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상처 받고야 말았다. 자업자득인지도 모른다. 아픈 건 싫다. 그럼에도 아프게 된다. 싫은데 왜 악화 시키는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났다. 그때 옆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

-울지 마세요.

울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울지 말라는 말을 들으니 화가 난다. 눈물이 필요하고 울음이 필요해서 우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일차원적인, 너무나도 뻔한. 그런 반응을 보면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화가 울컥 치밀어버린다. 상대할 가치조차도 느끼지 못해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또다시 울지 말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말했다.

-이건 내 업보의 굴레야. 마땅히 울어야 하니까 우는 거라고. 네가 울어라 울지마라 할 문제가 아냐. 저리 가버려.

남자는 멋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는 남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울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날이 흐려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원한 장대비였다. 비가 내리자 남자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시끄러운 빗소리와 사라진 남자 덕분에 나는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소리내어 울 수 있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몸이 살짝 지쳐버렸다. 어느새 배도 고팠다. 흐트러진 호흡과 얼룩진 얼굴을 정돈하고 잠시 멍을 때렸다. 없어졌던 남자는 엉성한 조각 케이크를 들고는 다시 돌아왔다. 아마도 급하게 갔다온 것인지 케이크는 여기저기 뭉게져 케이크라 부르기도 어려운 형태가 되어있었다. 남자는 포장 뚜껑을 열며 화룡점정으로 그나마 멀쩡했던 초콜릿 조각마져 부러뜨리고야 말았다.

-오늘 생일이잖아요. 그래서… 선물이에요.

비가 그치자 작은 새들이 근처까지 날아와 아무것도 없는 아스팔트 바닥을 쪼아댔다. 거긴 아무것도 없어. 먹을 게 없다고. 그럼에도 새들은 계속해서 바닥을 쪼아댄다. 나는 부서진 케이크 가루를 집어 새들이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새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남자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광경을 같이 바라보았다.

나는 이 남자가 싫었다. 왜 굳이 내 옆에 와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 생일따위를 왜. 그래, 나는 자격지심으로 가득차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나는 이런 인간이다. 너는 이런 인간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제발 저리 가. 차마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지는 못했다. 그냥 속으로 생각만 할 뿐이었다. 내가 계속 케이크 가루를 지면으로 뿌려대자 더 많은 새들이 몰려왔다. 굶주린 새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문득, 나는 새들이 나의 몸을 쪼아대는 환영을 보았다. 나는 분명 여기있다. 그런데도 새들이 나의 피부를, 나의 살점을 뜯어 먹는 것만 같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이 징그럽고 무섭고 두려워서 나는 새들을 쫓아버렸다. 수많은 새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하며 도망치는 광경은 꽤나 장관이었다. 

이제야 마음이 편해진 나는 노랫소리를 흥얼거렸다. 싱잉 더 레인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아무 의미도 없다. 저 남자는 왜 내 곁을 지키는 가. 분명 욕망 때문이다. 저 남자 역시 저항할 수 없게 된 나의 살점을 노리는 새에 불과하다. 그리 생각하자 역겨움이 올라와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남자가 내 곁을 지키리란 걸 알고있었다. 남자의 관심이 싫다면 내가 자리를 떴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곳에 있었다. 새들은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쪼고 있었다. 그것도 먹을 것이 있는 사람 앞에서 보란듯이. 그러고 있으면 먹을 것을 던져주리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연기였다. 과연 누가 더 역겨운가. 그러면서 누구에게 역겨움을 느끼고 있는가. 전부 나 자신이다.

나는 웃으면서 울었다.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알약 하나로 죽어버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죽어버리고 싶었다. 공기가, 몸이 차가웠다. 이대로 눈을 감아버리면 아무 것도 없는 백짓장같은 세상으로, 그렇게 깨끗했던 시절로 가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마음은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겠지. 아무도 헤아릴 수 없겠지. 비는 그쳤지만, 내 마음의 비는 영원히 그치지 않는다. 

-이제 그만해요. 몸 상해요.

그리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서 수척함을 느꼈다. 원래 저렇게 수척했던가? 

-제발. 누가 뭐라해도 저는 당신을 지킬테니까. 제발 그만해요.

너는 단지 욕망때문에 여기 있는 거잖아. 그런 주제에 포장 하지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생애에서 한번 쯤은 듣고 싶었던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저 말을 믿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다. 이 모든건 꿈일까. 차라리 꿈이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