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마왕과 용사는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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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건 전부 마왕의 탓이었다. 용사를 마왕성에 사실상 붙잡아둔것도 마왕이고, 그런 주제에 심심하다며 엉겨붙는것도 마왕이고, 작은 친절에 멋대로 들뜨는 것도 마왕이다. 다 마왕의 탓이다.


럭시 거점을 지키는 경비병의 시야에 낯선 인간이 잡힌다. 후줄근한 외투 사이로 보이는 상처난 갑옷과 이 나간 검. 경비병은 옆을 툭 치며 말했다. "이봐." "어어, 보고있어. 미친새끼, 저거 어디서 걸어오는거야?" 그야 북쪽에서 사람이 걸어오면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시팔, 느낌 안좋은데." 긴장한 경비병들이 떠드는 사이 낯선 인간은 곧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얼굴에 경비병들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용사 "마왕군이 온다. 병력을 모두 후퇴시키도록."
멍하니 굳어있던 경비병중 한 명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개자식! 뻔뻔한 새끼!" 용사의 눈빛도 차가워진다. 그걸 지켜보던 나머지 경비병이 자리를 떳다. 그는 경보를 내려줄 것이다. 경비병이 말을 이어간다. "루터릭 거점에서 죽은 사람이 천 명을 넘겨. 그리고 네놈은 아무것도 안했어! 아무것도!"
용사 "미안하게 됐군."
기계적인 답변이다. 흥분한 경비병이 검을 들이밀기 시작한다. "거점 수비는 지 좆대로에! 사람들이 뒈져나가든 신경도 안쓰고! 네놈에겐 전쟁이 그냥 놀이터인가?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놀고 싶을땐 노는것인가!" 흔들리는 검끝을 용사가 노려본다. "뭐라도 말해봐 이새끼야!"


카앙-


경비병이 휘청하며 검을 놓친다. 용사가 검을 겨누며 소리친다.
용사 "루터릭 거점을 못간데엔 이유가 있었다! 알지도 못하면 닥치고 있어라!"
꼴사납게 넘어진 경비병이 엉거주춤 검을 집는다. 검을 놓친 수치심과 깨진 자존심이 그를 감정적으로 만들어버렸다. 땅에 엎드려 마치 어린애가 떼를 쓰듯 지껄여댄다. "이 씨팔, 여긴 또 왜 온거야! 너 때문에 또 괴물들이 오잖아! ...그래, 사실은 내통하고 있는거 아니야? 니가 저것들을 불러낸거지?"
용사 "...뭐라고 지껄였나."
용사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검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가려던 찰나에, "히익! 적군이 옵니다! ...제임스! 뭐하고 있어!" 용사가 걸어온 방향에서 먼지가 일어난다. 우르릉 울리는 땅이 경비병을 공포로 짓누른다. 그 꼬락서니를 본 용사가 경비병을 걷어차 뒤쪽으로 던져버렸다.
용사 "방해다. 꺼져라."
경비병은 눈물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으나, 아무것도 할 말이 없었기에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용사는 이를 악물고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먼지바람 속으로 들어간다.


먼지바람 사이로 드러난 것은 빽빽히 들어찬 마왕군 '본 부대'였다.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숫자와 위세. 또한 그들 하나하나가 기사와의 백병전이 가능한 고위마족들이다. 이게 양동작전의 미끼용 병력이라는 미친 소리를 누가 믿어주겠는가. 용사는 헛웃음을 쳤다.
마왕군의 시야에도 거점을 지키는 단 한명의 인간이 보인다. 장군의 손짓에 즉시 산개하며 용사를 빙 둘러싸기 시작한다. 너무나 익숙한 진형이다.


마왕군이 용사를 보고 용사가 마왕군을 본다. 대치상황.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뿔피리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뿌우우우-. 자, 그러면 처음은 선발대가 달려든다. 숫자는 다섯. 그 뒤로 셋. 용사는 차분하게 자세를 잡았다.
제일 앞에 나온 마족이 검을 내리친다. 용사는 그대로 아래에서 받아쳐 올린다. 카아앙! 내리친 검이 하늘 높이 튕겨 올라가고 텅빈 가슴팍에 용사의 검이 들어온다. "!" 즉시 옆에서 서포트가 들어와 검을 가로막는다. 투캉- 둘은 함께 나가떨어진다. "우랴아!" 두 명의 마족이 기세좋게 양방에서 공격해온다.
평소 같았으면 용사는 여기서 검을 회수해 수비전을 펼친다. 어차피 미끼 부대는 반대쪽에서 목적을 달성하면 얌전히 돌아간다. 그때까지 거점을 압박해 용사를 묶어두고, 숫적 우위와 산개 진형으로 용사를 빙빙 돌리는게 놈들의 전략이다. 용사가 그걸 덥석 물어봐야 닭쫒는 개마냥 끌려다니다 제풀에 지치는 것이다. 거점만 사수하면서 적당히 버티고만 있으면 알아서 끝난다. 용사도 당연히 경험으로 알고있다. 마왕군 또한 경험으로 알고있다.
다만 오늘의 용사는 좀 빡돌았던 것이다.


용사가 머리로 날아오는 검을 팔꿈치로 후려친다. 옆구리에 날아온 검은 그대로 박히게 둔다. 퍼억. 그대로 검을 들어 마족의 가슴팍을 깊게 썰어낸다. "끄아악!" 저 얼간이는 그대로 비명횡사한다. 푸푸푹. 용사의 복부에 검이 연달아 꽂히며 피를 뿜는다. 무심하게, 검에 들러붙은 시체를 걷어차 뽑고 역수로 잡아 뒤엣 놈의 심장에 박아넣는다. "꺼윽..." 쯧, 너무 깊게 박혔다. 검을 버리고 대신 단검을 꺼내 가까운 목덜미를 찍는다.
"이런 미친, 증원해라! 당장!" 사태파악이 된 장군이 다급히 외친다. 넷인가 다섯인가, 뒤질 새끼들이 모여든다. 용사는 날아든 검날을 잡아채 억지로 머리통에 되밀어넣는다. 복부에 박힌 검을 뽑아내 목을 쳐낸다. 허리부터 반토막을 내서 집어 던진다. 순식간에 피웅덩이가 생겨나 질척거린다. "우회해라! 피해를 내지 마라!" 시끄럽게 떠드는 입에 용사가 파이어볼을 우수수 쏟아낸다. "고인 물은 쉬이 얼어붙으니." 짧은 영창 후 같은 수의 아이스볼이 부딫히며 터져나간다. "낭비하지 마라! 철저히 요격에만 집중한다!"
용사가 고개를 돌린다. 물러나는 선발대의 발목을 날려버리고 머리를 밟아 터트린다. "큭...!" 남은 것들이 입술을 깨물며 발을 디딘다.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그 의지를 확인하자 용사의 얼굴에 짜증이 확 치밀어오른다.
용사 "오늘따라 기분이 몹시 안좋군. 와라. 모두 토막을 내주겠다."
복부에 박힌 검을 마저 뽑아내 떨군다. 피는 멎고 상처는 아문다.
용사 "와라. 겁쟁이들아."
"넘어갈 것 같냐!" 한 명이 버럭 외친다. "괴물자식!"


용사 "그래... 원래 내 할일은 이거였는데... 멍청한 놈이랑 너무 어울렸나. 정말로 무뎌져 버린걸지도 모르겠군, 나는."
용사가 멍하니 읊조린다. 그렇게 멍하니 서있다가 자세를 숙였다.


카아아앙-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내려친다. 받아낸 마족의 검이 비명을 지르며 진동한다. 카앙, 카앙, 카앙, 연이은 내려치기에 팔이 버티지 못하고 놓쳐버린다. 다음 검격에 뱃가죽이 열려 고꾸라진다. 용사는 뛰어 넘으며 검을 돌린다. 마족 한 명이 찔리고 그 틈에 갈빗대로 검이 박혀 들어온다.
용사 "소용없다!"
가슴팍에 박힌 검을 부러뜨려 내던진다. 목덜미를 붙잡고 뜯어버린다. 푸우욱. 다시 검이 박힌다.
용사 "날 죽일 순 없어!"
검을 양손에 들고 미친듯이 휘둘러댄다. 살점이 튀고 뼈가 잘려나간다. 퍼억. 푸욱. 다시, 또 다시 검이 박힌다.
용사 "크...으...아아! 흐흐하하하하하하하!"
용사가 웃어재끼며 보이는 모든 것을 베어넘긴다. 비명소리가 나는데 들리진 않는다. 옷이 축축한데 느껴지진 않는다. 목구멍에 자꾸 뭔가 걸리는데 신경쓰이진 않는다. 용사는 그저 즐겁게 웃으며 해야할 일에 몰두했다.


...


뚝. 뚝.
뚝.
용사는 홀로 남겨졌다. 거점은 지켜냈다. 검은 더 이상 마실 피가 없다. 대신 처먹은 피를 토해낼 뿐. 뚝. 뚝.
용사 "...아아"
낮게 신음하며 박힌 검을 하나씩 뽑는다. 휘적거리는 용사의 발밑에 부러진 검이 쌓여간다. 챙그랑.
용사 "피곤하군."
챙그랑. 뽑아낸 검들을 살펴본다. 대충 상태가 좋은 검을 골라 피를 슥슥 닦아낸다. 용사는 검을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뉘엿뉘엿 노을이 진다. 보아하니 지금쯤이면 트리스 거점도 날아갔으리라. 마왕의 계산은 완벽하니까.
용사 "돌아가자."
용사는 마왕성으로 걸어간다. 철퍽, 철퍽, 피곤에 찌든 발자국이 피웅덩이를 남긴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려면 아무래도 주석이 필요하겠지요. 이 세계의 마법은 공격마법 한가지 뿐입니다. 만들어서- 던지는 마법. 다른 마법은 없습니다.

5개의 댓글

2017.05.17
잘보고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마왕과 용사 사이가 납득되지않네 아무리 서로 못죽이는 사이지만
0
2017.05.17
@전자연필
그걸 납득시켜 나가는게 소설의 주제니까... 이야기를 하나씩 풀면서 이 모순된 관계를 독자들에게 납득시켜야 겠지. 아니면 현혹시키거나.
0
2017.05.17
@전장의방패
원래 그렇지 근데 너무 불친절함. 그렇게 오래싸웠으면 동료도 잃고 이렇다할 사건이 많을텐데
0
2017.05.17
@전자연필
알겠음. 좀 더 떡밥을 던지면서 진행해야겠네 그러면. 피드백 감사
0
2017.05.17
@전장의방패
ㅇㅇ 애초에 소설이란게 첨에 흥미요소랑 납득갈만한 요소들이 있어야지 독자가 그거에 이끌려 계속보게되니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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