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밀덕] 2차대전 독일과 미국의 보병 분대 교리 차이

예전에 썼던걸 조금만 다듬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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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독일의 일반적인 분대 편제는 인원수부터 큰 차이가 있었다.


미군 - 완편 기준 12명

독일 - 완편 기준 9명


이는 둘이 어떤 것을 목표로 최소 편제를 운영했는가의 차이가 크다.

미군은 각개 소총수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고, 독일은 각 분대가 보유한 경기관총의 화력을 중심으로 편제가 짜였기 때문이다.



먼저 독일군의 편제구조는 사실 단순하다.

독일군은 그래서 분대원을 지칭하는 지칭번호도 매우 단순한데,

분대장, 1번,2번(기관총 사수와 부사수), 나머지는 3,4,5번... 이런식으로 사수번호를 붙인다.

9명의 소총분대 보유화기는 아래와 같다.

MP38/40 계열 기관권총 1정 (분대장), MG34 또는 MG42 경기관총 1정, P-38 권총 2정, Kar98k 소총 6정

대전 말기에는 기관권총 자리의 일부를 StG44 가 대체하거나, 소총수용 화기로 G41/G43 반자동 소총이 지급된다.


 

특이한점은 분대장이 일종의 경기관총조에 소속되어있는듯한 구조인데, 독일은 이처럼 완벽하게 기관총 위주의 분대편성을 한다.

분대장조에는 총류탄 발사기를 휴대한 조원이 편성된다.

부분대장조는 반자동소총을 휴대한 병장으로 소총을 휴대한 다른 병사 넷을 지휘한다.


독일군의 소총분대 전투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소총수가 기동과 엄폐를 반복하여 공격 대기지점을 선점

2. 분대장이 기관총 사수에게 핵심표적과 거치지점을 지정

3. 분대장의 명령에 의해 기관총이 적에게 사격

4. 부분대장의 지휘아래 소총수가 기관총의 엄호를 받으며 사격과 기동으로 약진

5. 적 진지 전면에 연막탄 투척 후 수류탄 투척

6. 연막차장으로 은폐된 소총수들이 각개 약진하여 적 진지에 돌격



여기에서 핵심은 다시말하지만 기관총이다.


기관총은 단순 화력지원이 아니라 여기서 보면 전투 개시를 기관총이 시작하고, 적의 위협과 정면으로 승부를 보는 구조이다.

교리상으로도 적 진지에 직접 침투하기 때문에 많은 사상자를 낼수 있는 수류탄을 제외하면, 교리상으로나 실제로나 적을 가장 많이 사살하는 분대단위 화기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흥미로운 장면이 많이 보이는데..



g1.png

 

1944년 팔레즈 포위망 전투에서 촬영된 12SS 히틀러유겐트 사단 병사들.

기관총 사수가 아닌 두 병사가 기관총용 탄띠, 그리고 탄박스를 휴대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 둘이 휴대한 기관총 탄약만 해도 최소 500발은 넘는 양이다.


당시 독일군 제916척탄병연대 소속으로 1944년 노르망디 방어전에 참가했던 한스 하인츠 대위의 증언을 들어보면 엄청난 양의 기관총 탄약 휴대량이 드러난다.


"각 인원은 기관총용 여분 탄띠 200발을 휴대했고, 1번과 2번사수는(기관총 사수와 부사수) 각각 1,400발을 휴대해야 했다."


대략적인 계산으로만 해도 약 4,000발의 기관총 탄약을 한 분대가 들고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기관총 탄약을 단 하나의 분대가 휴대한다는건 당연히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양이였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였다.



실제로도 이런 기관총 위주 전술은 분명 효과적이였다.
전후에 사격법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사격에 대한 결과는 일반적인 생각과 조금 다른 결과를 말해준다.

많은 결과들은 적을 신중하게 한발씩 조준사격하는 것 보다는 잘 제어된 점사로 퍼붓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데,

이처럼 유효 발사속도 기준으로 퍼붓는 MG42 한정의 화력이 Kar98k 로 비교하면 무려 30정의 화력에 맞먹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치명적이였으며,

대전말에 정예병이 상당히 갈려나간 상황에서도 꾸준히 전투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미군 사망원인 1위인 박격포가 등장한다.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미군의 무명 장교의 증언(Martin Windrow, D-Day and the Battle of Normandy, Brassey's, Inc.(2002), pp.79 )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 병사들이 힘들여 전진하면 독일군은 선두의 한둘을 쓰러트려 나머지를 둑 뒷편으로 엎드리게 만들고는 박격포를 호출했다. 독일군의 박격포는 매우, 매우 효과적이었다. 우리가 다시 재정비를 하고 그들에게 접근할 준비가 되었을때, 그들은 이미 다음지점으로 후퇴한 뒤였다. 만약 우리가 그대로 전진했다면, 그들의 기관총은 우리들 중 몇명을 더 쓰러트렸을 것이다."

 


이는 사실 MG34와 MG42가, 그당시로는 생소했던 개념인 이상적인 모습의 분대지원 경기관총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관총 위주의 전술은 크나큰 단점도 지니고 있었다.

바로 기관총을 상실하는 시점에서 분대가 할수 있는 것이 전혀 없어진다는 것이였다.

이는 생존자들의 증언에서도 크게 나타난다.


"나는 분대원 중 소총수 4명에게 기관총을 보호하도록 해야 했다. 우리는 가끔 기관총을 상실한 다른 분대에서 새로운 병사를 받기도 했다. 기관총은 절대로 잃어서 안될 것이었다. 만약 잃는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생존자들을 나눠서 기관총을 가진 분대에 보낼 것이었다."

ㅡ 독일군 제 326 국민척탄병 연대 소속으로 노르망디 방어전에 참가했던 알프레드 베커 상병


"독일군을 방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들은 아주 교범적이고 잘 조직화되어있지만, 만약 그 조직을 해체시킨다면 그들은 재조직하기를 어려워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을 계속 공격하면 됐다. 꼭 사상자를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계속 공격만 하면 됐다."

ㅡ 영국군 제6공수사단 제8공수대대장으로 노르망디 강습에 참가했던 알라스테어 피어슨 중령


쉽게말해, 기관총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방해를 가하는 변수에 대한 대응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였다.


이는 후술할 미군들의 능동적인 전투수행 능력, 그리고 난전을 거듭할수록 개개인의 투지를 강조하는 소련군의 경우와 크게 달랐다.

징집된 비전문 전투병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대 이후 독일군은 각개병사의 전투기량에 많은 것을 기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라인배틀 마냥 큰 집단을 이뤄 공격하던 1차대전 이전의 교리가 아직까지 미묘하게나마 남아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MP40 기관단총의 설계사상, 그리고 Kar98k의 설계사상에서도 드러난다.



g2.jpg


Kar98k의 가늠쇠 가늠자 사거리 조절나사. 무려 2000m 까지 조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아무런 광학조준기 없이 가늠쇠 가늠자로 보통 이 거리까지 적을 보고 쏠수 없다.

 

이는 단발 소총이더라도 대규모 부대가 동시에 일제사격을 하면 가시거리 밖의 적의 표적에도 피해를 강요할 수 있다고 보았던,

라인배틀 시절의 초기 강선소총 개발자들의 발상이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Kar98k 가 본격적으로 쓰였던 2차대전 당시에는 시대에 뒤쳐진 사상으로 발생한, 마치 흔적기관과도 같은 잔재였다.


g3.jpg



MP40의 뾰족한 돌출부는 건물의 창틀이나 급조 거치물에 기관단총을 걸치고 뒤로 당겨 양각대와 같은 효과를 보라고 만든 것이었다.

이는 마치 기관단총을 접근전용 무기로 설계했다기 보다는, 소형화된 경기관총 처럼 운영하라는 의미로 만들어둔 것이였다 (!)

물론 이러한 발상은 전쟁기간 도중에 발견된 경량 자동화기(특히 소련의 파파샤)의 효용성에 의해 빠르게 바뀌어갔다.

 

이처럼 독일의 분대는 모든것이 기관총 위주로 조직된, 마치 하나의 거대한 경기관총반과 같았다.

 

 


반면 미군의 분대는 그 개념의 시발점부터를 달리한다.


12명으로 구성된 미군의 소총분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분대장, 부분대장, 정찰조 2명, 자동소총조 3명(BAR로 무장), 소총수 5명.

여기서 부분대장은 M1 개런드가 아닌 M1903 스프링필드로 무장하는데, 이는 총류탄을 발사할때 실탄이 아닌 공포탄을 장전해야 하기 때문이였다.

따라서 중간에 탄종을 갈아끼기 어려운 M1 개런드 보다는, M1903 스프링필드를 사용하는 구조가 나오게 되었다.


 

 

분대원의 임무와 편제는 독일군보다 훨씬 복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독일군의 분대는 하나의 기관총과 그를 둘러싼 인원들로 단순하게 배치된 반면, 미군은 하나의 분대가 마치 독립된 작전 부대처럼 정찰대, 기동예비, 후방 화력지원조의 구조로 나뉘어져 있었다.


먼저 선두(에이블)은 두명의 척후병(정찰병)과 분대장으로 구성, 선두가 적을 식별하거나 접촉하면,

자동소총(BAR) 사수 및 부사수, 탄약수로 구성된 화력조(베이커)는 사격을 가하고,

그 사이에 부분대장과 소총수 다섯명으로 구성된 기동조(찰리)가 적을 우회해서 타격한다는 개념이였다.


 


당연하게도, 미군 소총분대의 가장 큰 특징은 M1 소총에 있다. 동급의 탄환을 사용하는 Kar98k에 비해 투사할 수 있는 화력은 거의 2배에 달했다.

소총수의 소총탄약 휴대량도 176발로 80발을 휴대하는 독일군 소총수의 2배가 넘었다.

 

미군이 이런 반자동 소총을 선택한건 2차대전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선택이였는데, 여기는 크게 두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1. 미군의 보병운용 경험이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머스켓과 징집병을 전제로 한 라인배틀과 비교적 거리가 멀었다. 유럽은 나폴레옹의 전쟁을 통해 징병제 사상이 뿌리깊게 내려있었다.

2. 서부개척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모든 개인이 소총을 쓸줄 알거나 하다못해 쓸줄아는 사람 주변에서 성장한 사람이였다. 즉, 이미 어느정도 총에 익숙한 사수들이였다.

 

 

그래서 1차대전을 똑같이 경험한 다른나라들과 달리, 세계대전을 경험한 미군과 독일군의 개인화기 개선은 아주 판이하게 진행된다.

 

비전문적인 징집병 중심의 군사전통을 갖고있던 독일군은 철저하게 공업적인 해결방법(MG42)를 찾은 반면,

 

미군은 각개전투에 능한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을 모두 상승시키는 해결책(M1 개런드)를 찾은 것이다.

 

 

 

소총수들에 대한 미군의 자신감은 2차대전이 개전 직전이던 당시까지도 여전했는데, M1 소총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대의견에서도 그 의견이 어느정도 드러난다.

 

"보병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소총이 전혀 쓸모없다는 소문들이 퍼져나갔다. 부사관들이 새 소총(M1)을 반대하는 이유는 기존보다 더 복잡한 사격술 과정이 생겨나서 특등사수 인증을 받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특등사수 인증은 한달에 5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ㅡ 저프리 페렛

 

"1941년 처음 M1개런드 소총을 지급받았을 때, 대부분 병사들은 복잡한 감정과 태도, 추측을 가졌다. 스프링필드 소총으로 특등이나 1급사수 였던 대부분의 고참들은 '이거 별로 안좋아.', '헛간 벽도 못 맞출걸', '탄이 걸릴거야', '전투시작 5분만에 탄을 다 쏴버릴걸', '적당히 수동으로도 못 쏘잖아' 하는 식이었다."

ㅡ 미육군 시드니 R. 하인즈 준장

 

한마디로 이렇게 쓸데없는 고화력은 필요가 없고, 불편하기만 할것이라는, 어찌보면 자만에 찬 의견이였다.

 

이러한 개인화기에 대한 관점은 더욱이 경기관총에 대해서는 심각한 부진을 야기했다. BAR은 1차대전에 쓰였던 소총으로, 1918년 뫼즈-아르곤 공세때 투입되어 미군과 프랑스군 모두에게 좋은 평을 받았지만, 여기서 더 발전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BAR도 유일한 미군 소총부대의 화력장비이면서도 소총과 같은 범용성을 끝내 포기하지 못한 총이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했지만 반대로 흥미로운 전과를 내기도 했다.

 

어쨌든, 전과와는 별개로 중요한 점은 미군이 생각하는 개인화기의 우선은 기관총 보다는 소총이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훗날 독일군과의 보병전투에서 만성적인 화력부족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미군 소총수들이 아무리 빠르게 속사를 해도 MG42보다 빠를수는 없었고, 대부분 공격전투를 수행했던 미군들로써는 매복한 기관총에 끊임없이 첨병을 희생자로 바치는 꼴이 되었다.

 

하지만 미군 소총분대는 나름대로 강점이 있었다. 소총수 개개인의 능동적인 임무 수행능력은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에, 미군 보병들은 교리에서 벗어난 난전에 엄청나게 능했다. 특히 이러한 사례들은 개인화기 조작과 사용에 대한 높은 이해와 숙련도에 기반한 것들이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도로의 오르막에 커다란 수풀이 조금씩 움직이고, 그 뒤로 분명히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 희미한 모습이 보였다. 나는 M1 소총에 예광탄을 가지고 다녔다. 나는 빠르게 2 클립을 사격했다. 예광탄이 두꺼운 강철 포방패에 명중해 폭죽에서 불길이 터져나오듯 사방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이렇게 은신중인 자주포를 발견했다."

(* 필자 주 : 예광탄으로 단지 탄이 날아가는 방향만을 표시한게 아니라, 예광탄이 단단한 곳에 맞으면 파열되며 부서진다는것을 이해해 은신중인 자주포를 발견함)

ㅡ 미 육군 제2기갑사단 제238 공병전투대대 소속으로 노르망디 전투에 참가했던 존 웡 중위

 

"웨이벌리 레이 중위는 생울타리 너머 속삭이는 소리들을 들은 곳으로 갔다. 장교들이 지도를 보며 전술을 짜고 있는 것 처럼 들렸다. 레이가 장애물을 뚫고 튀어올라 M1을 준비 자세로 휘두르며 무전기 앞에 모인 독일군 장교 8명에게 "헨데 호흐!(손 들어!)" 라고 외쳤다. 그중 7명은 손을 들었지만 1명은 권총집에서 권총을 뽑으려고 했고, 레이는 그 장교의 두 눈 사이 미간을 쐈다. 총성에 100m 거리의 참호에 있던 독일군이 그에게 기관권총을 갈겼다. 레이는 포복으로 도망치려는 독일군 장교 7명에게 한발씩 사격했다. 이윽고 그는 클립을 갈고 기관권총을 쏘려는 독일군을 한발씩 사격해 쓰러트렸다. "

(* 필자 주 : 난전중에 10발을 쏴서 10발을 모두 명중시켰다는 뜻)

ㅡ 스티븐 앰브로스

 

"새로 가져온 브라우닝 자동소총으로도 총열이 녹아 휘어질때까지 사격했다. 또 다른 총을 찾지 못한 나는 위층에 올라가 주변을 뒤졌고, 총알이 가득 장전된 톰슨 기관단총을 찾았다. (중략) 총알이 떨어지자 나는 어디선가 본 바주카를 떠올렸다. 바주카를 사격하자 후폭풍이 일어나 집이 흔들렸다. (중략) 나는 60mm 박격포탄을 집어들어 포탄을 창가 선반에 대고 가볍게 치자 안전장치가 떨어져 나가 폭탄처럼 사용할수 있었다. (중략) 방 한쪽 구석에는 스프링필드 1903 소총이 세워져있었다. 나는 눈에 띄지않게 작은 언덕을 넘어 우리쪽으로 접근하는 적군을 목표물로 삼았다. (중략) 창박으로 건물 아래 안마당을 보니 37mm 대전차포가 있었다. 계속 포사격을 하자 교회 전체가 벌집처럼 되었고..(후략)"

ㅡ 찰스 '코만도' E. 켈리.

(* 1943년 9월 이탈리아 알타빌라에서 독일군 공격으로부터 아군 탄약고를 방어하기 위해 잔류한 병사 한명으로 이 전투를 통해 의회명예수훈장(메달 오브 아너)를 수여받음.

단 한명이 대체 몇종의 병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의 부분.)

 

 


 

즉, 개개인의 병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위기 상황에서도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유연함, 그리고 기발한 행동들이라는 큰 강점이 있었다.

미군의 이러한 보병의 특징은 전쟁 중 미군을 위기에 강한 조직으로 만들어주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대체로 미군들은 조직이 와해되는 상황에서도 교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줄요약 :

 

독일의 보병 분대는 경기관총 한정을 중심으로한 거대한 기관총반과 같은 구성을 갖고 있었다.

 

미군 소총분대는 전술적으로 복잡하고, 개개인의 역량을 우선시 했기 때문에 화력은 약했지만 난전과 위기, 그리고 변수에 강했다.

52개의 댓글

2017.10.03
독소전쟁 당시에도 소련군은 이미 모신-나강소총에서 SVT-40 반자동소총으로 넘어가려던 과도기였습니다. 다만 핀란드와의 전쟁과 독일의 기습으로 SVT-40으로 완편하려던 계획은 실패하고 모신-나강소총과 혼합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소련은 핀란드의 수오미 기관단총에 자극받아 이미 PPD계열의 기관단총을 연구하고 있었고, 독자적으로 AVS-36같은 자동소총을 개발해 보급했을 정도로 소부대의 개인화기 화력개선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핀란드의 소규모 게릴라가 기관단총과 수류탄만을 소지하고 단시간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붓고 이탈한 것에서 영감을 받은 소련은 독일군과의 시가지 전투에서 기관단총으로 무장된 게릴라를 조직해 재미를 봤습니다. 스탈린그라드전투 당시 마지막까지 볼가강 서안의 교두보를 지키고 있던 제64보병사단과 예하 게릴라부대원들에게 PPSh-41 기관단총을 지급하여 개인화기 화력에서 열세를 보이는 독일군을 상대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에 독일군 역시 일선의 요구에 따라 장교용으로만 지급되던 MP40 기관단총의 복잡한 생산절차를 단순화시키고, 시가전용으로 개량하여 일선 사병에게 지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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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3
전군 제식화기가 반자동 소총이었던 것은 미군이 유일한 사례이며, 보통은 독일군이나 소련군과 같이 볼트액션 소총을 제식화기로 편성하되 기관단총과 경기관총을 적절히 배치해 전체적인 화력증가를 꾀했습니다. 이중 소련군은 시가전을 거치며 PPSh-41이나 PPSh-43같은 기관단총의 비중이 상당했으며, 전후 수많은 잉여 PPSh-41을 소련군으로부터 인도받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공군은 제식화기는 아니었지만 거의 전군이 기관단총으로 무장했던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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