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명나라 장수들의 눈에 비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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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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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개한 나라로군.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 온 명나라 장수들이 남긴 언행을 보면 조선의 후진성을 직접 체감하고 놀란 것 같습니다.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에 와서 놀란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이란 나라에는 신분제가 남아있다는 점화폐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옷차림도 지나치고 길고 거추장스럽다는 점조선의 국왕과 신료라는 작자들은 시문(詩文)에만 능하고 말만 앞서는 점사제도나 장비 시설이 형편없다는 점 등등...


무엇보다도 군대를 무상으로 보내주는데다가자국군(自國軍)이 먹을 군량미도 무상으로 제공해주는데조선이란 나라는 군량미 수송을 똑바로 못해서 명나라 군대가 굶은 일이 종종 발생하니명나라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명나라 장수들은 군량미 수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군대를 철군시킬 거라고 조선정부를 강하게 압박하였고, 이에 많이 시달린 선조는 "명군이 오는 것은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무섭다."며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왜란 기간 내내 조선에 온 대부분의 명군 지휘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진단한 것은 "조선이 너무 문치만 숭상하고 무비를 경시했기 때문에 전쟁을 불렀다"였습니다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명군 지휘부는 다양한 훈수를 제시했는데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골라서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문만 중시하지 말고 국방력을 길러라.

은광(銀鑛)을 개발하고 화폐를 유통시켜 국부(國富)를 키워라,

세금을 경감하고 형벌을 절제하여 백성들을 안정시켜라

노비를 해방시키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라. (당시 명,청 시대에 중국은 신분제는 철폐된 상태)


또한 조선에 머무는 동안 명군 지휘부는 사관(史官)이 작성한 사초(史草)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조선이 거부할 경우 직접 사관으로부터 사초를 빼앗아 보거나각종 서적들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여 조선의 민감한 내부 사정까지 파악하려고 시도합니다실제로 명나라 장수들은 조선의 역대 과거 출제 문제 내용까지 알게 되었을 정도로조선의 사정을 세세히 파악하게 됩니다.


양호같은 경우에는 영락제 시기(조선 태종시기)에 조선은 말을 1만 필 바쳤는데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고 캐묻기도 하고조선 조정 내부에서도 명군 장수들이 우리나라 사정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라는 탄식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다음은 명나라 장수들이 당시 조선에 관해 남긴 언행들입니다. 이를 보면 당시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부분적으로나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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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皇上)께서 조선의 지극한 정성과 대대로 바쳤던 충성에 감동했기 때문이며 (...) 조선은 이 같은 황상의 은혜를 잘 알아야 한다’ - 유황상


망국(亡國)의 대부(大夫)들은 아침을 다섯 번 씩 먹는데 명나라 군졸(東征將士)들은 날마다 점심을 굶네– 명나라 군졸이 의주의 별관 (別館)에 써놓은 낙서


오랜 평화 속에서 조선 군신 들은 잔치를 베풀고 즐기는 일(宴樂)만 삼고 군사시설과 장비를 갖추는 것(武備)을 금기시했다 – 전세정


"평화가 오래 이어져 긴장이 풀어져서 전투를 익히지 않고 조선의 군주는 술 마시는 데만 몰두하여 나라를 망쳤다". - 모서징


일본 오랑캐(倭夷)는 명에 순종 하는데 오히려 조선이 배반한다” - 전세정


"당신의 나라 군신들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부귀만 누리면서 백성을 돌보지 않고적군 방어는 생각하지 않은 채 국가를 몰라라 한다 (...)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 것이어서 근본이 굳건해야 나라가 편안한 법이다. (...) 왜적이 나온 것은 왜적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당신 나라의 군신들이 끌어들이는 짓을 했기 때문이지만성스러운 황제(聖天子)께서 그대로 불문에 부치고 (후략)" - 송응창


“(조선국왕이 원대한 생각 없이 오락에 빠지고 소인에 현혹되어 백성을 돌보지 않아 전쟁이 초래되었다" - 신종 만력제


시부(詩賦)는 진()나라의 유풍(遺風)이요

병서(兵書)에 해서는 온 나라가 모른다네.

높다란 관이 무인(武人)의 고깔이요,

넓은 소매 옷이 군복이로다.

무딘 창은 섶나무와 같이 썩고,

성 쌓은 높이는 어깨와 가지런하네.

왜구가 이르다는 소문 듣자,

팔도가 조각구름처럼 흩어졌다네

여응종

*조선의 실용적이지 않은 복장과 숭문주의 사상을 비판하는 시이다.

 

(이덕형의 소매를 붙잡고) ‘이런 넓은 소매로 전쟁터에서 싸울 수 있겠는가?’, (이덕형의 갓을 가리키면서) ‘이런 싸맨 머리로 전쟁터에서 싸울 수 있겠는가?’, (김명원과 이원익의 갓과 소매를 가리키며) ‘이렇게 하고서 왜적을 제압할 수 있겠는가?' - 여응종


조선 사람은 문장만 알지 일 처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장삼외


"의주에서 조선 사람에게 은()과 청람포(靑藍布)를 주고 해변에 가서 소금을 사오라고 지시했는데 감감 무소식인데 비해 훨씬 먼 봉황성(鳳凰城)으로 갔던 자는 벌써 돌아 왔다" - 장삼외


"조선 때문에 명의 재물이 바닥나고 백성들이 피폐해졌음에도 조선은 은혜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조선 사람들이 하는 일은 모두 느려 터졌다" - 양원


조선에는 나라를 위하려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 - 영국윤

 

(남원이 함락된 이후) "조선의 남원과 전주는 소실된 상태입니다상황이 매우 위급해지자조선 관민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병사(명군)들을 돕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식량을 제공하지 않았고식량을 불태워버린 바람에 굶고 있습니다내란마저 일어나 아군의 퇴로마저 끊겼습니다병사의 수는 적고왜적의 수는 많아 방어하기에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왜적을 막는 것보다 조선 내부의 적을 제어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 형개


조선은 오랫동안 태평하여 일이 없으면 붓을 휘두르며 즐기다가 일이 있으면 속수무책이다. (...) 지금 조선은 수당(隋唐시절이나 명 초반의 조선이 아닌 상태에서 중국군에게 폐만 끼치고 있다." - 손광

∴ 조선은 지금 개국 초나고구려 시기처럼 강성하지 못하고 중국에 폐를 끼치고 있다따라서 명나라 방식으로 조선을 다스려야 한다.


"조선은 대대로 벼슬하는 이를 귀하게 여기고대대로 노역하는 이를 천하게 여겨 벼슬길을 일절 막아버린 까닭에 그들이 가끔 일본이나 적국으로 도주하여 나라의 우환이 되어왔습니다이제 마땅히 파격적으로 그들을 찾아 써야 할 것입니다." - 명나라 병부


Ps-1. 물론 명나라 장수들의 편협된 관점으로 조선의 사정을 보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Ps-2. 조선의 군주가 여인과 향략에 심취해서 왜란을 불러 일으켰다는 명나라 장수들의 비판에 선조는 자신이 "태만하다"는 비난을 받는 건 어쩔 수 없어도 "향략에 빠졌다"는 비난은 죽어도 승복할 수 없다고 반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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