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남들이 보기에 하찮고 비현실적이었지만 나는 그 낭만을 내 가슴 속에 품고 과거에 부딪혔던 적이 있는 거센 조류를 거슬러 힘차게 나아갔다. 입 밖으로 내보내기는 분명 부끄러웠다. 그러나 일순간의 창피함보단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내 열정과 별처럼 빛나는 꿈을 이해하지 못할 타인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서 굳이 얘기를 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짧고 빛났던 그 낭만은 내가 지겨운 삶이 피곤하여 지쳐 쓰러지려 할 때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등을 쳐줬던 나의 순수한 열망이었다.

그 열망을 잊고 산지 꽤 오래되었다. 기대했던 미래와 다르게 거친 파도는 내 앞에 쉬지않고 다가왔고, 이 고비를 넘기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였으나 달콤한 당근은 온데간데 없고 내 등을 채찍질한다. 현실에 조율을 하다보니 뜨겁게 불탔던 패기와 열정이 식어버려 가끔 그 때를 그리워하며 언젠가 다시 불타오를 날을 기다릴 뿐이다.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아메리칸 드림 열풍으로 인해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하고 도덕과 윤리가 갈 곳을 잃어버린 당시 미국 동부의 모습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이다. 그래서 나도 이번 리뷰에선 알지도 못하는 미국사를 아는 척 하며 글을 써 볼까 했다가 조금 노선을 바꿔보기로 했다. 위에서 난데없이 '낭만'을 노래한 이유는 그 곳에 있다.

뉴욕 동부 롱아일랜드의 웨스트 에그로 이사 온 닉 캐러웨이는 한 때 대학에서 글을 쓰기도 했던 문학 청년이었으나, 지루하고 답답한 서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천지인 뉴욕에서 증권 일을 하기로 한 이십대 후반의 청년이다. 그는 이스트 에그에 사는 그의 친구 톰 뷰캐넌과 닉의 사촌이자 톰의 부인인 데이지, 그리고 골프 선수인 조던 베이커와 함께 돈의 맛이 넘치는 동부의 삶을 즐긴다. 술과 돈, 혼외정사, 도박, 마약 등 황금에 의해 도덕이 살해된 미국 뉴욕의 삶은 닉의 기대와 맞지 않고 경멸하기에 이른다.

매주 토요일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여는 개츠비의 첫 인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돈을 써야하는지 모르는 졸부 마냥 거대한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닉은 개츠비가 사실 5년전 1차 세계대전 당시에 파티에서 우연히 만났던 데이지를 잊지 않고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임을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해왔던 순수한 열망을 이해하고 나서 개츠비와 데이지가 서로 재회하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에 어울리는 대단한 여자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개츠비를 기다렸으나 불안함을 견디지 못해 톰과 결혼하였고, 이제는 셔츠에 묻어있는 그 날의 추억이 아니라 영국에서 수입해 온 고급 셔츠에 눈물을 흘리는 흔하디 흔한, 현실적이고 가식적인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내기 위한 것처럼 개츠비를 저버렸고, 그녀가 저지른 뺑소니 사건을 개츠비에게 뒤집어 씌우자는 톰의 암약에 침묵으로 동의하며, 데이지가 죽인 여자의 남편이 개츠비를 뜨거운 납탄으로 꿰뚫어 죽였음에도 죄책감없이 홀연히 이스트 에그를 등지고 떠나버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회상하며 닉은 <위대한 개츠비>를 집필한다(닉은 소설 속 화자이다). 닉은 그 때의 뉴욕을 황금만능주의로 도배되었으며 도덕과 윤리가 결여된 사회, 우정과 사랑이 한낱 은행 계좌 잔고에 의해 버려질 수 있는 차가운 자본주의 사회로 기억한다. 또한 닉은 개츠비를 "당신은 저 쓰레기 같은 놈들을 전부 모아놓은 것보다 가치있는 사람이에요"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비록 금주법이 실행되었던 시기에 불법으로 물장사를 하고, 주식조작과 학력위조를 하며, 목적주의의 허점에 빠져 거짓된 삶을 살아왔던 그 였지만, 그럼에도 닉이 개츠비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이 모든 일들이 오직 그토록 사랑하는 데이지만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전쟁터에서 살아남았고, 이스트 에그의 데이지의 집 맞은 편, 웨스트 에그에 집을 짓고 매일 밤마다 반대편의 초록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한 남자. 데이지를 만나게 된다는 설렘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 집을 꽃밭으로 만들어버리며 언제 그녀가 올지 몰라 불안함에 다리를 떠는 순수한 남자. 매번 만날 때마다 돈 얘기밖에 하지 않더라도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 마지않는 최고의 로맨티스트. 그런 개츠비를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으며, 그의 마지막 가는 날 까지도 홀로 배웅했던 닉은 개츠비의 이름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도 개츠비와 같은 순수한 열망이 있었다. 아직도 그 열망을 소중히 간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츠비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것이라 하는 불안감에 지쳐버린 데이지처럼, 현실과 타협하여 거칠고 사납지만 부유한 톰의 아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더 가시적이고 편안한 선택이기 때문에 마다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톰과 데이지, 조던 베이커와 같은 소시민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의 손이 아직 쥐지도 않은 상상을 자신의 현실이라고 여겨 환상 속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현실이 믿음을 저버렸을 지라도 그 스스로만큼은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데이지의 전화를 기다렸던 낭만가였다. 그렇기에, 황금으로 치장한 동부의 더러운 먼지들 속에서도 고고히 빛나는 개츠비의 인생이 '위대한' 이유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이 소설은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신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만큼 세상은 무척이나 변했음에도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한다. 과거를 반복하지 못할 것임을 알아도 우리는 미래를 긍정해야하며, 10년 뒤 미래에 되어있을 나를 떠올릴 때 느꼈던 경이로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곳을 향해 먼 길을 가야 하며, 개츠비가 믿었던 초록 불빛을, 환희의 미래를 같이 믿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피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며,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류를 거슬러 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It eluded us then, but that’s no matter — to-morrow we will run faster, stretch out our arms farther. . . . . .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17개의 댓글

2013년판 영화에 대해서 쓸까 했지만 최근에 소설을 읽기도 해서 이렇게 씁니다. 소설이 더 낫기도 하고.
0
2018.06.11
@별거아닌데그만들싸워
잘 읽었는데 차라리 읽을거리 판으로 가는게 맞지 않겠니....?
엄연히 여긴 영판이고 그걸 지켜주는게 맞다고 보는데.....
0
@Porsche911
읽판에 리뷰써도 되나
0
2018.06.11
@별거아닌데그만들싸워
음 읽판에 리뷰쓰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영판에 소설 리뷰 써도 된다는 근거는 없잖아. 어디까지나 '영화' 판이니깐.
정 개드립에 소설 리뷰를 쓰고 싶었음 유저 개드립에다 써야지. 아님 타 커뮤를 알아보던가.
0
2018.06.11
하늘의 어디까지가 자신의 몫인지 알아보려고 했던 개츠비
0
@이븐라이드
이것이 1렙의 문장력인가... ㄷㄷㄷㄷ
0
2018.06.11
@별거아닌데그만들싸워
1장 마지막에 나오잖아요
느릿한 몸동작으로 잔디 위에 꿋꿋이 서서 하늘의 어디까지가 자신의 몫인지 알아보려 하는 개츠비 씨였다.

이런 문장이었던거 같은데.
가장 괜찮게 여겼던 문장이라 기억에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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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라이드
오오 맞음맞음
개츠비 엄청 좋아하나보다
0
@이븐라이드
영판에 헤밍웨이가 있나 했는데 소설속에 있는 문장이었구만 ㅋ
0
2018.06.11
@별거아닌데그만들싸워
내가 저문장 쓸 줄 알면 여기 왜 있겠음 ㅋㅋ
개인적으로 저 문장과 개츠비란 인물은 좋게 보는데 소설은 중반부부터 재미가 없더라. 여편네가 너무 발암이기도 허고. 그래도 기억하는거 보면 사실 재밌었긴 했나 봄
0
@이븐라이드
나중에 같은작가 다른책도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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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결말의 여운과 허탈함이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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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테이끼
여태껏 읽은 문학작품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들 중 하나 같음.
내 인생 탑 5 안에 들듯
0
PC
2018.06.11
게츠비가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온갖 더러운 현실에서 돈을 벌어서 말짱한 부자로 데이지 앞에 나타나는데
그런 현실을 거치면서 데이지의 속물적인 면을 생각 안 했을리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음.

게츠비에게 데이지란 자신의 순수한 시절을 기록해주는 하나의 상패 같은게 아니었을까
그런면에서 게츠비는 그저 순수한 것을 뛰어 넘어서 순수하기로 스스로 선택을 내린 인물이 아니었을까

순수와 너무 멀리 떨어진 세상에서 그런 세상을 알면서도 순수를 선택하고
그런 세상에 의해 죽을때까지 순수를 버리지 않은건
ㄹㅇ 위대하다고 볼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랬음 ㅇㅇ.

근데 생각보다 책이 되게 문체가 위트있고 좋더라.
0
@PC
참 좋은 책인데 요즘 친구들은 책을 별로 안읽어서...

나도 영화로 보다가 최근에 이걸 읽은거라 할말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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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다시읽어볼까.. 상실의 시대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읽은사람 어쩌고 한 내용때문에 찾아읽었었는데 이게 왜? 이랬었는데 ㅋ
0
@카누중독
술술 읽혀서 두번 읽어도 부담 안될듯.

난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봐야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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