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비오는 날에


"그거 아니? 비오는날 광장에서 가끔 한 여자가 발레를 한다는 소문이 있어."


"네가 말하니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아."


"이건 진짜라니까? 그 춤추는 여자는 하얀 원피스 하나만 입은채래. 젖은 원피스가 착 달라붙어서 뭔가 굉장하다나봐. 우산도 없이 다니다니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사실적인데."


"그런데 신기한건, 그 여자에게선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거야!"


"꼭 이런날에 무서운 이야기를 해야겠어? 난 무서운 건 싫으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마."


'.....'


비오는 날은 그렇게 유쾌한 날은 아니지만, 카페엔 나름대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진다. 특히 도시전설에 불과한 이야기도 이런 우중충한 때에는 나름의 생명력을 얻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비록 그 모든게 전부 사실은 아니지만, 가끔은 제대로 된 물건도 낚여오기 마련이다. 


'오늘은 그만 가야겠군.'


더 이상의 정보도 없었고, 늘어난 커플들의 눈꼴시린 행각에 견딜 수 없어서 카페에서 나왔다. 빗물로 우중충해진 거리를 걸어 약속 장소에 당도하니, 마찬가지로 우중충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때. 뭐 건진건 있어?"


세태에 찌든 샐러리맨 같은 외양과는 어울리지 않는 쾌활한 목소리. 이 남자에 대해서는 내색하진 않지만 경탄스런 마음이 들곤 했다. 대체 이 인간은 뭣때문에 이런일을 하는걸까. 어쩌면 이것 또한 변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거다 하고 확 와닫는건 없지만. 그래도 대충 감은 잡았어. 그쪽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역시 이런 비오는 날에까지 정장 모습이란건 불편했다.  


"전혀. 그나저나 확실히 정장이란건 불편하군. 하지만 노인네들도 하지 않을 시대를 역행하는 패션을 할 바엔 이게 낫지. 그래도 최신 트렌드니까. 게다가 우리야말로 이 우중충한 정장에 가장 맞지 않던가?"


과연,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말이 맞는듯도 하다. 이해하긴 싫지만.


"좋아. 그럼 다시 헤어질까."


"그래, 괜찮은 정보가 있으면 알려줄게. 저번의 도움, 아직 잊지 않았으니까."


볼일이 끝나고, 우리는 서로 왔던길로 되돌아가기 전에 서로 악수를 했다. 


돌아온 나는 소문의 장소인 광장으로 이동했다.  비를 맞아 좋아하는것은 화초들 뿐인지, 사람의 흔적은 하나도 없었다.


'남은건 그저 기다릴 뿐인가.'


나에게 시간이란 그저 흘러가는 강물과 같았다. 양은 무한하며, 나의 것이 아니므로 아까워할 필요 또한 없었다. 


'뭐가 온다.'


비속에서도 희미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발하던 해가 그 모습을 서서히 감춰가는 시간이 되자, 서쪽에서 작은 그림자가 총총거리며 다가왔다.  빗물을 머금어 착 달라붙은 몸매, 물에 젖은듯한 검은 머리카락, 빗속에서도 작게나마 자신의 색을 발하는 하얀 원피스. 그 모습을 확인하자 나는 숨을 죽이고 모습을 감췄다. 그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누가 있는지 확인하는 듯 하더니 내가 숨어있는곳을 빤히 쳐다보았다.  


"거기 누구시죠?"


그 말에 나는 숨어있던곳에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내 표정을 스스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안면에는 머쓱함이 배어나와있으리라. 


"저는 그저 싸구려 소문에 기대서 먹고 사는 사람일뿐입니다. 명함이 어디 있더라..."


그렇게 둘러대며 없는 명함을 찾는 시늉을 하자 경계심이 약간 누그러진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풀어진 긴장이 다시 조여오는것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소문은 그쪽을 가리키는 모양이더군요. 비오는날 우산도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말이죠."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보는 사람은 없는줄 알았는데." 


뒷 이야기는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보였다. 


"그런데 무엇을 하시는 건가요? 이렇게 세찬 비는 오래 맞을만큼 녹록하지 않습니다만."


무엇을 하는지는 앞선 소문에서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더 알고 싶은것은 이유였다.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렇죠. 하지만 뭐, 죽기야 하겠습니까?"


"그건 그러네요."


내 말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듯 멀찍이 물러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춤동작.  공연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이 춤은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다만 이 춤이 특히 유명한것인지 아니면 내가 어디서 자주 보았던 춤이라 기억에 남아있는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때요?"


"글쎄요. "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면서 이쪽을 바라보는데, 아쉽게도 해줄 말은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박수라도 쳐주어야했을까?


"조금 어색한 부분이 남아있는것 같은데..."


그래도 어느정도 맞춰줄 필요가 있어서 생각한 끝에 한 마디 내뱉기는 했지만, 나 스스로도 왜 그렇게 느끼는지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그렇게 말해도 내겐 방법이 없었다. 기억에 남는 동작을 조금 시도해봤지만, 그것은 객관적으로 봤을때 꽤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도움이 됬어요."


"그렇군요."


시간이 흘러 서로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할만큼 어두워졌다. 


"그래서 소문은 확인하셨나요."


"예에... 뭐."


겉으로 내세운 직업에 대한 이야기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여러 의미로 소득은 있었다. 하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석연치 않은 기억이 남았다. 더 이상 이런 기억이 생겨나면 일이 곤란하다.


"그렇다면 대신 저 좀 도와줄래요?"


"네?"


"제가 이 동작을 연습 하는데, 사실 제대로 배운건 아니고 어디서 언뜻 본거라서요. 반응을 보니 어느정도는 아시는것 같으니 좀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생업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완전 막무가내였다.   


"저는 비오는 날에만 연습하니까 괜찮아요. 제발 부탁이에요. 일생일대 소원이에요."


"...."


거절하려고 말을 고르던 차에 들려온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여성의 부탁이라 혹한것은 아니었다.


"그럼 이만."


"꼭이에요. 안오면 죽었을때 원혼이 되서라도 쫒을테니까."


어둠속에서 고개를 끄덕인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저주를 포함한 다짐에 실소가 나오는것을 참으며 나는 광장을 떠났다.



인간의 의식은 무엇이고, 영혼이란 무엇인가. 실제로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복잡함을 자랑하거나 저열한 구조일수도 있지만, 만약 그저 단순한 생체 전기의 뭉쳐진 신호라 가정한다면 어쩌면 유령의 존재같은것도 정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령인줄 알았더니 매달린 옷이었다는것보단 훨씬 무섭겠는데.'


호러괴담은 조금 더 충실한 생명력을 가지겠지. 그게 내 일에 도움이 되나 싶냐면, 그건 그거대로 아니지만.


"그래서, 이번엔 어때요?"


"이번엔 이쪽이 좀 아닌것 같은데요."


그로부터 4일이 지났지만 불만족스러운 관계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그녀는 그녀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점에서, 나는 나대로 깨진 기억을 상상으로 복구하는 작업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 이상한 점이 줄어들고 있는것을 생각하면 나름 제대로 된 방향으로 향하는듯 했다.


'하필이면 그 부분에 관한 기억만 없으니...'


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기억이 손실되어있었다. 도려내진듯 깔끔했기에 오히려 그 시절의 기억이 없다는걸 알지 못했다. 


'그래도 비만 계속 내려준다면, 금방 끝낼 수 있을것 같은데.'


장마철은 다음주까지 계속될 전망이었다.  동작을 수정했는지 다시 돌기 시작하는 그녀를, 정확히는 그녀의 그림자가 있는 부분을 나는 연민섞인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어때요?"


하필이면 마무리 동작에 대한 기억의 괴리가 공통되었기에 내가 느낀 거슬림이 사라진 것은 5일이 더 지나서였다. 비록 이것이 정말로 맞는건지는 이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제와서 그건 다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말없이 박수를 쳐주었다.


"이제 만족해요?"


기쁜듯 몇번 더 동작을 반복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조용히 물었다.


"네. 이제 여한이 없어요."


비는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구름이 걷히고 아직 지지 않은 햇빛이 광장을 비췄다. 


" 나도 이제서야 진짜 일을 할 수 있게 됬어요."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허망하게 몸을 뚫고 통과해버리는 손길.


"아....."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투명한 눈으로 웃음지었다. 빗속에 가려진 그녀의 그림자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신이 단순히 죽음을 착각해서 다행이에요. 원령이었으면 크게 골치아팠을테니까."


그녀의 몸에서는 여전히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과거의 잔재일뿐이다. 죽기 직전의 모습. 무슨 일로 죽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알아서도 안된다. 


"퇴마사나 무당이라도 되는건가요?"


"하하, 그럴리가 있나요. 저는 단순히 소문을 취급할 뿐입니다."


햇빛이 이쪽을 비춘다. 나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빗물 하나 묻지 않은 깔끔한 모습이었다. 


"다만 오직 유령에 대한 소문만을 취급하죠. 죽은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것이 저의 일이니까요." 


"요즘 저승사자들은 정장을 입고다니는 모양이네요."


"아직까지 그런 패션을 고집하는 늙은이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모든건 변하기 마련입니다. 뭐, 떠날때쯤이면 보게 될겁니다."


죽고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때 두루마기랑 갓을 썼던 경험을 떠올린 나는 정색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서 서책과 붓이 나오자 그녀가 오오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이미 죽은 상태라 그런지 현세의 삶이 끝장나는 판국에도 저런 반응이라니 조금 신선했다.


'죽고나서 서예까지 배워야할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서책을 펼치고 이름을 찾아 붓으로 표기를 마쳤다. 옷이야 나름대로 씹을 수 있지만, 이런 기록 부문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죽은자들이 변하지 않는것하고 별반 다를게 없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하죠. 저승까지는 생각보다 먼 길이니까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모습을 다시 변화시켰다. 두루마기에 갓을 쓴, 고전에 나올법한 저승사자의 모습은 역시 어울리지 않았다.


"마지막 하고싶은 말이라도 있습니까?"


"저승사자같은게 될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그건 49재 담당관이 설명해줄겁니다. 저는 외근직이라서 잘 모르겠군요."


"그렇군요. 고마워요."


"이런말 하긴 그렇지만,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먼지가 흩어지듯 스러졌다. 희미하게 하늘로 승천하는 혼을 지켜본 뒤, 나는 다시 그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번 일도 끝났군."


앞으로의 그녀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원하는대로 되기를 바래줄 뿐.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주어질까."


내 혼이 닮아 없어질때까지, 일은 끝나지 않는다. 두루마기에서 정장으로 옷을 바꾸면서,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훈련소에 있을때 썼던 단편을 골자로 영혼은 생체 전기 신호의 집합이라고 생각하고, 죽어서 이 전기가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전기와 공명해서 유령이 생기거, 이 전환율이 100%가 되지 않아서 기억의 일부 손실을 가져온다는 가정 하에 마구 뜯어고치고 생략한 단편.


기억에 없는 부분은 저 춤동작(안무)은 원래 태엽을 돌리면 움직이는 발레 인형의 동작이고, 그 동작을 만든게 저승사자인 주인공이라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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