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반전세계:이방인은 구원자가 될 수없다.


"꽤 오랜만에 출근하는구나, 크로우."


"그동안 얼굴 내밀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엘보라도 님."


오랜만에 길드 건물에 출근하자 목공 길드장이자 건축왕인 엘보라도님이 작업에 쓸 목재를 다듬고 있었다. 


에리케가 태어난 후로 나는 공식적으로 암살일을 그만두고 목수일에 전념하고 있었지만, 최근 발견한 문제 때문에 좀처럼 출근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도면은 받았으니 일에 지장은 없지만, 가끔은 직접 보는게 일에 능률도 올라가고 하니까."


에리케가 태어난지 1년을 맞이할 시점에서, 최근 나는 다른 일에 바빠서 완성한 도면을 에나를 시켜서 전달하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비번이면서 굳이 출근한 이유는 뭐니? 설마 벌써 바가지라도 긁혔어?"


"아뇨, 그저 만들어보고 싶은게 있어서요."


나는 품에서 도면을 꺼내 펼쳤다. 무엇이 기록되어있는지 궁금한 모양인지 엘보라도님이 이쪽으로 다가와 도면을 바라보았다. 


"이건 건축용 도면이 아니군."


급속히 실망한 얼굴을 보니, 역시 건축왕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뭘 만드는거지?"


"금고입니다."


질문에 대답하며 나는 목재를 가져다가 못질을 하기 시작했다.


"만들줄은 아는가?"


"도면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만드는건 무리가 없습니다."


완전히 형제를 갖춘 껍데기를 내버려둔 뒤, 이번에는 출근하면서 구석에 치워둔 가방에서 목재로 만든 부품을 꺼냈다.


"이런건 만들줄 알아?"


"이런 장치는 아르센씨한테 배웠습니다. 이런걸 자주 만지는 분이라서요."


이런 장치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체도 해체해버리는 특출난 기술자이긴 하지만,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좋았어. 완성이다."


"그런데 금고라면 이런 목재를 쓰면 안되지 않을까? 우리 길드 금고도 강철 쓰잖아."


순식간에 만들어진 금고를 보며 그녀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사할때 옮기기 쉽게 할려면 가벼운게 좋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금고에 손을 얹었다. 손에서 순간적으로 검은 빛이 반짝이는 순간 나무 금고는 검은색의 광택을 내기 시작했다.


"금고를 부수려고 하거나 강제로 열려는 시도를 하면 자동으로 그림자로 만들어진 가시가 튀어나올겁니다."


"하다하다 금고조차도 아티팩트가 되다니. 그래서 그 금고 자체를 줄 생각인가?"


"금고만 달랑 줄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은 아이니까요. 이건 제 곁을 떠날때 줄 물건입니다. 앞으로 살면서 쌓을 추억과 제 힘의 일부를 담아."


나는 그림자를 이용해 금고를 집어삼켰다. 이것은 세월이 흐르며 내 기억과 힘 일부를 담아갈것이다. 심장의 일부로서.


"이런, 일이 생겼군요.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엔 제대로 출근하고."


옷 위로도 보일만큼 격렬한 꿈틀거림이 지나가고 가슴에 손을 대고 있는데. 바깥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최근 생긴 '그 일'이라는걸 직감한 나는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공간이동을 사용했다.



빛의 근원지는 리슈펠의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길 근쳐였다. 인적 드문 장소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꿈뜰거리는 몸뚱이를 나는 무표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새카만 머리와 새카만 눈, 비슷하면서도 다른 외모. 그리고 명백히 우리와 다른 복장. 이런 '이방인'들이 출현하는것은 초월자로 각성하는 전투에서 생긴 일이다. 

앨리스가 먼저 차원을 뚫었고, 그걸 추격하는 중에 3개의 세계의 초월자들이 모였다.그리고 앨리스를 차원 너머로 추방하는 과정에서 차원의 균열이 생긴것이다.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 균열은 아직 완전히 메워지지 않았다.


"#$#^#^#^#^^#$@#@@#@!!!!!"


"살려달라고? 안됬지만 이 세계는 너희를 환영하지 않는다. 꿈에서 깨고, 죽음을 조용히 맞아들여라."


초월자가 되면서 심안에 추가된 기능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기반한 기억과 지식을 읽어내면서 연구한 결과로는, 이들은 태반이 죽음의 순간에서 넘어오는 경향이 많았고, 마법이나 이능에 관한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너희 종족이 자초한 일이다.'


초월자도 아닌 주제에 차원 이동을 하는건 대단하지만 그것 또한 대가를 치르는지. 아니면 단지 죽음의 순간을 체험한 후유증인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방인의 목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그르륵 거리는 소리. 우리나 이방인의 몇 안되는 공통점은 목에 칼날을 박아 넣었을때 소리가 똑같은 것이다.


"흐음..."


오랜만에 사람을 찌른 기억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 처음 칼을 잡았을때도 이렇게 더럽지는 않았다. 


"이제와서 이런말 하긴 그렇지만."


칼을 뽑자, 비릿한 피냄새가 퍼졌다.. 인생의 절반을 따라다녔던 그 냄새는 마치 내게 살인은 떨칠 수 없는 것이라고 속삭이는듯 했다.

 

"잘 가라."


시체를 질질 끌고 뒷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사냥꾼이 사냥한 짐승을 구경하듯 모여든 부랑아들을 뚫고 나는 잡화점 안에 들어갔다.


"시체 처리 봉투 하나."


"20겔레트 입니다."


커다란 봉투를 하나 산 뒤, 몸을 토막내 봉투 안에 담아 썩는 쓰레기 함에 넣었다. 무언가가 썩어가는 악취가 낯설게 느껴진다 생각하며 나는 다시 공간이동을 했다.



"많이 기다렸나요, 크로우?"


"아니 별로 안기다렸어, 에나."


시장 입구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리자 시장 안쪽에서 에나가 짐을 들고 나왔다. 반갑게 맞이하는 에나를 껴안으려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조금이지만 손에서 피냄새가 나는듯 했다. 


'칼을 닦을때 묻어나온건가?'


"크로우?"


"잠시만."


이쪽에 안기려는 그녀를 부드럽게 밀어낸 뒤 나는 근처 분수대에 가서 손을 씻었다. 좋아, 이제 상쾌해졌군. 


"미안, 에나."


"아뇨. 일 때문이니까 어철 수 없죠."


짐을 받아들고 사과하자 그녀는 어쩔수 없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이상해. 예전만 해도 돈을 받는 대가로 사람을 죽이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세상의 혼란을 진압하려는 과정인데도 불구하고 꺼려져."


"당신은 명령을 받는 입장이잖아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거절 할 수 있으면 충분히 거절 할 수 있었다. 대륙의 왕들이 모이는 회의의 결정이라고 해도, 나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으니까. 


"어쩌면 나도 평화에 물들었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눈길을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활기찬 표정으로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만, 이 세상에 뿌려진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전 당신이 평화에 물든 모습이 더 보기 좋아요."


"완전히 평화에 빠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거야. 아직은 피를 씻을 수 없지." 


"그런데 이방인들을 배제하는 이유가 있나요? 피가 다르다고 해도 언젠가 우리랑 피가 섞인다면 그 후대의 아이들은 마법을 발현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마법과 이능의 근원은 우리의 부모인 정령의 피 덕분이다. 에나의 말대로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다면, 전체적인 수준은 낮겠지만 그래도 마법을 발현할 수 없는건 아니다. 


"일단 자리를 옮길까. 누가 더 들으면 곤란해.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이방인을 본적도 없으니까. 가급적이면 혼란없이 제거하고 싶어."


내 말에 에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에나의 손을 잡고 집으로 공간이동했다. 시장에서 사온것을 정리하고 에나가 칭얼거리는 에리케를 안아서 잠을 재우는것을 보며 나는 에리케가 깨지 않게 조심히 입을 열었다.


"우리도 처음에 배제할 생각은 없었어. 이 결정은 불과 한달 전의 이야기야. 이 이상부턴 나름 대외비지만, 에나라면 괜찮겠지."


따지고 보면 나의 과오로 영문도 모를 세계에 떨어져버린 존재들이다. 도와주진 않아도 목숨을 빼앗을 생각은 없었지만, 귀찮은 대륙 회의에 불려가서 직접 경험해본 결과 생각이 달라졌다.


"통계자료는 복잡하니 다 제외하고 어디서부터 말해야할까. 그래, 이방인들이 출현해 어느정도 무리를 이룬것을 기다린 우리는 그들의 대표들과 접촉했어. 에나도 기억하지 않아? 나랑 이리나가 잠시 이곳을 비운적이 있었잖아. 그때 이리나는 외부 세계 언어를 해석해서 우리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서, 나는 통역겸 그들의 생각을 읽고 언어 기억을 뽑아내 이리나에게 알려주는 역할과 비상시 무력 행사를 위해 파견됬어."


"잘 안됬나 보군요?"


"그래.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 협상은 결렬됬어."


애당초 아예 말이 통하질 않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은것도 않은거지만 이들의 머릿속에는 뭔가 거대한 망상이라도 있는모양이다. 생존에 필요한것을 요구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은 도를 넘었다.


"구체적인 요구 조건에대해선 말하지 않겠지만, 그들이 요구하는것에 비해 제시하는 것은 터무니없었어. 그들의 세계에서 상용화된것은 여기서도 이제 곧 개발될 기술들이었고."


"그랬군요."


"거기다 마법을 가르쳐달라니. 마법은 우리가 이 세상의 주민으로서 타고나는것. 노력으로 이방인이 얻을만한게 아닌데."


"그 이후엔 어떻게 되서 제거 쪽으로 방침이 바뀌었나요?"


일단 범죄가 늘어났어. 이들은 자기가 기본적으로 이세계를 구원할 용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터무니없이 오만한 족속들이었지. 먼저 협박. 별로 시킬일도 아닌데 억지로 하겠다고 행패를 부리고 보상을 내놓으라며 닥달하거나, 심지어는 보수가 너무 적다고 난동을 피우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사람들은 점차 일을 맡기려고 하질 않지. 그러면 이번엔 집에 들어가서 도둑질을 하곤 해."


그들은 언어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리나가 만든 통역 구슬이 각 국에 배포됨에 따라 언어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들의 인성문제는 해결된게 없다.


"그다음은 성희롱 및 강간. 앞서 말한대로, 그들은 자기들이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모든 이성은 건드리기만 해도 자신에게 달라붙는다는 망상을 하고 있어. 아무리 수준낮은 소설이라도 그런 전개는 좀처럼 없는데 말이지. 그리고 특히 심각한게 성인이라면 마법으로 성공하지 못하니까 15세가 되지 않아서 아직 마법을 쓸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주로 대상으로 삼아."


"세상에...."


내 말에 에나는 살짝 떨며 에리케를 안은 품에 힘을 주었다. 


"가장 심한건 습격이야. 중앙지역에서 결집한 이방인들이 변두리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기 시작했지."


사건의 조사로서 불탄 마을에 간적이 있었다. 남녀 가리지 않은 노인과 청년들의 시체가 불타고 있었고, 마을에서 젋거나 어린 여성의 시신은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루펜을 불러서 이들을 되살려낸 후에야, 이 사건의 배후에 그들이 있는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이후의 이방인들은 전부 제거하기로 결정했고, 저들도 서서히 조여나갈 예정이야."


말을 마치자 밖에서 거대한 원소의 흐름이 느껴졌다.


"에나는 여기서 에리케를 봐줘.. 누군가 온 모양이야. 이거 심상치 않은데."


에나를 두고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무표정하게 서있는 과거의 전우를 보자, 심상치 않은 일이 현실이 된것을 느꼈다. 


"그래, 크로우 루펜. 일단 들어올래? 누가 볼 수 있으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이 오셨네요."


루펜을 데리고 방에 들어오자, 에나는 에리케를 업고 부엌안에 들어가 빵하고 물을 내왔다. 루펜은 물에다 가루를 타서 휘휘 저어 마시더니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좋은 물이군요."


"그래서, 무슨 일이지?"


"대륙회의에서 도출된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엔 너였지. 뭔가 예감이 안좋은데."


"좋은 소식입니다. 여러 의미에서."


"그래, 그럼 좀 들어볼까."


"먼저, 차원의 틈이 안정화됬습니다. 더 이상 이방인은 넘어올 수 없습니다."


"정말 좋군, 그런데 그거로 끝일리가 없어. 그렇지 않으면 네가 직접 올리가 없으니까."


"맞습니다. 대륙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 주 이시긴에, 우리는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이방인들을 멸절시킬 예정입니다."


"그렇게 말하는걸 보니 본거지는 찾아낸 모양이군,"


"중앙에 위치한 대 황무지. 그들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 알겠어. 때가 되면 그쪽으로 이동하겠다고 전해두지."


"알겠습니다. 그럼 전 헥스테씨한테도 통보해야하니 이만."


공간이동으로 사라진 루펜이 있던 자리를 보며 나는 내 몫으로 내온 물을 마셨다. 


"이런 기억까지는 남겨줄 필요는 없겠지."


심장이 있는 부분에 손을 대며 중얼거린 말에는 씁쓸함만이 배어나왔다.


 




왜 이세계물에서 이방인들이 힘을 갖는지, 또는 구원자가 되는건지 전혀 이해가 안됨.

그래서 그런 시각을 좀 비틀어볼까 싶었음.


1개의 댓글

2017.05.10
단편 맘에 든다. 재밌게 잘 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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