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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5월 15일에 정부통령 투표를 하였다. 당시 원래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자유당), 신익희(민주당), 조봉암(진보당)이었으나 도중 신익희가 병으로 죽어서 이승만과 조봉암이 대립하는 분위기가 됐다. 투표 결과 이승만이 504만여 표, 조봉암이 216만여 표를 받아 조봉암이 패배했다.
 그런데 이날 투표는 논란이 있다. 진보당은 참관인이 거의 없었다. 민주당은 참관인으로 등록이 되어있어도 투개표소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가 적지않다. 경찰 개입도 심각했다. 그러니 조봉암은 "투표에 이기고 개표에 진 선거"라고 주장했다고 한다.(서중석, 「투표에 이기고 개표에 지고」, 『이승만과 제1공화국 해방에서 4월혁명까지』, 역사비평사, 2007)

 

조봉암의 주장은 사실일까. 당시 부정투표에 대한 증언들이 있다.

강화문화원 이사를 지낸 조석묵 씨는 당시 조봉암의 표가 무더기로 이승만으로 바뀌었다고 증언했다.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563566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563534


물론 이건 개인의 증언일뿐이니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에 대해 중요한 사람이 증언을 한 바 있다. 바로 3.15 부정선거 주도자중 하나인 최인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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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에 따르면 당시 조봉암이 우세했다고 하며 그 탓에 부정선거를 했으며 반공을 지키기위해 그 때를 이유로 더욱 강경하게 3.15 부정선거를 했다는 것이다.

「5.15 선거 후 정부는 조봉암 씨와 진보당 간부들을 형법의 간첩조항 및 국가보안법으로 구속기소하고 진보당을 반국가단체로 해산명령하였다. 나는 진보당의 강령 정책을 열독하지 않았으므로 자세한 것을 모르겠으나 반공을 제일의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으로서 진보당은 합법적 정당으로 인정 등록케 한 것 자체가 우유부단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후환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익희씨 서거 후에도 경찰은 전면적 선거 간섭을 게속하였다. 경찰의 선거 간섭을 불행한 일이나 당시 벌써 고질별처럼 되었다. 경찰간섭이 있으면 국민은 더 반발하는 법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경찰 없이는 선거를 치를 수 없게 되었었다. 5.15 당시 분위기로서는 대중소 도시에는 자유당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농촌에서도 힘을 쓰는 것은 경찰분이었다. 경찰 아닌 일반 공무원들은 공공연하게 반정부 반여당직이었다. 신익희 씨 생존시에는 경찰간부들도 대부분 민주당과 선을 대고 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서울을 위시하여 각 도청 소재지의 일반 공무원들은 대개 민주당으로 기울어지고 전주의 도청직원들은 신익희씨가 열차중에서 급서하셨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하고 근무까지 거부한 일이 있었다.
 나는 3.15 선거시 공무원을 선거운동시켰다고 기소되었다. 나는 사실 그렇게 했다. 그것은 상기와 같은 5.15 선거 때 자극을 받은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공무원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공무원법 위반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이것이 국가 민족적인 죄악이라고 보지 않는다.
(……)5.15 투표가 완료되었다. 밤 9시부터 서울 개표가 먼저 시작되었다. 나는 현재 각 도 혹은 각 개표구의 표수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서울 개표결과는 대통령표에 조봉암씨의 표와 신익희씨의 추모 투표 수가 이박사의 표보다 2배에 가깝고 이기붕 씨는 장면씨에게 40만표 리드당하였다. 강원도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에 자유당 표가 90% 이상 나온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것은 실제 그렇게 나온 것은 아니다. 당시 강원도는 유권자의 대부분이 군인이었다. 군인들의 투표결과는 조봉암 씨가 70% 이상이었다고 한다.
…5.15 선거 당시 강원도에서 있었던 일은 불행한 일이다. 실제의 투표결과는 전국이 대부분 대동소이하였을 것이다. 내말을 믿기 어려우면 아직도 보관되어 있는 투표용지를 다시 검표하여 보면 될 것이다. 가공할 일이었다
.
 이 모든 것이 이 박사의 자유당이 실정을 한 데 기인한다고 일소해버릴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이 또는 혁명정부가 집권하면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까.
 한국의 반공을 논하고 민주주의를 논하는 사람이라면……(이 말줄임표는 원문에 있는 것임 - 인용자)아니 다소의 애국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경우에 내무장관은 어떻게 하고 도지사, 경찰국장, 경찰서장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물론 법적으로 내무장관은 선거기간 중 치안과 질서유지 책임 외에 없다. 투표와 개표는 전적으로 각급 선거위원회의 책임이다. 그러면 5.15 선거 당시 내무장관은 전국적인 투표의 결과가 압도적으로 조봉암씨가 우세할 경우 당선을 선포하도록 묵인할 수 있는가.
 …… 내가 내무장관 당시 1959년 11월 말경부터 군수서장을 내무장관실에 소환하여 강조한 것은 위와 같은 5.15 선거 때의 위험하고 쓰라린 경험을 상기시켜 그들로 하여금 반공국가의 일선 공무원으로 정신무장을 시키기 위함이었다.」
최인규, 『崔仁圭 獄中 自敍傳』, 中央日報社, 1984, 196-198

 

이렇게 볼 때 3대 대선 때 조봉암의 주장은 단순한 물타기나 정신승리가 아니며 실제로 심각한 부정선거가 있던 게 사실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