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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 쩌는 소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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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율리시스』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 <율리시스> 서문




제임스 조이스라는 작가의 소설 율리시스 서문이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개오만한 서문과 마주치게 된다. 


이 양반은 여기서만 어그로 끈게 아니다. 피네건의 경야라는 소설 역시 출간 후 50년이 지나도 해석하려면 문학 연구자들이 쩔쩔맬 것이라고 직접 말함. 




그런데 놀라운 점은 실제로 그렇게 됐다는 거. 


대학교수들은 오늘 날에도 저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 계속 해석하고 있고, 저 작품은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게 됐다.


작품이란게 원래 천년전 작품도 새롭게 해석되고 비평되지만, 율리시스는 워낙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넘치는 작품이라서 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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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를 잘 끌긴 했지만 다행히(?) 생전에 돈은 크게 못벌었다.




대학교수 아조씨들은 오늘날에도 저걸 비평하고 해석하는 중. 



그럼 율리시스가 대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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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라는 소설을 대충 설명하자면,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하루종일 헤매는걸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쓴 소설이다. 학창시절 대충 배웠던 구보씨의 일일, 그 원조격이라고 보면 됨. 


이른바 모더니즘 문학.




특징은? 줄거리가 뭔지 파악도 안 될 뿐더러, 존나 설명 안해주고 넘어가는게 많고, 존나 헛소리로 넘쳐난다. 결말도 병신 같음.


왜 이렇게 좆같이 썼을까? 그리고 왜 교수들은 이 좆같은 작품을 해석하는데 매달릴까? 변태라서? 아니면 남들 모르는걸 붙잡고 있으면 있어보이니까? 




무엇보다 독자들 입장에서도 좆같다. 서문만 봐도 수수께끼를 넣었다느니 어쨌다느니 의도적으로 좆같이 썼다는 것을 밝힌다. 엥 이거 완전 엿먹으라고 하는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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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실 독자들한테 엿먹으라고 던져주는 작품이 아니다. 


그전 문학들은 비교적 줄거리가 뚜렷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쉽다. 그런데 이는 독자들이 개입하거나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인다. 


한마디로 작품의 방향을 결정한 권리는 전적으로 작가가 쥐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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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작품을 군데군데 비워놓고, 불분명한 의미와 다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면? 


독자들이 작품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작품의 방향을 결정할 권리는 작가가 아닌 독자에게도 주어진다. 


조악한 비유를 들자면, 모더니즘 소설은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라가기보다 유저 개인 하기 나름에 따라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는 오픈 월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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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이전과 달리 구멍을 뚫거나 모호하고 불분명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듦으로써 독자들에게 작품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도록 권력을 이양해준다. 


정해진 루트와 달리 다양하게, 더 나아가 끝없이 해석할 수 있으니 이전과는 다르고, 그래서 재밌다.


교수들이 붙잡고 있는 이유도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교수들도 연구 이전에 독자인데 파면 팔수록 새롭게 얘기할 수 있는게 많다. 그럴 여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파고들게 됨.



이렇게 모더니즘 문학을 비롯해,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들은 의도적으로 구멍을 뚫거나 난해하게 만듦으로써 독자(감상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게 됨.




물론 독자입장에서는 골치 아프다.



예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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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잘그렸네~ 하고 넘겼으면 되는데

(물론 뚜렷한 메시지를 주는 작품 역시 다양한 해석을 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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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딴 깡통이 예술이라고 등장한다. 


그리고 이게 대단하다느니 뭐니 하기도 하고 가격도 이해 못할 정도로 뛴다.



자연스레 반감이 들 수 밖에 없는 것. 의미도 없어보이는데 뭘 그리 칭찬하고 비싼 값을 매기고 아는 척을 함?



그런데 저 깡통은 감상자들이 얼마든지 의미를 덧붙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즉 해석할 권력을 쥐고 있는 독자 마음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까다롭게 생각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는 것. 


작가가 독자보다 위에서서 골려주는게 아니라, 도리어 독자가 더 큰 권력을 쥐고 작품을 해석하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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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석할 건덕지가 있어야 해석이라도 하지'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의미 없는데 있는 척 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제 그 해석할 권리는 작가가 아닌 보는 사람한테 달렸다는 거고, 알고 감상하라는 얘기 역시 그냥 무식하다고 욕하는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 속 명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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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1) 의미없어 보이거나 까다로운 현대예술들은

2) 엿먹이려고 만든게 아니고

3) 감상자들에게 권력을 넘기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한것.


156개의 댓글

2017.07.27
@크가크가호
잘 쓴 글들이란 기준은 앞서 얘기한 문체, 주제의식.. 그런게 잘 갖춰져 있으면 좋은거라고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감상하는 입장에서야 곡해없이 잘 받아들여지고, 감흥이 왔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문학 공부나 해석 자체도 사실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 왜 문학 시간에 소설 가르쳐주는거보면 주제, 구조, 특징, 상징, 이런걸 분석하잖아?

그걸 좀 더 심화시킨거야. 애초에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분석 틀이 그런데서 가져온거니까. 이를테면 이 소설은 한반도 분단이라는 주제 의식을 어떻게 녹여내고 있나?를 파고들어서 얘기하는거지.

이런 분석 없이 충분히 받아들였다고 느껴지면 굳이 더 공부해야된다거나 해석해야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오히려 이런 분석이 감상에 더 방해되기도 하잖아?

근데 뭔가 더 알고 싶을 경우엔 파고드는거지. 먼저 간단하게는 인터넷으로 뒤적여보면 상징이나 숨겨진 의미 같은걸 찾기 쉽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쉽게 풀어쓴 책들을 찾아보면서 좀 더 심화하거나, 비평 용어들에 익숙해지면서(타자화, 내재화, 대상화 등등 뭐 이런 단어들) 논문 같은 것도 찾아보게 되기도 하고.


하지만 굳이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이 작가는 어떤 상징들을 통해서, 어떤 문체를,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게 곧 비평인 것 같아.
0
2017.07.28
@까똑
어우야 이제야 확인했담 너무나 성의있게 대답해줘서 정말 고마워.


전공자 입장에서는 사실 더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대해서 집중해서 말 할 수도 있었을텐데

내 입장을 배려해서 쉽게 풀어서 얘기해주고

이거다 저거다가 아닌 뭐뭐 인 것 같아 라고 설명해주는 것도 참 배려심 깊고 ㅋㅋㅋㅋㅋ


앞으로 문학을 읽을 때 너님 덕분에 좀 더 깊이 즐길 수 있겠다.

감사감사하고 하는 일 다 잘 되기를 바란다~~
0
2017.07.28
@크가크가호
그냥 학부수준 지식이라서 사실 별것 없는데 길게만 얘기한것 같기도 하고 ㅋㅋㅋㅋ

암튼 도움됐다면 다행이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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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8
애초에 칸트가 숭고미를 발견했을 때부터, 예술은 대상의 편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능력에 있는 걸로 치부됨. 예를들어 콜로세움을 봤을 때 가슴이 뭉클해지는 거, 이 감정은 깨진 돌덩어리 뭉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그걸 보고 옛 로마의 위대함과 역사의 허무함을 연상하는 인간 이성의 위대한 능력에서 비롯된다, 칸트가 얘기한 게 이거임. 여기서 현대 미학이 시작됨.
위대함을 신이나 본질에서 찾는 게 아니라 인간 정신의 능력에서 찾는 것, 이게 근대정신의 본질임. 근데 신이나 본질이 없다면 인간이 발전하고 있다는 걸 뭐로 알지? 이 때 생겨난 관념이 근대 역사관념임. 과거와 비교해서 현재를 측정하는 것. 그래서 현대 예술이 새로움 새로움 타령하는 거임. 이걸 극단까지 밀고나가면, 예술은 대상과 무관한 해석, 정신의 놀이가 되는 거임. 이걸 미적 자율성이라고 말하고, 이걸 다르게 폄하하는 말이 예술을 위한 예술임. 예술가가 자기표현을 한다는 것도 18세기 낭만주의 때나 나오던 얘기고, 현대 예술은 예술 그 자체밖에 표현 안함. 엘리엇이란 시인이 예술가에게 개성은 불필요하고 오직 전통만이 예술을 통해 얘기한다고 말한 게 그런 이유임. 베버란 아재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학자에게 개성은 오직 학문적인 새로움 뿐이라고 말했음. 자기자신의 역사에 비추어 봤을 때 새로운 한 발을 디뎠느냐 안 디뎠느냐, 그게 전부다, 이게 신이라는 절대적 참조점을 잃은 이후에 인간이 찾아낸 역사라는 근대정신이라는 거임.
근대에 철학자들은 대개 수학자도 겸하고 있었고, 얘넨 수학 보면서 깨달음. 수학에서 결정적인 진보는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걸. 1+1=2라는 걸 찾기 위해선 그리 큰 노력이 필요치 않음. 그러나 고차원적 문제를 만들기 위해선 이전에 수학사에 대한 학습이 필요한 거임. 그리고 이전의 수학사를 참조해야만 비로소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임. 수학이 오직 수학 자신의 역사만을 참조하듯 다른 분과들 역시 그래야만 한다. 여기서 근대적 예술, 근대적 학문 등등의 전문성 개념이 만들어지게 되는 거임.
0
2017.07.28
@제임슨도
더이상 인간은 신(본질)에 구애받지 않아도 됨. 대신 그 자리를 이성과 역사가 차지함. 대상 또한 중요하지 않아짐. 그 대상을 바라보는 인간 정신의 진보가 중요해짐. 근대적 가치판단의 기준인 새로움이란, 역사에 대한 참조가 필수적이게 됨. 그래서 시인인 엘리엇은 시인에겐 개성 따윈 불필요하고 오직 전통이 중요하다고 말함. 사회학자인 베버 역시 학자의 개성은 없고 학문의 전통과 새로움이 그의 개성이라고 말함. 전부 을 말하고 있는 거임.
정치적으론 부루주아계급이 이 생각을 지지함. 왜냐면 걔넨 기존질서, 신에게 권위를 받은 성직자나 귀족(왕권신수설) 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질서를 세우려 했는데 이 사상이 매력적이었던 거임. 그래서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우리는 인류의 진보에 한 몫하고 있음! 하고 자기 권위를 세웠던 거임. 인류가 진보하고 그게 정신의 새로움과 동일한 거라면, 정신적으로 낙후된 인간과 보다 고등한 인간의 구분이 생김. 그 구분의 척도가 바로 교양임. 근데 귀족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무기였던 이 교양이 귀족 계급이 사라지자 노동자와 부르주아를 나누는 기준이 됨.
앞에서 근대 정신은 참조점이 더이상 본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과거(역사)라고 하지 않았음? 자기 자신만 보다보니 자기랑 다른 건 듣보잡 취급 하게 됨. 구체적으론 서구 백인 상류계급의 문화만 "진보"된 거고 나머진 낙후된 거라고 생각하게 됨. 클래식 애호가가 족보도 없는 재즈가 무슨 가치가 있음? ㅉㅉ 하는 거랑 비슷함. 그거 비판하면서 나온 게 포스트 모더니즘임. 안티 휴머니즘이라고도 하는데, 왜냐면 모더니즘은 백인 상류층 남성만 교양을 갖춘 "인간"이라고 생각했고, 나머진 채 인간이 되지 못한 열등한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임. 그 대표적인 예가 제국주의고,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이론적 입장들(탈식민주의)은 거의 대부분이 포스트 모더니즘에 속함.
다시 돌아와, 해석의 자유를 얘기하는 오늘날의 미학은 사실상 칸트의 근대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무방함.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의 해석이 하나의 역사(인류의 역사)를 참조삼았다면 오늘날의 미학은 다양한 역사를 인정함. 그러나 그 바탕은 역시 새로움임. 포스트모더니즘이 생산과 차이에 대해 강조하는 게 그 이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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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8
@제임슨도
요약하면, 현대 예술은 올림픽이랑 비슷한 거였음 올림픽이 인간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듯, 예술은 인간 지각의 한계를 시험함. 이를 통해 인간이 더욱 진보해나간다는 생각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음. 근데, 오늘날 육상선수가 세계기록을 0.00001 줄인다고 한들 누가 열광함? 민주주의+산업자본주의 이후의 시대에 진보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의 몫이 되었고, 당연히 현대 미술도 관심을 못 받을 수밖에 없는 거임. 알파고 시대에, 인간이 기계가 놓은 한 수를 이해할 수도 없는 시대에, 옛날처럼, 오오 신의 한수! 하면서 인간 정신능력의 진보에 질질 쌀 수 있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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