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사랑아, 사랑아, 즈려밟힌 내 사랑아. (스압주의, 긴 글주의)

사연은 내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저자 박경철)에서 가장 씁쓸하고 안타까웠던 사연 중 하나임. 시간날때 한 번 읽어보셈.

 

 

 

사람이 사람을 사랑 할 수 있는 정도는 어느정도 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따라 죽는것,,? 혹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심장이라도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것,,? 혹은 그를,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칼로 가슴을 갈라서도 다 보여줄 수 없는 것..? 그런것이 사랑일까?

 

그리고 그 사랑의 끝은 영원히 함께하는 것, 결혼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일까?

 

레지던트 시절 나와 같은 연차로 트레이닝을 받았던 대학동기중에 가장 친했던 사람은 흉부외과를 전공했던 우선생이다. 우선생은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그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한편의 드라마다.

 

우선생의 아버지는 광산을 하시던 분이다,

 

우선생의 할아버지는 강원도 어디에서 큰 부자로 사신 분이고,우선생의 아버지는 부자집 외아들로 태어나 젊을 때부터 그야말로 온갖 사치를 다 누리면서 자라셨다, 아마 요즘식으로 치면 압구정 오렌지 정도는 족히 되셨던가본데, 그시절이 대개 그렇듯이 어른들이 맺어준 결혼을 하신 우선생의 어머니는 "인내"라는 전형적인 한국여인의 덕목을 전부 갖추신 분이다,

 

이쯤에서 대강 눈치챘겠지만, 우선생의 아버지는 탄광사업과 중기사업을 하느라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날렸다. 우선생이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해도 우선생의 집은 동네에서 제일 잘사는 집이었지만, 이후부터 우선생네의 고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선생의 아버지는 사회적 무능력자에 가깝다,

 

능력이 없어서 일을 하지 않으신다기 보다는 평범한 일은 아예 하려들지 않으셨다, 더우기 그 어른은 3남매를 둔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도 보이지 않았고, 우선생 어머니가 아이들 학비를 걱정하면 그동안 집에 있던 그많던 돈 다 어쨌느냐고,,? 오히려 타박만 하셨다.

 

우선생은 어머니의 눈물만 보고 자랐다.

 

아버지는 과거 부자시절의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매일 밤늦게 들어오시고, 어머니는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굳은일 마다않고 늘 남의집 일이나, 공장일을 하시느라 허리가 휘셨다, 가끔 아버지가 친구들과 먹다남은 갈비찌꺼기를 ( 갈비에 붙은 살은 다 먹고, 남은 뼈다귀를 집에 키우는 개에게 가져다 준다고 말하고 싸가지고 오셨다고 했다)  신문지에 싸오셔서 집에다 주시면, 어머니는 그걸로 갈비탕을 끓여서 우선생 형제들에게 먹이곤 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시절에 그럴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온가족이 같이 배를 주리다가 아이들에게 뼈라도 먹이기위해 갈비집을 기웃거리며 얻어온 것도 아니고, 혼자 친구들과 갈비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에게 개에게나 던져주면 딱 좋을 뼈다귀를 던져주고 탕을 끓여 먹으라고 하는것은 좀 심했다.

 

그렇다고 우선생 어른이 나빠서 그런것은 아니다, 그분은 그분대로 사업이 뜻한대로 풀리지 않고, 또 그런상황에서 그시대의 가치관으로는 그럴 수 있는 일이었을 뿐이다.

 

하여간 우선생이 고생한 이야기는 책을 한권써도 다 모자란다.

 

그는 그가 초등학교 4학년때 집이 망해서 이사를 가던날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했다. 삼륜차에 가재도구를 대충싣고 그동안 살던집을 떠나 새로살 집에 들어서던 날. 골목이 좁아서 삼륜차가 들어가지 못해 리어카에 짐을부려 밀고 끌어서 들어간 집은 온 사방에 대나무 깃발이 꽂힌 무당촌이었고, 그나마 이사 역시 아버지는 외출하시고 어머니와 어린 삼남매가 짐을 나르면서 어머니가 펑펑 울던 기억에, 또 이사 첫날밤 늦은 밥상을 앞에 놓고 삼남매를 부여안고 철철 흘리시던 어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그 이사가 바로 우선생의 일생을 지배한 질곡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날이후로 우선생은 방학때면 병원하는 고모집으로, 사업하는 외삼촌댁으로, 때로는 구청에 있던 이모부에게로 학비를 빌리러 다니는게 일이었다. 우선생은 인근 도시에사는 고모댁에 학비를 빌리러가면서도 터미날에서 내려 고모댁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차비가 아까워서였을게다.

 

고모부가 병원을 해서 살림이 넉넉했던 고모는 우선생이 대학시절 등록금을 빌리기위해 찾아가면 마치 남의집 개를 대하듯 하는 표정으로" 너네 형편에 대학을 다니는게 가당이나 하니? 사람은 자기 분수대로 살아야하는거야.." 라고 빈정거렸고, 외숙모는 6시간을 차를 타고 학비를 빌리러 찾아온  조카에게 점심 한끼 먹이지 않고 한 학기 학비를 내 던지듯이 건네주며, " 다른집 아이들은 몰래 아르바이트라도 한다던데, 넌 그런거도 안하니, 아니면 배불러서 못하니??" 라면서 우선생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때 우리시절은 대학생 과외가 금지되어 있었다.

 

사실 당시에 우선생이 의과대학을 다니는 것은 거의 사투와 다름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당시만해도 의과대학 학비는 일반대학보다 상당히 비쌌고, 학비뿐 아니라, 교재나 기타 비용이 정말 엄청나게 들었다. 때문에 실제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시골에서 의대를 보내려면 소팔고 논팔아야 한다는 부풀려진 얘기가 나올정도로 경제적인 부담이 컸는데, 의대는 커녕 고등학교도 겨우 보낸 우선생네 형편으로 학교를 무사히 마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느날 우선생 아버지가 우선생을 불렀다.

 

"내 친구가 시내에서 호텔을 하는데 말이야. 그집에 아들놈이 영 꼴통이라네. 그레서 그집에서 몰래 입주과외를 할 대학생을 구한다길래, 얼른 널 시키겠다고 얘기했지. 매달 월급도 주고 밥도 먹여주고, 학교도 데려다 준단다, 내일 당장 짐싸서 그기로 들어가거라,"

 

우선생은 이일을 좋아할수도 그렇다고 싫어할 수도 없었다,

 

일단 매일 학교갈 차비를 걱정하고, 친구들에게 눈치밥먹어가며 담배 한개피 얻어피던 처지에 월급을 주고, 먹고 재워준다니 더할나위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의대학제상 시험기간에 들어가면 남의집 과외선생을 하다가는 자칫하면 유급을 당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정해진 일이라 그집으로 들어갔지만, 우선생이 그집에서 과외를 하던 4개월간 우선생이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과외보수를 직접 받으시는 바람에 과외보수를 한번도 구경하지 못했다.더구나 한참 사춘기에 이르렀던 그집 딸이 우선생을 지나치게 괴롭히고 인간적으로 경멸을 하는 바람에 결국 못이기고 넉달만에 과외를 그만두고 나왔다,

 

우선생의 말을 빌면 머슴살이 넉달에 남은건 고기 실컷 먹은거라고 했다.

 

우선생의 청춘은 그렇게 돈에 찌들리면서 지나갔지만 그나마 우선생을 지켜주었던 것은 대학 2학년때 만난 여자친구의 힘이컸다.

 

그녀는 우선생이 힘들때마다 옆에서 지켜주었고, 심지어는 우선생이 필요한 교재를 복사하거나, 실습에 필요한 비용까지 자기 용돈을 털어가며 보태주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그녀의 재기와 발랄함은 우선생뿐 아니라 우리 친구들 모두를 치어업 시켜줄 정도로 멋진 것이었다.

 

그녀와 우선생의 사랑은 정말 의심의 여지가 없는 특별한 사랑이었다. 

 

드디어 우선생이 어떻게 어떻게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수련을 마친 후 우선생에게 던져진 다음 숙제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요새는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해도 사회가 그렇게 맑지는 않았다,

 

당시만해도 의사들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데도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학교성적이야 어떻던 그것은 형식에 지나지않고 대개는 의국에서 지원자를 사전에 선정하고( 물론 인턴 시절의 인간적인 면도 많이 고려하지만, 일부과목들은 집안 배경이나, 경제적 능력이 더 중요했다) 시험은 형식적으로 치르는 것이었다,

 

당시 우선생은 자신의 꼼꼼한 성격상 성형외과를 희망했지만, 사실 그것은 희망에 지나지 않았다.

 

이말이 파문을 일으킬지는 모르겠지만, 당시만해도 성형외과를 지망하려면 우선생 "따위"의 집안 사정으로는 언감생심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일반인들 생각에는 지금 인기있는 일부 특수과들에 의학도들의 경쟁이 치열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고, 오히려 경쟁률이 낮은데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것은 첫째 의사라면 메이져과를 선택해야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하나고, 둘째는 해당과의 선발과정에서 일어나는 묘한 불협화음이 싫거나, 혹은 그것을 감당 할 능력이 없어서이다.

 

하여간 우선생은 자신이 다루고 싶었던 분야를 포기하고, 같은 외과계열이긴 하지만, 지향점이 너무나 다른 흉부외과를 선택했다, 그것은 어차피 재미있는 것을 할 수 없다면 의미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러고보니 내게는 흉부외과를 전공한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지금 같이 근무하는 박선생도 그렇고, 대학동기 우선생도 그렇고, 비록 학교는 다르지만 10년째 막역한 정을 나누고 있는 최선생도 그런데, 그러고보면 나도 출신성분이 순깡촌 출신에 프로레탈리아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녀석이 흉부외과를 지망하자, 녀석의 여자친구가 강한 반대를 했다.

 

오빠가 비뇨기과 의사였던 그녀는 의사들의 미래와 소위전망이라는 것에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오빠. 흉부외과를 하면 굶어 죽는데.. 전문의 마치고나서도 개업을 못한다고 취직 할 때 다른과보다 월급도 반만주고, 맨날 병원 당직을 도맡아 시킨데. 그거 절대 하면안된데,, 오빠 지금 다른과에 자리가 없으면 차라리 군대 갔다와서 다시 시작해,, 흉부외과가 뭐야..만약 흉부외과 의사를 할거라면 나하고 결혼할 생각은 버려.. !!" .. 그녀의 반대는 정말 완강했다.

 

우리 친구들이.. 꼭 그런게 아니다,.. 미국에서는 정말 흉부외과 의사가 그레이트 서젼이다, 미국에서는 의사중에 의사가 흉부외과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심장병이 증가하면서 흉부외과 의사들이 가치가 돋보일거다,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다,, 등등 온갖 감언 이설로 그녀를 설득하고 달랬지만 그녀의 반대는 정말 완강했다.

 

사실 그녀가 옳았다,

 

나도 그때는 흉부외과를 지망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다른 친구들도 "한번 해볼까?" 라고 한번씩 고려 할 만큼 정말 매력적이고, 보람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현실은 다른것이다.

 

흉부외과 의사란 꿈을 먹고 살기에는 가장 좋은 전공이지만, 밥을 먹고 살기에는 가장 고달픈 전공이었다. 병원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흉부외과의사가 없으면 응급실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이긴 하지만, 대신 심장 수술을 하지 않는 병원에서는 수입면에서는 천덕꾸러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장수술이래야 전국에서 손가락을 꼽을정도의 병원에서만  이루어지고, 나머지 병원에서는 심장수술 시스템을 엄청난 돈을 들여 갖출 수가 없다, 때문에 흉부외과의사는 그저 외상으로 심장이나 폐를다친 환자들을 상대로 돈안되는 수술이나 하고 ( 그러나 이런환자들은 그병원에 흉부외과 의사가 없다면 다른병원으로 이송중에 그대로 죽게된다 ), 나머지는 다른과 환자들이 가슴에 탈이나면 이리저리 컨설트나 받는것 이 전부다,

 

병원경영자의 입장에서는 폐가 파열되어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5,6 시간씩 피를 쏟아가며 수술을해도 쌍꺼풀 수술비의 절반도 안되는 흉부외과는, 그야말로 없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있어봐야 돈이 안되는 계륵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정말 한참 후에나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자기가 선택한 전공을 수련받기 위해 각자 자신의 길로 들어갔다.

 

이제 캠퍼스라는 보금자리에서 같은 여건에서 같은 과목을 공부하던 친구들이, 서로 다른 전공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가는 동료가 되었다.

 

일년차 시절 어느 겨울날,. 그동안의 혹독한 수련이 어느정도 마무리되고, 이제 한달만 있으면 새로운 일년차가 들어오고 우리는 이년차로 승급을 한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매일매일 휘파람을 불면서 달력에서 남은 날짜를 지우던 때, 우선생으로부터 삐삐가 왔다,

 

남겨진 번호는 병원 10층에 있는 휴게실이었다,

 

잠시후 우선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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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에서 만난 우선생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우선생은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이 친구는 나와 고등학교와 대학을 같이 다닌 동문이었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반이 된적이 없어서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소원한 관계도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대학에서 다시 만나고, 이제 3년의 인연을 넘어 6년의 인연을 새로 만들었으니 저절로 친해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원체 내성적이고 다른사람과 쉽게 사귀지 못하는 친구인지라 대학에서도 우선생과 가까워지는데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었다.

 

그러나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대개의 특징처럼 우선생의 내면세계는 상당히 넓고 깊은데가 있었다, 본인말대로 자습서 한권 마음대로 사보지 못한 처지에 독서량이 많았다거나, 그렇다고 숨겨진 바이올린 실력이 있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어린시절부터 가난과 싸우면서 체득한 나름의 인생관이 있었고, 특히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우선생의 어머니에대한 사랑은 자식으로서 부모에대한 사랑뿐 아니라, 세파를 헤치면서 살아온 강한 동지애와 연민같은것이 겹쳐진 강력한 유대같은 것이었다,

 

우선생의 어머니는 우선생을 의사로 만들기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했다고 한다. 공장에서 일을해서 몇푼 벌면 그중에 반을 우선생의 학비로 사용했고, 그덕에 우선생은 그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중학교때까지 학원에서 영어,수학을 배울 수가 있었다고 했다, 민망한 얘기지만 우선생의 어머니는 맏자식을 의사로 만들어서, 가족의 크라이시스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우선생은 우선생대로 스스로 의사가 되어서 그 고단한 질곡의 가족사를 구원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우선생이 의대를 진학하는 일은 어찌보면 두사람에게 일종의 성전(聖戰)이었던 셈이다.

 

그런 우선생이 흉부외과를 지망했으니 정말 문제는 문제였다.

 

우선생의 집은 안그래도 경제적으로는 이미 사망상태였다, 우선생 어머니가 우선생과 동생의 대학교육을 위해 주변사람들과 사돈팔촌까지 아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돈을 빌리는 바람에 빚이 만만치 않았는데, 그나마 그 빚들중에는 2부 ,3부로 급전을 빌려 쓴 것들이 많아서 매달 우선생의 전공의 월급을 모두 쏟아부어도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조차 메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요즘은 그런일이 잘 없지만, 당시만해도 가끔 판검사 의사는 열쇠가 3개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사회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비록 일부의 경우라고 해도 그런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

 

당시만해도 시골에서 과수원팔아서 아들하나 잘키워 판검사 의사만들면 온 집안이 형편이 풀린다고 믿었던 그런 시기였고, 그렇게 온집안의 희생과 기대를 짊어진 젊은 고시합격자나 의사들이 자신들에 지워진 짐을 덜기위해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결혼을 하게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것은 대개 졸부집안에서 자신의 부가 부끄럽거나 부의 형성과정이 두려우면 어떻게해서라도 판검사 사위를 얻어야하는 사람들과, 딸자식이 비록 좀 못나고 좋은 처신을 못했다해도 의사사위 하나 구해다 놓으면  모두 묻힌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이해가, 어렵사리 아들을 판검사 의사로만든 사람들의 보상심리와 일치해서 생긴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했다.

 

물론 그때 그렇게 의사사위를 얻은 사람들이 요새는 후회하는 분들이 꽤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런일들도 당시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었음은 분명했다,

 

.............

...

 

휴게실에 올라가보니 우선생이 창밖을 내려다보며 넋을 놓고 정신이 팔려있었다.

 

"박선생,, 나.. 어떻하지? 소연이가 헤어지가고 하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나는 그녀의 반대가 너무 완강해서 내심걱정은 했지만, 그래도 두사람의 사랑은 세속적인 장벽을 모두 뛰어 넘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실제 그녀도 마음을 다져먹고 우선생을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우려했던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어느 일요일에 우선생의 어머님이 나를 찾아 오신적이 있었다. " 이보게.. 자네가 우리형편을 잘 알지 않는가,, 쟤가 지금 연애하느라 저러는데 내가 애미가 되서 가슴에 못을 박을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우리가 다 죽을 수도 없네., 지금 나선 중신자리에서는 우리집 빚을 다 갚아주고 또 살 집도 마련해주고, 우리 쟈가 레지던트 마칠때까지 생활비까지 대준다는데.. 소연이네 집에서는 택도 없다고 하잖는가? ,, 이쯤에서 둘이서 갈라서면 서로 양집에서 안좋아하는 결혼을 할 필요도 없고, 우리도 살고, 우리 쟈도 장래를 봐서는 그게 사는게 아닌가? 어떻게 자네가 쟈를 좀 설득해주게.."

 

그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사실 그녀쪽에서도 두사람의 만남에대한 반대가 아주 극심했다,

 

그쪽은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는 집안인데다, 당사자도 재색을 겸비한 재원이고, 또 마침 오빠가 의사였기 때문에, 우선생이 택한 전공이 얼마나 미래가 우울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특히 오빠의 반대가 아주 완강한 상태였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선생의 어머니가 그녀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얘기하셨다고 한다.

 

" 나는 너희들 결합을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내 아들 뭐하나 제대로 해준것도 없고, 부모로서 뭐 하나 큰소리 칠 일을 한것도 없다, 그렇지만 시집 올 당사자가 내용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얘기는 해줄테니, 결정은 네가 해라,, 우리집에 지금 빚이 대강 몇억이 된다,, 아버지는 이십년을 놀았는데, 그래도 삼남매 대학 시키고 이때까지 먹고 살았으니 그만 빚있다고 나를 손가락질 하지는 마라,, 그렇지만 자식에게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미안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 빚은 야가 다 갚아야한다,, 아래 기집애 하나 시집가는거야 지가 가던말건 알아서 할일이지만, 아직 학교 다니는 막내가 빚을 갚을 재간도 없고, 이젠 빚도 더 낼 데도 없고,, 빚쟁이들도 아들 의사만되면 갚는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으니 도리가 없다,, 너네들이 벌어서 빚을 갚던지,, 아니면 온식구가 나자빠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다면 내 반대 안하마,, 내자식 좋다는데 그거 말리고 싶은 부모가 어딨겠나,, 나도 네가 욕심난다, 이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저런 처자가 내며느리가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루에 골백번도 더 한숨을 쉰다,, 이젠 니가 알아서해라,,"

 

그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일주일을 혼자 울었고, 그리고는 결국 우선생에게 결별을 선언했단다,

 

그것도 어제 우선생이 오프날 저녘에 만나 보통때와 다름없이 같이 저녘을 먹고 헤어지면서 그녀의 차로 우선생을 병원에 데려다주면서 차에서 내리는 우선생에게 키스를 한번 해 달라고 한다음, 병원앞이라 우선생이 우물쭈물하면서 가볍게 입을 맞추자, " 오빠 잘 살아,, 사랑해..!" 라는 말을 남기고 그길로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인턴중에 그녀와 고등학교 동기생인 여선생이 "자기는 도저히 그런 상황을 같이 이겨낼 자신이 없다."는 뜻을 담은 그녀의 편지를 우선생에게 전했단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 착하고 내성적인 우선생이 편지를 손에들고,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강물처럼 흘렀고, 그의 얼굴은 절망과 비통함으로 일그러져있었다,

 

그랬을게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했다면, 두 사람중의 한사람이 포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포기가 사람에 대한 포기가 아니고, 그가 살아온 환경이나, 배경이 이유가 된 것이라면,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그날 우선생이 사표를 내기위해 나와 함께 흉부외과 치프를 찾아갔다,

 

나도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아랫연차의 심상찮은 기색에 놀란 흉부외과 치프가 우선생과 나를 병원앞 삼겹살집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자리에서 우선생이 택한 전공이 지금 우선생을 절망으로 몰아 넣었다는 사실을 들은 흉부외과 치프가 술을 한잔 마신 후 가만히 천정을 쳐다보더니 주루륵 눈물을 흘렸다,

 

아마 우선생의 절망감이 그에게 전이된 탓이었을게다,,

 

그날 치프가 우선생에게 일주일간의 휴가를 줬다, 일주일을 생각해보고 그래도 그만두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했다,

 

우선생은 그길로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다음날 우선생의 실연사건은 이미 온 병원내에 다 퍼져있었다,

 

내가 수술방에 들어가서 우리과 환자 수술을 준비하고 있는데, 위쪽에서 환자를 마취할 준비를 하시던 마취과 스텝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 박선생.. 우선생 그만뒀어..? .. 그친구 참 일잘하던 친군데,, 잘 했어,, 그래도 진작 그만두지,,일년을 버린거잖아,,박선생 자네가 친구니까.. 이번에 진짜 그만두라고 확실하게 말해,, 지금이라도 그만둬야지.. 안그러면 진짜 큰일나,, 너네들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데,, 마치고 나와봐,, 그리고 남 이야기 할 것도 없어,, 너도 늦기전에 그만둬라,, 외과도 해봐야,,그거 별로 싹수 없다,, 피터지게 고생만 한다.. 쯧쯧,, 얘들아,,내가 이렇게 말 할 때 니들 바보짓 하지말고 진짜 그만둬라,, " 

 

그때 그분은 우리를 진정으로 아껴서 그말씀을 하신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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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은 그렇게 헤어졌고, 우선생은 삼일만에 병원으로 다시 복귀했다.

 

우선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치 마녀에게 마음을 팔아버린 사람처럼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냥 자기에게 주어진일에만 몰두했다.  원래 내성적인 친구가 말 수를 잃어버린 것이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식당에서 마주 앉아도 그냥 묻는말에 반응만 할 뿐, 다른사람에게 단 한마디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그것은 그 스스로의 자기방어 였을것이다.

 

어차피 사람이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을 받을 대상이, 원망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원망을 받을 대상이 있기 마련이 아니던가...그러나 그때 그는 분명 사랑을 하고 있으나 그 사랑을 받아 줄 대상이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독존함으로서 사랑도 원망도 혼자서 담아내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그런 그를 잘 이해 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여러가지 우려가 있었지만 그래도 우선생에게는 자기 스스로 이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이 상황은 우선생 입장에서는 다시 어머니 자궁속으로 기어들어가지 않는 한 자기 스스로 해결을 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이렇게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은 가혹하다,

 

그것이 사랑이던, 돈이건, 질병이건, 그 아픔이 자기 선택의 결과이거나 자신의 귀책사유가 아닐 때, 인간은 절망하고 좌절한다,, 황후장상의 씨가 따로있다더냐는 "황소"의 말이 수천년의 역사를 가로질러 오늘날 이땅에까지 미치고 있으니, 이런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인간의 역사가 굴러가는 만큼 계속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선생의 말수는 눈에 띄게 줄어 들었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철저했다. 그렇게 아픈 열병도 결국 시간이 약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년차말이 되었을 즈음, 내가 막 수술을 끝내고 나오는데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던 우선생이 나를 보고 말했다 " 박선생 바빠? 안바쁘면 시간날 때 차나 한잔하자 !"  .. 그러고보니 나도 내코가 석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보니 우선생과 제대로 이야기 한번 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날 저녘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우선생 당직실로 찾아갔다.

 

흉부외과 당직실은 대개 중환자실과 붙어있어 약간 어수선한데, 그날은 마치 독서실 처럼 조용했다. 

 

당직실에 들어가니 우선생이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쓰다가 내가 들어서자 수첩을 덮고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각자 담배를 한개 집어들고 불을 붙인 다음, 우선생이 말을 열었다.

 

"박선생, 나 결혼한다.." 

 

세상에 뜬금없이 결혼이라니.. 녀석이 그새 언제 여자를 만나고, 또 언제 결혼 약속까지했단 말인가?, 더구나 설령 결혼을 한다손치더라도 외과 그것도 흉부외과 2년차가 결혼을 하다니, 그것이 가당이나 한 얘기인가 말이다..

 

" 지난번에 엄마가 얘기하던 여자 있지? 그 아버지가 건설회사를 하는데, 오빠가 좀 꼴통이래, 게다가 그집 어른이 심장수술을 받은적이 있다네.. 집안에 주치의 하나두자는거지 뭐,, 우선 우리집에 빚도 다 갚아주고, 내 대학원 학비에 당분간 생활비도 책임을 지겠다네,, 고마운 일이지뭐,, 엄마가 아주 강하게 원해,, 너도 알다시피 우리집에 그 이상의 선택도 없고,,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도 하는데, 까짓거 결혼 한번하고 신수 확 풀리는거지,, 도랑치고 가재잡는거야,,"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우선생이 얘기를 다시 이어갔다

 

" 오프때 서너번 만났어, 뭐 영 처음본 얼굴도 아니고, 그래도 만난 회수는 적어도 얼굴 본지는 거의 일년세월인데 뭐, 사람도 착해, 내가 부모가 이남자한테 시집가라,, 하고 말하면 무조건 그렇게 시집가는게 정상이냐고 물어보려다가 참았어, 그 여자나 나나 뭐가 다르겠어,,? 다행히 사람은 착한거 같애,,이뿌고.." 

 

사람이 착하고 이쁘다니 달리 할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입에서는 왠지 선뜻 축하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우선생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흉부외과 의국에서도 우선생네 사정을 잘아는지라 2년차 중반의 결혼을 양해했고, 우선생의 부모님은 행여라도 결혼이 늦춰질까봐 노심초사하셨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선생의 마음은 오리무중이었다.

 

결혼날짜가 잡히고, 주말이되면 약혼자가 도시락을 싸서 병원으로 찾아왔다. 적어도 겉으로는 축복받은 커플처럼 사랑스럽고 다정한 그림이었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부인될 사람이 좀 모자라거나, 아니면 어디 흠결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얼굴이라도 박색이었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나 우선생이나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녀 역시 어리석을정도로 착하고 고운 사람이었다, 하긴 요즘 세상에 부모가 하라는 결혼을 그냥 할 수 있다면 그녀 역시도 드문 사람임은 분명한 것이다.

 

그렇게 두사람이 스무번정도 만나고 그해 겨울되자 3년차 진급을 앞둔 우선생의 결혼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만해도 그것이 우선생의 운명을 뒤집어 놓을 비극의 뿌리가 될 줄은 아무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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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선생이 결혼을 사흘 앞둔 날이었다.

 

수요일 저녘에 당직을 위해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의국에서 챠트를 보고 있는데, 우선생이 찾아왔다, " 어 ,, 우선생.. 오프야 ? 요새 흉부외과 좋아졌네. 아무리 아랫것들이 들어와도 그렇지 주중에 오프를 받아? 왜 결혼반지 맞추라고 치프가 나가라데..? 제수씨 밑에 기다려? " 우선생은 가벼운 농담을 섞어 건낸 내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박선생.. 지금 소연이가 찾아왔어.. "

 

불길한 말이었다. 형편없는 삼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 아닌가? 돈때문에 헤어진 애인이 결혼식을 3일 앞두고 나타나다니..  " 그래.... 그래서 어쩔려구,,?" 내 말에 우선생이 " 모르겠어, 방금 의국으로 전화가 왔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박선생 내 삐삐 대신 좀 받아줘, 우리과 1년차들만 놔두기가 좀 그래,, 금방 올께.."

 

뭐라고 하겠는가,, 나로서는 허리춤에 우선생 삐삐까지 같이 차고 부디 별다른 마음의 상처없이 두사람의 재회가 마무리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날 우선생은 새벽이 다되서야 내게 삐삐를 찾아갔다, 나는 그때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날 무슨일이 있었는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녀석이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했다,

 

다음날 오후에 수술실에서 다시 마주친 우선생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미묘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위해 고민을 하고 있는듯 했고, 지금 그의 판단과 선택에는 어떤 사람도 영향을 미쳐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우선생의 아랫배에 가벼운 펀치만 한대 먹인 채 스쳐지나갔다,

 

참 아픈일이었다.

 

이년전 인턴시절 금쪽같은 2박 3일간의 여름휴가를 받았을 때, 두사람이 벌인 유쾌한 소동이 생각났다, 그때도 이미 그녀의 집에서는 우선생의 집안 사정이 여의치않다는 사실을 알고 두사람의 만남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두사람이 꾸민 일박이일간의 제주여행 음모가 벽에 부닺쳤다,

 

그래서 그녀는 제주에서 열리는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명분으로  검은색 정장 투피스를 입은 채 집에서 나오고, 우선생은 의국에 가운을 벗어던진 복장 그대로 나와, 병원 로비에서 만난 다음 병원과 인접한 의과대학 학생탈의실에서 그녀가 준비해 온 폴로 티셔츠를  커플룩으로 갈아입었다,

 

나는 그둘이 여행을 떠나던 날, 귀엽기도하고 측은하기도하고, 한편 안타깝기도했는데, 그때 녀석이 그녀의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나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 야..! 형님 신혼여행 가시는데 공항까지 차도 안태워주냐.!!"

 

이런말을 옮기기가 부적절하지만 그날 두사람은 제주의 푸른바다가 발밑에까지 들어오는 하이야트 호텔에서 하루를 같이 묵었고, 만난지 몇년만에 그날 처음으로 서로가 한 몸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녀석이 여행을 다녀와서 그날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목을빼고 기다렸고, 여행을 다녀온 우선생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그날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을 내게 모두 들려주었었다  

 

그날 저녘에도 우선생은 내게 삐삐를 맡기고 밖으로 나갔다 ,

 

내게 비퍼를 맡기고 돌아서는 우선생의 뒷모습에 그때 두사람의 혹은 우리들의 아름다웠던 젊은시절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았다, 삶이 열정과 사랑으로만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닿는 순간 문득 우리가 이미 청춘이 아닌 기성세대로 편입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랬다, 청춘의 끊는 피였다면 나는 우선생에게 그녀와 그길로 도망가라고 부추겼을 것이고, 우선생도 열에 들떠 뒷일을 돌아보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내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새 나도 우선생도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청춘의 종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도 우선생은 새벽에 돌아왔다, 그사이 10시경에는 흉부외과에 응급수술 때문에 우선생이 호출되었지만, 내가 흉부외과 시니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었으며, 또 11시경에는 우선생의 신부가 야식을 사들고 병원 로비에와서 내 허리춤에 걸려있는 우선생의 삐삐를 울렸다,

 

금요일 저녘 , 토요일 결혼을 앞두고 다시 우선생이 사라졌다,

 

결혼을 위해 공식적으로 금요일 오후부터 오프에 들어간 우선생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우선생집에서는 우선생을 기다리다가 내게 연락을 했고, 나는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우선생 집이 발칵 뒤집혔다,   

 

도리없이 내가 우선생집에 찾아가서 저간의 사정을 대충 설명했다,  무능력하지만, 권위적인 우선생의 아버지는 노발대발했고, 우선생의 어머니는 어쩔줄을 모르고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선생 어머니는 " 그래도 지가 그게 땡기면 할 수 없지.. 사람이 땡기는건 할 수 없는 거지.. 어쩌겠어.. 그게 지가 사는 길이면 어쩌겠어..."하시면서 한숨만 쉬셨지만, 우선생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안절부절 당장 두년놈의 다리몽댕이라도 부러뜨리겠다는 기세로 목소리를 높이셨다.,

 

" 박군,, 자네 말이야,, 그 소연인가 하는 얘 집이 어딘지 알지? 거 무슨 빌라라고 하던데, 나하고 거기 같이 좀 가자구,, 내 이놈의 집구석을 그냥,, 누구 집안 말아 먹을려고,,"

 

우선 두분을 가라앉히고, 우선생이 그렇게 막무가내의 성격은 아닌편이니 아마 뭐라고 연락을 할 것이니 아들을 믿고 기다리시라고 설득한 다음에 병원으로 돌아왔다,

 

정말 한시간이 열흘 같았다.

 

병원에서는 우선생의 의국동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초조하게 우선생의 연락만 기다렸다, 당장 내일이면 의국결혼식에 참석하게 될 동료들이 모처럼 흥겨운 잔치를 준비해야하는 날이었다, 다들 모처럼 양복을 드라이 보내고 그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당사자가 사라졌으니,, 정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새벽 4시가 되자 우선생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로 우선생 동생 선희의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 오빠,, 우리오빠 지금 집에 들어와서 엄마 아빠하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내일 결혼식은 할 거 같아요,, 엄마가 그렇게 전해드리래요,," .. 전후사정이야 어쨌건 간에 내일 결혼식은 예정대로 열린데니 다들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날이 우선생을 가혹한 운명의 질목으로부터 꺼집어 낼 수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나중에야 알게되었다,  

 

인간은 그런것이다.

 

고장난 버스는 처음에는 한두사람의 힘으로도 막을 수 있지만, 버스가 내리막길을 달리면서 이미 가속도가 붙어버린 다음에는 사람을 치고, 다른 차를 들이받고, 결국 인도를 덮치고서야 질주를 멈추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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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우선생의 아버지는 우선생을 앉혀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 나도 네 마음 이해한다, 그렇지만 남자는 가족을 위해 죽을줄도 아는게 남자다."

 

그러나 우선생 아버지는 우선생이 초등학교를 다닐때 부터 그날까지 단 한번도 가족을 돌보지 않았던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죽는게 남자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우선생의 아버지셨다.

 

우선생이 결혼을 결심한 것은 오로지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일생동안 굳은일을 도맡아 하시면서도 평생을 남에게 아쉬운 소리만 하면서 사셨던 분이고, 지금 이순간에도 상황을 아파하는 유일한 가족이기도 했다, 우선생의 아버지도, 동생도, 누나도, 모든 사람들이 혹시 "이 결혼이 깨어지면 우리는 어쩌나.."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그나마 "그래도 도리없다..차라리 잘된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다음날 오후에 우선생의 결혼식이 열렸다.

 

우선생의 신부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지금 자기가 팔짱을 끼고 있는 남자의 가슴에 어떤 불덩어리가 들어 있는지를 몰랐다, 그녀는 그저 부모님이 정해준 남자와 선을보고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이다 싶어, 부모님이 정해준 날짜에 결혼식을 올린 것일 뿐, 자신이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행복한 신부일 뿐이었다,

 

식이 끝나고 신부의 친구들이 두 부부를 둘러싸고 사진을 찍고, 부케가 던져지고, 박수가 일고, 물방울과 드라이 아이스가 허공에 날리고,,, 그렇게 결혼식이 끝이났다.

 

식을 마치고 두사람이 신혼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떠나는 차에 같이 탔다,

  

그때는 병역미필자의 해외여행이 금지되어 있어서, 우선생의 신혼여행지가 제주도 정해졌다.

 

조수석에 앉아,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신랑 신부를 위해, " 야 새 신랑, 신부도 좀 다정하게 꼭 안아주고 그래라, 이거 원, 아무리 중매결혼이지만, 너무 썰렁하다 " 어슬픈 내 농담에 우선생도 어슬픈 웃음으로 대답했다. 내 나름대로 분위기를 뛰어보려고 자칫하다가는 "봐,, 형님이 진짜 신혼 여행에는 이렇게 딱 배웅을 하잖아 !" 이런 어이없는 농담까지 할 뻔했다.

 

두사람이 탑승구를 빠져나가고, 그제서야 우리는 어느정도 안도를 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때부터 내내 사슴같은 눈을 가진 저 착하고 순해빠진 신부가 눈에 걸렸다...

 

............

 

우선생은 3박 4일간의 신혼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왔고 나는 우선생이 돌아온 주말 오후에 우선생과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야, 우선생, 신혼 여행 좋았어? 야,, 부럽다,, 어떤놈은 피바가지 쓰면서 수술실에 짱박혀 있고, 어떤놈은 새깔깔이 마누라 얻어서 제주도 신혼여행 다니고,, 아야,, " 나도 괜히 오버를 하면서 우선생의 기분을 살폈다,

 

우선생은 밥을 먹는동안 내가 던진 질문이나 농담에 내내 건성으로 대답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선생 제안대로 맥주를 사들고 의과대학 뒤편 농구장 스탠드에 앉았다.

 

이미 밖이 캄캄한데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부생들이 런닝셔츠 바람으로 땀을 뻘벌 흘리며 길거리 농구를 하고 있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우리도 저랬었는데 말이다..

 

" 박선생,, 신혼여행가서 말이야,, 사실은 그냥 잤어,, 한번 생각을 해봐,, 불과 며칠전에 소연이하고 같이 바다를 바라보던 그장소에 신혼여행을 갔는데,, 도착해서 객실 베란다에서 맥주 몇병 마시고, 파도소리 듣다가 방에 들어가보니,, 자고 있더라고,, 아주 순진하고 착한 여자 같은데,, 아무것도 몰라,, 나도 대체 그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3일동안 내내 우왕좌왕했어.. 더구나 그 사람이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어서 ,,, 어딜갈까 물어도 ,, 아무데나 그러지,, 뭘 먹고 싶냐고 해도,, 내가 먹고 싶은거 먹자고 하지.. 하고 싶은거 없내고 물어도 그냥 웃기만하지,, 내가 찍자고 안하면 사진찍자 소리도 안하지.. 내가 바보하고 결혼한건지,, 아니면 천사하고 결혼한건지도 모르겠고,, 분명히 신혼여행가서 아내하고 있는데 꼭 내내 바람피다 들킨 놈같은 기분이었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안봐도 눈에 선한 장면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의 우선생과 활달하고 적극적 성격의 소연씨는 누가봐도 이상적인 커플이었다, 그들이 한창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나도 우선생의 내성적기고 어두운 일면을 그녀가 충분히 보완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사람이 다 그모양이라니..

 

" 그리고 결혼전에 말이야,, 소연이가 병원에 찾아와서 뭐라고 했는줄 알아..? .. 자기가 잘못했다고 오빠없이는 못살겠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나가겠다고,, 너무 보고싶었다고 ,, 그렇게 말하더군,, 물론 내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첫날은 결혼 한다는 말을 못했어,, 그날도 사실 이자리에 있었어,, 인턴때도 소연이가 찾아오면 여기 자주 왔었잖아,. 밤새 얘기를 많이했지,, 침착하려고 애를 썼어.. 그순간 당장이라도 결혼을 취소하고 소연이를 되찾고 싶었어,, 근데,, 결혼전에 이미 처가에서 돈이 많이 건네졌어,, 우리집 결혼 준비도, 신부 예물도,.모든걸 그쪽에서 부담했고,, 또 엄마를 보면 우리집 빚문제를 이미 그쪽에서 청산한 눈치였어,, 나하나 몰라라 하면 그만이지만,, 식구들로봐서는,, 아니 엄마로 봐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거지,, 사람이 그럴수도 있더군,,"

 

그럴수 있겠다 싶었다,

 

심중이 깊은 우선생이 이제서야 그 이야기를 하는걸로봐서 스스로도 많이 힘들었던 것이 분명했다,

 

"박선생,, 그리고 사실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걸 떠나,, 좀 지나친 분이야,,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엄마는 일주일에 한두번은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어,, 아버지는 당신이 예전에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것 ,, 평생을 그 너울을 쓰고 사신분이야,, 밥이 부실하다고,, 남편 용돈을 제대로 안챙긴다고,, 그나마 술 한잔하시면 그냥 이유도없어,, 남들은 뭐 부부싸움 하다보면 그럴수도 있다하고 쉽게 말하기도하지,, 하지만, 어릴때 부터 엄마가 아버지에게 구석에 몰려 강아지처럼 웅크리고 매를맞는 모습을 보고 자라다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줄 알아? .. 사람이란 매에 길들여 지는거야,, 전쟁에서 수용소에 갖힌 사람들이 온갖 가혹행위를 당하다가도 나중에 재판에서는 간수들의 편을 들게되지..사람은 그런거야,, 그냥 아버지는 우리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한번 웃어주거나,, 한 열흘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너무 감사한거야,, 때론 존경스럽기도 해,, 그런거 알아?.. 예과 1학년때 동네형한테 기타를 얻었어,,이사가면서 준건데 꽤 쓸만했지,, 그런데 어느날 기타를 치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기타를 빼앗아서 방바닥에 몇 번 도끼질을 하시더라구,, 기타가 산산조각이 났지.. 그날 한잔 하셨는데,, 엄마가 집에 안계셨어,, 내게 의대생이 노래나 부르고 놀다가 만약 한해 유급이라도 하면 그날로 죽을줄 알라고 그러시더라구,, 애지중지하는 기타가 박살이 나는데,, 그게 오히려 감사한거야,, 왠줄알아? 그 기타로 내 머리통을 때린게 아니었거던,.그때 어떤 기분을 느꼈는줄알아? .. 아버지와 아들사이의 뜨끈한 부정같은거,, 왜 알지.. 보통 아버지 성격에는 맞아 죽어야 하는데,, 그래도 사랑하는 아들이라 봐주는 느낌.. 뭐 그런기분이 든느거야,, 그런데 내가 만약 결혼을 포기하고 사단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 것 같애?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손에 아마 그길로 맞아 죽을지 몰라..,,"

 

우선생에게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우선생이 고등학교 시절, 집에돌아오는 골목에서 아버지가 왠 여자를 끌어안고 있더라거나, 아버지에게 항상 여자가 있었다는 정도는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아는 우선생 아버지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실패를 하셨다 할지라도 호탕하고 스케일이 큰 분이셨다.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우선생의 감춰진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박선생,, 너 기억나? 우리가 언제부터 친해졌는지? ,, 대학때 말이야,, 잘 알겠지만, 내 별명이 빈대였잖아,,항상 담배도 얻어피고 식당에서도 누가 먹고난 밥판 넘겨받아서 그 밥판에 밥하고 국을 다시 받아다 먹었지,, 집에서 나설 때 엄마가 1500 원 을 줘,, 그럼 차비빼고 500 원 남는데., 시험 안칠때는 차비까지 아끼면 한달에 한 이만원은 모아,, 그러면 다시 그걸 엄마를 줬지,, 그때마다 엄마가 나를 잡고 울어,, 친구들도 못마땅했겠지.. 내과하는 준호 그녀석 말이야,, 삼학년땐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나보고 음료수 한잔 마시러 나가자더라구,, 우리 도서관앞에 500원짜리 음료수 자판기 있었잖아,, 같이 나갔지.. 녀석이 콜라를 한개 빼더니,,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니꺼는 니가 빼,,! 그러고는 들어가버리더라구,, 내 빈대짓이 미웠던게지.. 그게 아직 가슴에 맺히네.. 근데 말이야,, 그거알아? ,, 내가 담배 한개 달라고 했을 때,, 6년동안 한번도 거절 안하고 담배를 준게 박선생 자네였어,, 한 이년 빈대짓 하고 나니까 본과올라가니 다들 담배를 피다가도 내가 다가가면 슬슬 피하더라구,, 그건 아까워서가 아니라,, 뭐랄까 미운감정 이었겠지? 돈없으면 안피면 되지.. 지저분한 녀석,,, 뭐 이런거 아니었겠어,, 난들 그걸 몰라? ,,, 알지만 그랬어,, 왜냐하면 우리엄마하고 나하고는 어릴때부터 그런대접은 너무 익숙했거던,, 자존심 좀 굽히면 그래도 뭐가 생겨도 생겨,, 중학교때 부터 졸업 할 때까지,, 친척이란 친척, 모든 아는사람, 심지어는 성당 신부님 한테까지가서 고개숙이고,, 눈물 거렁거리면서 학비 빌려주시면 은혜를 갚겠다고 말하는게 연례행사고, 엄마는 엄마대로 고개를 숙이고, 허리 몇번 굽히면 몇천원을 빌려도 빌렸고, 하다못해 콩나물을 얻어도 얻어왔어,, 대학때도 시험문제 복사비가 없어서 노상 여학생들에게 고개를 숙였지,, 여자들은 약하잖아,, 그때 순희,지수,성숙이 얘들이 날 많이 도와줬지,, 지수는 시험때면 아예 내 몫까지 시험지를 복사해다 주곤 했어,, 박선생 너도 아마 보시 꽤나 했지? ,, 여학생들에게 솔직히 돈이없다,, 나중에 졸업해서 벌면 갚을테니 좀 도와줘하고 말했지,, 부끄러운거?,, 난 그런거 몰라,,아니,,생각을 안해.. 그게 생존인데,, 그러니 다른 녀석들이 내가 보기싫을 수 밖에.. 늘상 여학생들 등쳐먹는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많이 한다는 걸 알았지만,, 상관없어,, 그런 녀석들도 가끔 담배 한개씩 주거던,,"

 

그랬다, 우선생의 대학시절 별명은 빈대였고, 성격이 좀 거친 녀석들은 우선생의 그런 행동을 노골적으로 비난했었다,

 

나도 가끔은 우선생이 돈도 없이 굳이 당구장에 따라가거나, 담배를 피거나, 술자리에 끼는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형편이 어려운것은 죄가 아니지만 그럴수록 학업에만 신경쓰고 안해도 되는 것은 안하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우선생은 그것을 사는 방식이라고 했다,

 

어차피 비루하게 먹고사는데, 마지막에 자존심을 세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밥은 얻어먹어도 되고 담배는 얻어피면 안된다는 기준은 그야말로 알량한 자존심일 뿐, 99% 와 100%는 다를바가 없는 것 이었다,

 

그는 그렇게 바닥을 기면서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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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선생의 아내는 수줍은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두사람의 부부사이는 최소한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우선생도 그럭저럭 잘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른들 말씀이 틀린게 없었다, 부부란 연으로 맺어지는거고 살다가 정이나는거라는 옛말처럼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간간히 작은 재미거리를 만들어 나갔다, 사실 어떤일이던 여건이 좋아도 사람이 문제다. 또 어지간히 힘들고 각박한 일도 사람들이 좋으면 되는 것인데 하물며 결혼생활이야 말해서 뭐하겠는가?..

 

우선생이 내성적인 사람이기는 해도 속이 깊어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잇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그런 우선생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었고, 덕분에 처음에 두사람의 결혼을 위태위태하게 바라보던 주변에서도 이젠 걱정을 거두고 두사람의 삶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갔다.

 

다음해 어느새 우선생이나 나나 의국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치프 레지던트의 소임도 거의 끝나가던 어느가을이었다.

 

우선생이 예의 심각한 표정으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선생 공부해? 시간 있으면 얘기나 좀 하자.." 그때 우리는 전문의 시험이 몇 달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각과 치프들은 전부 일선에서 물러나 뒷방이라 부르는 공부방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나도 안그래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창밖에 이리저리 날리는 낙엽을 보면서 상념에 빠져 있는데 우선생이 들어왔길래, "아니,, 그럼 술이나 한잔 할까?" 하고 일어섰다,

 

처음에는 가볍게 술이나 한잔 할까,, 하고 나선 걸음이었는데 우선생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우리는 병원 로비로 향하던 갈길을 돌려 의과대학 운동장 스탠드로 갔다, 그날도 운동장에는 학부생들이 농구공을 던지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부동자세로 인사들을 했다, 학부생들에게 손짓으로 신경쓰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 다음 스탠드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고보니 이자리에 이렇게 앉아 본것이 그때 우선생 결혼식이 있던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시선을 멀리두고 운동장 너머 어딘가를 응시하던 우선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박선생,, 고백할게 하나 있어,,  사실은,,, 나 결혼하고도 소연이를 계속 만났었어,, " 놀라운 말이었다, 나는 한때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은 했었지만, 이후에 급속히 평형을 찾아가는 우선생 주변의 모습을 보면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그말을 듣는 순간 무엇인가 불길한 먹구름이 저 멀리서 덮쳐 오는것 같았다..

 

" 결혼하기 전날 말이야,, 그날 얘기했어 ,, 소연이에게,, 너무 늦었다고,, 이젠 어쩔수가 없다고,, 소연이가 자기가 잘못했다고 없던일로하고 둘이서 도망이라도 가자고 몸부림쳤지만,, 그땐 이미 도리가 없었어,, 그날 신륵사에 가서 둘이서 부처님 앞에 손잡고 각각 자기 소원을 빌었었어,, 나는 이생에서 헤어지더라도 다음 생이라도 이 사람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소연이는 내 손을 잡고 부처님 앞에서 내내 눈물만 흘렸어,, 그리고는 우리가 자주갔던 북한강 까페하며, 대성리 민박집까지 우리가 같이 지났던 흔적들을 되밟았지.. 그러고는 서로 잘 살아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었어,, 처음에는 소연이가 내 곁을 떠났고,, 두번째는 내가 떠난거지.. 소연이는 소연이대로,, 나는 나대로,, 둘 다 가족과 환경이 주는 짐에 손을 들어 버린거야,, 일대일이 된거지.."

 

우선생은 서쪽에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등지고 앉아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신혼 여행을 갔다오고 한 달여가 지나서,, 소연이가 다시 찾아왔었어,, 그런데 그때는 병원 로비가 아니라 병원사람들 눈에 띌까봐 대학쪽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결혼이란게 참 그러고보면 무거운거야,, 결혼식을 전후로,, 어느새 소연이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하는 감춰진 여자가 되어버린거야,,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반갑게 맞아주던 내 친구들, 그동안 안면을 익혔던 병동 간호사들, 선후배들을.. 행여 눈에 띌 새라 눈을피해야 했던 거지., 박선생,, 부끄럽지만 나도선 견디기 어려웠어,, 굳이 이해를 하란것도 아냐,, 그냥 그랬어,, 그렇게 사람들 눈을 피해서 골목 후미진 커피숍에서 벽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책을 읽는척하고 있는 소연이를 보는 순간 눌렀던 감정이 폭팔해 버린거야,, 왜 그랬냐구..? .. 나도 몰라,, 연애하다보면 가끔 이런질문 하잖아,, 왜 나를 사랑하느냐고 ?,, 사실 그 질문에 답이 어디있어? ,, 그 답을 알면 사랑하는게 아니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란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당위가 되거던,, 사랑은 그저 현상이지 당위가 아니거던.."

 

뭔가 녀석의 말에 반박을 했어야 했지만,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길로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어,,아니 이젠 진짜 불타버릴 정도로 네속에 내가 들어가고 싶을정도로 사랑했어,, 이상한 일이지,, 처음에 연애 할 때만해도,, 심지어 결혼식 전날까지만 해도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었는데,,우리는 결국 뒤집지 못했었지,, 그렇지만,, 오히려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저 이젠 그걸 뒤집으려 한거지.. 아니 뒤집으려 한것도 아니야,, 소연이는 그날부터 숨겨진 여자가 되었고, 나는 나대로 그녀의 햇빛을 가리는 검은 망또같은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거지..그러다 연차가 올라가서 오프가 생겨도 집에서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고, 우리는 오프날이나 주말에 만나서 예전처럼 다시 하나가 되었어,, 달콤하더군,,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 소연이가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지만 않았어도 말이야,,"

 

녀석의 말은 계속 이어졌고, 요지는 두사람은 결혼후에 다시 만나 반년 정도를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소연씨가 사람들 눈에 뛸까봐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다가 약간 정신적 스트레스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양가집 아가씨가 자기도 모르는새 저절로 "불륜"이라는 상황에 빠져들었으니, 심리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공황장애라는 불안증세를 보였고, 결국 두사람은 눈물을 머금고 다시 헤어졌다고 했다, 이제는 정말 헤어지지않으면 두사람다 자멸할 것이라는 점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두사람이 서로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물러서야 한다는 상황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러고보면 그것이 세번째 헤어짐 이었던 셈이다.

 

한번은 그녀가, 두번째는 우선생이, 세번째는 서로가 그 "상황" 이라는 것을 이유로 헤어짐을 반복한 셈이었다, 이글을 읽는 분들은 우선생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함부러 돌을 던지지 마시기를.. 굳이 예수의 말씀을 빌지 않더라도, 그저 몸과 돈을 탐하는 것을 당당하게 "사랑"이라말하는 시대에, 그들의 "불륜"은 그래도 "지독한 사랑"이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선생에게는 그런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그이야기를 꺼내는지, 그리고 우선생의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두운지, 그 이야기가 오늘 내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었을텐데, 우선생은 그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던 우선생이 그녀로부터 오늘받은 편지라고 하면서..내게 한장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 편지에는 소연씨의 갸냘프고, 예쁜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 곳으로 달려가는 한 시간내내 담담한 척 차창 밖만 내다 봅니다. 

 

일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10년이 된 것 같습니다. 

 

애써 외면하며 찾지 않았던, 아니 차마 발걸음할 수 없었던 곳입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내방면으로 접어듭니다. 

 

어쩔 수 없이 안절 부절,,, 손발까지 저려옵니다.

 

물어물어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길건너 소방서 앞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이제는 지척입니다.

 

꺼리낌없이 길 건너 저 병원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사람이 약간은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반겨 맞아줄 것만  같습니다.

 

목이 메입니다.

 

 병원소식을 알리는 문구가 커다란 광고판을 어지러이 지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어갑니다.

 

아마도 저 문을 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 뿐인가 봅니다.

 

공황도 잊은 채 뙤약볕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습니다.

 

뒤돌아 서며

 

`차라리 여기서 쓰러져 버렸으면......`

 

어처구니 없는 생각마저 해 봅니다.

 

또 다시 차창 밖만 내다 봅니다.

 

초조한 듯 지루한 듯  의과대학 잔듸밭에 앉아 있다 저 멀리 내가 도착하자

 

자기도 모르게  "왔다"라고 외치며 환한 얼굴로 버스 앞으로 달려드는

 

그 사람이 10년 전 모습 그대로 저안에 있습니다.

 

그날 내가 타고떠났던 택시승차장도 보입니다.   

 

그 땐 내가 순진했나 봅니다.

 

그 사람이 태워 준 차를 타고 순순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안 가겠다고 한 번 이라도 말 해볼 걸......

 

모든 것이 후회고 그리움입니다

 

 

 

 

 

나는 그날 우선생으로 부터 소연씨가 그때생긴 공황장애로 인해 몇 달전부터 마산에 있는 언니집에 내려가 있다는 사실을 듣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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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슴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내가 아는한 사람의 가슴속은 방추처럼 생긴 근육에 둘러 쌓인 벌건 심장과, 마치 스펀지처럼 부풀었다 가라앉는 걸붉은 폐, 피가 지날때면 소방호스처럼 팽팽하게 불어 오르는 대동맥과 정맥들,, 그런것들이 얽혀 있을 뿐인데.. 내 눈앞에서 이런 가슴아픈 일을 목도하면 가슴이 뻐근해지고, 마치 예리하게 날이 선 칼날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가슴에서 느끼게된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는 그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단지 저멀리 떨어지는 석양과,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빛바랜 플라타너스,, 그리고 노란색 단풍잎들을 바라보면서. 이미 우리들이 허공에 떠나보낸 상실의 시대를 추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선생과는 그자리에서 그렇게 헤어졌다 

 

술을 한잔하기에도, 그렇다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에도 마땅치 않았다. 우선생은 우선생대로 나는 나대로 가슴에 담아두고 혹은 접어 둘 이야기들을 따로 골라내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생에게는 그녀의 이야기가,,내게는 우선생과 그녀의 이야기가 그랬던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의 아픔에 너무 가슴이 시렸다, 그녀의 편지는 머리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토해 낸 것이었다, 세상에 어떤 시인이 있어 그런 아픔을 담아 낼 수가 있을까.. 그런말이 가슴에서 토해져나온 그녀의 아픔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간단하게 의국회의에 참석하고, 다시 의국장실로 올라왔다. 전문의 시험준비때문에 일선에서 열외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전 10시면 책을 보는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담배를 피워물고 책을 펴다가 우선생방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람의 예감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나는 어제 헤어지는 순간 우선생이 그길로 마산으로 달려 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고, 일어서면서 "우선생 혹시..?" 하면서 물어보려다가 물음을 그대로 삼켰었다, 그럴수도 있으리라 생각했고, 설령 그런들 내가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흉부외과 의국에 전화를 걸어 역시 우선생이 출근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다음, 우선 그 일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4년차 말이니 출근문제로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본인도 영영 가슴에 가둘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그곳에다 버리고 오던지, 태워버리던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날도 우선생이 나타나지 않았다,

 

흉부외과 의국에서 3년차가 과장님이 우선생을 찾으신다고 나를 찾아왔다. " 선생님,, 저희 치프 선생님 연락처 모르십니까? 댁에도 전화를 안받으시고, 소식도 없으시고, 삐삐도 안됩니다, 과장님이 찾으시는데 어떡하죠?"

 

우선생이야 그렇다치고 우선생 집에도 하루동일 아무런 연락도 닿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우선생이 마산으로 떠나고, 아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가 짐을 싸고,,, 상투적인 생각들이 머리를 괴롭혔다, 이후로 하루종일 우선생집으로 전화를하고, 삐삐를 치고 우선생을 찾다가 할 수 없이 우선생 본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벨이 울린 후 누군가가 전화를 받은 다음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너머에서는 끊어진 신호음만 "뚜뚜,, "하고 이쪽으로 건너왔다, 그리고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길했다, 뭔가 사단이 생긴것이 분명했다,

 

우선생은 결혼하면서 처가의 요청으로 처가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 따로 살았지만, 우선생 본가는 예전의 그집에 그대로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오랜만에 우선생 본가를 찾았다. 

 

대학시절만해도 무당과 점집들이 줄을이어 늘어서 있고, 한집건너 한집에 대나무깃발이 꽂혀있던 우선생 동네도 몇 년사이 많이 변했다, 우선생이 워낙 자기집에 사람을 데려가기를 싫어해서 나도 우선생의 집을 방문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렵사리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다.

 

대학시절, 직선쟁취,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며 길거리를 뛰어다니다 어느새 우선생의 동네까지 흘러와 하루저녁 머물렀던 친구집이 그때나 지금이나 색바랜 대문을 달고 예전 그자리에 무뚝뚝하게 서 있었다. 

 

문앞에서서 몇번 두리번 거렸지만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대문을 밀고 들어가서, "어머니.. 어머니 .. 집에 계세요..? 저 우선생 친구 박선생입니다,," 마루의 닫혀진 여닫이 불투명 유리문을 향해 사람을 부르자, 왼쪽 우선생방의 방문이 열리면서 우선생 어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우선생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다리가 떨릴 정도로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예전 우선생 방쪽으로 걸음을 옮길동안 우선생의 어머니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한마디 말씀도 없이 내 얼굴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댓돌에 올라서서 신을 벗기도전에 방안에 펼쳐진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 그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그리크지 않은 우선생 방에는 대학시절에 쓰던 우선생의 책상과 걸상,그리고 책들이 예전처럼 그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눈에 익은 그 낡은 책상 옆에는 어지러운 글씨가 쓰여진 병풍과 향을 피우는 작은 향로가 하나 놓여 있었다,

 

눈에서 피눈물이 나고,귀에서는 천둥 소리가 들렸다.

 

불과 이틀전에 헤어진 친구가 자신이 초등학교 4학년 이래 살았던 자기방 한쪽 구석에 누워있었다.,,,상황을 짐작한 내가 오열하며 방으로 뛰어들어가 병풍을 걷어내자 검은색 관이 하나 놓여있넜다, 그리고 그 관속에는 그날밤 그녀의 편지를 들고 쓸쓸히 일어서던 내 친구가 입에 휴지를 물고, 귀과 코에는 솜을 틀어막은 채로 누워있었다.

 

작은 방..

 

그가 20년을 살았던 그 작은방에 그가 그렇게 누워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이래로 하루도 학비 걱정을 안해본 적이 없다던 우선생이, 첫 월급을 타던 날 어머니 소원이라던 손목시계부터 하나사고, 혼자서 갈비 5 인분을 사먹었다던 우선생이, 남이 먹다남긴 식판을 받아들고 추가밥을 얻어먹으며 끼니를 해결했던 우선생이, 그나마 뼈속까지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 사랑마져 가난에 빼앗겨버렸던 우선생이,, 그렇게 그렇게 서른살의 한을 가슴에 품고 검은 관속에 홀로 누워 있었다..      

 

그랬다 정말 우선생이 죽었다.........

 

정말 불쌍한 내 친구가 그렇게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외롭게 누워있는 그 방에는 눈이붓고 목소리가 쉬어버린 그의 일생의 동지이자,전우였던 어머니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일생동안 그의 짐이 되었던 아버지와 서로 사랑한번 나누지 못한 아내 그리고 철없는 동생들은 아무도 그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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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에게 많은말을 한다.

 

우유부단하다. 비굴하다. 비윤리적이다. 그래도 살아야한다... 그렇다,, 항상 타인의 입장이란 그런것이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도시락을 사올 때 수돗물을 마시는 아이의 고통은 단순한 배고픔 그이상의 것이며,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의 심경은 단순한 외로움 이상의 무엇이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는 절대 그 빵의 믜미를 모르는 법이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공책하나 살 수 없는 비참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하다못해 의사라도 될 수 있었던 그의 의지를 두고 유약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비록 돈 때문에 자기를 떠났더라도 한번 사랑했던 사람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우선생을 비윤리적이라 손가락질 할 수는 없을 것이며, 살아남기위해 자존심을 버린 우선생에게 쉽게 비굴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생의 죽음뒤에는 끊임없는 추측과 억측 그리고 말과 말들이 떠돌았다.

 

세상은 야비하고 잔인하다,

 

불과 얼마전까지 그와 얼굴을 맞대던 사람들이 "알고보면 그랬다며..?" , 라는 이야기들을 서슴치 않았고, 불과 얼마전까지 그의 죽음을 애도하던 사람들이 내게서 뭔가 새로운 가십거리라도 나올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내 입만 바라보았다. 살아남은자의 잔인하고 가증스러운 호기심은 직전 동료의 죽음마져도 제물로 삼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것은 모 여배우의 죽음후에 내뱉은 어떤 늙은추물의 사랑고백처럼 그야말로 더럽고 가련한 양심들이 아닌가..?

 

그러나 우선생의 죽음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날 우선생은 밤늦게까지 고민했다, 그가 죽고난 다음 그의 책상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내 눈에 곱게 접어 파일에 끼워둔 그녀의 편지가 들어왔다, 그 파일은 우선생이 그녀와의 추억들을 모아둔 파일이었다. 처음 그녀를 만나 대학 가든파티에 파트너로 데려 온 날의 사진부터, 헤어지기 직전의 모습까지 어쩌면 우선생의 일생에서 "행복했노라" 말 할 수 있는 유일한 조각이었다,

 

우선생은 그날 편지를 들고 마산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라, 그 편지를 자신이 접어둔 망각의 강에 띄어보내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의 판단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가난은 자신의 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이유로 자기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다시 가족을 늪에서 건지기위해 한 인간이 일생에 한 번 밖에 선택 할 수 없는 배우자마져 주어진 운명에 순응했다. 후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불쌍한 아내는 어떻게 하느냐고.. 그러나 그의 아내역시 단지 집안에 의사를 하나 두겠다는 아버지의 의지에 따랐을 뿐 생면부지의 그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선생은 마지막까지 그 상황을 인내하고 존중했다.

 

그는 그날 의국에서 혼자 번민하다가,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늦게 집에 들어간 우선생이 드디어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

 

자기가 살아온 과거, 고통스러운 가정폭력, 그리고 그녀와의 일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내성적인 그가 그때까지 그것을 비밀로 담고 있기에는 너무 가혹했을지 모른다, 어쨌건 그는 아내에게 진실을 고백했고, 이해를,, 아니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아내는 결혼전에 적당히 알고 있던 집안 내력보다는 그녀와의 이야기에 놀랐다. 그러나 우선생의 착한 아내가 우선생의 고백을 비록 폄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당신 잘했다 "고 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꽤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두사람은 서로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그러는 중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은 우는 목소리로 아버지가 또 술을 먹고 들어오셔서 어머니를 밤새 폭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우선생은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혼자 남겨두고 본가로 향해야 했다, 그나마 아버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그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선생이 황급히 집에 도착했을 때 눈에 들어온 장면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어머니는 머리를 산발을 한 채 마루 구석에 웅크리고 매를 맞고 있었고, 아버지는 과도를 들고 어머니를 위협하고 있었다. 여동생은 그런 아버지의 바지를 붙들고 울부짖고 마루에 달린 여닫이 우리문은 마당을 향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우선생은 울부짖으며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칼을 빼앗고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를 밀어냈다.  

 

아버지가 뒤로넘어지면서 남아있는 한쪽 유리문에 부딪혔다.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아버지를 덥쳤다, 깨어진 유리파편이 아버지의 머리와 얼굴, 어깨와 등을 향해 쏟아졌고, 넘어진 아버지의 몸에서는 피가 쏟구쳤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어머니와 여동생이 택시를 잡아타고 인근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우선생은 넋이 나갔다.

 

갑자기 온 집이 텅비어 버리고, 사방은 부서진 유리조각들과 가재도구, 그리고 아버지가 흘린 피로 가득했다. 더우기 의사인 아들이 피를 흘리는 아버지를 따라나서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이 수건으로 피를막고 아버지를 부축해서 병원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이 잔뜩 뒤틀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서 삶이란 아무리 빠져 나오려 몸부림쳐도 절대로 빠져 나올수 없는 늪과 같았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자기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인 자기방으로 갔다, 그곳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한 곳이었다, 마당을 건너 안방과는 부엌을 사이에두고 따로 떨어진 그방에서는 아버지의 위압적인 모습도, 어머니의 불쌍한 얼굴로부터도 피할 수 있었다, 어릴때부터 아버지의 욕설과 어머니의 비명이 들려오면 그곳에서 방문을 닫아걸고 잔뜩 웅크린 채 소나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천장의 들보에 끈을 매고, 의자에 올라서서 스스로 만든 올가미에 자신의 목을 걸었다.

 

어쩌면 삶이 올가미였는데, 올가미를 통해 그 올가미를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

..

 

병원 응급실에서 아버지가 봉합수술을 받는동안 어머니의 가슴속에는 혼자 남겨둔 아들의 얼굴이 자꾸 걸렸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봉합 수술을 받는 동안 다시 집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어머니가 도착해서 발견한 것은 이미 얼굴에서 핏기가 모두 사라진 채 올가미에 몸을 매단 아들의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그자리에서 정신을 놓았다.

 

잠시후 정신을 차린 엄마의 눈에 축 늘어진 아들의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불쌍한 아들을 내려놓으려고 미친듯이 책상위로 올라가 아들의 몸을 묶은 줄을 이빨로 물어 뜯었지만 야속하게도 그줄은 끄떡도 하지않았다, 어머니는 아까 남편이 자신을 찌르려고 위협하던 그 칼로 아들의 목을 조이고 있는 줄을 짤라야했다.

 

천정에서 떨어져내리는 아들의 몸을 안고 그 어머니는 꺾꺽 울음을 울어야했다.

 

그 불쌍한 아들은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이래 30년만에 다시 그 어머니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고, 한많은 두 모자는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부비며 수술을 끝낸 아버지와 동생들이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 그렇게 그자리에 꼼짝도않고 쓰러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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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나도 장례가 치러진 다음에야 우선생의 죽음을 알게될 뻔 했었다.

 

우선생의 가족들은 자살한 아들의 죽음을 어디에도 알리지 않았고, 우선생 아버지가 데려온 동네 장의사에서 검은색 목관,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조악한 붉은 천을 준비한 것 그것이 전부였다.

 

자칫하면 사망진단서도 없이 장례를치르고 나중에 다시 부검을 하는 일이 벌어질 번 했다

 

나는 병원으로 돌아와 주변에 우선생의 죽음을 알리고 내손으로 친구의 사망진단서를 썼다. 전공의 위원회가 소집되고 병원장을 필두로 한 많은 사람들이 장례절차를 논의했지만, 우선생의 가족들은 병원측의 도움을 완강하게 거절했다.

 

이해 할 수 있었지만 서운했다.

 

우선생의 아내도 뒤늦게 우선생의 사망사실을 알았다, 우선생 아내는 본가로 떠난 우선생이 다시 다음날 병원으로 출근했으리라 생각하고 친정에 가 있다가 뒤늦게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좁고 빈곤한 우선생의 집에 우선생 식구들과, 처가식구들, 그리고 친구들 몇몇이 모여 장례를 준비했다,

 

비록 결혼은 했지만, 후사가 없었기에 그 몸을 그대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했다.

 

장례식날 아침,,

 

우선생을 태운 영구차가 그가 힘겹게 다녔던 학교와 어렵사리 4년을 마쳤던 병원 광장을 한바퀴돌았다, 영구차가 의과대학 교정에 잠시 멈춘사이 내가 그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차에서 내려 강의실과 실습실을 한바퀴 돌았다, 부질없는짓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주고 싶었다,

 

후배들이 수업을 중단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위해 복도에 도열했다.

 

우선생의 영정은 그렇게 학교를, 병원을,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었던 스탠드를 거쳐 다시 차에 올랐다,

 

그가 잔듸밭에서 기타를 치던 모습, 도서관에서 책을 펴던 모습, 가든파티에서 소연씨와 함께 춤을 추던 모습이 영화처럼 떠올랐다, 그러나 그자리에는 그가 그렇게 사랑하던 소연씨도 자리에 없었고, 우리가 떠나보낸 청춘도 없었다..

 

영구차가 화장장에 도착하고, 그의 몸이 소각로에 올랐다,

 

몸이야 태워지던, 묻어지던 없어지긴 매 한가지지만 그가 그렇게 마지막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난 아픔은 태워지지 않았다. 그의 몸이 태워지는 순간 화장장의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솓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그의 몸이 재가되어 소각로를 벗어났다,

 

막 소각로를 벗어난 그의 몸은 검은색 재로 화했지만, 막 소각로를 끄집어 낸 순간, 재로화한 육신의 흔적에서그의 왼쪽 갈비뼈 하나가 불에달군 쇠덩이처럼 빨갛게 변한 채 남아있었다. 뼈까지 다 타버린 소각로에서 왜 갈비뼈 하나만 저렇게 달구어진 채 남아 있었을까..? 그가 남긴 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나는 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날 우선생이 그 뜨거운 소각로에서 하나 남긴 불에 달구어진 갈비뼈를 꿈에서 만나곤 한다.

 

잠시후 관리인의 작은 빗자루가 작은 통에 그의 재를 쓸어담고, 그의 남은 갈비뼈 하나마져 관리인의 손에 부서져 가루로 변했다..

 

잠시후 관리인에게 신문지를 고깔처럼 말아 만든 분골함을 받았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씩 돌아가고, 우선생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 세명이 그가 좋아했던 강가로 출발했다, 내가 그 강가로 가기로 정한 일에 대해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분골만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이 깃든 곳에 고루 뿌려주고 싶었다,

  

강나루에서 배를 샀다,

 

사공은 평소의 열배나 되는 돈을 요구했다,

 

그랬다, 누군가가 사랑하는이의 죽음에 절망하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우연히 주어지는 행운이기도 한 것이다, 배에는 혼자 올랐다, 우선생의 어머니가 강기슭에서부터 몸부림치는 바람에 도저히 아들의 골분을 손에 대개 할 수가 없었다. 사공이 긴 장대로 배를 강중심으로 몰아가는 동안, 나는 유골함의 두껑을 열고 그의 분골을 맨손으로 쥐고 강에다 뿌렸다,

 

떠나는 친구의 몸을 하찮은 면장갑 따위로 장벽을치기 싫었다.

 

그의 몸은 아직 따뜻했다.

 

한움큼 움켜쥔 그의 분골이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강물을 타고 흩어졌다, 그강은 십여년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사람은 이렇게 가루로 흩어졌다, 한줌 한줌이 아까워 사공이 재촉하도록 천천히 그의 몸을 강물에 떠나보냈다.

 

눈이 뜨거웠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강물에 반사되는 햇살은 그날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의 몸이 전부 뿌려지고 분골함마져 강물에 떠나보낸 후 배가 기슭에 도달하자 우선생의 어머니가 몸부림치면서 강물로 뛰어들었다, 아들의 몸이 강물에 흩어지는것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피눈물은 , 또 심정은 어땠을까,,

 

그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

....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선생의 착한 아내는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나 재혼 했다는 이야기를 흘려들었고, 우선생의 어머니는 아직 그 아픔을 가슴에 묻은채 살아가신다, 이후 정말 작은 경제적 도움을 드렸으나 이제는 우선생 동생이 장성했다는 이유로 더이상의 도움을 극구 사양하신다,

 

그래도 우선생의 부모님은 두분다 명절끝이나, 우선생 기일에 내가 한번씩 찾아뵈면 내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신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몸무림치던 당시의 아픔보다 삼키고 살아가는 지금이 천배만배 더 아프시리라는 것을 잘 안다,

 

원래 부모자식이란 그런것이다,,

 

자식인 나도 십수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면 한번씩 눈물이 나고,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가 먹어갈 수록 가신분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깊어지는데, 그렇게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우선생도 아마 지금 아버지의 후회어린 눈물을 보고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은 녹지 않았을까 싶다..

 

소연씨는 이후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년전인가, 누군가로부터 소연씨가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남편의 직업이 안과의사라고 했다, 나는 소연씨가 우선생의 죽음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냥 덮어두기로 했었다, 우선생이 원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어느새 내 머리도 흰머리가 하나씩 늘어가기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생은 그야말로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다,,

 

어느날 소연씨가 내게 전화가 왔다,

 

그녀가 신문에서 내 책에대한 기사를 읽고 나를 기억하고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병원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그녀는 결혼이후 세 아이를 낳았고, 최소한 겉으로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마음으로는 한번도 우선생을 잊은적이 없다고 했다, 집안에서 억지로 맺어준 지금 남편과의 사이에 그리 큰 정이 없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고 했다.

 

어쩌면 그녀 역시 어른들의 탐욕에 희생된 피해자 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당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했지만 그녀가 내마음을 조금만 헤아렸더라도 십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내게 당시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어야 했다, 백번 이해하지만 섭섭하고 아쉬웠고, 원망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선생에게 그녀는 목숨이었는데 말이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 망각의 창고에서 잠들어 있는 내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되살려 지금 이야기를 쓴다..

 

그리고 우선생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은 그를 쉽게 말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또 그녀에게 이 글을 전한다,,

 

 

깊이 영면하시라,, 친구여,,,

5개의 댓글

2017.03.10
아...정말 몰입하면서 읽었음..짠하네...한글자 한글자에 슬픔이 묻어있는거같아
0
2017.03.10
진짜 짠하다ㅠ
0
2017.03.11
와 진짜 긴글인데 계속몰입해서 읽었다
잘읽었다 고마워
0
2017.03.13
단어 하나 하나에 감수성이 묻어난다 좋은 글 고맙다
0
2017.03.16
잘 읽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부터 슬픔에 잠기는 듯한 기분이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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