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마왕과 용사는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03

01 02


그리고 미워할 방법도 없었다. 첫 대면에 둘은 서로를 미워할 모든 방법을 써봤고 모두 실패했다. 결국 둘은 친해졌다.


푸른 초원 위로 봄 바람이 분다.
이 세계에는 계절의 변화가 없다. 대신 지역별로 계절이 달라진다. 즉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긴 한데, 봄인 곳은 항상 봄이고 가을인 곳은 항상 가을인 것이다. 그래서 마왕성은 항상 봄이고 제국의 수도는 항상 가을이다. 봄 바람이 부는 초원에 마왕이 서있다.
마왕이 초원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곳에선 세계의 모든 것들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숲과 강, 사막이 보인다. 여러 거점들이나 제국의 수도도 보인다. 그 너머의 바다까지도 보인다. 세계의 모든 것이 고작 이정도다. 한 눈에 다 담기는, 초라하리만치 작디 작은 세계. 마왕의 눈빛이 문득 쓸쓸해진다.
용사 "뭐하고 있나."
마왕 "..."
용사가 등 뒤 멀리서 걸어온다. 마왕의 대꾸는 없다. 그저 작은 뒷모습만 있을 뿐이다. 용사가 한참을 걸어 마왕의 옆까지 오자 마왕의 눈이 곁눈질에 잡힌다. ...용사는 초원아래로 시선을 옮긴다. 용사의 눈은 텅 빈 눈이다. 늘 그렇듯이.
용사 "왜 대답이 없나."
마왕 "귀찮아서."


용사 "...하, 아니."
마왕 "대답 안해도 여기까지 걸어 올거잖아."
용사 "아니, 왜 또 심술인거지?"
마왕 "헹."
기분이 풀렸는지 마왕이 털썩 앉는다. 맥이 빠진 용사도 초원에 그냥 드러눕는다.
마왕 "다 귀찮아-."
용사 "평소에도 그래보인다."
마왕 "이대로 잠만 자고있어도 인간들이 죽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용사 "평소보다 심하군. 솔직히 듣고있기 짜증난다."
마왕 "이정도 생각은 다들 하잖아. 일하기 싫어하고 잠 좋아하는건 인간들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는데?"
용사 "싫어하지만 다들 하는거다. 나태한 것도 죄야."
마왕 "그럼 역시 열심히 죽이고 다닐까?"
용사 "거 진짜 왜 또 심술인거지?"
마왕이 킬킬댄다. 간지러운 봄바람 탓에 용사도 정색하질 못한다.


용사 "전령이 왔나본데."
용사가 상체를 일으킨다. 과연, 퍼덕이는 날개 소리가 들린다.
마왕 "죽이지마."
용사 "흐음."
마왕 "아 진짜 안돼. 일거리 늘리지 말라구."
용사 "됐다. 그냥 받아 봐라."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와 마왕의 손에 앉는다. 마왕이 발목에서 편지를 풀어 내용을 읽는다. 그 사이 까마귀와 용사는 눈이 마주쳤다. 까악! 명백히 시비조로 까마귀가 운다. 용사는 동물과는 친하질 못하다.
마왕이 편지를 갈아끼우고 까마귀를 돌려보낸다. 방향은 럭시 거점.
용사 "...이러면 나는 럭시 거점에 가야하는가."
마왕 "그 쪽으로 대규모 공격을 보낼거야. 넌 그걸 막으면 되고."
용사 "너는?"
마왕 "그 사이에 난 반대쪽의 트리스 거점을 가져와야지. 새삼 물어볼 필요가 있어?"
용사 "...없었다."
즉 평범한 양동작전이다. 본 부대가 미끼가 되어 럭시 거점을 노리는 척 하면서, 마왕은 직접 트리스 거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용사는 한 명 밖에 없고,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마왕은 죽지 않으므로 막을 수 있는건 본 부대 하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간 마왕과 인간의 전쟁도 결국은 이것의 연속이었다. 마왕이 하나를 차지하면 인간이 하나를 탈환한다. 마왕이 답을 정해놓으면 인간은 거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왕은 이 거래에서 항상 위에 있어왔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인간은 천천히, 저항할 수 없이 패배해간다.
용사가 일어나 흙을 턴다.
마왕 "어라, 바로 가는거야?"
용사 "그럼 가보겠다."
마왕 "응~ 잘 다녀와~."
마왕이 활짝 웃으며 팔을 흔든다.
...이정도 도발을 참지 못하고 마왕을 죽여봐야 시간만 낭비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시간을 낭비하면 용사는 럭시 거점까지 내내 뛰어가야 할 수도 있다. 그 점을 아는 용사는 마왕에게 친근하게 팔을 흔들어주었다.
스스로의 발을 묶기 위해 럭시 거점으로 향한다. 용사가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마왕은 그것을 마지막까지 지켜본다.


마왕이 웃음을 거뒀다.
마왕 "사룡."
우드득. 콰득. 뼈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마왕성 뒤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온다. 거대한 그림자가 이내 초원을 가득 채워버린다. 촤아악- 그리고 날개를 펼쳤다.
마왕 "네 의무를 다해라."
그리하겠습니다. 낮은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마왕성의 문이 굳게 걸어잠긴다. 다가오는 몬스터들의 발소리가 땅을 울린다. 마왕은 망토의 단추를 잠그고 트리스 거점으로 향한다. 마왕성이 제 모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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