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지식
 
-헌법재판소는 1987년 제 9차 개정헌법에 의하여 신설되었다. 반면 대법원은 제헌헌법이 제정된 직후 탄생하였으며,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상대적으로 대법원에 비해 명성과 전통 모두 밀리게 된다. 헌법재판소가 원칙적으로 대법원과 동등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대법원은 헌법재판소를 은연 중에 무시하고 좌천된 인물들이 가는 곳으로 여겼다.
 그런데 생각보다 헌법재판소는 잘 굴러갔다. 현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유럽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헌법 심사 기관으로, 세월은 유구하나 고작 10건의 위헌 사례밖에 없는 일본의 헌법재판소(대법원 산하)에 비해, 2012년 한해 동안 헌법재판소에서 처리된 사건은 1,661건이며, 30년의 세월 동안 단순위헌 판결이 난 법률은 543회에 달한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어느 정도의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성장했기 때문인데,
 
 첫번째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은 법원에서 ‘이 법률 조금 이상한데? 위헌임?’ 이라면서 위헌 제청을 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법원은 ‘위헌의 의혹이 있는지 아닌지’를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에서는 이런 과정을 모두 무시하고 전부 심사한다.
 
 두번째로, 하위법원에서 헌법재판소로 위헌 제청을 할 경우 반드시 대법원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본래 대법원에서는 헌법재판소로 보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불송부결정권’이라는 권한이 있었으나 이를 삭제했다. 즉, 사실상 법원을 거치는 건 형식적인 절차가 되었고 위헌 제청은 반드시 헌법재판소에서 모조리 심사하게 된다.
 
 세번째로, 위헌제청이 실패하면 기본권(우리가 흔히 아는 자유권 행복추구권 맞다.)의 틀을 빌려서 다시 헌법소원을 걸 수 있는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이라는 법률을 제정했는데, 이는 한국밖에 없는 법률로 사실상 위헌법률심사에 아무런 제약이 없이 바로 헌법재판소로 직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는 9명의 헌법재판관이 어마어마한 업무량을 다투며(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면 임기 끝에 병 하나는 얻어간다 카더라…) 대법원과 거의 동등한 위상을 지니게 되었고 대법원은 이에 위기의식을 느꼈다.
 


 헌법 101조 ②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
 
 헌법상 사법부의 최고기관은 대법원이고, 비록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에 준하는 기관이긴 하지만 여전히 최고기관은 대법원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야금야금 자신들의 지위를 뺏어버리니, 대법원으로선 답답한 노릇이었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위에 서면 한국은 사실상 4심제 국가가 되어버리는 일이었다.
 (사실 4심제건 3심제건 위헌은 아닌데,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위라는게 위헌이다.)
 


 
2.     관련 법률지식
 
헌법재판소법 제 68조 ①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不行使)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다.
 
 이 법이 무슨 법인고 하니,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걸 수 있는 청구사유를 규정한 법이다. 여기서 주목해야될 점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이다. 즉, 헌법소원은 법원의 재판에는 걸 수 없다. 법원이 재판 판결을 내리면 원칙적으로 헌법소원은 불가능하다. 사실 이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입법자의 결단일 것이다.
 
 
한정합헌(=한정위헌)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심사를 할 때, 우리는 단순히 이 법은 위헌이니 없어진다! 라고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한정위헌, 혹은 한정합헌이다.
 이 방법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법률의 합헌적 해석”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알아야하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법부는 법률을 심사하는 곳이지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국회가 법을 만들면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방법이다. 즉, 입법자가 해석에 따라 위헌이 될 수도 있고, 합헌이 될 수도 있게 법을 만든다면, 최대한 헌법에 맞는 방향으로 해석을 해야한다는 개념이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지침을 제시해준다. 즉, ‘이 법률은 이렇게 이렇게 해석하면 위헌이고 아니면 합헌이다’ 라는 식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구 집시법의 야간옥외집회 조문으로, “해가 진 이후부터 해가 뜨기 이전까지”라는 조문에 대해서 “해가 진 이후부터 24시까지라고 해석하면 위헌” 이라고 판시했다. 이런 식으로 법률의 해석에 대해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셈이다.
 
이 방법은 사실 대법원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드셨는데, 헌법상 사법부 최고기관은 자기들이기 때문에 ‘이새끼들이 나를 가르쳐? 장난하냐?’ 라는 식의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여기에 ‘아니 시발 우리가 우리 일을 하겠다는데 왜 딴지?’ 라고 생각하면서 둘의 감정의 골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무엇보다 한정합헌, 한정위헌 등의 심사방법이 헌법에 명시가 되어있지가 않아서,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3.     사건의 시작
 
 때는 바야흐로 1995년 11월 30일. 구(舊) 소득세법 제 23조 2항이 과세요건명확주의에 어긋나는지 여부 등에 대한 심사(94헌바40, 95헌바13 병합)에서 발생했다.
 
 어려운 말은 제쳐두고, 헌법재판소는 여기서 한정위헌 의견을 제시한다.
 
 “이 사건 위임조항은 납세의무자가 기준시가(基準時價)에 의한 양도차익의 산정으로 말미암아 실지거래가액(實地去來價額)에 의한 경우보다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완하기 위한 규정으로서 결국 실지거래가액(實地去來價額)에 의한 세액이 기준시가(基準時價)에 의한 세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지거래가액(實地去來價額)에 의하여 양도차익을 산정할 경우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한 취지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위 위임의 범위를 벗어나 실지거래가액(實地去來價額)에 의하여 양도소득세의 과세표준을 산정할 경우를 그 실지거래가액(實地去來價額)에 의한 세액이 그 본문의 기준시가(基準時價)에 의한 세액을 초과하는 경우까지를 포함하여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 한도 내에서는 위헌이다”
 
 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이를 이해할 수 있으면 이해하고, 아니어도 어려울 건 없다. 어쨌든 중요한 건, 헌재가 한정위헌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정위헌으로 불편했던 대법원에서는 동일한 소득세법으로 인한 재판에서 뭐라고 했냐면,
 
 “한정위헌 결정에 표현되어 있는 헌법재판소의 법률해석에 관한 견해는 법률의 의미·내용과 그 적용범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견해를 일응 표명한 데 불과하여 이와 같이 법원에 전속되어 있는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에 대하여 어떠한 영향을 미치거나 기속력도 가질 수 없다.”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바로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서, 전적으로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는 우리 헌법에 규정된 국가권력분립구조의 기본원리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규정한 헌법의 정신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되는 이치로서, 만일 법원의 이러한 권한이 훼손된다면 이는 위에서 본 헌법 제101조는 물론이요, 어떤 국가기관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사법권 독립을 보장한 헌법 제103조에도 위반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대판 95누11405)
 
 간단하게 해석하자면 너희 한정위헌 판결은 의견일 뿐이고, 그거 안 들어도 된다. 아니, 우리가 최고법원이고 법령 해석 권한은 우리한테 있는데 니네 왜 자꾸 지랄이냐? 헌법 안 따르냐?라는 말.
 


 
4.     사건의 전개
 
 이 말을 들은 헌법재판소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둘의 싸움을 붙이려는지, 해당 재판에서 진 청구인은 ‘해당 소득세 처분을 취소하고’,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 1항이 위헌은 아닌지’, ‘대법 판결이 위헌은 아닌지’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걸게 된다.
 
 헌재는 여기서 판결하기를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한다면 또 한 번의 기본권 구제절차를 국민에게 제공하게 되는 것이므로 더욱 이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입법자가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관계, 기타의 사정 등을 고려하여 행정작용과 재판작용에 대한 기본권의 보호를 법원에 맡겨 헌법재판소에 의한 기본권구제의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위헌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에는 단순위헌결정은 물론, 한정합헌, 한정위헌결정과 헌법불합치결정도 포함되고 이들은 모두 당연히 기속력을 가진다. (중략) 구체적 사건에서의 법률의 해석·적용권한은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는 당연히 당해 법률 또는 법률조항에 대한 해석이 전제되는 것이고,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의 결정은 단순히 법률을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적용함에 있어서 그 법률의 의미와 내용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대한 위헌성심사의 결과로서 법률조항이 특정의 적용영역에서 제외되는 부분은 위헌이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은 결코 법률의 해석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단순한 견해가 아니라, 헌법에 정한 권한에 속하는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의 한 유형인 것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기속력 있는 위헌결정에 반하여 그 효력을 상실한 법률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그 재판도 위에서 밝힌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의 ‘법원의 재판’에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하여 그 효력을 상실한 법률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재판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도내에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하겠다.”
 
 “대법원판결은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하여 한정위헌결정을 선고함으로써 이미 부분적으로 그 효력이 상실된 법률조항을 적용한 것으로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임이 분명하므로 앞에서 밝힌 이유대로 이에 대한 헌법소원은 허용된다할 것이고, 또한 이 사건 대법원판결로 말미암아 청구인의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재산권 역시 침해되었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대법원판결은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3항에 따라 취소되어야 마땅하다.” (96헌마172)
 
 너무 길지만, 천천히, 간단하게 해석해보면
 
 “재판이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위헌은 아니야.”
 “대법에게 : 응 아냐~ 우리 판결은 단순한 의견 아니고 니네가 우리말 들어야돼”
 “한정위헌이 단순한 의견이라고? 그럼 재판이 헌법소원에서 제외되는 조문 한정위헌 낸다. 니네 좆대로 해봐. 어떻게 할 건데?”
 “니네 우리가 한정위헌 낸 대로 해석했지? 그럼 니네 판결도 위헌이야 새끼야, 판결 취소해”
 
 대법원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렸다. 물론 중간중간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나 나름의 논리가 있었지만, 적당히 요지만 쓰자면 저렇다. 궁금한 사람은 국가법령정보센터(http://law.go.kr/main.html)로 들어가보면 좋겠다. 모든 판결의 판결문이 다 검색된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을 인정하지 않던 대법원이 무기로 사용하던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不行使)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다.)에 대하여 한정위헌을 때려버리면서 앞으로 대법원을 거스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보여줬다.
 
 


5.     사건의 결말
 
 아쉽게도 청구인이 소를 취하하면서, 대법원에게 넘어간 공은 없어졌다. 참 아쉽다. 이때 제대로 싸웠으면 지금까지 싸울 일은 없었을 텐데.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제대로 의견 충돌이 난 첫번째 사건이 되었다. 이후로도 이런 일은 몇 번 있었다. 2012년 5월 31일에 판시된 2009헌바123에서 대법원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도 카운터를 날렸고, 이건 아직 결말이 안 나왔다. 2010헌바132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의견 충돌이 났고.
 
 사실 이는 사법부 내부의 권력 다툼이기도 하면서, 한국 법의 맹점을 이용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비슷한 지위로 끌어올리면서 둘이 서로를 견제하게 만든 건 좋았는데, 현행 법으로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영원히 서로의 판결을 취소하고 무시할 수 있다. 2009헌바123도 이래서 아직 결론이 안 나온 거고.
 
 대법원의 입장에선 “우리가 헌법상 사법부 최고기관”이기 때문에 억울하고, 헌법재판소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헌법 심사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왜 쟤네가 뭐라고하냐” 라면서 억울하다. 사실 요즘은 대법원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서 헌법재판소가 하도 위상이 올라간 상태라, 헌법재판소가 좀 더 유리하긴 하다.
 
 서로의 권력다툼이긴 하지만, 대법관들이나 헌법재판관들이나 둘다 임기 끝나면 몸이 정상이 아닐 정도로 힘든 직업이다. 전 헌법재판소장은 임기 끝나고 암 판정을 받았다던가… 둘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너무 무시하지 말고 일 열심히 하려는구나~ 하고 생각해주자.
 
 노잼 글 읽어줘서 감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