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의 밤 11시쯤
거실 소파에 멍하니 누워 핸드폰을 붙잡은 지 대충 1시간 정도 지났을 까, 인터넷에서 본 맥주를 마시는 게시물을 본 후 사는 동네 길을 걷자는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다. 현관을 나선 뒤 동네 편의점 위치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주차장을
지나 아파트 단지를 나가 왼쪽으로 꺾어 언덕을 내려간 곳에 하나, 주차장을 지나 단지 내 언덕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꺾어 아파트 단지를 나간 곳에 또 하나.
“편의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두 번째로 떠올린 편의점으로 결정했다. 돌아오는 길에 미관 장식용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만들어 놓여진 정자가 있으니 거기에서 가볍게 마시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밤이라
그런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게 기분이 좋다.
걷는 길에 다양한 것들이 눈에 띈다. 조명 빛에 본래 색에서 다른
빛을 띄는 나무의 잎사귀들,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내 발 밑의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는 그림자, 그리고 검은 식탁보 위 빵 마냥 떠 있는 달의 모습이 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동네의 길이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어느새 도착한 편의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 수입 맥주 코너의 호가든 4캔을
약간은 억지스러운 모양새로 품에 안고 계산대로 향해 계산 후 편의점을 나온다. 1캔을 밖에서 기분 좋게
마시고 집 냉장고에 나머지 3캔을 넣어두면 앞으로 나올 때 종종 가지고 나오면 되겠지.
정자에 앉아 맥주 캔을 딴다. 기분 좋은 상쾌한 바람과 밤의 가로등이
비친 길은 아주 약간 슬픈 느낌이 들게 해준다. 매일 하루하루를 정신 없이 지내는 사람들과 다르게 한가한
내 하루는 언제까지 이리도 무력하게 지나가는 걸까.
소파 위 핸드폰을 잡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야 재미있지. 어느새
지나가버린 시간이 벌써 계절 하나가 넘어간다. 일을 관두었던 그 때는 당연히 즐거웠다. 3년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집 회사를 반복했던 삶에서 벗어났을 때의 그 해방감은 약간 막말일지도 모르지만, 군대 전역과 비빌 정도의 기쁨이었고 그 기쁨은 약과 같이 한달 간의 내 매일매일을 움직여 주는 동력원으로 써
기능했다.
한 달이 지난 후 다행히 일을 관둘 때 집에 미리 말을 해 놓은 덕에 부모님이 나에게 눈치를 주시는 일은 없었지만
내 스스로가 나에게 눈치를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 친구들이 이직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 친구의 친구가 어디어디에 취직해 연봉 얼마를 받는다더라 라는 얘기를 들을 때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 에선
그들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감정이 내 등을 미는 느낌을 느꼈다. 왜 나는 여기서 멈춰 있을 까? 그들에게 뒤쳐진 삶에 행복이 없다면 나 또한 그들과 같이 달려야 하지 않을까?
역한 기분이 들었었다.
두 달이 지난 이후는 솔직히 별 생각 없어졌었다. 친구의 이직이든
친구의 친구가 어딜 가서 얼마를 받든 그게 내 즐거움에 마이너스만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즐거움을 위해 모아둔 돈으로 플레이스테이션 4를 구매한다던가. 못
봤던 영화들을 집에 누워 보던가 게임을 한다던가 등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
달에는 해외 여행을 가볼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었지만, 외국어를 못한다는 사실과 약간의 두려움이 직접
행동하려던 나를 붙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아쉬운 생각도 든다. 그냥
저지르고 볼 걸
그리고 이번 달의 초 집에서 너무 놀기만 한걸 까 이제는 진짜로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아버지는 출근을 하시고 어머니는 노래교실이나 골프 등으로 밤시간이 아니면 크게 마주칠 일은 없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완전히 안 마주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한 피해의식이라 생각하기엔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기 시작했다. 애써 무시하고 있긴 하지만 이 느낌은 뭔가 싫다.
여러 생각을 하며 마신 맥주 캔을 흔들어 보니 대충 다 마신 것 같다. 집을
나온 지 아직 한 시간도 체 되지 않았지만. 슬슬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머니는 저녁모임을 가셨고 아버지는 슬슬 오실 시간이 되었지만 모르겠다. 집에
들어가면 평소와 같이 소파에 누워 핸드폰이나 하다가 잠을 잘 지 아니면 게임을 하다 잠을 잘 지 모르지만,
내일의 나에게 짐을 넘기고 도망친다. 알아서 잘하겠지.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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