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스포일러5

조합소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그저 안에는 창구로 보이는 곳과 작은 의자 몇 개가 있었고 벽지에는 다섯 정도의 의뢰서로 보이는 것이 벽에 걸려있었다.

익숙한 퀴퀴한 냄새가 안을 감돌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 정도는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정도인지라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무일푼인 내가 뭘 가리고 따지고 할 입장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네가 할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의뢰서를 가지고 창구로 가서 의뢰를 받겠다고 해라 의뢰를 성공하면 보수금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아 진짜 여기까지다 난 더 이상 안 도와줄 거니까 알아서 해라"

그렇게 말하고는 퉁명스럽게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는 나가버렸다.

디르토가 나가고 나서는 안 그래도 조용했던 곳이 더욱 고요해져 버렸다.

내가 걸을 때마다 나는 나무판자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의뢰서 앞에 서서 천천히 그 내용을 들여다본다.

의뢰서라고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가 없다.

창구 앞으로 가니 창구의 뒤편에 수염을 대충 깎은 듯한 턱에 대머리에 허름한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이 있었다.

"어이  방금 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맞혀 볼까?"

걸걸한 목소리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웬 거지꼴의 주정뱅이가 왜 앉아있는가 생각했겠지?"

그의 목소리는 잔뜩 화가 나있었다.

"아니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그의 노성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농담이다 긴장 풀어라 흐음 그렇군 네가 디르토씨가 말한 기억상실에 걸린 놈이지? 음... 그래 반갑다 나는 여기의 조합장인 라브 제르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에 있던 서랍을 열어서 종이를 한 장 꺼내고는 나에게 내밀었다.

"사냥을 할 괴물 놈들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이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갑자기 출몰한 벤시 두 마리를 죽일 것, 벤시의 눈알을 사냥의 증명으로 삼음

"벤시! 강한 원한을 품고 죽은 시체다 전쟁이 빈번할 때에는 곤란한 놈들이었지만 이런 평화의 시대에서는 별로 볼 일이 없는 놈들이긴 하지 무기만 가지고 있다면 사냥의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쓰러트릴 수 있지만... 아주 재수 없는 확률로 평생 벤시의 환청을 듣는다고는 하지 그래도 할 테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거지! 조금의 위험은 감수해야 가치가 있지 쉽게 얻더라도 노력이나 위험 없이 얻은 것이 무슨 가치가 있으리오!"

그렇게 외치고는 껄껄 웃었다.

사실 내가 무언가를 가릴 처지는 아니기도 해서 받은 일이지만 말이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무일푼인 네가 무기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 무기를 빌려주마 아! 그리고 이건 조합의 사냥 증명서다 나갈 때와 들어올 때 위병에게 보여주면 된다 일이 무사히 끝나면 돌아와서 반환하도록 해라"

왜 이렇게 친절하게 느껴지지 아니면 원래 이런 곳인가?

그런 사소한 의문은 지워두고 벤시가 출몰한다는 장소로 향했다 벤시는 밤에만 출몰한다고 들었으니 아직 시간이 남았으므로 나무에 걸터앉아 쉬기로 했다.

멍하니 나무에 앉아 있으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모든 생각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어둡고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빌어먹을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생각을 지우려고 한다 쉬운 일이라고는 들었지만 처음 하는 일이고 방심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두운 기억을 떨쳐냈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해야만 한다.

그리고 곧 해가 지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돌연 벤시 두 마리가 일렁이며 나타난다.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다가가자 벤시도 곧 나를 발견하고 천천히 걸어온다.

넝마가 된 옷 빛을 내는 푸른 눈동자 뼈에 가죽을 덧씌운듯한 기괴한 몰골 그것이 나에게 천천히 손을 뻗으며 다가온다.

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손은 이미 땀으로 축축해졌다. 검을 미끄러트리지 않기 위해 바지에 땀을 지워냈다.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앞으로 다리를 내밀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벤시의 쉰 목소리의 비명이 울린다 나 또한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벤시는 허무하게 쓰러졌다 이어서 다음 놈에게 검을 휘두르자 그것 역시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나의 검을 휘두르는 것은 초보자의 그것이었다 내가 휘두르고도 엉망징 창의 칼솜씨였지만 그래도 벤시는 쓰러졌다.

긴장했던 것이 바보 같아질 정도였다.

그러나 벤시가 채 죽지 못하고 쓰러져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기 위해서 몇 번이고 검으로 찔러대자 이내 숨이 끊어진 듯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을 가져오라고 했었지"

긴장을 풀기 위해 혼잣말을 하며 담담하게 눈을 뽑는다.

끈적한 점액이 손에 감기기에 얼굴을 찌푸리긴 했으나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기껏 쓰러트렸는데 징그럽다는 이유로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뽑아낸 눈은 아직도 옅은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을 가저온 유리병에 담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지금이라도 저 벤시가 다시 살아나 달려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조합으로 돌아갔다.

"음... 무사히 해냈구먼... 아니 실패를 걱정한 것은 아니야 그저 상처가 하나도 없다니 놀랍구먼 그리고 보상금 20 골드지만 칼을 이렇게 손상시켜서야는... 그 칼은 자네가 가지고 칼의 대금 5 골드를 가져가겠네 그리고 조합 수수료 2 골드를 가져가지"

당연한 말이지만 칼은 가져갔을 때와는 손상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뭔가 쉽게 쉽게 무기를 주는 것 같더라니 이걸 위해서였나...

"눈알 하나만 가져가도 될까요?"

"음? 눈알은 왜?"

"이쁘기도 하고 처음으로 일한 전리품이기도 하고 전등 대신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요 두 마리를 쓰러트렸다는 증거는 눈알 3개만 있어도 되죠?"

"그렇긴 하지만 뭐 그건 상관없겠지 하나 정도는 가져가게"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일하고 받은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도 했지만 일단은 숙소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어떻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쁨이 흘러넘친다.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숙박 금 2 골드를 지불하고 주린 배에 음식을 밀어 넣었다.

좋은 포만감을 가지고 숙소의 침대에 누웠다.

고개를 돌리니 유리병에 넣어둔 벤시의 눈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안녕!"

익숙한 그리고 짜증 나는 목소리다.

"여기에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기뻐 히히히"

좋은 기분이 다 일그러졌다 뉘었던 몸을 일으켰다.

"새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드디어 아내와 딸이 죽었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검이라도 찔러주고 싶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배웠기에 무력감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가슴에 울린다.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줄까?"

"듣고 싶지 않아"

"우선 아내가 딸의 목을 조르고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한 뒤 옥상에서 투신! 이야 아내와 남편이 똑같은 방식으로 죽다니 뭔가 로맨스? 운명?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아?"

칼을 휘둘렀지만 연기를 베어낸 것처럼 로브의 남자는 건재했다.

로브의 남자는 비웃듯이 킥킥 웃어댄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란 말이지 둘의 시체를 여기로 데려왔어"

기분 나쁜 예감이 머리 속에서 휘몰아친다 듣고 싶지 않다.

"둘은 벤시가 되었습니다!"

그가 웃는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아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배를 잡고 뒹굴기까지 한다.

"처음 일이 성공해서 기분이 좋으셨겠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

벤시가 나에게 손을 뻗고 다가오던 때를 생각한다 벤시를 베던 때를 생각한다 벤시를 몇 번이고 찌르던 때를 생각한다.

"우웨에에에에에엑!!!"

"익... 더러워라"

들떠있던 나를 생각하니 한층 더 역겨워졌다.

비참함에 눈물이 흐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검을 휘두른다.

"검을 휘두르는 게 너무 어설픈 거 아니야? 연습 좀 하는 게 어때?"

검을 떨어트리고 주저앉아 버렸다.

깊은 절망이다 깊은 허망이다 깊은 무력감이다.

"참고로 저기 있는 눈동자는 딸의 눈동자야 모처럼 딸이 준 건데 잘 활용해야지? 그렇지?"

웃음소리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으음 다음에 또 만나자 바이 바이!"

그가 떠났다.

고요해진다 내 신음소리만 방 안을 맴돌고 있다.

아아... 소리가 들린다.

나를 부르는 소리야...

나를... 나를 원망하는 소리다.

나를... 나를... 그리워하는 소리다.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

아내와 딸의 단말마가 들린다 고통에 겨워하는 신음소리가 들린다.

두려움에 가득 찬 소리가 들려... 내가 가야만... 내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디로 갈 필요는 없어 여기에 있어... 여기에... 여기... 하하... 하하하!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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