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압, 데이터 주의]한국의 독립운동사는 낭만주의가 아니였다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tjGt5


쿠르드족 자치독립 읽을 거리 참고글 : http://www.dogdrip.net/139643180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누가 일단 통일 공동체부터 만들고 나서 독립을 생각하라고 해서 썼음을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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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군의 시초는 조선, 대한제국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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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는 에도막부 후기-메이지 유신 초기에 일본 정부에서 파악한 조선 및 대한제국이다.


쿠르드족과는 다르게 한국은 예전부터 전제군주국으로서 일단 단일중앙집권국가를 표명했기때문에, 군주없는 단일국가는 생각할 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부터 1905년 을사늑약이후에 분류에 따라 계층별로는 3개 부류, 왕의 칙명을 받은 존왕양이파(왕의 친족들 및 친왕파 양반들), 자발적으로 일어난 유학파(양반들,elite층)과 일반 백성들의 각기 다른 항일운동 파벌, 종교별로는 유학파, 종교별로는 유학계(흔히 말하는 양반들), 동학계, 불교계, 기독교계, 종교가 없는 파벌이 생겼다.


이 파벌이라는 것도 잘 이해해야하는 것이, 완전히 분리된 파벌이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견련되있는 파벌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3개의 파벌들이 각각 시초를 이루어서 항일 투쟁을 전개해 나아갔다.


이 분류하기 애매한 파벌끼리도 크게는 온건파, 강경파, 작게는 수구, 온건수구, 온건진보, 진보계열로 뒤섞이어 유럽에서는 흔히 벨 에포크라고 부르는 혼잡한 19세기말을 극복해나가 국가간 생존경쟁에서 근대화, 개혁을 해나가며 외세를 물리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 와중에는 외세의 힘을 빌어 이를 극복해보자고하는 친일파, 친청파, 친러파, 친미파, 친영파, 친독파, 친불파 등등 각기 다른 생각들이 난립해 나간 혼잡한 시기라 볼 수 있다.


문과(극혐)생들은 대다수 알겠지만, 김옥균, 김홍집, 흥선대원군, 고종, 민비 등 역사에 굵은 이름을 남기고 간 거인들은 전부 한 목표 조선*대한제국의 국가생존을 건 근대화를 목표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좋은 시절'이라 불리던 벨에포크 시대는 조선에게는 생존의 시대였다.


대충 감이 오겠지만, 시발점이 다르면, 전개과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왕의 명령을 받은 존왕양이파들은 그냥 보수 중에서도 진보 보수와 수구파로 갈리는 관리계열의 인사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진짜 왕이나 왕실의 칙명을 받고 한양 또는 지방에 내려가 지방양반들과 백성들을 규합하였으며, 자금또한 왕실에서 초기자원부터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사상적으로는 위정 척사라고 불렀다. 위정척사란, 그 유명하신 최익현 양반네들을 중심으로 [衛正 : 바른것을 지키고 , 斥邪 : 사악한것을 물리치자]라는 의미로 바른 것은 성리학이며, 사악한 것은 당시 조선 사대부들, 민중들이 이해 할 수 없는 양이들의 문물이었다. 이들의 의지는 1920년 근까지 한반도 내에서 의병 항쟁을 하다가 일본의 한반도 대토벌작전으로 인해 더이상 제국내의 투쟁이 불가능해지자 만주, 중화민국으로 넘어가  구성하는 일파가 된다. 유명인으로는 이항로 선생님이 계신다. 이항로 선생님은 위정척사계중에서도 화서계였는데, 굳이 꺼내는 이유는 이 존왕양이-위정척사계열에서도 화서계,  노사계, 한주계 등 그 계열이 또 갈린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사대부들은 지금의 작태를 보이고 있는 한국의 상류층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꽤 많았는데, 이들은 보통 온건진보나 강경파들이 주류였다.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토호지방에서 궐기하였으나, 김홍집, 김옥균, 서재필과 같이 조정에 입신하여 국란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모습이 대다수였고, 토호지방에서 궐기한 사람들은 연계된 사람들도 있었으나, 보통 자신의 세력권에서 세력을 확장 혹은 보지시키는데에서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무관계열 즉, 대한제국군 출신들은 좀 달랐는데, 이들은 1907년 제국의 군권을 일본이 장악하자, 실업인이 된 실업군인들을 규합하여 서울진공작전 혹은 지방에서 일본주둔지 습격등을 통해 비교적 집권화된 투쟁을 보여주었는데, 이들역시 대토벌작전 이후 만주, 중국으로 넘어가거나 장교급 인사들은 망명하여 임시정부의 군사계를 통하여 항일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외에도 이 계열에서는 변절자들이 많았는데,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제국말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등을 필두로 한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백성들은 흔히 말하는 좌파계열이 많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항일투쟁운동사라고 해서 항일투쟁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을 거 같지만, 조선-대한제국으로 이어지기 까지 계속된 수탈에 백성들은 가난했고, 이를 개혁하기 위해 상소, 봉기를 했으나 탄압의 주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막말로 조정의 입장에서는 항일투쟁을 해주는 고마운 존재와 동시에 언제 조정의 근간을 흔들지 모르는 위협적인 존재였고, 조정과 사대부들은 이들을 멸시하거나, 견제하기까지 했다. 간단한 예를 말해보자면 1811의 홍경래의난, 1862년 개령과 진주에서 이뤄진 농민 봉기는 더이상 활발한 정부라고 볼 수 없는 부패한 조선조정으로서는 쉬이 진압하기 어려운 봉기였고, 홍경래의 난같은 경우에는 1년동안 지지부진하다가 평안도 초토화작전을 통해 겨우 진압하여 가담한 인원중에 여자와 어린이들 제외한 1,917명을 처형하면서 끝났기 때문에, 현재 우리입장에서는 민주세력이지만, 당시 입장에서는 반란군과 존왕양이 근대화 세력 중간에서 반란군쪽에 좀 기운 입장이였다. 대표적으로는 다들 알다시피 동학농민운동이 있다. 이들은 1945년 제국이 공화국으로 독립할때까지 독립군의 대다수의 인원을 이뤘으나, 스펙트럼이 넓어 자기들끼리도 통일된 세력을 이루기 힘들었다.

그외에도 많지만 다적기에는 너무 많고, 독립이란 쉽지 않은 만큼 그 시발점만큼 쉽지 않다.

서로 견제하고 탄압하고 멸시하는 시발점으로부터 시작해서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주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나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단일되거나 여느 다른 나라에 가서 준외교권을 행사할 만한 통일규합세력은 생기지 못했다.

그렇게 1910년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이 체결되었다. 고종을 보필하던 시종 무관장 민영환은 자결하였고, 중흥할 역량이 부족했던 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시 제국인구 약 2000만명.

백성들은 무능한 조정의 착취에서 일본제국이라는 새로운 주인에 의해 탄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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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다들 잘 아는 1914년 세계대전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일본제국은 호황에 휩싸였다. 전선은 유럽이었지, 아시아가 아니었기때문에, 중국과 태평양의 동맹국 식민지들 야금야금 점령해 나아갔으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에 물자를 대기위해 공장은 불끌새 없이 돌아갔다.

1차대전에 80만명의 군대를 동원한 일본이었지만, 군경들에 의한 조선인 통제는 계속 되었으며, 공장이 돌아가듯 조선인들에 대한 착취역시 쉬없이 돌아갔다.

대전 종결 후 일본은 승전국이 되어 점령했던 동맹국 식민지들의 영토 소유권을 승인받았으며, 미국의 민족자결주의 발언이 나왓음에도 일본의 제국에 대한 지배는 더욱더 공고해져갔다. 그리고 1919년 1월 고종이 승하했다.

다들 알다실피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중 29명이 오후 2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고, 광화문 앞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거의 각은 시각에 평양, 의주, 선천, 안주, 원산, 진남포 등 전국적으로 거의 각은 시각 만세시위 운동을 했다.

그리고 일본은 제암리 학살사건같이 각지에서 조선인학살을 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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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0일 드디어 상하이에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임시정부의 근반이라 할 수 있는 임시의정원을 창립하였다. 왜 임시의정원이냐 하면, 제국이 아직 망하기 전 조정은 곧 의정원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11일에 임시헌장을 발포하고 13일에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독립운동세력에서 드디어 통합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임정의 출범은 꽤 의의가 큰데, 최초의 통합세력이라고 볼수 있는 집단의 등장임을 알리는 셈이다.

그 이전의 독립운동세력들은 미약한 부족연맹체제같은 느낌을 주는데, 자립단, 송죽회, 독립의군부, 대한광복회, 신민회, 신한청년당, 중광단, 북로군정서, 권업회, 성명회, 대한광복군정부, 대한국민의회, 대동단, 산성임시정부, 구미위원부, 흥사단, 동지회 등 수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생겼지만 결국엔 독립된 단체들이었다. 이들 중 신한청년당을 중심으로 모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당시 수립 참여자로는 여운형, 조동호, 손정도, 조소앙, 김철, 선우혁, 한진교, 신석우, 이광수, 현순, 신익회, 조성환, 이광, 최근우, 백남칠, 김대지, 남형우,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신채호, 진희창, 신철, 이영근, 조동진, 여운홍, 현장운, 김동삼 등 29인이며,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참여한 인원들은 무정부계, 공산계 인사부터, 복벽계열인사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복벽계란 쉽게말해 왕정복고 수구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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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인척인사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국무총리로는 공산계인사 이동휘가 취임했다.
내무총장 안창호는 연통제와 교통국을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했으며, 애국공채와 국민의연금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나갔다.
그러나 친미파였던 이승만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끌어안을 역량이 부족했는지 초기부터 이동휘를 중심으로 한 공산계열(이르추츠크파, 상하이파, 엠엘파 등)과 갈등을 빚었으며, 비단 안창호역시 방략상 대립관계였다.
그리고 독단적으로 대통령의 이름을 서명, 국제연맹에 위임통치 청원서를 보내 일본이 아닌 국제연맹에서 위임통치를 해달라고 청원서를 보낸다.
1920년 12월 8일 이승만이 취임을 위해 상하이로 입국하였으나 이동휘는 이승만의 대통령 취임을 반대하며 국무총리직을 사임하였으며, 신채호는 '이완용은 있는 나라라도 팔아먹었지,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마저 팔려고 한다'며 이탈하였다.
혼란속에 이승만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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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안창호의 반대 끝에  임시정부는 소비에트 연방의 레닌으로부터 혁명자금 200만 루블을 지원받았으나, 자금분배 과정에서 국무총리직을 사임하였던 이동휘가 고려공산당을 수립하기 위해 김립을 보내 60만루블을 빼돌렸다. 이에 김구는 김립을 암살하고 임시정부 내 공산계열 인사들을 모두 추방하였다. '국제공산당 자금사건'이었다.
임정의 출범부터 시작된 혼란에 1923년 1월 부터 6월까지는 국민대표회의를 열어 각지의 200여명의 대표가 참석하여 임시정부의 해체와 재건을 주장하는 창조파와 개혁을 주장하는 개조파로 분열하여 싸웠으며, 4월에 이승만은 탄핵되었고, 결국 김구는 국민대표회의에 아무런 결실이 없다고 생각되어 해산 명령을 내렸다.
임시정부 내에 재중국청년동맹, 주중국청년동맹가 경쟁하였으며, 좌우 통일을 위해 안창호 등이 유일독립당촉성회가 결성하였으나 결국 사회주의 계열과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양자분열을 거듭하였다.

초기 임정의 혼란 속에서도 일본에 의한 정치공작이 시작되었으며, 박은식을 뒤이어 이상룡, 양기탁, 안창호, 이동녕, 홍진등이 각각 대통령, 국무총리등에 천거되었으나 모두 내각 조직에 실패하고 이탈하였다. 그리고 김구가 집단지도체제로 바꾸었지만 조선총독부의 밀정을 통한 요인 체포, 납치, 암살 공작이 계속적으로 이뤄졌고, 여러 인사들의 친일파 변절로 인하여 사실상 임정은 있으나 마나한 조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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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각 만주에서는 홍범도와 대한 독립군 및 기타 연합독립군이 봉오통 전투에서 최초로 일본군에세 승전보를 울리면서 만주 무장 투쟁의 서막을 열었으며, 훈춘 사건으로 만주에 진주한 일본군을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의민단 등 연합부대가 청산리일대에서 6일간 전투하여 청산리대첩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무장투쟁독립계열의 서막은 시작되었지만, 만주로 피신한 조선인들의 삶은 고달파져갔다. 일본은 만주에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진주하여 간도에서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더이상 만주에서 활발한 활동이 불가능해진 만주무장독립계 인사들은 북로군정서와 대한독립군을 필두로 대한독립단, 간도국민회, 대한신민회, 의군부, 광복단, 혈성단, 도독부, 야단, 대한정의군정사, 군비단 등을 규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창설하고 소련의 스보보드니시로 이동하였으나 군단 내 자유대대와 이항군 사이에 독립군 통수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 났다. 그놈의 임정이 또 문제였다. 자유대대는 이르쿠츠크파가 장악한 대한국민의회를 지지했지만, 이항군은 임시정부를 지지했다. 일단 이항군이 통수권 경쟁에서 승리하자 자유대대의 오하묵과 최고려 등이 코민테른 동양비서부에 가서 독립군 통수권을 교섭했다. 코민테른은 이를 받아 들였다. 박일리아 등 이항군은 한인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극동과화국정부와 합법성을 교섭했으나 실패하였고, 코민테른에서 조직한 임시고려군의회의 총사령관 갈란다라시월린은 스보보드니시에서 자신이 총사령관임을 선포하고 이항군에게 부대 소집을 명령하였으나 거부하였고, 임시고려군의회는 무장해제를 명령했다. 그리고 이에 불응한 이항군은 전사자와 도망자를 뺀 864명이 포로가 되었고, 대한독립군단은 와해되었다. 그리고 독립운동계열에 공산계열과 비공산계열이 갈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자유시 참변'이다.

연해주에 있던 무장독립세력은 러시아 혁명과 운명을 같이 했는데, 당시 혁명군은 혼란에 빠진 제국을 빨리 수복해야하는 입장이었고, 그 외 열강은 주변에서 콩고물 떨어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은 혁명이 길어지자, 러시아 내 일본인과 자본 보호를 명목으로 러시아로 원정군을 진주시켰고, 니콜라예프스크 입성을 위해 진군하던 트랴삐친부대는 입성 후 다른 혁명군과 마찬가지로 백위파 관리, 장교, 자본가를 처형하고, 일본군에게 무기와 탄약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혁명군을 향해 기습을 감행했고, 혁명군은 이에 일본인을 보복성 학살한다. 백위파와 일본군마저 없어지자 눈에 뵐거 없던 혁명군은 한인부대를 흡수했고, 해빙기 일본군이 진주해올 것을 예상하고 나콜라예프스키를 초토화시키고 떠났는데, 이때, 조선인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러시아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연해주의 독립군세력끼리 서로 죽고 죽이면서 연해주의 무장독립세력 역시 공산계열을 제외하고 맥이 끊긴다. '니항사건'이다.

이 두 사건을 이후로 만주-연해주에서는 공산계와 비공산계 두 무장투쟁독립계열은 반목을 지속한다. 납치, 암살 등 말이다.

이 때, 일본 제국 내 한반도와 본토(일본 열도)에 있던 독립계열은 실력양성계열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나, 다들 알다시피 서로 반목하다가 변절해서 대다수 그 맥이 끊긴다. 3. 1운동 독립낭독 했던 33인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변절한다.

그 이외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당시 잘 나간다던 나라들에 상주하며 외교독립계 인사들도 열심히 뛰어다녔다. 하지만, 외교독립계 인사들은 다른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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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이 되면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국가운영에 무리가 가던 일본이 중일전쟁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만주에 대한 영향권을 점령으로 바꾼것이다.

1920년대말 거의 궤멸의 경험을 겪은 만주의 무장투쟁운동세력은 통합을 모색하였다. 남만주에는 국민부가 수립되고 , 조선 혁명당이 결성되었으며, 북만주에는 혁신의회와 한국 독립당이 결성되어 30년대 독립군을 이끌었다. 실질적으로 독립 전쟁을 전개한 부대는 지청전 장군의 한국 독립군과 양세봉 장군의 조선 혁명군이었다. 이들은 쌍성보 전투, 사도하자 전투, 동경성 전투, 대전자령 전투, 홍경성 전투, 영릉가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만주에 있던 신민부와 정의부 참의부에서는 지속적으로 민족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이 분열을 반목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양세봉 장군은 34년 일제 밀정에 매수된 마적 두목의 함정에 빠져 살해되어 조선 혁명군의 역량은 약화되었다.

그 후 중국 공산당이 동북 인민 혁명군을 조직하자 만주의 사회주의계열 무장투쟁계 인사들은 중국 공산당에 소속되어 동북인민 혁명군 한인군의 일원으로 투쟁을 계속해나 갔고, 지청천은 임정의 김구의 부탁에 따라 임시정부에 편입하게된다. 37년 김원봉이 조선민족전위동맹의 하위조직으로 조선의용대를 설립하여 독보적인 투쟁역량을 키웠나갔는데,  그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당시 일본정부가 내건 그의 현상금은 320억이었다. 그리고 조선 의용대는 임시정부에서 설립하게 되는 한국 광복군 계열과 조선 의용군 공산계열로 분열된다.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의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설립하여 임시정부의 역할을 테러와 요인암살 등 본격적으로 확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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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압박으로 인해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전쟁을 확대한 일본에 의해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가 함락되었고, 임시정부는 항주, 진강, 장사, 광주, 충칭으로 본거지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한인 애국단을 통해 1932년 이봉창의 히로히토 테러사건, 이덕주와 유진식의 조선총독 암살 미수, 유상근과 최흥식의 관동군 사령관 암살 미수, 윤봉길 의거등 꾸준히 활동을 해갔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미국의 공동회, 국민회, 멕시코 등지에 모금을 하러 다녔으며, 윤봉길 의거 이후에는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에 의해 지원을 받게 되어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다.


오랜 항일투쟁, 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독립운동가들에게는 통일된 전선의 절실함을 느꼈고, 민족혁명당을 중심으로 통합운동을 전개하엿으나 두 달만에 분열되었고, 이후 좌익의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혁명자연맹, 조선청년전위동맹과 민족주의진영의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등의 대표들이 영산호텔에서 통일 회의를 개최하였으나 조선청년전위동맹과 조선민족해방동맹이 이탈하였고, 후에 조선민족혁명당이 이탈. 결국 민족주의진영만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중국내륙까지 전화에 휩싸이자 임시정부는 본격적인 군사활동을 하기 위해 한국 광복군을 설립하였고, 과거 신흥 무관 학교 출신 독립군이 대거 참여하게된다.

1941년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42년에 김원봉계열의 조선의용대가 합류하여 비정규전에 참여하였다.

후에 국내진공작전을 위해 미국의 지원하에 특수 요원을 육성하엿으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패망으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끝이 났다.


광복 후에는 미국과 소련에 승인된 독립운동가들만이 해방된 조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각각 김구의 한국독립당,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김성수*송진우의 한국민주당,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여운형의 조선인민당, 김규식*안재홍의 국민당 등에서 각각 활동하게 되지만, 결국 해방이후에도 서로 반목하다가 암살, 납치, 테러등으로 위 인물 중 이승만과 박헌영을 제외하고 한국전쟁까지 살아남는 인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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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보면 우리나라 독립은 진짜 독립을 향한 열망하나 가지고 엄청 낭만주의를 품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대상황 및 그분들도 사람인지라, 암살하고 위장살해하고 욕하고 똥싸놓고 도망가고 별짓 다함.

어설프게 쓴 글 읽어줘서 고맙고, 틀린거 있으면, 귀엽게 봐줘.... 나름 보기 쉽게 쓴다고.. 3시간 걸림.. ㅂㄷㅂㄷ..

13개의 댓글

2017.09.21
잘했앙
0
2017.09.21
낭만은 개뿔 치열한 현실만이 존재했지. 독립운동가들은 거기에 목숨 던진 사람들이고.
0
2017.09.21
ㅊㅊ
0
2017.09.21
결국 정치가들. 정치질이 없을 수 없는 것.
0
2017.09.21
글 잘봤슴다. 시대적 사건 주위로 잘 짚은 좋은글인듯
0
2017.09.21
민씨 황후(명성황후)←이 씹년은 사치 오질나게 부리고 나라가망해가는데 백정들 관리할 생각안함. 괜히 흥선대원군이 죽이라고 시킨게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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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1
김구-장개석의 인연으로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독립을 명시하게 된게 독립운동사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라고 본다.

연합군측이 한국이란 나라를 일본의 일부로 취급하지 않게된 계기가 됐지.
0
2017.09.21
@에스파다
그걸 안썼네 ㅎ 지적 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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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3
나라가 망했을때 독립군이 협력한 나라가 대단한건가 아니면 분열하는게 일반적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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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3
@흰두루
분열이 당연히 일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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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3
[삭제 되었습니다]
2017.09.23
@후이바르
그래?? 나도 무장독립사는 잘 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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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쓴다는 게 귀찮고 힘든 일일 텐데. 잘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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