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군대 좀비물

 1

 '...'
 
 10만원은 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인의 월급에서 반절에 해당하는 큰 금액을 이제 돌려 받을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빌려주지 않고 냉동이라도 하나 더 돌려 먹을 것을. 조금 과한 오지랖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채무자와는 좋든 싫든 같은 장소에서 1년 이상을 보냈다. 서로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그 추억에 비하면 10만원 따위 고작 푼 돈이다.
 고작 푼 돈.
 이제는 돌려 받을 수 없는 푼 돈.
 "미친 새끼."
 징조가 없지는 않았다. 이틀 전 탄약고의 초소에서 연락이 끊긴 이후로 녀석은 굉장히 불안해 했으니까.
 기대하고 기대했던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씨발 새...끼."
 짤뚝만한 반푼이 창에서 햇살이 쏟아진다. 인간의 분뇨를 애써 구석에 박아두기만 해 역겨운 냄새가 흘러 넘치는 보일러실. 
 나는 목을 매단 녀석을 바라봤다. 혀를 빼꼼 내밀고 죽은 시체는 꽤나 편안한 표정이어서, 짜증이났다. 혼자서 도망치니 그리도 좋았을까. 
 위기 상황에서 방공호로 사용될 예정인 보일러실이기에 건빵은 충분했다. 물도 충분했다. 두 사람이라고 해도 버티고자 했다면 육 개월 이상은 충분히 버틸 것이다.
 이제 한 사람이니, 일 년.
 나는 일 년을 살 수 있다.
 시체와 함께. 똥덩어리와 함께. 썩어가는 냄새를 맡으면서. 이 널찍한 공간을 홀로 쓰며 살 수 있다. 
 "개새끼."
 좆까.
 우리는 좆댔다.
 부대는 좆댔다.
 군대는 좆댔다.
 인간은 좆댔다.

 나는 좆댔다.

 어림짐작으로 일 년을 살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일 년을 살 수 없다. 두 사람이기에 육개월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혼자 남은 나는 채 하루도 버틸 수 없었다.
 울고 싶었다.
 의미없는 행위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지만, 나는 전화기를 붙잡았다. 용캐도 아직 발신음이 들린다. 손가락을 움직였다. 행정병으로 근무하며 외웠던 모든 번호를 차래대로 꾹꾹 눌렀다.
 당연하게도 전화를 받는 곳은 없다. 군의 통신망 범위에 있는 모든 부대가, 모든 장소가 침묵했다. 근무 중에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목소리들이 이처럼 그리울 때가 또 있을까. 
 수화기를 집어던졌다.
 "씹새끼야!! 악!!!!!"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지만, 시체는 꿈쩍도 않는다. 
 인정해야 했다.
 이곳에 희망은 없다.
 삶의 이유도 없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내가 씨발... 너처럼은 안 뒤질거야."
 일년 반을 같이 보낸 친구를 내버려두고 홀로 떠난 녀석에 대해, 악에 바친 말이었다. 
 "너는 여기서 계속... 똥 냄새나 쳐 맡고 있어라. 씹쌔끼야."
 일주일동안 곰팡이와 분뇨의 냄새만 맡았다. 이제 지쳤다. 어떻게 되든 알게 뭘까. 어느쪽이든 죽는 것 뿐이다. 녀석처럼 편안하게 죽을 수도 있겠지만, 죽기 전의 마지막 기억이 이 똥냄새 나는 장소라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인지라.
 나는 문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맑은 하늘과 반짝이는 햇살 그리고 상쾌한 공기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다행이도 올라가는 계단에는 그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걸음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낙원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랐다.
 지하에서 평지로 나가기까지 한 걸음.
 "------"
 "------"
 "------"
 숨소리라 부를 수 없는 그것들 특유의 소리가 들렸다. 
 시작은 일주일 전의 오후 3시였다. 
 금요일 오후 3시.
 전 간부 회의가 지휘 통제실에서 있었던 날. 운행을 끝내고 생활관에 꿀 빨러 온 녀석과 하릴없이 키득거리며 농을 따먹던 때. 두돈반, 근무 교대 차량이 연병장을 전속력으로 연병장을 가로질러 박았다.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에 혹 이것이 말로만 듣던 전쟁의 시작인가 싶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황급히 지휘통제실로 내려갔을 때, 그것이 있었다.
 좀비.
 우스꽝스럽게도 그 이상의 표현은 없었다. 목이 반쯤 찢긴 상태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아수라장을 걸어나와 행보관을 물어버리고 상태를 전염시키는 그런 걸 좀비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부를까.
 전염성도 끝내주고 운동력도 끝내준다. 그렇기에 지휘통제실에 모여 있었던 인원들이 모두 감염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녀석이 좀비 영화의 매니아가 아니었다면, 나를 잡고 끌고가지 않았다면, 그곳이 보일러실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게 더 나았겠지."
 얼타는 사이 죽었다면 지금의 심란함은 없었을 터.
 눈을 질끈 감았다. 하늘을 봤으니까, 보고 싶은 것은 없었다. 나를 포착한 녀석들이 게걸스럽게 달려오는 모습 따위를 마지막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지난 시간 동안의 기억에 의존해 걸음을 땠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겠지만, 어째선지 나는 취사반을 향했다. 건빵 이외의 다른 것을 먹고 싶기 때문일까. 과일이라든지 상큼한 것을 먹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
 "------"
 소리는 명확할만큼 가깝다.
 입이 바짝 마른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두려움에 가까운 호기심으로 떠지려는 눈을 간신히 억누른다. 
 시간이 느릿하게 흐른다. 머릿속으로 지난 일주일 간 몇 십 번이고 떠올린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부질없는 희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신께서 부디 무사하시길 빌었다.
 쿵.
 심장이 무겁게 뛴다.
 쿵.
 쿵.
 쿵...?
 머릿속으로 지휘통제실을 습격했던 좀비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육상 선수처럼 빠르고 날랬다. 그러니 나는 방공호에서 나온 순간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죽었어야 마땅하다.
 '...'
 그런데 아직 살아있다. 아프지도 않다. 서늘한 바람이 살갗을 스칠 뿐이다.
 "-----"
 "------"
 분명 좀비는 근처에 있었다. 
 혹 근 일주일 사이 그들의 식습관이 변하기라도 한 것일까. 예상치 못한 사태에 도무지 걸음을 옮길 수도 없다.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까, 눈을 뜰 수도 없다.
 "후우... 후우..."
 천천히 숨을 들였다 내쉬었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늦든 빠르든 결정해야 했다.
 나는, 눈을, 떴다.
 "... 씹..."
 햇살이 내리쬐는 비스듬한 길. 
 좀비가 있었다.
 저 멀리 포상까지 보이는 것만 해도 수십명. 군복을 입고 얼이 빠진 채 걷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좀비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가 바득바득 맞물렸다.
 혹 이것은 꿈이 아닐까. 잠에서 깨어난다면 무슨 악몽이라도 꿨냐고, 녀석이 묻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눈 앞에 있었다.

 2

 취사반의 냉장고를 열었다. 마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새삼스레 취사 지원을 갔었던 나날이 떠올랐다. 분대장을 달고 나선 가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썩 재미있는 추억이었다. 
 안쪽으로 손을 더 집어 넣어 짱박아둔 것으로 짐작되는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요거트 맛. 건빵만 일주일 째 먹었기 때문인지 그 맛은 꽤나 자극적이었다. 
 "너희는 여기서 뭐하냐."
 냉장고 실에서 나와 본격적인 조리실에는 멍하니 서 있는 좀비가 세명. 생활복을 입고 앞치마를 두른 녀석들은 모두 내 후임이었었다.
 핏기 없는 얼굴로 팔 한쪽이 유실되어 있거나, 목이 덜렁덜렁 거리거나, 배 부분이 찢겨져 있을 지언정. 복도에서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던 사이였다.
 "저녁이라도 준비하냐."
 "-----"
 "------"
 당연하게도 그럴듯한 대답은 없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지. 일말의 실망을 한 구석으로 밀어넣고 밖으로 나갔다.
 여기도 좀비.
 저기도 좀비.
 그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느릿하게 걷는다. 분명히 살아있는 내겐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 정말로 그 며칠간 녀석들의 식성이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부닥친 상황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단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나는 안전하다는 것. 녀석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내게 무관심했다. 혹여나 나를 덮칠까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것도 의미없이 나는 3층의 생활관에 들어올 수 있었다.
 텅 빈 생활관은 평온했다. 창으로 바람이 불고 커튼이 나부낀다. 내 침상은 변함없이 말끔하고 녀석의 침상과 공용인 중앙의 탁자는 변함없이 더럽다. 한 바퀴 휙 둘러보곤 침상에 누워 눈을 껌벅였다.
 오후 4시. 각자 저마다의 일과를 끝내고 생활관으로 돌아올 시간. 조금 기대하며 기다려봤지만, 돌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군 문의 창 사이로 지나치는 핏기 없는 얼굴만이 보일 뿐이다. 
 "... 병신같네. 진짜."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하고 일주일 동안 씻지 못해 냄새가 나지만, 아직 할 일이 있다.
 문으로 걸어가 잠시 눈치를 보곤 살짝 열어 목을 빼꼼 내밀었다. 복도의 좀비는 총 여섯 명. 모두 다 아는 얼굴이어서 괴로웠고 여전히 내게 관심없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다.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취사반에서 신나게 올라온 주제 이제와 일일히 신경쓰며 겁을 내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또 없을 터.
 "... 씹."
 그래도 조금 놀라긴 했다.
 의자에 앉아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좀비의 모습은 생존자라 착각하기에 딱 좋았으니까. 
 "넌 또 뭐냐."
 "----"
 하지만 대답이 없다. 핏기도 없다. 눈알도 하얗다. 보이는 상처가 없어 어디를 어떻게 물린지는 몰라도 그는 틀림없이 좀비였다.
 그는 이 층에서 본 좀비들과 같이 역시 내가 아는 얼굴로 일하다 짬이 좀 차니 뺀질뺀질 거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후임이었다. 언젠가 한 번 털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이런 꼴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된 건지.
 그와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수화기를 붙잡았다. 익숙한 신호음이 들렸다. 보일러실에서 나와 처음 좀비를 봤을 때 보다 조금 덜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곤 번호를 눌렀다. 큰 기대는 없었다. 아니, 기대가 없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내가 살아있다. 그러니 어머니도 살아있을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을 수 있다. 내가 살아 있으니까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의 범주였다.
 그러니 기대했다. 

  
 

생각나서 쓰다가 찍.

6개의 댓글

2018.02.26
점비!
0
2018.02.26
재밌게 봤습니다
0
2018.02.26
이런거 ㄹㅇ 개좋아 좀비물 창작
0
2018.02.27
@멍꿀충성충성
황금가지에서 집필한거중에 우리나라에서 쓴 좀비소설은 '크르르르'랑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이라는 소설책이 재밌음 군대도 나오고
0
2018.02.28
@년동안 개드립
굴팁 ㄳ
0
2018.02.28
@멍꿀충성충성
'하루하루가세상의 종말'이나 세계대전z나 종말일기나 존나 ㄹㅇ 개띵작 많음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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