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내 멋대로 유럽사 (1) : 서로마 멸망 이후 혼란 (5세기~6세기 초)

 신성 로마 제국. 볼테르가 이미 "스스로를 신성 로마 제국이라 칭하였고 아직도 칭하고 있는 이 나라는 딱히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라고 했고 이 제국이 멸망했다는 소식에 괴테는 "내 마부가 언쟁을 벌이는 일보다 관심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안습인 이미지지만, 카노사의 굴욕으로 유명하지만 바로 되갚아주었던 하인리히 4세 이후부터 30년 전쟁 전까지는 명실공히 중부 유럽의 최강자 중 하나였고, 특히 그 전성기였던 카를 5세 때는 무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패퇴시키고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정도. 어차피 서유럽사는 신성 로마 제국 없이 중세를 설명할 수 없기도 하구.. 


 신성 로마 제국의 성립은 너무 유명하지만 그렇기에 한 번 짚고 넘어가려고 함.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10세기 중후반(973)에 즉위한 작센 왕조 3대 황제 오토 2세 때부터지만, 800년 샤를마뉴의 서로마 제국 대관을 보통 신성 로마 제국의 계보의 시작으로 잡아.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삼분할된 프랑크 왕국)


 프랑크 왕국은 사실 서로마 멸망인 476년 이후, 481년 건립됐어. 모두가 알다시피 서로마가 망한 이후 유럽은 개판이 됐고, 그냥저냥한 게르만계 민족들의 놀이터가 됐지. 대표적으로 '반달리즘'으로 유명한 반달 족, '고딕 양식'으로 유명한 고트 족(얘네는 서고트랑 동고트로 나눌 수 있고, 서로마 멸망의 단초가 되었는데 이건 후술), 위의 프랑크 왕국을 세운 프랑크 족, 이후 동프랑크 - 신성 로마 제국의 첫 황제가 되는 하인리히 1세를 배출하고 영국에도 진출한 색슨 족, 부르고뉴 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부르곤트 족 등등이 있어. 물론 얘네가 전부 서로마 멸망 이후의 서로마 영토를 노나먹은 건 아니고 행정력의 공백이 상당했지만, 어찌 되었든 얘네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던 가톨릭을 서서히 받아들이며 '로마화' 혹은 '기독교화' 되었어. 


 하지만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되는게, 실제 가톨릭을 받아들였던 게르만계 왕국은 5세기의 프랑크 왕국이 시초였고, 그 이전에도 기독교는 많이 퍼져있었지만 그건 아리우스파 기독교였어. 로마 멸망 후 프랑크 왕국이 서유럽 다 처먹기 전 까지 얘네가 "와 토르 존나 멋있지 않냐" 이러진 않았다고. 아리우스파 기독교의 간단한 특징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격하시키고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는 거지. 얘넨 이미 325년에 제 1차 니케아 공의회 때 이단 선언 맞고 381년 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때부터 로마 제국 전역에서 이단으로 박해받아서 당시 로마가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던 게르만족에게 전파했고, 실제로 아스타나시우스파의 삼위일체 교리가 존나 이해하기 어려운 반면에 아리우스파는 "예수는 야훼 첫 아들이고 좆나 신성하지만 야훼랑 똑같진 않음 ㅎㅎ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면서 셋? 지랄하네 ㅋ 성부에 성자가, 성자에 성령이 종속되는 거임!"이라는 일견 단순한 교리로 게르만족에 쉽게 침투했어.


 오늘은 맛보기로 5세기 이후 게르만 민족별 나라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려구. 


(450년경 유럽의 판도)


(6세기 초반 서로마 멸망 이후 유럽 판도)


1. 반달 왕국


 이 새끼들은 존나 신기한게 고트 족, 수에비 족 등과 함께 스칸디나비아에서 남하한 걸로 추정되는데 아예 북아프리카에 거점을 가졌어 ㅋㅋ 450년 판도를 봐도 북아프리카에 이미 자리를 잡았는데, 얘네는 훈족의 대이동 때 밀려들어서 406년에 도나우 강을 건너다가 프랑크 족한테 뚜까 맞고 2만명이나 잃었지만, 그 해 겨울 라인 강이 얼자 남하, 갈리아와 아키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무슨 남쪽에 발할라라도 있다고 믿었는지 피레네 산맥을 넘어 히스파니아로 넘어가더니, 당시 서로마를 털고 있던 고트 족이 갑자기 서로마랑 강화 맺고 자기를 뚜까 패니까 알란 족, 수에비 족 등과 연합, 흡수했어. 당시 반달 족의 족장 군데리크는 알란 족의 족장직을 얻고선 북아프리카로 넘어가기로 하지. 


 서로마는 훈족 때문에 발등에 불 떨어졌는데 북아프리카와 사르데냐의 통제권을 빼앗기자 반달 족과의 동거를 받아들이려고 했어. 아틸라가 죽자 로마와 반달 족 사이의 정략결혼으로 안정을 취하려 했지만, 당시 황제 발렌티니아누스가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의 쿠데타로 죽고 막시무스가 황제가 되자 협상은 결렬되었어. 그리고 455년 6월, 반달 왕국은 가이세리크 장군 휘하의 군대를 보내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 서로마는 훈족으로도 만신창이였지만 410년 서고트 족의 침략에 이어 또다시 본토를 짓밟히는 굴욕을 당하게 돼 - 이후로도 로마는 중세 때도 계속 뚜까 맞게 됨. 


 그리고 이 로마 침탈 때문에 반달리즘이라는 용어가 자리잡았는데, 사실 반달리즘이란 용어는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 파의 극단적 파괴 행위를 비난하려고 만든 말이고, 반달 족은 로마의 문화재를 파괴하기보다는 약탈했다고 하네. 얘네는 로마 파괴할 때도 당시 로마 주교(= 교황)이었던 레오 1세의 부탁으로 도시 파괴를 자제할 것을 약속했고, 오히려 이후 북아프리카에서는 지네 언어도 버리고 라틴어 썼음.


 얘네는 533년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휘하 벨리사리우스가 두 주만에 수도 카르타고를 점령하면서 멸망했고, 1년도 안 되어 반달 족의 흔적이 거의 없어졌다고 하네. 얘네는 상당히 빨리 사라진 케이스.


2. 부르군트 왕국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와 손잡고 프랑스를 그리도 괴롭혔던 부르고뉴 왕국의 전신(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멀고 연관도 적지만)이자 영어 버건디의 어원. 얘네는 413년 왕국을 건설했지만 그냥 로마 제국 꼬붕 2~3 정도의 위치였고, 훈족의 침입 때 왕 군터가 사망하는 등 좀 안 좋은 꼴을 많이 봤어. 대신 이 군터 왕의 사망과 게르만족 전통의 이야기인 영웅 지크프리트의 이야기를 적당히 스까스까서 만든 게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되시겠다.


 군터가 죽은 이후 왕국도 멸망했지만, 로마 제국이 다시 약체화되자 지금의 사부아 지역에 왕국을 다시 세웠어. 하지만 얘네는 534년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의 아들들에게 왕 고도마르의 뚝배기가 깨지면서 완전히 멸ㅋ망ㅋ


3. 고트 족


 고딕 양식으로 유명한 고트 족은 특별히 고딕체로 쓰고 싶지만 여기서는 지원을 안 하네.. 애네는 또 서고트와 동고트로 나눌 수 있음.


(서고트와 동고트)


 얘네는 여기서 소개한 다른 게르만족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이미 4세기부터 로마를 비틀어 제껴버렸어. 아예 378년의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떄는 고트 족 지도자 프리티게른이 동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스를 포함 동로마 주력군의 2/3을 절멸시킬 정도 ㅎㄷㄷ 테오도시우스 대제가 이를 겨우 제압했지만, 때마침 동로마 동쪽에서 사산조 페르시아가 등장하는 바람에.. 고트 족에게 판노니아 지역을 내주고 말았지. 그런데 테오도시우스 대제가 죽고 나서 제국이 영구분할되자, 악명 높은 3중 성벽의 콘스탄티노플보다 털어먹기 쉬운 로마에 집중했어. 


 여기서 잠시 고트 족의 지도자 알라리크에 대해 알아보자. 알라리크는 서고트 왕국의 초대 왕으로, 이름의 뜻부터가 비범한 "세계의 왕"이란 뜻임.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페르시아와 고트 족 서로를 이용해 견제하려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어. 서고트 족의 젊고 유망했던 발티(Balti) 가문의 계승자 알라리크는 로마 제국의 용병대장이었고, 394년 서로마 황제 참칭자와 격돌한 프리기두스 전투에서 2만의 고트 족 병사를 이끌고 참전했고,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조카사위 플라비우스 스틸리코와 함께 이 전투의 최고 공헌자로 자리매김했어. 


(서고트 왕국의 초대 왕 알라리크, 370?~410)


 프리기두스 전투에서의 승리로 로마를 마침내 재통합시킨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이듬해 395년 지병으로 급사하고, 아들 17세인 아르카디우스와 10세인 호노리우스가 각각 다스리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다시 분열되지. 이건 이후에 다시 통합 자체가 안 되는데... 어쨌든 알라리크는 로마의 용병대장에서 정규군 지휘관이 되길 희망했지만, 호노리우스의 인척 자격(사촌 누나의 남편)으로 서로마를 좌지우지하던 스틸리코와 대립하던 동로마의 루피누스가 이를 거부하면서 거병하게 됨.


 물론 이 때는 3중 성벽은 없었지만 콘스탄티노플의 지세 자체는 험했고, 번영하던 콘스탄티노플을 직접 노리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한 알라리크는 대신 그리스를 침공했어. 테오도시우스의 치세 18년동안 동로마의 군대는 매우 강했지만, 하필 이 때 동로마의 정예군은 소아시아에 파견되어 있었지. 이 때 황제 아르카디우스는 스틸리코에게 SOS를 쳤고, 스틸리코는 그리스에 상륙했어. 이 때 알라리크는 철수했지만, 스틸리코가 다시 돌려보낸 동로마 제국군에 의해 루피누스가 살해되고 환관 에우트로피우스가 권력을 잡자 동로마는 다시 혼란에 빠져들었고, 알라리크는 다시 그리스로 쳐들어왔어. 아테네, 이타카, 스파르타 등등 고대 그리스의 중심지를 전부 털어먹고 정복자라고 자칭했지. 야사에 따르면, 아테네를 침공하기 전 아테네인들이 알라리크에게 찾아와 달래보려고 했지만 알라리크는 그들보다 뛰어난 그리스어로 입을 막았다고 하더군.  하지만 다시 스틸리코가 서로마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에 상륙하자 알라리크는 포위되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포위망이 풀리자 에페이로스(오늘날 알바니아 남부, 그리스 북서부)에서 동로마 제국 궁정과 협상, 일리리쿰(오늘날의 크로아티아) 일대의 군사령관으로 인정받게 돼.


 근데 이 일리리쿰은 동서 로마 중 서로마의 영토로, 동로마는 지들 위기에 서로마 영토를 떠넘겨주며 생색냈던 셈이지. 필연적으로 서로마를 지배하던 스틸리코와는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차근차근 동고트 족의 지도자 라다가이소(얜 406년에 또 이탈리아 침공함)와 동맹하는 등 이탈리아 침공을 준비하다가 401년 준비가 다 되었다고 판단한 끝에 이탈리아를 치지만, 호노리우스를 생포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그 순간 스틸리코 정예군이 황제를 구출해내고 브리타니아에서까지 군대를 불러오며 403년, 알라리크의 군대를 완전히 격파했어.

 

 하지만 서고트 족은 더 이상 이탈리아를 공략할 힘이 부족했고, 스틸리코는 원로원과 다른 게르만 족 등 적이 너무 많았어. 그래서 둘은 화해를 하고, 각각 서로마와 동로마의 유력자로서 동맹을 제안하지만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의 사망 이후였기 때문에 서로마가 처음으로 정치적 우위를 가졌고, 그 우위의 대가로 알라리크가 요구한 금 4000 파운드를 스틸리코는 원로원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네주지만 틱티눔에서의 쿠데타로 스틸리코는 실각, 처형당해. 스틸리코의 군대는 탈출하여 알라리크에게 합류했고, 알라리크는 옳다구나 하면서 "친구이자 동맹자인 스틸리코의 이름으로" 이탈리아를 재침공, 408년 로마를 포위하기에 이른다. 변변한 정규군도 없던 로마는 알라리크에게 "무고한 사람들이 공포에 떤다"면서 동정을 사보려 했지만 알라리크는 위엄넘치게도 "건초는 무성할수록 베기 좋다!"라고 말했지. 결국 로마는 4000 파운드를 훨씬 상회하는 금액인 금 5000 파운드, 은 3만 파운드를 비롯한 자원들을 바치고야 말았지, 


 거기에 더해 알라리크는 로마 제국의 황제의 봉신인 서고트 족의 왕으로서, 서고트 왕국의 영지를 요구해. 도나우 강 이남에서부터 베네치아 해안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로, 봉신 치고는 과한 요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로마에는 그를 막아낼 병력도, 장군도 없었지. 근데 현실감각 떨어지는 호노리우스는 라벤나에 틀어박혀서 "응 좆까" 해버리고, 원로원에서도 무례한 편지로 알라리크의 화를 돋구었고, 마침내 격노한 알라리크는 409년 아탈루스를 로마의 황제로 세우고, 410년 사흘에 걸쳐 로마를 약탈하면서 참교육을 시전하지.


 이 때 알라리크의 최후 통첩이 또 한 위엄 하신다.


 TETE RORO MAMA NUNU DADA TETE LALA TETE

 ->

 TE TERO ROMA MANU NUDA. DATE TELA, LA TETE 

 -> 난 그대를 파괴하겠다, 로마, 내 손으로, 무기 갑옷들을 내 주고 너 자신을 숨겨라.


 결국 이 요구는 관철되었지만 아프리카로 진격하던 알라리크는 수인성 질병으로 죽게 되고, 이후 로마의 공작으로 내분된 고트 족의 암투로 알라리크의 뒤를 이었던 처남 아타울프가 암살되고, 418년이 되어서야 알라리크의 사생아 테오도리크가 서고트 왕국의 기반을 잡게 돼. 내가 알라리크를 초대 왕이라고 서술했지만 아타울프를 초대 왕으로 보는 견해와 테오도리크 1세를 초대 왕으로 보는 견해도 있더군. 서고트 왕국은 있다가 이슬람의 이베리아 반도 침략에서도 등장할거야. 어쨌든 서고트 왕국은 아퀴티니아 - 이름만 들어도 알겠지만, 아키텐 지방 - 를  할당받고 450년경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반달 족과 수에비 족을 전부 남쪽, 북서쪽으로 쫓아내면서 전성기를 맞고, 이슬람한테 뚜까맞고 멸망함.


 동고트 왕국의 경우는 서고트보다 반 세기가량 건국이 늦었는데, 사생아 테오도리크 1세와 이름이 같은 테오도리크 대왕이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도아케르의 뚝배기를 깨고 건국했어. 얘는 동고트족 족장 테오도미르의 아들로, 카르눈툼(오늘날의 슬로베니아) 지역에서 태어났고, 족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7살 때부터 콘스탄티노플에 기인 제도마냥 묶여 있었어. 음? 왜 기인 제도가 나오냐고?


 동고트 족은 훈족에게 복속되어 있었는데, 453년 아틸라의 급사 이후 훈족 치하 게르만족은 반란을 일으켰고, 훈족 족장 엘락이 전사하면서 게르만족은 다시 독립했고, 훈족은 유럽 역사에서 사라져. 당시 동로마 황제였던 마르키아누스는 이들을 제국의 영내인 판노니아(다뉴브 강 서쪽 평원 일대)에 살게 해 주었지만, 레오 1세가 이 조치를 철회하자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다시 살게 해주고 경제 원조를 해주는 대신 족장의 아들을 콘스탄티노플에 살게 한 거지.


 뭐 이런 제도의 특성이 다 그렇듯 테오도리크는 볼모라기보단 유학생에 가까운 생활을 했고, 동로마 황제 제노의 눈에 띄어 29살이던 483년 알라리크가 가졌던 로마군 총사령관 마기스토룸 밀리툼의 직위를 가지게 되었고, 이듬해 집정관을 거쳐 동고트 족으로 복귀했어. 488년 부친의 사망으로 동고트 족의 족장이 된 테오도리크는 동고트가 게르만 계열 게피트 족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동로마 주위를 약탈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로마 황제 제노는 이에 아예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가 오도아케르를 몰아내고 터전을 잡을 것을 제안하지. 전형적인 이이제이지만 테오도리크는 이를 받아들였고, 서고트 왕국의 지원을 받으며 손쉽게 이탈리아를 정복해나가던 테오도리크는 의외로 라벤나 -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가 틀어박혔던 바로 그곳 - 에 틀어박힌 오도아케르의 저항에 부딪혔고, 3년간 끈질긴 저항 끝에 493년 오도아케르와 공동 통치자라는 명목으로 서로마를 지배하게 돼. 그런데 라벤나 입성 10일 후 벌어진 잔치에서 오도아케르와 그의 친척들을 모조리 살해하면서 명실상부한 이탈리아의 패자가 됐지.


 테오도리크는 당시 제일 잘 나가던 프랑크 왕국의 왕 클로비스 1세의 딸과 결혼하면서 국경을 안정시켰고, 로마인과 동고트인 둘 다의 생활 양식을 존중하는 등 당근과 이민족들을 강력하게 퇴치하는 채찍 전략을 구사했어. 딸 테오데고타를 서고트 왕국의 알라리크 2세에게, 여동생 아말라프리다를 반달 왕국의 왕 트리사문트에게, 다른 딸 오스트로고타를 부르군트 왕국의 왕 지그스문트에게 시집보내면서 연합을 공고히 하지.


 하지만 어쨌든 클로비스 1세의 야심은 겨우 그런 걸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503년 동고트와 프랑크의 충돌이 있었지만 일종의 탐색전이었고, 동고트를 복속시키는 것이 어렵겠다 판단한 클로비스 1세는 대신 서고트를 침략하지. 서고트가 멸망 직전의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하자 테오도리크는 중재에 나섰고, 아키텐 지방을 프랑크에 할양하는 것으로 정벌을 끝냈어. 507년 부이에 전투에서 알라리크 2세가 죽자, 테오도리크는 외손자의 섭정으로 서고트를 잠시 지배하기도 했어.

 

 서로마 멸망 이후 이탈리아에 평화를 가져와 팍스 테오도리쿠스라고도 불리는 치세가 있었지만, 클로비스 1세의 세 아들이 부르군트를 침략해 왕 지그스문트, 왕비 오스트로고타, 왕자 세르게릭까지 죽였고 반달 왕국에서는 가톨릭을 믿는 힐데릭이 즉위해 아리우스파였던 전 왕비 아말라프리다 등의 반동 세력을 죽이는 등 결혼 동맹은 와해되어져갔고, 설상가상 테오도리크마저 반달 왕국을 정벌하러 가다가 사망하면서 동고트는 빠르게 국력을 잃었고, 어린 왕이 즉위하고 살해되는 등 혼란기 끝에 18년 간 고트 전쟁으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세 동로마에 복속돼.


 프랑크 왕국와 롬바르드 왕국 등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하도록 하지.

3개의 댓글

2017.09.18
정사판 새끼들 여기서 뭣들 하냐

얼른 정사판에서 찌질거려라
0
2017.09.19
추천하구 갑니당
0
추천해주는데스웅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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