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꿈 4 (완)

눈을 뜨고 본 것은 조용하게 흔들리는 파도와 정신을 사납게 하는 붉은 하늘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맨발로 걷고 있으려니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알갱이들이 굉장히 신경쓰인다 모래와 바다 이곳은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걷다가 조금 지쳐버려서 그대로 주저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마음을 안정시켜나가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평안을 찾을 수가 있었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괴로워 하지 않고 이대로 쭉 파도만 보며 나의 생을 끊내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의 대한 변명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저 눈 앞에 파도가 있었을 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디로 걸어가더라도 파도와 이 붉은 하늘외에 내가 눈을 담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잔혹한 세계에서 이렇게라도 평안을 얻지 않으면 나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이 악몽의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이 정도였던 것이였다 생의 끝은 어처피 죽음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생명은 나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비하더라도 내 마음대로이지 않은가? 나 스스로의 책임만 똑바로 진다면 누구에게라도 잔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옥죄어오는 이 아픔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 마음속에 누군가가 이것은 틀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랜 시간에 교육되어온 당연한 것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이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견디지 못할 아픔도 아니기에 먼 파도를 바라보면서 그 기억들을 천천히 몰아내면 그 아픔도 서서히 잊혀져가는 것이므로 나는 한 번 눈을 오래 감았다가 다시 파도를 바라보기 위해 눈을 떳다.

꿈은 거짓말로 가득하다 어쩌면 진실이 진주처럼 숨어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진실도 거짓도 이제와서는 동일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가치라고 하니 꽤나 우습게 느껴졌다 쉽게 말하자면 둘 다 무가치함으로 가치가 동일하다고 한 것인데 이것은 우스운 말장난이다 그런 말장난들로 나는 괴로운 진실을 잊어간다 마음 속으로만 이런 말들을 중얼거리니 내 마음은 더더욱 평온에 잦아든다 마음으로 내뱉기에 듣는 사람도 없고 그 때문에 지적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가 들으라고 한 말도 아니기에 더더욱이다 이런 식으로 나의 콩알만한 자존감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원래 작을 수록 지키기가 쉬운 법이다 내 먼지같은 자존감이기에 이토록 오랫동안 굳건히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인데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 이토록 오랫동안 지켜온 것이라고 가끔 착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바다의 냄새가 코 끝에서 감돌고 있다 내가 잘 아는 바다의 냄새다 비릿하고 그리 좋은 냄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냄새 나 같이 썩은 인간에게는 이 정도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좋은 냄새다.

이건 꿈인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억의 단편에는 이 곳에 오기전에 분명 잠에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눈을 떠보니 문뜩 이곳에 와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내가 잘 아는 여자 한 명에 바다와 붉은 하늘 이상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녀가 나에게 다가온다 아주 가까이 다가온다 바람에 그녀가 입은 하얀색 원피스가 춤추듯이 흔들린다 기다란 생머리가 같이 흔들린다 평범하게 걸어오는 그녀의 몸짓이 마치 춤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내 눈 앞에 까지 가까이 다가와 핏기가 감도는 붉은 입술을 내 귓가에 가까이 대어 조용하게 거짓말을 했다.

나는 그 거짓말에 수긍한다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나에게 진실을 이야기한 적은 단 한번도 없기때문에 나는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내가 크게 동요하는 것을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녀를 증오하면서 동시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나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묵인한 수 밖에 없는 이 저주받을 상황을 나는 이제 받아 들일 수 있다.

그녀가 나에게 단도를 쥐어주었다 그것은 단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불품없다 그러나 죽이기에는 제 역활을 충실히하기에 불평을 말하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이다 검지손가락을 칼날에 대자 그 차가움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의지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휘두른다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소임을 다할 것임이 분명할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는다.

이제까지 그녀가 나를 향해 착실하게 내뱉어온 거짓말의 대가를 달라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선택은 나에게 있어 선택이라는 것은 불편함과 불쾌함을 동반한다 좋은 선택이라는 것이 나에게 존재했던 적이 정말로 없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무엇가를 잊어버리거나 버려야 하는 것이였기 때문에 선택이라는 단어에 기본적으로 슬픔을 느낀다 선택... 그래 선택이다 그녀를 죽이거나 죽이지 않거나 말로만하니 참으로 단순하게 느껴진다.

이 선택으로 인해 그녀가 나에게서 대가를 받기위해 충실하게 했던 거짓말을 이제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녀를 살리는 것으로 더 이상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죽이는 것으로 더 이상 그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죽임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노력을 해왔다.

나는 윗사람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칼날을 그녀의 목에 대었다.

내가 옮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옳은 선택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몹시 불쾌한 기분이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오랫동안 내 손에 쥐어진 칼을 바라보았다.

나는 칼을 바다에 던졌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뜨며 나에게 진실을 이야기 할 것이다.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자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서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이미 이런 것은 충분히 했다.

이제 그녀가 진실을 이야기 할 것이고 나는 다시 꿈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을 각오을 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1개의 댓글

2018.04.28
용기의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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