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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과 용사는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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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들이 친해지길 원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과연 그들 본인은 본인의 마음을 알까? 그것 또한 모를 일이다.


발자국은 계속 이어져 마왕성까지 다다랐다. 이제 피는 다 말랐기에, 피웅덩이는 남지 않는다. 도착한 용사가 고개를 들자 불이 켜진 주방과 응접실이 보인다. 마왕이 먼저 온 모양이다. 다시 말해 용사가 럭시 거점에서 나오기도 전에 마왕은 트리스 거점을 파괴했다. 다시 말해 트리스 거점을 지킬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다. 불이 켜진 응접실을 보며 용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용사 "..."
이어 용사가 머리를 짚는다. 용사의 표정이 괴롭다. 트리스 거점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서 해방되었을텐데 용사는 왜 저리 괴로운 표정을 짓는 것일까. 지키지 못하더라도, 아무 쓸모 없더라도 트리스 거점으로 뛰어야 하는게 용사의 의무인가. 그렇다면 참 등신같은 의무도 다 보겠다. 어쨌든 용사는 자기혐오에 쩔은 모양새로 성문을 열어 들어간다.


응접실 문이 열린다. 스튜를 젓던 마왕이 고개를 돌린다.
마왕 "어서와! ...아."
마왕이 용사를 보고는 국자를 놓치려다가 간신히 붙든다. 용사가 보건데 끓는 스튜에 국자가 빠지면 다른 음식에 빠진 것과 비교해 월등히 곤란하므로 국자를 붙든건 참 다행이었다. 근데 마왕이 왜 이렇게 당황했을까. 용사는 뒤늦게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그제야 난도질당한 갑옷과 피로 흠뻑젖은 내의가 보인다.
마왕 "어... 화려하게 저질렀구나."
용사는 꽤 자주 옷이 망가지는데, 옷은 그대로 냅두고 몸만 회복되다보니 종종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용사 "갈아입어야겠군. 금방 오겠다."
마왕 "대체 얼마나... 아니, 일단 갈아입어."
마왕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용사가 다시 응접실을 나가고 마왕이 머리를 짚는다. 갑옷에 난 검상의 갯수 등등을 미루어 보면 병력손실을 대강 눈에 그릴 수 있다. 아아- 마왕의 표정이 괴롭다.


스튜는 차차 졸아들고, 용사가 다시 응접실 문을 연다. 그 모습에 마왕이 피식 웃는다.
용사 "? 뭔가?"
마왕 "아무것도."
방금의 해프닝이면 알겠지만 용사는 옷에 정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항상 남이 주거나 구해온 옷을 아무렇게나 걸쳐입어왔다. 그리고 마왕과 만난 이후로 '옷 주는 사람'은 마왕으로 특정되었다. 즉 용사의 패션은 마왕의 손바닥위에 있는 것이다. 더불어 오늘 옷장 제일 첫번째칸에 가져다 놓은 옷은... 다소 귀여운 디자인의 긴팔 티인데, 용사의 얼굴과 대비되어 언밸런스한 매력을 발산하는 중이다.
마왕 "젊어보이네. 보기 좋아."
글쎄올시다.
용사 "욕실에 수건이 없더군. 가져다 놓는게 좋을거다."
마왕 "..."
마왕의 표정을 보고 용사가 재빨리 덧붙인다.
용사 "몸은 윈드를 써서 말렸다. 수건하나 찾겠답시고 내가 알몸으로 배회할것 같나."
마왕 "쳇."
용사 "그리고 고양이 관리좀 하고. 지금 옷방이 온통 털투성이다."
마왕 "아으으. 거기에 가있었구나. 나잇살 처먹더니 진짜 더럽게 말 안듣는다니까."
용사 "일단 쫒아내긴 했다만 옷방 치우는데 고생좀 할 것 같군."
마왕 "고양이 털 진짜 싫어."
용사 "왜. 안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르나?"
마왕이 진짜 고개를 털며 괴로워한다. 용사가 큭큭대고 웃는다.


용사 "그나저나 완성된건가? 좋은 냄새가 나는데."
마왕이 국자를 탁탁 턴다. 냄비를 들기 위해 젖은 행주를 찾는다.
마왕 "응. 와보니 신선한 아채들로 창고를 채워놨더라고. 덕분에 맛있을거야."
용사 "비켜봐라."
마왕 "...야. 야야야 이 똘추새끼야!"
맨손으로 냄비를 집자 용사의 손바닥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 용사가 얼굴을 찌푸리고 탁자로 냄비를 옮긴다. 쾅, 냄비를 내려놓고 용사가 손을 턴다.
용사 "윽. 뜨겁다."
마왕 "미친. 냄비에 살점 들러붙었잖아. 이를 어째."
용사 "긁어내면 된다."
마왕 "기분나쁘다고!"
확실히 냄비에 남은 손자국은 몹시 기분나빴다. 볼때마다 왠지 이입이 되어서 저 손자국이 내것 같고, 멀쩡한 내 손바닥이 아픈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마왕 "있다가 설거지 니가 해."
용사 "거 도와줘도 참..."
용사가 궁시렁대면서도 그릇에 스튜를 옮겨담는다. 모락모락 나는 김과 떠있는 고기기름, 흐물흐물해진 색색의 야채들이 확실히 이건 맛있는 스튜다. 용사가 그릇을 넘긴다. 마왕이 그릇을 받고 한입 떠 먹는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마왕 "역시 재료가 좋아. 보너스 줘야겠어."
용사 "맛있군."
용사도 담담한 칭찬 후 스튜를 먹어간다. 당연한 사실에 과장된 미사여구는 필요하지 않은 법. 용사의 매력중 하나다. 둘은 맛있는 스튜를 한 그릇 비웠다. 용사가 다시 국자를 든다.


마왕 "꼴이 말이 아니던데. 무슨 일 있었어?"
침묵이 흐른다. 용사가 국자로 스튜를 휘휘 젓는다.
용사 "...뭐. 좀 격렬하게 싸웠다."
마왕 "쓸모없는거 알잖아. 어째서 그런 짓을?"
용사 "아예 쓸모 없지는 않겠지. 너의 병력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인류의 남은 시간도-"
마왕 "없어."
마왕이 말을 자른다.
마왕 "아예 쓸모 없다고. 그 정도는 내가 병력을 그만큼 더 활성화시키면 그만인 수준이야."
마왕이 멈춘 국자를 뺏어 그릇에 퍼담는다.
마왕 "애초에 나는 군대를 100% 사용하는게 아니야. 전 병력을 꼬라박아서 수도만 터트릴 셈이었으면 루트 잡고 길뚫는데 한달도 안걸려. 물론 너는 너대로 붙잡아 두고서의 얘기지."
용사의 그릇도 뺏어다 스튜를 담는다.
마왕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아. 난 얼마나 시간이 걸리던, 확실한 승리로 빈틈없이 조여서 점점 인간들을 한 곳에 몰아넣는거야. 얼마나 시간이 걸리던 말이야. 네가 오늘 제거한 병력들? 그걸 복구하는데 내가 시간을 '추가로' 쓴다고? 이미 난 시간을 무진장 낭비하고 있는데 거기서 시간이 추가로 낭비될 수 있을 것 같아?"
마왕이 용사에게 그릇을 밀어낸다.
마왕 "제발. 어깨에 힘좀 풀어. 나만큼 힘빼고 다니라는 말은 안할게. 그냥 할 수 있는건 하고, 할 필요 없는것에 네 신경을 낭비하지 말아줘."
용사가 그릇을 받아든다. 허탈하게 웃는다.
용사 "...그래. 그렇다. 그래, 그런건데. 하아, 갑자기 화가 치솟아서 피곤한 짓을."
마왕 "넌 머리는 좋은데 종종 몸이 그걸 거부하는 느낌이야."
마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용사 "그래도 잠깐은 즐거웠다."
마왕 "우와. 그런말을 하다니 용감하네. 까마귀 하나만 보내면 지금 당장 즐겁게 해줄 수 있는데."
용사 "참아라."
마왕이 킬킬댄다.
용사 "아마 전에도 이 얘기를 했었지."
마왕 "당연히 그렇겠지. 물어볼 필요가 있어?"
용사 "없었다."


스튜가 바닥을 드러낸다. 용사가 냄비를 잡는다. 다행히 냄비는 다 식었다.
용사 "설거지라도 하지."
마왕 "으음. 나는 옷방 상태를 확인해야겠네."
용사가 그릇들을 옮기고 마왕은 자리를 뜬다. 냄비가 물에 잠긴다. 뽀득뽀득, 손자국은 긁혀 자취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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