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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의 성질 . txt

인셉션은 예술 형식으로 표현된, 인간 의식 모형에 대한 성찰이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다면,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문구를 알 것이다.
이 문구가 제시하는 원리는, '당신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려고 할 때, 이미 코끼리가 떠올른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하면, 이것이 인간의 의식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부정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헌데 이건 단순 장난일지도 모른다.
부정어는 몇 가지로 나눠서 이해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유의어라고 생각하고 보자.

1. 촉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라고 보는 것
2. 참/거짓, 중에서 거짓인 것,
3. 있음과 없음에 한하여, 1번을 제외한 것으로서,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 그래서 없음이 된 것,
물론 이는 긍정/부정은 아니지만 우리는 있다/없다, 에서 없음을 '있지 않다'라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중에서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는 1번을 말한다. 
생각하지 마!, 는 촉발하지 마라는 뜻이다. 근데 이건 단순하다. 촉발하지 말아라고 하면, 쉽게 이해된다.
아예 딴거를 생각해라는 거다.

이 실험의 오류는 이런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실험 표본으로 삼았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할 때, 당신은 사실상 '코끼리'라는 단어 때문에 곧바로 촉발되게 되어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실험 원리를 알거나, 또한 당신이 원래 문장을 이해할 때 문장 전체를 감안한 다음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코끼리'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촉발을 시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게 이론상 불가능해보일지 몰라도, 누군가는 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령 이런 식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 라고 하자마자, 당신은 이것을 일단 '언어의 형태'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를 입력시켜서, '생각하지마'에 주목한 다음, 그 입력에 적합하게, 코끼리가 아닌 것을 촉발시킨다. (지향성의 원리를 이용하는 셈이다.)

헌데, 이 실험의 묘미는 이게 잘 안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어쨌거나,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해도, 이미 '코끼리'에서 촉발이 되기 때문에, 곧바로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왜 인셉션의 테마가 '코마상태'로 가게되는지를 보여준다.
당신이 우울증에 빠져있다면,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간단한 방법은, 무조건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자살'생각을 자주 한다면, 당신은 '자살 생각 그만하자'라고 해도, 이미 '자살'에 촉발되기 때문에 또 자살 생각을 하고 만다.
이것이 '코끼리를 생각하지마!'의 상태다. 이는 흰곰으로도 표현되기도 하는데, 원리는 비슷하다.
사실 집착과 지향성의 원리도 이것과 관련된다. 게다가 사람은 '습관화, 고착화'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가 반복되면 고착이 되는 식이다.
그러니, 계속 그곳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원리가, 위에서 언급한 '코끼리'를 언급하면서 나타난 '촉발'에서 시작된다.
사실 인셉션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의식의 문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 형식으로.)


재밌는 건,
코브가 언제 현실로 나아가게 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무렵, 코브는 와이프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넌 너무 완벽해 ... 그러니까 넌 현실적이지 못해. 내 와이프는 불완전했거든"

이것은 인셉션이 도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지를 직격으로 쏘는 대목이다.


사족이긴 한데, 내 생각에, 놀런은 흥행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든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소망과는 무관하게)
생각해보자. 당신이 제작자이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당연히 흥행에 민감하다.
할리우드 산업의 특징은 고수익/고위험, 엄청나게 돈을 때려부어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방식이다.
헌데, 그럴려면 당연히 산업에 민감해야 하고, 흥행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그 때 어떤 사고방식이 중요할까? 당연히 '냉정한 사고'다.
예술가가 자기 예술을 한다고, 또는 자기가 이렇게 해야 흥행이 된다고 어림짐작 해선 안되는 것이다. 아주 냉정해야 성공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사고 마저도, 끊임없이 회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근데 잘 생각해보라
우리 모두는 예측을 한다. 헌데, 그 예측이 반드시 맞을까? 아니 실패한다.
근데 무엇 때문에 실패하는가? 불완전성, 예측불가능성, 다시 말해서, 내가 아무리 예측을 기가막히게 해도, 항상 내 틀을 깨고 들어오는 그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것의 정체성이다. 그것은 '내가 예측하는 것' 밖에서만 존재한다. 

코브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
"넌 너무 완벽해. 헌데 내 와이프는 그렇지 않거든" 
이 말의 뜻은 뭔가? 넌 너무 완벽해,라는 말은, 그것이 코브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코브의 의식을 벗어나는, 바로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즉, 현실의 정체, 현실의 존재, 현실의 실재, 무슨 말을 갖다붙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정말 '리얼리티'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 바깥에서 나타는 것이라는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이건 구성주의 세계에 태클을 거는 것이다.)

니가 보는 것이 현실이다, 가 아니라,
니가 보는 것을 넘어서 존재하는, 그것 바깥에 '분명 존재하는' 그것이 현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아무리 예측해도, 예측되지 않는, 그 존재가 현실이라는 것이다.
가령, 당신은 아내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갑자기 아내가 눈물을 흘린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당신은 굉장히 새로울 것이다.
(이는 이데아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당신의 모형과 모형 밖의 그것에 대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이를 절대 알 수 없다. 
이는 마치 운석처럼 날아들어와, 당신의 모형과 충돌하면서 깨닫게 되는 식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존재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를 뭐라고 부를지는 아직은 알 길이 없다. 우발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의식은 언제나 당신이 의식한 것으로만 세계를 구성한다. 헌데, 타자는 당신의 밖에 존재한다. 
바로 그래서, 코브에게 나타난 그 아내가 완벽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그 아내가 진짜 타자라면, 그 존재는 코브에게 상당히 불안함과 예측불가능함을 주게 될 것이다. 바로 거기서 '의식과 현실'이 대립되고, 의식이 깨지는 현상이 생긴다. (좀 특이한 방식으로 깨진다.)
영화에서는 재밌게도, 이를 그 다음에 코브가 빌딩 밑으로 추락하는 것으로서 이미지화시킨다. (의식이 깨지는 것을 건물이 모두 붕괴되는 식으로 표현한다. 의식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사유에 대한 특징적인 은유로서 '건축은유'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잡아내지 못한다. 인간의 한계는 인지적 한계에 걸쳐있다.
바로 그래서, '현실의 정체'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 코브는 그것을 지적한다. 완벽하지 못한 것, 바로 그 틈새가 현실이 나타나는 지점이다.
물론, 그럼에도 이 현실은 알아차릴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어떤 감각인지는 알 수 있다. 그것은 진짜 '충돌'로 나타난다. 그게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코브는 영화내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가 계속 죄책감을 가지거나, 달콤한 꿈에 빠져살거나 하는 모습들, 즉 그러한 것들,
사실상, 그가 겪는, 아내의 미움과 증오의 모습 마저도, 그것이 코브가 생각하는 의식세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코브는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런 모습을 (아내가 자기를 미워하는) 반복해서 그려낸다.
왜 그럴까? 사실 생각해보라. 그건 코브가 생각한 것이지, 실제로 아내가 진짜 살아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건 모르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아내와의 불화도, 코브가 조장해낸 '세계'인 것이다. 즉, 그가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상상인 것이다. 그는 그것을 믿고 산다.
하지만 코브가 마지막에 말한 대사는, 그러한 상상력에 완전한 균열을 가하는 것이다. 즉 "내 아내는 불완전해"라는 것이다. 
비로소 거기서, 이러한 '코끼리'의 순환에서, 빠져나갈 틈을 찾아낸다. 잘 모르겠지만, 예측 자체가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고,
그런 구별되는 감각을 기준으로 봤을 때, 지금의 모든 상황은 자신이 만들어낸 의식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코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벗어나고 말고는 코브의 선택이다.)

부언하면, 좋고/ 안좋고,를 떠나서,
코브는 그런 세계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며, 그것을 현실처럼 감쪽같이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이 세계는 뗴어버리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어떤 정보가 들어와도 (즉, 새로운 여자가 나타나서 코브에게 그것이 환상이라고 지적하더라도) 코브는 '코끼리를 생각하지마!'처럼, 계속해서 촉발을 그렇게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당신에게 상당히 오묘한 느낌을 준다.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은, 당신이 상상한 것이다. 알다시피 인간은 구성하고 투사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세계에 갇혀 있다면, 당신은 평생 현실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한다. 왜? 당신은 기껏해야 당신에게 들어온 현실만 본다.

놀런이 인셉션에서 열어놓은 구멍은, 굉장히 큰 구멍이다.
그것은, 당신이 '구성하고 투사하는' 세계와 대비하게끔, 굉장히 거대한 대립점으로 '뚫어놓은 현실'이다. 
당신이 아무리 추측하고 예측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세계에서의 인셉션이다. 

하지만 당신의 예측 범위 밖에 있는, 어떤 세계가 존재한다.
당신이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그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적어도 당신은 인셉션의 존재만큼은 자각할 수 있다.




이 성찰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골치아픈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제시한대로, 당신이 코마상태에 빠져있는 것만큼은, 논리적으로 구해낼 수 있다.
당신은 '코끼리!'와, '촉발의 순환', '예측의 불완전함(=뚫려버린 현실'을 생각하면 된다. 적어도 그것만으로 자각은 가능하다.



당신은 코브가 말했던 것의 감각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절대로 플라톤 어쩌고로 이해하면 안된다. 그것이 당신의 인셉션이다.
감각이 더 중요하다. 그 깨져있는, 뚫혀있는, 그 구멍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타자가 나타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구성을 해내는 존재일 것이다. (어쩌겠는가.)


우선은 이렇게 얘기해두자.

12개의 댓글

2017.03.23
재밌어 보임 ㅇㄷ
0
2017.03.23
나도 이런생각해본적있는데 이영화를 안봐봤네 나중에 꼭 봐야겠다.
0
2017.03.24
인셉션은 띵작이지
0
2017.03.24
코끼리 생각 안하려고 하니까 진짜 안되는데
0
2017.03.24
@노라
코끼리의 모습이 아닌 코끼리란 단어를 떠올리는것도 결국 코끼리를 떠올린거지
0
2017.03.24
@줫대로하자
[삭제 되었습니다]
2017.03.25
@asd776
ㄴㄴ 네가 말한 '코끼리에 부합하는 개념'과 이미지보다 그 단어를 먼저 떠올렸을뿐

그 단어를 떠올리며 연상되는, 즉 네가 말한 '코끼리에 부합하는 개념'과 이미지가 다시 촉발하게됌
0
2017.03.24
영화판으로
0
2017.03.25
코끼리가 연상하기 굉장히 어려울뿐더러 나같은 귀차니저들은 내머릿속에 있는 정보가 아닌걸 확인하자마자 보류하고 뒷문장을 읽을것…만약 모르는단어나온다고 멈추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국어시험때 힘들걸? 머릿속에서 ? 나온순간 스루하고 전체를 읽은뒤 유추하는게 정론이지
0
2017.03.25
ㅂㅁ
0
2017.03.25
지식글은 ㅊㅊ
0
2017.03.28
asdasdasd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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