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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는 거칠다."  - 공자, 『논어』


공자의 제자인 자로라는 인물에 대한 공자의 평입니다. 지난번 곤경에 처하여 굶게 되자 스승에게 성을 냈던 그 자로입니다. 이쯤 되면 자로의 성격이 어떠한지 대강은 추론이 됩니다. 실제로 자로는 협객 출신입니다. 그런 사람이 공자의 문하에 들어갔으니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면 다소 거친 언행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요. 삼국지연의 속 유비의 옆에 힘 하나로 해결사 노릇한 장비가 있는 것처럼 공자의 옆에는 자로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힘이라는 것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후세에 다른 평가를 받게 되는 법입니다. 장비가 유비의 대업을 도운 영웅으로 대접받는 것처럼 자로 또한 공자를 만나서 일개 협객에서 지조 있는 사(士)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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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가 공자를 뵈었다. 공자가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로가 답하였다. 

"저는 긴 칼을 좋아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그런 것을 물은 것이 아니다. 그대가 능한 것만 말하는구나. 능한 것 위에 학문을 더하면 여기에 어찌 따라오겠는가?" 

자로가 말하였다.

"학문이 무슨 득이 되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도 간언하는 신하가 없으면 곧음을 잃고, 선비로 가르쳐 주는 벗이 없으면 들은 것을 잃게 된다. 길들이지 않은 말을 다루려고 하면 그 손에 채찍이 떠날 수 없고, 활을 잡아 활시위를 조정하고자 할 때에는 도지개와 반대로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나무도 먹줄을 받은 후에 반듯해지고, 사람도 간언을 받아들여야 성(聖)에 도달한다. 학문을 받을때에는 묻는 것이 중요한데, 누가 순종하지 않겠는가? 만일 어진 이를 해하거나 벼슬하는 선비를 밉게 여긴다면, 반드시 형벌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군자는 배우지 않을 수가 없다."

자로가 말하였다.

"남산의 대나무는 잡아 주지 않아도 저절로 번듯하게 자라며, 그것을 잘라서 쓰면 물소의 가죽도 뚫습니다. 이를 말하자면 학문이 꼭 해야 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화살 한쪽에 깃을 꽂고, 다른 한쪽에 촉을 갈아서 쓴다면 어느 것이라도 뚫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자로가 재배하며 말하였다.

"선생님을 공경하고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 - 『공자가어』


첫 대면부터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 자로입니다. 상상을 한번 해봅시다. 자로는 가난했지만, 의리와 힘으로 이름난 협객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무슨 일로 밥벌이를 했을지는 뻔합니다. 자기 패거리들 데리고 다니면서 이러저러한 궂은일을 맡아주면서 술값이나 벌며 큰형님 대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슬렁어슬렁 마을을 지나치다 보니 제자들을 끌고 다니는 공자를 멀찌감치에서 봤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마 자로가 옆 사람에게 물었겠지요. 

"야! 저 인간은 뭐길래 애들을 저렇게 많이 끌고 다니냐? 키도 큰 것이 어디 이름난 패의 우두머리라도 되는 것이냐?"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공자가 그냥 서당 선생님이라는 대답이었을 겁니다. 

"아니 그럼 겨우 서당 선생이 책 팔이 장사가 저리 잘되면서 이 자로께 인사하러 온 적도 없고, 자릿세 하나 바치지 않은 것이냐? 저 서생 놈의 경을 쳐서 받을 걸 받아와야겠다."


제 생각에는 이런 의도로 찾아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거나 순수한 의도로 찾아갔다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가 장검은 좀 씁니다."하고 말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협객이었다는 점에서 아마 그 자랑거리인 장검도 직접 차고 갔을 겁니다. 건달들이 수금하러 온 딱 그런 그림입니다. 그런데 공자는 태연하게 받아넘깁니다. 자로가 검에 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거기에 학문까지 더한다면 얼마나 크게 되겠느냐고 말합니다. 공자는 성을 내거나 비굴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단 하나도 빼지 않고 전부 하는 것입니다. 자로 또한 소인배가 아니었기에 공자를 원망하기보다는 이런 공자의 태도에서 대범함을 느끼며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스승으로 모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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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자학 학자로 유명한 시라카와 시즈카는 공자의 교단이 자로나 칠조개 같은 협객들이 문하에 들어가면서 교단이 일신하여 알려지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협객은 어디까지나 문(文)보다는 무(武)를 통해서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맹무백이 물었다. "자로는 인(仁)합니까?" 공자께서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셨다. 다시 묻자, 공자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유(자로)는 제후국에서 그 군사의 일을 담당하게 할만은 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 공자, 『논어』


공자께서 칠조개에게 벼슬살이를 시키려 하시자, 그가 말하였다. "저는 아직 그 일에 자신이 없습니다." 이에 공자께서 기뻐하셨다. - 공자, 『논어』


자로의 무인으로써의 능력은 제후국에서 군사의 일을 담당할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인격적으로 완성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평합니다. 공자가 무력 자체를 뿌리 뽑고자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공자는 문무를 모두 갖춰야 함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단지 그는 패도의 길을 여는 무력에 대해서 경계하는 것입니다. 인하지 못한 사람이 군사의 일을 담당하면 벌어질 일은 참담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협객인 칠조개의 경우에는 어떤 벼슬을 시키고자 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칠조개는 스스로 부족하다 여기고 벼슬을 사양합니다. 이에 본인이 시키려고 해놓고는 사양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공자가 더욱 기뻐합니다. 자신의 제자들이 단순히 몇몇 능력만을 지녔다고 빠른 출세를 하기를 원하기보다는 인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자신의 능력을 인간답게 사용하는 인재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이 공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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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자에게서 배움을 시작한 자로가 다른 제자들만큼의 경지에 순식간에 도달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교단 내에서 여러 트러블이 있었을 것은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자로)야!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 공자, 『논어』


왜 굳이 자로에게만 이렇게 말했을까요? 주희는 『논어집주』에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자로는 용기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기에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알려준 것이다. - 주희, 『논어집주』


지금까지 뒷골목 큰형님 대접받던 자로가 학원에 처음 들어가서 글 좀 읽어보는데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예전부터 글들 좀 하는 친구들인지라 자기들끼리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다.'하면서 떠들며 자로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문득 자로는 부끄러웠겠지요. 그러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옆에서 하는 이야기에 끼어들어서는 "이보게 나도 그걸 좀 알지!"하고서 아는 체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께서 과연 자로가 정말로 아는 것인지 아는 체하는 것인지 모를 리가 없지요. 그래서 위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오히려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지만 앎으로 가는 첫 발걸음이 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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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는 들은 것이 있는데 아직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을 때는, 다른 가르침을 듣기를 두려워하였다.  - 공자, 『논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마디 말로 소송을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로다! 자로는 승낙한 것을 묵혀 두는 일이 없다,"  - 공자, 『논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해진 옷을 입고서 여우나 담비 가죽옷을 입은 사람과 같이 서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바로 자로다!" 그러나 '남을 해치지도 않고 남의 것을 탐내지도 않으니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라는 시의 구절을 자로가 평생 외우고 다니겠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도(道)야 어찌 훌륭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느냐?"  - 공자, 『논어』

 

물론 자로 또한 성장해나갑니다.  들은 것=좋은 가르침이 있는데 이를 실행하지 못했을 때는 다른 가르침을 듣기를 두려워했다는 소리는 학문을 단순히 듣고 마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고 노력했다는 의미입니다. 한마디 말로 소송을 판결하고, 승낙한 것(약속)을 묵히지 않는다는 소리는 그가 반듯한 사람이라 의와 불의를 확실히 구별하고 신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공자도 칭찬해 마지않으면서 가난하게 살아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런 자세가 된 인물로 자로는 손에 꼽습니다. 그런데 자로가 또 신이나서는  『시경』 패풍, 웅치의 마지막 구절인 "남을 해치지도 않고 남의 것을 탐내지도 않으니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라는 구절을 마치 인생의 구절인 것처럼 외우겠다고 장담을 하니 공자는 그 구절이 뭐 대수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결코, 그 구절의 가르침에서 머물지 말고 앞으로 더 나아가라고 충고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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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의 장점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자신의 선천적 기질인 용맹함과 자존심, 의에 대한 숭상 등을 살려서 성장하는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가난한데도 대범하고, 실천력 있고, 약속은 꼭 지키는 그의 모습이 과거 협객 시절 남자다움을 자랑삼고 살았던 그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나라에서 써 주면 일을 하고 관직에서 쫓겨나면 숨어 지내는 것은, 오직 너와 나만이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하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맨손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겠다. 반드시 일을 대함에 신중하고, 계획을 잘 세워 일을 이루는 사람과 함께 하겠다."  - 공자, 『논어』


공자가 안연과 이야기 하는 도중에 그것을 듣고 있던 자로가 '군을 통솔한다면 누구를 옆에 두시겠냐.'고 물은 것입니다. 공자와 안연의 대화는 공자가 안연을 칭찬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마치 자로가 질투하는 듯이 이야기 도중에 끼어드는 것입니다.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자로의 나이가 안연보다 크게 많으며, 자로는 안회에게는 선배입니다. 공자가 왜 자로의 앞에서 저렇게 안연을 칭찬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돌려서 자로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안연을 본받으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배이자 연장자였던 자로가 질투가 솟은 것만큼은 확실해보입니다. 자로는 일부러 저런 질문을 해서 군을 통솔할 때에 데려갈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 자로라고 공자가 말해주길 바랐던 겁니다. 그렇지만 이 유치한 질문을 간파한 공자는 오히려 자로에게 힘에만 의존해서 급하게 일을 해결하려는 그런 사람은 싫다는 식으로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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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가 여쭈었다. "군자는 용기를 숭상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로움을 최상으로 여긴다. 군자가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난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으면 도적질을 하게 된다."  - 공자, 『논어』


자로가 "좋은 말을 들으면 곧 실천해야 합니까?"하고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형이 계시는데 어찌 듣는 대로 행하겠느냐?" - 공자, 『논어』


자로는 용기를 좋아하고, 곧바로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로가 공자에게는 항상 걱정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혹시나 그가 경거망동하지는 않을지, 힘에만 의존하여 몸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지, 잘못된 길로 들어설지 매사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사람이 공자입니다. 공자와 자로는 9살 차이로 다른 이름 알려진 후배 제자들에 비하면 나이 차가 그리 나지 않습니다. 교단에서는 스승과 제자일지언정 인생에서는 형과 동생이고, 벗인 관계입니다. 그래서인지 애정어린 듯한 걱정이 항상 떠나지를 않습니다. 자로의 지나치고 거친 태도가 그를 옥죄어 제 명에 죽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공자는 언제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자가 자로에게 부형이 계시는데 어찌 듣는 대로 행하겠느냐고 말한 것 또한 자로가 남을 이기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서는 법을 알도록 한 것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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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아서인지 공자와 자로가 투닥이는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공자가 공산불뉴, 위나라 군주의 부인인 남자, 필힐과 같이 흠이 있는 권력자들의 초청을 받았는데 그들을 만나려고 할 때마자 자로는 투덜댑니다. 벼슬같은거 안하고 죽으면 죽지 왜 그런 사람들을 만나느냐고 의심하고 투덜대는 것이지요. 공자는 이에 대해 자신은 사심이 없이 만나는 것뿐이며 다른 마음이 있다면 하늘이 자신을 벌 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자로가 자고를 비 땅의 읍재로 삼자, 공자께서는 너무 이르게 자고에게 벼슬자리를 맡긴 것이 아니냐고 탓을 합니다. 이에 자로는 "다스릴 백성이 있고 받들 사직이 있는데, 하필 글을 읽은 다음에야 공부를 한다고 하겠습니까?"라고 하였고 공자는 "이래서 말 잘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하면서 서로 주고 받습니다. 서로 투덜대다가도 다시 모이면 고쳐앉아서 글을 읽고, 떠드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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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자로는 위나라로 가서 벼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나라에서 자로의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위나라 영공의 태자 괴외는 죄를 짓고 도주하였고, 그 태자의 아들이 위나라 출공이 됩니다. 도망친 괴외는 지속적으로 군주의 자리를 되찾고자 하였고, 마침내 난을 성공시킵니다.(이 때 조간자라는 인물도 괴외를 돕는데, 과거 노나라에서 난을 일으켰다 도망친 양호가 이때에는 조간자의 가신으로 있었고, 양호 또한 괴외를 돕는다.) 그리고 이 혼란 속에서 공자의 또 다른 제자인 자고는 도망쳐 오지만 자로는 난을 일으킨 괴외와 대적하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괴외가 석기와 우염을 보내 자로와 맞서게 하였다. 석기와 우염이 창으로 자로를 공격하자 자로가 쓴 관의 끈이 떨어졌다. 자로가 말하였다.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을 수 없다." 이에 관의 끈을 다시 묶은 뒤 분전하다 죽었다. -  좌구명, 『좌전』 


공자가 뜰에서 자로의 죽음을 곡하는데 어떤 이가 와서 조문하니 공자가 그에게 절하였다. 곡을 마치고 사자에게 나아가 자로가 죽은 까닭을 물으니 사자라 이르길 '젓 담가졌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젓을 엎어 버리게 하였다. - 『예기』


해(醢) 자로는 젓갈로 담가졌다는 소리입니다. 괴외가 난을 통해 위나라의 군주가 되었으니 본래의 군주에게 의리와 충심을 다하였던 자로의 시신이 모욕을 당한 것입니다. 공자가 항상 근심했던 자로의 성격이 그를 죽이게 된 셈입니다. 그러나 그가 공자보다 모자랐던 사람으로 인생을 끝마쳤다고는 평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기록만으로 보면 자로가 공자의 이상이었던 군자와 합치되는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고 완성된 채로 죽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살펴봅시다.


"속이지 말고, 임금 앞에서 바른 말을 하라." - 공자, 『논어』


"이익될 일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에 한 그 말들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완성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 공자, 『논어』


"먼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몸소 열심히 일하거라." - 공자, 『논어』


모두 공자가 자로에게 해주었던 이야기입니다. 자로는 자신이 모셨던 출공의 세력이 약했어도 속이지 않았고, 바르게 모셨으며 득이 되지 않음에도 의를 위해 위나라에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자로는 자로인 채로 죽은 것입니다. 공자 문하에 들어온 뒤로 그에게 결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뜻에 삿된 감정이 있었던 적은 없다고 봅니다. 자로는 자신의 소신대로 살았고, 그 소신이 부끄러운 점이 없기 때문에 자로가 이상으로 삼았던 또 다른 군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마칠 수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공자와 자로, 서로 조금 더 중히 여기는 것이 달랐을 뿐 그 둘의 덕에 있어서의 경중을 어찌 쉽게 잴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