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참 이상한 시간대다.

사람을 더 감성적이며 본능에 솔직하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음식에 대한 만족도를 더 높여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자다 깨서 이부자리도 치우지 않고 먹는 야식은 더 맛있다.


 자취하기 전에 살던 부모님 집 근처에는 40년이 넘은 분식집이 있다.

자그마치 부모님이 연애하던 시절부터 있었던 분식집이다.

도중에 영업주가 바뀌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분식집은 부모님의 10대 후반부부터 20대, IMF에도 살아남고 두분의 결혼 후에도,

내 또래 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상당히 인기있었으며 지금도 건재한 곳이다.


 당연히 분식집이니 떡볶이도 유명하고 순대나 튀김도 유명하지만

이 집의 단골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시그니처는 따로 있었다.


 고등학생 때 사회 역사 선생이 했던 말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없는 만큼, 형성하는 데에 걸린 시간만큼이나 많은 과거를 말해준다.


 독일과 프랑스의 식문화는 판이하게 다르다.

독일에서는 식사를 하며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예절인 반면, 프랑스는 즐거운 대화로 행복한 식사를 하는 것이 식사와 식사 상대에 대한 예절이다.

좋지 않은 퍽퍽한 토양과 삭막한 기후 덕에 성급히 식사를 마치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독일인들과

타고난 지형과 날씨 덕에 농사는 이미 쉬운 일이며, 아침을 먹다가 점심을 준비하고 점심을 먹다가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을 먹다가 자면 그만이었던 과거의 프랑스인들이 그려진다.

물론 모든 과거의 프랑스인들이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다시 돌아와서,

한국의 (궁중 음식이나 양반 음식을 제외한) 다른 음식들을 보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고단함' 이리라.

대부분의 재료는 섞거나 먹기 간편하게 한다.

비빔밥이 그렇고 국밥이 그렇다.

만약에 누군가 "비빔밥이랑 국밥 빼면 뭐가 더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 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비극이다.

과거의 한반도에 살았던 육체 노동인들이 먹었던 음식의 스펙트럼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만큼 좁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 외에 주먹밥이 있다.

꽤 유명한 말이니 모두가 들어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샌드위치의 어원, 샌드위치 백작이 글을 쓰며 한 손으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다가 샌드위치라는 음식을 개발해 냈음을.

주먹밥 역시 지참이 가능한, 외출시에도 먹게끔 발달한 음식이다.

다만, 서울로 과거를 보러가는 부잣집 양반댁의 맏아들이 먹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무를 하러 가는 장가 못 간 아들, 하루 종일 산을 타야했던 심마니들이나 먹었을 것이다.

간단히 끼니를 떼워야만 나중의 식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계층이 먹었을 것이다.


 그 분식집의 시그니처는 주먹밥이었다.

오죽하면 남학교였던 우리 학교에 떠돌았던 소문이

 '여자와 대화하려면 그 분식집을 들어가서 떡볶이와 튀김을 시켜라.

 그러면 옆 자리의 여고생들이 "저기요, 주먹밥 안 시키셨는데요." 라고 말해준다.' 일 정도였다.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

과장이 아니라 누군가 떡볶이와 주먹밥을 시킨다면 주먹밥을 다 먹고 떡볶이 국물에 비벼먹기 위함이었고,

누군가 주먹밥과 튀김을 시킨다면 밥 반찬으로 짭조름한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분식집 내의 테이블은 내가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세 개다.

끼어 앉으면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다.

분식집 내에는 거의 항상 모든 테이블의 자리가 찼고

혹여나 세 명이서 한 테이블을 차지하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줄을 서고있는 모두의 눈총을 받았다.

자리를 잡고 만원어치를 시키면 주먹밥 하나를 공짜로 주는 서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오는 길에 그 분식집에 들러 주먹밥을 사왔다.

처음에 다섯 개를 사려는데 사장님이

 "많이 먹으면 질리니까 네 개만 사고 다음에 더 사러 와요.

 대신에 떡볶이 일인분 포장해 가주면 고맙고요."라며 그녀의 장사 수완을 발휘했다.

사장님에게

 "학생 때 많이 왔는데 알아보시겠어요?" 라고 여쭤보니

 "그럼, 오륙 년 전에 졸업했잖아요. 항상 너덧 명씩 와서 안에 자리 찼으면 서운해 했고,

 나한테 매번 자리 더 놓으면 안 되냐고 징징거렸잖아." 라며 대답해 주신다.

잘 되는 집은 잘 되는 이유가 있다.


 주먹밥은 은박지에 쌓여있다.

뜯어보면 파래김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참기름 냄새가 화악 올라온다.

첫 입 물면 짭조름한 파래김과 밥이다.

처음 먹었던 방향 말고 다른 쪽으로 베어물면 그제서야 담백한 참치가 입 가득 들어온다.

사장님은 항상 밥 안 쪽에 참치를 넣어주시지 않았다.

언젠가 학교의 친구가 그 이유르 들었다며 전해줬는데, 그 친구가 지어낸 말인지 아니면 정말 들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 이유는 '그래야 먹는 재미가 있으니까' 였다.


 자취를 하며 나도 몇 번 시도해본 적이 있다.

메뉴는 간단했다.

가장 싼 참치 통조림, 적당히 만든 밥에 소금간을 하고 파래김을 참기름에 버무렸다.

그리고 사장님이 만드시는 걸 본 대로 밥 안에 참치 통조림을 세 숟갈 넣고 둥글게 만든 뒤 파래김 바닥에 굴렸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참치를 무조건 많이 넣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분식집에서 유독 모두가 주먹밥에 열광했던 것은 주먹밥이 이미 우리 머리 위에 올라 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짰었던 파래김과 밥을 먹다가 간간히 요리된 부드러운 참치를 먹어야 정말 맛있게 느낀다.

먹으면 먹는대로 참치만 씹히니 참치를 찾아 먹는 재미가 확실히 덜 했다.

두 번째로 느겼던 점은, 이 간단하고 쉬운 요리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요리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몇 번을 하던간에 사장님이 해 주신 그 맛은 절대 나지 않는다.

뭐가 빠진 건지, 뭐가 더 들어간 건지는 나로서는 도저히 모르겠다.


 주먹밥 한 덩이에 천오백 원이라는 가격과 하나만 먹어도 포만감이 밀려오는 크기이니,

40년간 자리를 지켜주신 사장님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