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친구들, 난 너희들의 친절한 동네 정신과 의사.


요즘 묘하게 바빠서 뜸했네.


저번에 일부러 좀 짧게 써봤더니 더 길게라는 요청도 있고 읽기 편하다는 요청도 있고 하더라.


그래서 일단은 길이를 의식하지는 말되 늘어지지는 않도록 써보려고 해. 사족을 최대한 줄여볼게.




오늘의 주제는 자동사고야. 이전 주제들에 비하면 덜 익숙할 수 있겠네.


본래 자동사고란 강박증의 인지치료에서 언급되는 개념인데, 비단 강박증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고 봐.




사고라는건 결국 생각이라는 말이지. 사고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사고가 있고 무의식적으로 하는 사고가 있어.


의식적인 사고는 뻔해. '오늘 저녁 뭐 먹을까', '저 여자 진짜 예쁘다', '피자엔 역시 파인애플이지' 등등


우리가 늘 하는 모든 생각들이 그냥 의식적인 사고야.


그렇다면 무의식적인 사고는 그 반대겠지? 내가 이 생각을 해야겠다 라는 과정 없이 발생하는 사고야. 그래서 자동사고라고도 해.


게다가 진정한 의미의 무의식적인 사고는 나 자신이 그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



예를 들어 물을 마시하다 실수해서 물잔을 떨어뜨렸어.


그 순간 머리속에 'X 됐다' 라던지 그런 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갈 수 있겠지.


이건 분명 내가 의식하고 한 생각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나온것처럼 느껴져도 자동사고는 아니야.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난 분명히 컵이 떨어지는걸 인식했고 떨어진 후의 결과를 예측해서 'X 됐다 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한거지.



자동사고는 보통 특정 감정이랑 결부되어있는 경우가 많아. 특히 공포심이랑 밀접하지.


사람이 감정을 느낄 때에는 반드시 세 단계가 있어.


상황 - 생각 - 감정


이 스텝을 반드시 밟게 되어있단 말이야.



고소공포증을 예로 들어볼게.


높은 곳이 무서운 사람들 많지? 심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다 공감할 수 있는 공포라고 생각해.


이런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면 그 사실 자체로 공포반응이 유발되는걸까? 높은 곳에 있으면 내 뇌랑은 상관 없이 몸이 자동으로 공포를 느끼는걸까?


이렇게 질문하면 당연히 대답은 아니다겠지.


방금의 예시를 쓰리 스텝으로 분해해보자.



상황 -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생각 - ?

감정 - 무섭다



여기서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보편적인건 '내가 떨어져서 다칠 수도 있겠다' 정도가 있을거야.


물론 나아가서는 '내 물건이 떨어져서 망가질 수 있다' '내가 떨어져 죽으면 가족들이 슬퍼하겠다' '예전에 높은곳에서 떨어졌는데 그 떄 아팠었다' 등등


아주 다양한 생각들이 있어.


그런데 사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저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어. 감정이 먼저 치고 올라오지.


일단 상황 - 감정 순서로 진행이 된 후에 후향적으로 중간단계가 회상되는거야.


아, 그 순간 내가 떨어지는 상상을 했구나 라고.


이런걸 우린 자동사고라고 불러.


고소공포증을 예로 하니까 좀 뻔한 얘기 같지? 예시를 바꿔볼게.




예전에 봤던 환자의 실제 예야.


이 환자는 가정 주부이고 손을 씻는 강박증이 아주 심했는데 외출을 하면 반드시 샤워 두 번, 손씻기 10번을 해야만 했어. 그렇지 않으면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이걸 쓰리스텝으로 나누면?



상황 - 외출을 해서 나갔다 왔다

생각 - ?

감정 - 찝찝하고 신경쓰인다



여기서 생각은 뭐였을까?  '손이 더러울 것이다' 정도가 있겠지?


여러 회기 인지치료를 거듭하고 상담을 지속한 결과 조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어.


첫번째 자동사고는 '내 손에 병균이 묻어있을 것이다' 였어. 여기까진 강박증 환자에서 흔히 있는 일이지.


이 단계에서 도드라진게 '밖에서는 특히 화장실 변기에서 나오는 똥 관련 균들이 많이 떠다닌다, 그 균이 몸에 묻는다' 라는 생각이었고


그 사고의 발자취를 쫓아 보니 다음 단계는 '내가 이 손으로 밥을 하면 가족들이 그 균 때문에 병에 걸릴 것이다' 였어.


여담이지만 이 단계에서 촉이 와서 과거사에 대해 물어보니 옛날에 시어머니를 모셨는데 그 분이 말년에 문자 그대로 벽에 똥칠을 좀 하셨다고 하더라고.


그걸 치우는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더라.


이 환자의 경우 이 정도 치료가 진행됐을 떄 증상이 꽤 호전이 되서 심하게 파고들지 않았지만 이 시점까지 내가 알아내고 유추한걸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


강박증 증상이 시작될 무렵 환자는 남편과 사이가 좀 안 좋아졌다고 해. 이로 인해 남편에 대한 미운 마음이 좀 생길 수 있었겠지.


설명하면 길어지지만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남편에 대한 미움이 어느정도 동일시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거기에서 '대변'의 이미지가 녹아들었다고 생각해.


거기서 무의식적으로 남편에게 대변을 먹이고 싶다는 나쁜 생각과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죄책감이 섞여서 발현된 증상이 결벽증 형태의 강박증이 아니었을까.


진실은 환자 본인도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저 증상을 뿌리뽑으려면 남편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부부치료랑 과거의 미움까지 끄집어낼 수 있도록


부분적으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하는게 필요했겠다 라고.





예시가 너무 길어졌네.


여기서 중요 논점은 자동사고란 꼭 짧고 간단한게 아니라 저렇게 길고 방대한 내용일수도 있다는 거야.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개를 볼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과거에 개에게 물렸던 기억이라던지, 어렸을 적 엄마가 '개는 위험하니까 다가가면 안돼' 라고 가르쳐준 내용이


재생될 수도 있고 말야.




공포가 아닌 감정에도 자동사고는 적용이 돼.


너가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 그런데 막상 운동을 할 생각을 하니까 너무 귀찮아서 안 하게 돼.


이것도 '운동을 해야겠다' 란 상황에서 '귀찮다' 란 감정이 바로 파생된걸까?


아니겠지? 아마도 이전에 했던 실패의 경험이라던지, 운동하는 나의 모습을 놀리는 타인의 모습이라던지. 그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가서 안 하게 되는걸꺼야.




그렇다면 자동사고를 인지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


어차피 자동으로 하는거면 그냥 두면 되는거 아닌가 싶지?


그 이유는 간단해. 자동사고가 반드시 사실은 아니기 떄문이야.


높은 곳에 올라가면 위험하지? 떨어질 수 있지?


그런데 반드시 떨어지는걸까? 충분한 안전장비를 갖추면 그럴 가능성이 낮겠지?


예전에 다이어트를 실패했으면 이번에도  또 실패하는게 당연할까? 사람들은 나를 정말 놀릴까?


자동사고를 인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감정에 휩싸여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그 결과로 행복과 편안함을 희생하게 되는 일도 많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너도 특정 감정에 휩싸일 때는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정말 이 상황 그 자체 때문에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