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동료들에게 술을 대접한 동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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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분부장 동한훈은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했으며 몇 사람을 합해놓은 만큼 힘이 셌고 몸 또한 날렵해 싸움을 잘했다. 그가 오래도록 서북쪽 변방을 진수하는 동안 강족들은 그를 매우 두려워했다. 건부 병신년(876)에 그는 여주 용흥진장이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에게 말했다.

 "내일 친구 십여 명이 우리 집에 올 것이니 술과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해 두도록 하시오."

 동한훈의 집 사람들은 그저 늘 오는 그런 손님이겠거니 생각하고는 이튿날이 되자 청사에 성대하게 상을 보아두었다. 진사시가 되자 동한훈은 의대를 매고 진문 밖으로 나가더니 공중을 바라보며 연신 절을 해댔는데, 혹은 항렬을 부르기도 하고 혹은 자(字)를 부르기도 했다. 그가 웃어가면서 예를 갖춰 정사에 오르자 그 집안 식구들이 크게 놀랐다. 차려놓은 술과 음식도 마치 제사상을 보아놓은 듯했다. 손님들이 다 간 후 아내가 어찌된 영문인지 캐묻자 동한훈이 말했다.

 "그들은 모두 이전에 변방에서 전쟁을 치르다 죽은 동료들이오. 오래헤어져 있다가 어쩌다 한번 찾아온 것뿐인데, 이상할 게 뭐 있소?"

 그 후 동한훈에게는 아무런 변고도 생기지 않았다.

 이듬해 가을 8월 마지막 날, 청토적 왕선지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갑자기 들이닥쳤다. 때는 태평시절이었던지라 군국에서는 아무런 대비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날 군에서는 500명의 정예를 뽑아 용장 찬홍으로 하여금 통솔하게 하였으나, 고모점에 이르러 모두 적에게 사로잡혀 오직 기마병 한 명만이 군으로 도망왔으니 온 군의 사람들이 크게 놀라 성문을 걸어잠그고 성가퀴에 올라 각자 구역을 나누어 굳게 지켰으며 동한훈을 500명을 거느리고 북문을 맡았다.  9월 초하루 아침에 적군이 몰려와 포위하여 남문을 함몰시키고 태수 왕료를 인질로 잡았다. 동한훈은 북문에서 악전고투 했는데, 동한훈의 화살에 맞은 사람들은 모두 땅에 고꾸라져 수십 명이나 죽었다. 그러나 화살이 떨어지고 적이 밀려오자 동한훈은 검으로 또 수십 명을 죽였다. 그는 검이 부러지자 지분 서까래를 뽑아 적군을 내치려 다시 수십 명의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날이 거듭되자 그는 허기지고 지쳐 결국 적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적장도 경이해 마지 않으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 삼수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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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저냥한 이야기이지만 배경이 황소의 난인데스. 청토적 왕선지라는 인물은 황소의 난 초기의 반군 지도자이고, 태수 왕료는 연주자사로 왕선지에게 포로가 되었음에도 후대하자 그를 구슬려 조정에 투항하게 하려고 했던 인물인데스. 실제로 왕선지는 잠시 투항을 생각하기도 하였으나 결국에는 왕료를 죽이고, 전쟁을 계속했고 최후에는 전사해버린데스. 그 이후는 황소가 그 세력을 편입하여 계속해서 난을 이끄는 형태가 되는데스. 



진월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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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사람 진월석은 본래 이름이 황석이었다. 그는 왕옥산 아래의 교외에서 살았으며 장씨라는 첩이 있었다. 원화연간(806~820)에 진월석은 장씨와 함께 밤에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촛불 그림자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손 하나가 나오더니 진월석 앞에 이르렀다. 그 손은 검푸르고 짧은 손가락에 손톱은 가늘고 길었으며 누런 털이 팔까지 덮여 있었는데, 마치 음식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월석은 그것이 괴물임을 확신하여 꺼려하고 또 두려워했다. 한참 뒤에 촛불 그림자 아래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병들고 배고프기에 이렇게 삼가 찾아온 것입니다. 고기 한 점만 손바닥에 놓아주셨으면 하니 부디 거절하지 마십시오."

 진황석이 즉시 고기 한 점을 바닥에 던졌더니 그 손이 곧바로 집어갔다. 그리고 또 말했다.

 "이 고기는 정말 맛있습니다."

 그러고 또 다시 손을 내밀자 진월석이 화가 나서 욕하며 말했다.

 "요귀가 어찌하여 뻔질나게 오느냐? 속히 떠나거라. 그렇지 않으면 두들겨도 후회하지 않겠지?"

 그러자 괴물은 즉시 손을 빼며 두려워하는 듯했다. 얼마 후 괴물이 손을 내밀어 장씨 앞에 이르더니 장씨에게 말했다.

 "부인꼐서는 고기 한 점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황석이 장씨에게 말했다.

 "절대로 주지 마시오."

 장씨는 결국 고기를 주지 않았다. 한참을 있다가 갑자기 촛불 그림자 옆에서 얼굴 하나가 나왔는데 다름 아닌 야차였다. 야차는 붉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졌고 두 눈이 번개처럼 번쩍였으며 이빨 4개가 칼날처럼 날카로워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야차가 손으로 장씨를 쳤더니 그 즉시 쓰러져 멍한 채로 꼼짝할 수 없었다. 진황석은 담력과 용기가 대단했기에 즉시 야차를 쫓았는데, 야차는 감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도망쳤다.

 다음날 야차의 자취를 찾아보았더니 담 위로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진월석이 말했다.

 "이 괴물은 오늘밤에 다시 올 것이다."

 그리하여 밤이 되자 진황석은 몽둥이를 들고 기라렸다. 겨우 한 식경이 지나서 야차가 왔는데, 담을 넘은 뒤 아직 발이 땅에 닿지 않았을 때, 진황석이 즉시 몽둥이로 연달아 수십대를 쳤다. 야차가 도망을치고 난 후 담 아래를 살펴보니, 피가 흥건했고 한 척 남짓한 가죽이 땅에 떨어져 있었는데, 얻어맞아 벗겨진 것 같았다. 그 후로 장씨는 병이 나았다. 저녁 부렵에 몇 리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진황석은 어찌하여 네 가죽을 돌려주지 않느냐?"

 야차가 계속해서 외쳐되는 것이 한 달이 넘어가니 진황석은 막을 수 없다 생각하여 집을 옮기고 이름 또한 월석으로 고쳤다. 원화 15년에 진월석은 진사에 급제하였고, 회창 2년에 남전현령으로 있다가 죽었다. - 선실지


 야차는 베다에서 나오는 초자연적 존재로서 본래 베다는 제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야차들 또한 모시고, 공양한다면 여러자기로 인간에게 득이 되는 무언가를 내주거나 벌을 내리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데스. 물론 신화에 따라서는 악한 형태로 나오기도 하는데스. 불교 이후에는 비사문천의 아래에 들어가 권속이 된 귀신과 같은 존재들을 야차라고 총칭하는데스. 불교 경전에서도 종종 나오는데 자이나교도들을 솎아내서 그들이 기부받았던 동산을 부처가 설법할 수 있는 동산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는데스. 불교계의 용역이라 보면 되는데스. 중국-한국-일본 등으로 이 야차가 전래되면서부터는 흉측만 이미지가 부각이되어서 인지 야차라고 쓰기는 하지만 이러저러한 도깨비류를 모두 일컫는 말이 되어버린데스. 




무측천의 세가 다할 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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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역지가 장차 패망할 즈음에 아장이라 불리는 그의 모친 위씨가 집에 앉아 있었는데 하인이 이렇게 알려왔다.

 "아주 많은 거마와 말 탄 시종들이 문에 도착하여 내렸는데, 아마도 내관인 듯합니다."

 아장이 그들을 영접하러 나갔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또 들여우가 자주 밥 단지를 높이 들고 담 위를 지나갔다. 그러더니 열흘도 안되어 화가 닥쳤다. 수공연간(685~688) 후에 여러 주에서 수탉으로 변한 암탉이 많이 바쳤는데, 이는 측천무후가 칭제할 징조였다. - 조야첨재


 장역지, 장창종 형제는 무측천의 측근으로 장역지는 특히 잘생겼다고 전하는데스. 훗날 무측천이 병들어 그 기회를 틈타 중종을 복위시키려했던 장간지, 최현위 등의 세력에게 잡혀서 죽어버린데스.  




석종무가 병마의 원인을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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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개성연간(836~840)에 계림비장 석종무는 젊어서부터 활을 잘 쏘았다. 그런데 그의 가족들이 모두 몹씁 병에 걸려 어른 아이 할 것 업싱 온전한 사람이 드물었다. 깊은 밤이면 늘 몸에서 광채가 나는 어떤 사람이 집밖에서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이 괴물이 집에 오면 병자들이 더욱 더 심하게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의술로도 효혐을 볼 수 없었다.

 석종무는 다른 날 저녁 활을 들고 문 뒤에 숨어 그 괴물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에 괴물이 다시 찾아오자 석종무는 활을 쏘아 한 발에 괴물을 명중시켰다. 그러자 괴물의 몸에서 비치던 불빛이 별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석종무가 불을 가져오게 해서 보았더니 그것은 이전부터 집안에서 사용하던 논나무로 만든 등잔걸이였다. 등잔걸이가 땅에 넘어지가 석종무는 곧장 그것을 조개서 불에 태운 뒤에 그 재를 강물에 버렸다. 그로부터 병을 앓던 사람들이 모두 나았다. - 계림풍토기


 어떤 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서 존재한 덕에 다른 형태로 변신하거나 요괴가 되는 것을 정괴라고 말하는데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 반쯤 개그요괴로 나오기도 하는데 본래 물건이기 때문에 다른 큰 물건에 눌려있으면 움직일 수 없어서 낑낑대기도하고(수신기), 겨우 징이나 거북이 껍질이면서 어디서 얼마나 배웠다고 노스님과 도사의 형태로 나타나 서로 불교와 도교 중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가지고 다투기도 하는데스.(소상록)




왕촉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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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 무덤)


 당나라 희종황제가 한중으로 파천갔을 때 촉의 선주 왕건은 금군도두로 있었다. 한번은 그가 동료들과 함께 사원에서 주사위 던지기 놀이를 했는데, 6개의 주사위가 겹쳐져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모두 나왔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모두 깜짝 놀라했다.

 훗날 왕건은 촉나라를 세우고 흥원부에 행차했다가 옛날 그 사원을 찾아갔는데, 스님들이 여전히 그곳에 살아 있었다. 왕건이 예전의 일에 대해서 물으니 그곳 스님들은 모두 주사위 놀이를 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 했다. 선주는 몹시 기뻐하며 스님들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 북몽쇄언


 황소의 난 토벌 때에 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내다가 전촉을 세운 왕건의 이야기인데스. 고려 왕건과 한자가 일치하는 묘한 인연이 있는데스. 그거 빼고는 없으니까 괜히 환빠같은 생각가지지 말라는데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