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또 다른 여정의 끝-재회



"정말로 이순간만을 고대해왔어. 우리가 다시 만날 순간을."


온갖 연구가 행해진 흔적이 보이지만 지금은 피와 살점으로 가득한 실험실에서 나는 유일하게 무언가가 들어있을 원통형의 불투명한 하얀빛 수정관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수장이 사망하는 바람에 혼란에 빠진 인간들을 빠르게 급습한건 정말로 옳은 선택이었다. 나름대로 방비는 해둔 모양이지만, 과거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초월자가 직접 이곳을 급습할거라고는 생각하지못한것이 그들의 실책이었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건 아니지만.'


등에 진 대검을 뽑아 양손으로 쥐었다. 칼끝을 수정관 일부분에 대고 강하게 찌르자 수정관의 일부가 깨져서 틈새가 생겼다. 검을 다시 꽂아넣고 손으로 틈새를 강제로 벌렸다. 살살쳤다지만 대검으로도 겨우 조금 틈을 만들 강도를 자랑하는 수정이었지만 괴력을 해방하자 조금씩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걸리적거린단 말이다!"


한층 더 힘을 주었을때 마침내 수정관에 균열이 일어났다. 마치 종이처럼 양면으로 찢어진 수정관의 파편이 손에 잔뜩 박혀 피가 났지만 이내 상처가 아물며 파편이 빠져나왔다.  파편을 아래에 쏟아내며 수정관 내부의 물체를 확인하자 말랑말랑한 우윳빛 기둥이 엿보여 낙심하던것도 잠시, 공기에 닿은 기둥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며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알몸의 여성이 나타났다. 수정 파편이 가득한 바닥에 찔리기 전에 가볍게 받아 품에 안았다.  


"마지막으로 본지 10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변한게 없구나."


인간을 복제하는 생체 실험에 사용되는 배양액에 뭔가 특수한 처리라도 한것인지 평범한 인간일터인 그녀의 모습은 예전에 보았던 젊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정말로 옛생각이 난다. 하지만 본격적인 해후는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주머니에서 액체를 흡수하는 천을 꺼내 그녀의 몸을 감싸준 뒤, 실험실을 나섰다.


 

"아빠,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요?"


실험실을 나오자 딸인 엘리가 나를 발견했는지 쪼르르 달려왔다. 모닥불을 피워놓았는지 불길이 일렁이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엘레네를 감싼 천을 내려놓은 뒤, 엘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가르쳐준대로 모닥불을 잘 피웠구나."


"도구도 있어서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뭘 하실거에요?"


"안에 다시 들어갈거야. 아까는 사람들만 싸그리 정리했지만, 이번엔 안의 자료들을 싹 다 파기해버릴거야. 그런 연구는 존재하지 말아야해."


등에 맨 대검을 다시 손에 쥔 나를 보며, 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없는 그 나이대의 모습이 보여주는 귀여움에 미소를 지으며, 나는 투구를 뒤집어썼다.


"갔다올동안 엄마좀 돌봐줄래? 지금 의식이 없어."


"알겠어요."


"그럼 갔다오마."


눈을 감고 치유마법을 시전하는 엘리를 힐끗 바라본 뒤, 나는 다시 핏물을 질질 끌며 실험실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정신이 들어요?"


무척이나 고요한 꿈을 꾼 기분끝에 눈을 뜨자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엘리에요."


어릴적 나와 닮았지만 훨씬 어른스러운 얼굴. 마지막으로 본 엘리는 어린 아이였는데,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난것일까?

 

"네 머리가 하얗게 된걸 보니 엄청 오랜 시간이 지난것 같구나."


딸의 뺨을 어루만지며, 나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래도 이제는 가족끼리 같이 있을 수 있어요. 아빠가 돌아오셨거든요."


"그래? 그렇구나. 다행이야."


불과 일주일전에 떠나던 그를 딸과 함께 배웅했었는데,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구나. 그사람도 많이 늙었겠지? 



자료를 파괴하겠다는것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이 실험실의 물건들은 원 주인들을 죽이고 약탈한 물건이기 떄문에 이미 배양액과 피, 살점으로 오염되어 파편조차 살려낼 수 없을정도로 망가진 상태라는걸 처음부터 알 수 있었다.


"하..."


대충이나마 대검으로 살점을 조금 토막낸 다음, 피가 묻지 않은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무책임하게 잠시 도피한 내 자신에게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보고싶었는데 막상 대면하려자 하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녀가 내게 어떤 말을 할지 두려웠다. 그렇다고 해도 이 도피가 무한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문을 열고 다시 그녀와 대면해야한다. 어떤말을 듣는다 해도,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니까.


"...."


검을 다시 꽂아넣고 문을 열었다.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사이로 보이는 딸과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손을 뻗었다.


 

"미안해. 아직 몸에 힘이 잘 안들어가서 일어설 수가 없어. "


"아냐. 오히려 딱딱한 갑옷 위에 업히게 만들어서 내가 미안한걸."


워프로 먼저 엘리를 보낸 후, 나는 엘레나를 업고 길을 걸었다. 초월자가 되어 공간이동을 사용할 능력이 생겼지만, 상성은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인지 한번에 보낼 수 있는 인원은 한 명 뿐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전장에서 싸워온 환경 떄문에  내 공간이동은 1인 강습에 유용한 형태로 고정된것인지도 모른다.  정작 이런 상황에서는 아예 쓸모가 없게되어버렸지만.



"저기, 엘레나."


"왜?"


하루가 지난 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야전 물품을 이용해 등에 지고갈 수 있는 간이 침상을 만들어 서로의 귀가길이 조금 더 쾌적해졌을 시점에서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익숙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 말을 하기에는 이정도의 거리감이 좋았다.


"이대로 괜찮아?"


"이대로 괜찮다니..."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지만..."


내 말에 그녀는 명백히 당혹의 감정을 띄운 모양이다. 하기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다시 앞에 섰을때, 그동안의 일이 다시 생각났어. 내 재능은 약탈이니까."


지금이나 20년전이나 나의 재능은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을 뺏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혹시라도 그때 일이 원치 않은 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무서웠어."


내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걸으면서 대답을 기다리는데, 그녀가 귀를 쭉쭉 당겼다. 초월자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지금 그녀가 워낙 힘이 없다보니 그것도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바보."


귀를 꼬집혀도 묵묵히 걷는 내 모습에 김이 샌건지, 아니면 그 질문 자체가 어이없었는지 그녀는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옛날일 하니 생각나지 않아? 그때도 이렇게 침상을 만들어서 나를 업고 갔었잖아. 그때는 성기사단의 흰색 갑옷을 입고있었는데..."


그녀의 말과 함께 나긋나긋한 손가락이 갑옷을 매만지는것이 느껴진다. 그래, 그때도 그랬던적이 있었다.


"그래, 그렇긴 하네. 많이 변하긴 했지만."


다만 지금은 아직 낮이고, 나의 갑옷은 흑기사의 검은색 갑옷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았어. 너의 사랑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목에 팔을 감았다.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흘러내리는것이 눈에 띄였을때 그녀가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리고 나의 사랑도."


나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건틀렛을 벗어 목을 감은 팔을 어루만진 뒤, 나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새롭게 살아갈 고향이자, 먼저 도착했을 딸이 기다리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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