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망상5

나쁜 꿈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뜬 채로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왜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어째되었든 꿈의 내용을 먼저 되새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하겠지 


"하아..."


한숨이 나온다.

내가 꿈에서 두고 온 모든 것들에 대한 감상이다.

꿈은 꿈으로 내버려두고 한 겨울의 추위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한 칸의 방으로 돌아와 현실을 음미한다.

대부분은 내가 원하지 않은 것들이다 주위에서 멋대로 주거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도 내가 원해서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 온전히 마음에 들 수는 없는 것이다.

한 겨울의 추위때문인지 아니면 나쁜 꿈의 여운인지 쉽게 이불을 떨쳐내지는 못하겠다.

그저 한 차례 눈을 감고 각오를 다진 후에나 이불을 간신히 떨칠 수 있었다.

느릿하게 학교를 걸어간다 언제나 걷고 있던 길이지만 오늘은 사뭇 다른 풍경처럼 느껴진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긴 풍경들이라 더더욱 그렇다.


"생각하지 않으면 되겠지만..."


그렇게 되내일 수록 추찹하게 기억의 물 밑에서 생각은 꾸역꾸역 올라오는 것이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가까워지는 것은 몹시나 불쾌한 일이다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나쁜 첫 인상을 가진 사람이 자꾸만 친근하게 구는 기분이 든다.

좋지 않은 기분으로 교실에 들어가면 그녀가 나에게 다가온다 시취냄새가 진동을 하여 자연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나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잘 지냈냐고 묻는다면 이상하려나?"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곁눈질로 그녀를 보자 그녀의 손이 작게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밤이 올꺼야"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고 오열을 하며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니 어쩌면 도망쳐버렸다는 말이 더욱 적절할지도 모른다.

한 번의 선택 한 번의 실수 그러나 너무나도 커다란 대가였다.

그녀가 바라고 내가 말려든 멍청한 약속이다.

그녀를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저 지금 짜증이 날 뿐이다 되돌릴 방법을 모른다는 것에 더더욱 그러했다.

책상에 앉은 채로 가만히 엎드려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리면 멀리서부터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졸음을 하기에는 적절한 소음이지만 지금은 조금도 졸립지 않았다 잠을 자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게 되어버린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되는거야!"


신경질적으로 일어나서 책상을 쓰러트리고 의자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물론 그녀가 들으라고 한 짓이였다 그녀가 용서를 구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였지만 더 이상 짜증을 부릴 사람이라곤 그녀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실망했고 비참함조차 느꼈다.

소리가 고요해질수록 나는 더욱 비참해져간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고 해도 더 이상은 내 마음의 수용범위를 넘어서 버렸기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닥에 힘없이 주저 앉아서 밤을 기다리는 일 뿐이였다.

쓰러진 책상과 의자 외에는 모든 것이 일상의 풍경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일상의 풍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던 소중한 것들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비참해진다.

나는 밤을 기다린다.

2개의 댓글

2018.02.09
비참~
0
2018.02.09
@개긴
개긴씨는 늘 한결같네 ㅋㅋㅋ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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