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파곳과 콩쿠르스

*완전히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학생이야? 교육장소는 그곳이 아닌데. 내가 안내해 줄까?”

 “아, 아닙니다. 저는 학생이…….”

 꽤 큰소리로 부인하는 바람에 길거리의 시선이 쏟아졌다. 수상한 시선이었다. 요즘 같은 때 이 시간에 젊은 남자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일을 드물다. 젊은 남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말을 걸어준 아줌마는 수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는 손을 휘휘 젓더니 황급히 그 자리를 떴다. 남자는 커다란 가방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를 계속 지켜보았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다시 원래 갈 길을 갔다.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오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초조했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녹아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그는 가방을 구석진 곳에 놔뒀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람들 사이를 오르내렸다. 올라갔다가. 꼭대기 층에서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올라갔다. 그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 내리느라 손끝의 살점까지 씹어버려서 피가 흐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흐르는 땀을 계속 훔쳐내고 있었고 다리는 가볍게 후들거리고 있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주저 앉을 것 만 같았다.

 “엄마……이 형아 이상해…….”

 어디선가 작게 아이가 중얼거렸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 남자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현기증이 생겨서 에스컬레이터의 벨트를 손으로 꽉 쥐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어쩌라는 것인가 어떻게 왜 남자는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것 같다. 현실이라면 이렇게 극적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려서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를 수는 없다. 모든 것이 누군가의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주구장창 어딘가에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언제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어야 하는가?

 최상층까지 올라왔다. 경찰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움찔 했지만 그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모든 감각은 그쪽에 쏠렸다. 다행히 그들은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도망쳤다는군. 겁쟁이야.”

 “그래,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은 필요 없어.”

 “탈영…….”

 남자는 속으로 소리치고 싶었다. 나에게 죽음을 강요하지마. 나는 도망친 것이 아니야. 겁쟁이가 아니야. 죽고 싶지도 않고 모두가 죽음을 각오 했다는 것은 알아. 나도 죽음을 각오 했다고. 나도 사명감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게 자살하라는 말은 아니었잖아. 내가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건가. 아니야 나는 그냥.


 이제 그만 살아야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작은 나라에 전쟁이 났을 때부터 그는 끝장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예비군으로 다시 군대에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적어도 그가 예비군 의무 기간을 끝내고 나서나 전쟁이 일어 날 거라고 막연히 생각 했던 게 얼마나 얄팍했는지.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모든걸 포기하고 그냥 다시 와서 덜렁 총을 잡았다. 강대국에 휩싸인 작은 내륙국. 무기 하나 생산조차 하지 못해 누더기처럼 곳곳에서 무기를 사와 무장하는 약해 빠진 나라. 이 나라 저 나라 영향을 다 받은 누더기 같은 나라. 생존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러운 나라. 여자고 남자고 총을 들어야 하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이쪽편도 아니고 저쪽편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양쪽 나라에게서 모두 미움을 받고 말았다. 어느 한쪽이 밀고 들어와도 다른 쪽이 도와주지 않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마을을 사수한다. 우리 중대가 이 도로를 포기하면 대대 아니 여단 나아가 국가의 존망이 위협받을 지도 모른다. 중대장도 여러분도 여기서 같이 적에 맞서 싸운다.”

 중대장은 삼일 전 초저녁에 진지한 얼굴로 우리를 모아놓고 이야기 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적의 부대가 이쪽 길을 향해 전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대대 방어선의 첨단에 있는 중대다. 중대장은 이 지역이 적의 가장 강력한 도전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대장에게 이 쪽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대대장은 그런 척 봐도 위험한 곳에 공세를 할 만큼 적이 바보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보다는 좀 더 무난하고 쉬운 쪽인 다른 중대를 공격 할거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대전차 무기는 다른 중대에 배치되었다. 중대장은 불만을 있는 대로 말했지만 대대장은 무시무시한 눈총만 받고 돌아왔다.

 개전하고 쭉쭉 밀려서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더 물러나면 이 뒤에 있는 대도시가 적에게 완전히 노출된다. 나도 다른 병사들도 충분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오늘 저녁 중대장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할 수 있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리고 자정이 될 때까지 마을을 몇 번이고 돌아다니면서 병사들 하나하나의 상태를 모두 확인했다. 일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은 재배치했다. 그 역시 중대장에 의해서 완전히 외딴 곳으로 재배치 되었다. 이 정도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서 분명 상당한 위기 상황이었다.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초조해졌다.

 그는 소위 저격수라고 불리는 역할을 맡았다. 그럴싸해 보이는 직책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G3 소총에 낡아빠진 스코프 하나 달아 준 수준이었다.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항상 마찰을 빚고 싸움을 벌이기 일쑤라서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중대장은 그가 또 사고 칠까 걱정이 되어서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물론 다른 병사들은 안심했다. 모두가 무기를 들고 있는 전장에서 적을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싸움을 걸어 온다면 날카로워진 신경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외골수 적이고 도통 어울릴 줄 모르는 성격은 전장에서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자리를 옮기고 싶어.”

 그녀가 말했다. 윤아, 이 중대에 있는 유일한 여자 사병이다. 여자들로 구성된 부대에서 낙오 당해 지쳐 죽어가던 것을 우연히 발견 한 후에 그냥 이 중대 소속이 되었다. 앳된 몸에 멍한 눈을 가진 그녀 역시 사교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 않아도 남자 밖에 없는 군대에서 주눅이 들어 말 한마디 하고 살기도 힘들 것인데 그녀는 스스로 구석을 찾아 다녔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접근해보던 병사들도 이내 곧 흥미를 잃어 버렸다. 같은 군인이지만 중대 유일의 여자라고 특별히 일을 시키지도 않고 뭔가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다. 말하자면 중대의 인형 같은 존재였다. 남자들만 있는 군대이기에 같은 군인이더라도 싸우지 않는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여성상’을 만들어 두어 병사들은 가끔 쳐다보며 안정을 받곤 했다.

 “그건 안돼. 중대장님이 정해 놓은 자리를 함부로 바꿀 수 없어.”

 “아니 그렇게 많이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엎드린 곳이 불편해서 조금만 평평한 곳으로 옮기자는 말인데.”

 그가 돌아보니 확실히 그랬다. 돌덩이들이 그녀의 하반신 쪽에 몰려 있어서 자리가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여긴 마을로 들어가는 양쪽의 도로를 내려다 볼 수 있게 가운데에 솟아 오른 좋은 자리이고, 아군에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잘 숨겨져 있으며 그 만큼 좁기도 한 곳이었다.

 “여기서 더 움직일 곳은 없는데.”

 “있어.”

 윤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꼼지락거리며 조금씩 조금씩 옮겼다. 몸을 덮고 있는 판초우의가 치워지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밑으로 조금씩 하반신을 겹쳐와서 그는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아래를 덮는 것을 느꼈다. 돌을 깔고 있는 것 보단 사람을 깔고 있는 것이 더 편 할 것이라는 게 윤아의 생각이었다. 결국 사선으로 몸을 겹쳤다.

 “여기가 푹신하잖아.”

 윤아는 먼저 선수 쳐 말했다. 그에게만 무방비하게 아무 때나 치고 들어오는 그녀는 그에게 곤란한 존재였다. 아무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지만. 여자에게 까지 차갑게 대하기는 뭣 하기에 조금 잘해 줬던 것인데 둘 다 외골수 라는 것이 통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윤아는 그의 범위 안으로 자꾸 파고 들곤 했다. 그 때문에 중대장이 부사수로 윤아를 붙여 준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 여자 때문에 전투력이 흐트러지는 것도 염려가 되었고 한 명도 아쉬운 판에 전투에 투입하지 않는 것도 아쉬웠다. 또한 극도의 긴장을 유지하는 남자 병사들 사이에 여자를 던져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역시 윤아를 군인이라기 보다는 여자로 보았다. 그래서 그나마 좀 말이 통하는 듯 하고 외톨이인 그의 옆에 붙여 둔 것이다. 사실상 열외 병력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남자 옆에 붙는 거 아니야.”

 “남자 아니야. 군인이야. 너도 나도.”

 윤아가 그렇게 말했다. 그는 체온을 느끼고 있자니 가을밤 해뜨기 직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천천히 안정이 찾아 오는 것을 알아 챘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찬 공기 속의 윤아 입김이 그의 귀와 뺨에 닿았다. 그는 부끄러워지기 전에 말을 돌렸다.

 “도대체 얼마나 온다는 걸까.”

 “모두 죽을 만큼 온다는 것이겠지.”

 “철수 할 수 는 없는 걸까.”

 “불가능 할 때도 있는 법이래.”

 오늘은 왠지 윤아가 말이 많다. 그는 얇은 VSR 전투복 차림의 너머로 윤아의 살결을 느꼈다. 말캉 하고 조금은 질긴 젤리 같이 달라 붙은 그녀의 가슴 속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숨 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 마시다가 멈추었다. 그녀 역시 체온이 닿고 있으니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편안해졌다. 신기하게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의 체온을 느껴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있던 곳에선 언니랑 동생들이 힘들 때마다 안아 주었었는데. ‘모두 죽었어.’ 오늘과 같은 날이었다. 작계에 따라 뒤로 뒤로 후퇴하다가 예상보다 적 기보의 진격 속도가 너무 빨라 여군으로 구성된 중대가 고립되어 버렸다.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깊은 산을 넘고 또 넘었지만 완전히 체력은 고갈되고 단 한번의 매복에 중대가 완전히 지리멸렬하게 와해되어 버렸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살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싫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도 몰라.”

 윤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 말이 그의 귓가 가까이에서 울렸다. 뭐가 그렇게 될지 모른단 것인 것. 그는 윤아에게 있었던 일을 짐작은 하고 있지만. 어떤 일을 겪었을지는 상상할 수 없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다. 좁은 길목으로 돌풍이 확 몰아친다. 새 우는 소리와 나뭇잎 사이가 섞인다. 윤아는 몸을 뒤척였다. 입술이 그의 귀에 닿았다.

 “있잖아……. 도망치자. 지금부터 도망치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뭐?”

 “도망치자 응? 해뜨기 전에 몰려 올 거야. 난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 또 아는 사람이 죽는걸 보고 싶지도 않아. 모르겠어 나는 나는 있잖아.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 나는 대체 뭔지 아무 것도 모르겠어. 여기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죽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 같아. 사명? 모르겠어. 난 그저 일단은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지옥이 어떤 건지 봤어 거기서 기적 같이 살아 돌아와서 두 번 다시 그럴 일을 겪고 싶지 않아. 근데 지금 이게 뭐야 여기서 또 그런 지옥이 올걸 알면서도 기다려야 하는 거야? 이건 말이야 미친짓이야.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 막 말했다. 처음에는 침착하게 말하다가 어느 순간 과거의 기억이 몰아치면서 복받쳐 올랐는지 빠르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꽉 움켜 쥐었다. 비스듬히 그와 겹쳐 있던 몸이 어느새 그에게 찰싹 붙어 있었다.

 “너라면, 같이 도망치고 싶어. 너라면 나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녀는 그를 껴안았다. 그는 몸을 조용히 뒤척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따뜻한 습기가 느껴졌다.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있지만 역시 도망칠 용기는 들지 않는다. 이 작은 나라에서 도망쳐 봐야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평생을 도망쳐 살아야 하는 것인가? 죽을 것이냐 죽은 것처럼 살 것이냐? 어려운 질문이다.

 흡.

 그의 입술이 축축하고 뜨거운 것과 닿았다. 약간 짭짤한 맛도 났다. 윤아의 입술이 그의 입에 닿았다. 말랑한 입술이 겹쳐지고 윤아의 혀와 침과 눈물이 섞여 들어 왔다. 윤아는 그를 세게 붙잡았다. 질척한 혀가 그의 혀와 얽혀서 말랑한 혀가 서로의 맛을 느꼈다. 그도 윤아의 어깨와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더 세게 더 가까이 아예 몸이 녹아서 서로가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아는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행동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두려움 만은 사라졌다. 

 입술이 떨어지면서 침과 눈물이 흘러나와 떨어졌다. 잠시 거리가 벌어졌다가 또 아쉬워서 달라 붙었다. 그는 그녀를 품 안에 완전히 넣고 싶었고 그녀는 조금도 빈틈 없이 그의 안에 안겨 들어가고 싶었다. 그의 가슴에 윤아의 가슴이 뭉개지면서 닿았다. 빠르게 요동치는 심장 고동이 들어온다. 호흡이 거칠고 빨라진다. 조금 더 조금 더 편안해지고 싶다. 그녀의 얼굴은 그의 쇄골 앞에 닿고 강아지처럼 그의 목을 핥았다. 야전의 생활은 지저분하지만, 그녀는 원하는 만큼 핥았다.

 몸이 뜨거워 지면서 머리에 땀이 차 올랐다. 플라스틱으로 된 가벼운 방탄은 바닥에 내리치면 퉁 하고 튀어 올랐다. 너무 가벼워서 그 방호력이 의심스러웠으나 굳이 먼 나라에서 수입해 온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방탄 속에 땀이 차오르고 부유대의 가죽이 젖어서 더듬거리며 벗어버렸다. 키스하느라 엉망으로 밀려난 윤아의 방탄도 벗겨 버렸다.

 윤아의 허벅지는 좀 더 웅크려지면서 그의 허벅지 사이를 비비고 들어왔다. 그리하여 다리도 엉켰다. 그는 그녀의 몸 구석 구석 체온을 주었다. 윤아는 텅 비었던 불안감이 채워져 따뜻함에 안도했다. 왜인지 이것을 가지면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기분이 되었다. 결국 도망은 가지 못했다.


 새벽 밤하늘에 화구가 새겨졌다. 별 사이를 빛이 갈랐다. 소란스러워졌다. 기갑의 기동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키리리릭하고 크르르르 하는 궤도 맞물리는 쇳소리와 저음의 엔진음이 산 구석구석을 타고 퍼져 나와 귀를 때렸다. 얼마나 먼지 어디에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소리는 차가운 밤 공기에 굴절되어 사방에서 들려온다. 마치 바로 귓가에 있는 것 같이 소리가 들려온다. 아래에 숨어 있는 병력들이 동요되는 소리가 느껴진다. 풀숲이 들썩인다.

 하지만 적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윤아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녀는 이제 아무런 말도 없다. 전차의 기동음은 한 시간 내내 들렸다. 가까워졌는지 멀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아군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언젠가 이곳으로 올 것이란 사실도 분명하다. 꽉 잡은 손에 땀이 흘렀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우정도 아니다. 그냥 기대고 싶은 무언가를 급하게 급조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약한 둘은 그대로 무너져 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호음이 들렸다. 예상한 방향에서의 적 기보가 접근 중이라는 신호다. 그 동안 약속한 신호가 터지고 다들 숨이 멎은 듯 고요해졌다. 더 이상 풀숲도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하다. 저 좁은 목을 지나면 적은 분명히 나타난다.

 우회해서 산을 타고 오는 병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중대장은 길목 양 옆의 산에 길게 방어선을 쳐놨다. 덕분에 얇아졌다. 중대장은 겹겹이 방어선을 구축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곳에 주둔하면서 매일 매일 파놓은 교통호를 삼일 간 급하게 죽어라 개수했다. 최악이었다. 덕분에 싸우기도 전에 피로가 극심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응…….”

 윤아는 짧게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손을 꽉 잡았다. 맞은편 산 기슭에서 폭음이 들렸다. 크레모어와 지뢰의 파열음이다. 이후 수류탄 소리와 함께 총성이 있는 대로 들렸다. 모든 탄을 다 쏟아 붓는 것 같이 격렬한 총성이었다.

 병사들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상상하던 것 보다 너무 많은 병력이 몰려왔다. 중대장은 전초에서 신호음이 들리고 나서 급히 전초까지 연결된 무전기를 달그닥 거리며 신호를 넣었다. 모래가 잔뜩 끼어 쉽게 돌아가지 않아 신호를 보내는 것도 힘들었다. 열이 받아서 무전기를 내리 치려고 들었다가 다시 냉정을 찾으면서 집어 들었다.

 “왜 연락을 받지 않는 거야?”

 이유는 간단 했다. 전초가 바라본 도로외에 다른 방향으로 미리 하차해서 접근해온 병력이 신호탄을 쏜 전초를 발견하고 제압했기 때문이다.

 “2소대장! 야 2소대장!”

 그는 지휘 무전병의 송수화기 송신 버튼을 누르면서 대답했다. 그는 무선 통화법을 완전히 무시했다. 마음이 급한 것도 있었으나, 평소의 습관 때문이 더 컸다. 2소대장은 병사들과 다름 없이 완전히 겁먹고 요란한 소리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전쟁터에 오면서 전투를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전투는 어쩐지 막연히 다른 부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무전기를 잡으려고 하자 뺨이 화끈했다.

 “2 소대장 정신 안차리지? 미쳤어? 위급한 상황에서 조차 얼탈꺼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시끄러워서.”

 “시끄러우면 명령 안받아도 되나!”

 “죄송합니다!”

 “규모가 얼마나 되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중대장이 쏟아지는 총탄과 파열음 소리보다도 큰 소리로 소리쳤다. 그가 주먹을 꽉 쥐며 허공에 휘둘렀다. 옆에 있던 지휘무전병의 어깨를 실수로 후려쳤을 정도다.

 “꽤 많습니다. 어림잡아 한 개 소대급은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일단 알았다.”

 2소대장은 솔직히 알 수 없었다. 그냥 밤 중에 뭔가가 반짝이며 총알을 띄워주는데 무슨 수로 더 풀숲 너머에 있는 적의 규모를 안단 말 인가. 직접 가서 세어 볼 수도 없는데, 중대장이 소리친다고 그게 다 될 일이 아니라며 역으로 짜증냈다. 그가 참담하고 나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송수화기를 무전병에게 주었다. 무전병이 송수화기를 받아보니 질척했다. 뭔가 묻은 것 같아 냄새를 맡아 보니 피였다. 소대장의 뺨을 스친 탄두가 남긴 상처였다.

 “씨발, 진짜 씨발.”

 2소대장은 풀숲 너머를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사실 그가 조금이라도 지원을 더 받아 보기 위해 1개 소대 급이라고 뻥 튀겨서 이야기 한 것이다. 적의 규모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그 질이 달랐다. 적은 야시장비의 보급률이 높았다.

 그들이 해가 뜰 때쯤 공격하지 않고 몇 시간 빠르게 야간에 공세를 한 이유는 여단에서 주변 TF와의 공세선을 조율하기 위해서 예정보다 빠르게 당장 공세를 시행 하라고 급히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공세를 멈추면 파죽지세로 치고 들어가는 아군의 옆구리가 몇 시간이라도 비어버릴 수가 있었다.

 야간에 공격 하는 것은 그들도 꺼렸지만, 여단 본부에서는 당장 아침에는 여단 본부가 이 마을을 지나가길 원했다. 걱정 되었지만. 이쪽은 야간 전투를 위한 장비도 충분히 있으니, 진행하기로 했다. 그들은 콩쿠루스나 파곳등이 박혀 있을 것을 예상했다. 한 쪽 진입로로 병력을 집중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다.

 좌측의 주도로에 화력이 집중 될 예정이나 우측의 보조 도로로 돌파하는 것을 기대했다. 아무래도 주도로쪽에 대전차 무기가 배치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측은 좁고 지형이 공격하기에 좋지 않아서 우측에 전차를 집중하기로 했다.

 가장 첨단에 나온 중대이기 때문에 대전차 화력을 몰아 주었을 것이기 때문에 좌측으로 공격해봐야 돌파를 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총 가용 6대의 전차를 우측을 몰아 넣기로 했다.

 참호의 병사들은 바짝 다가오는 기동음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피곤함이 싹 가지고 두려움이 차올랐다.

 “왔다. 왔다 씨발.”

하차하여 접근하는 적 장갑차와 보병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말은 여기저기로 퍼져서 모두가 들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고 방아쇠를 쥐고 쳐다보았다. 곧 바로 머리가 흔들리면서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귀가 멍했다.

 “포탄 낙하!”

 바로 머리를 머리를 땅에 박고 웅크렸다. 박격포의 비과음이 기분 나쁜 파열음과 섞여 들어왔다.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땅에 박은 머리가 박격포가 폭발 할 때마다 진동하였다. 헬멧을 타고 땅의 울림이 머리와 척추를 뒤 흔들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 나가고 싶었다. 이런 곳에서 살아 남는 것은 불가능했다.

 G3 소총을 꽉 쥐고 있던 그는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와중에 적이 천천히 접근해오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죄다 웅크리고 있는 틈에 장애물을 전부 개척 해버릴 까봐 걱정되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들었다. 땅의 울림이 한층 심해졌다. 그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앞을 쳐다보았다. M113 장갑차의 윗부분이 살짝 보인다. 너무 요란스럽고 시끄러워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지 어쩐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딱 그 정도였다. 그걸 확인 할 수 있을 정도의 생존이면 그의 평생의 운을 전부 다 써버린 것이다. 곧바로 묵직한 파편 하나가 귀의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와 머리에 박혔다. 파편이 헤집고 지나간 덕분의 머리통의 바깥 부분의 형태가 일그러지며 무너졌다. 피를 한방에 모두 쏟아 내겠단 기세로 힘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야아, 미친, 야. 이, 야! 괜찮아? 괜찮냐고?”

 같은 참호에 있던 병사가 머리를 뚫린 친구를 붙잡고 물었다. 마치 사고로 기절한 사람을 흔들듯이 그는 머리가 부풀어 올라 깨져 있는 친구를 흔들었다. 그렇게 빨리 사람이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해봤던 까닭에, 그는 죽임이 이렇게 단순한 것인지 몰랐다. 머리가 깨져도 피를 방류하듯 흘려 보내도 아직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죽었다는 것에 대한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원래 백린탄과 연막탄을 섞어서 긴급연막을 치고 장애물 극복을 하려던 계획이었다. 고폭이 쏟아지는 사이 하차 보병이 조금씩 전진하여 장애물을 폭파시켰다.


“앞에 있어. 적.”

 윤아가 말했다. 그는 윤아와 함께 왼쪽 주공 방향의 적을 쳐다 보았다. 어둠 속에서 장애물을 하나씩 개척해 나가는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하지만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총구 화염이 그의 위치를 들키게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 어둠 속에서 조준해봐야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것들을 이 거리에서 맞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이었다. 사실은 그냥 방아쇠를 당길 마음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애들 모두 죽어. 이대로 가면 모두 죽을거야.”

윤아가 말했다. 그는 윤아의 말에 마음 속으로 코웃음 쳤다. 방금 전까지 도망치자고 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는 아군이 죽을 거라고 걱정하고 있다니, 가증스러웠다. 하지만 잡고 있는 손은 떼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박격포의 포성이 멎었다. 적이 참호선에 근접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위험 사격을 감내 할 수 없었다. 참호에서 하나 둘씩 머리를 들고 대응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장갑차의 사수들이 빠르게 단발로 참호에 갈겨대고 있었다.

 “지켜볼거야?”

 “위험해. 우리가 들킬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싸우려고 여기 있는 거잖아.”

 “넌 도망치려고 했잖아!”

 그가 윤아에게 목소리를 순간 적으로 높였다. 자신도 깜짝 놀라서 목소리를 다시 낮추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소리쳐서 미안. 나는…….”

 그는 적절한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그래, 나는 너와 잤잖아. 그래서, 널 죽게 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그래.”

 윤아는 이기적이게도 안심이 되었다. 자기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나는 이 여자를 지켜야 하니까, 어차피 나는 전력이 아니라서 중대장이 이런 외딴 곳에 배치한 것이잖아. 어차피 나 한 명 빼놓고 방어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없다고 무슨 일이 벌어지겠냐고! 그는 덜덜 떨리는 몸은 주체하지 못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아래에서 벌어지는 학살 극을 전우가 아닌 남일로 묵도 하고 있었다. 왼쪽은 참호선에 그렇게 점차 접근하고 있었다.


 “2소대장입니다! 피해가 너무 큽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물어봐도 소용 없었다. 거기 포기하고 내려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중대장은 고민했다. 대대에 보고 해봤지만, 대대에서 지금 당장 이곳을 지원해 줄 방법도 요원했다. 2소대는 완전히 토끼 사냥을 당하고 있었다. 야시장비를 지닌 적은 산 속에서 2소대원을 표적 삼아 사격 연습을 하고 있었다.

 “2 소대장입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중대장은 대답이 없다. 중대장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2소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휘무전병을 붙잡고 짜증을 냈다. 무전기 상태가 안좋다면서 이런 위급한 상황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장비는 의미가 없다고, 평상시 관리를 잘했어야지 뭐했었냐고 욕설을 쏟아 부었다.

 “방금 전까지는 이것이 멀쩡했는데…….”

 “닥쳐!”

 2 소대장은 주먹으로 무전병의 코를 쳤다.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는 얼굴을 붙잡고 웅크리면서 말했다. “씨발. 나더러 어쩌라고.” 문제는 몸을 숙이면서 안테나가 소대장의 얼굴을 후려쳤다. 소대장의 분노가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할 일이 없어서 개도 안 가려고 하는 군대에 온 건데 엿 같은 대접이나 받으면서 버텨왔더니, 정작 이런 위급한 순간에 뾰족한 방법 하나 못 만들어내는 것도 군대라고, 이것도 나라라고, 처음부터 많이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속이 뒤집어 지는 듯 했다.

 “뭐라고 했냐? 엉? 뭐라고 했냐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이 새꺄!”

 그는 발로 웅크린 무전병을 밀어 넘어뜨렸다. 딱딱한 지게가 무전병의 등에 충격을 그대로 전해줘서 그는 내장이 뒤흔들리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네가 무전병이면 책임을 지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전병은 끓어 오르는 살의를 누르며 대답했다. 옆구리에서 롱 안테나를 꺼냈다. 지금의 안테나를 빼놓고 롱 안테나를 하나씩 펴서 무전기에 꼽아 넣었다. 안테나는 나무 가지 사이를 휘청거리며 툭툭 쳐댔다. 소대장은 송수화기를 잡았다.

 “여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전병은 소대장의 코가 깨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빛나는 예광탄이 코를 스쳐 지나갔다. 코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소대장이 무슨 일인지 느낄 틈도 없이 무전병이 놀라서 엎드릴 틈도 없이 차탄이 날아와서 턱 끝을 부숴버리며 지나갔다. 다시 또 탄이 날아 왔다. 옆의 턱뼈를 으스러뜨리며 입안을 관통하여 이를 부숴버리고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소대장의 얼굴을 관통하며 박살내버린 이의 조각과 뼛조각이 입천장과 혀와 목구멍에 파편이 되어 박혔다. 제대로 파괴된 턱뼈는 찢어진 살점과 함께 얼굴 뼈에서 떨어져 나와 대롱거렸다. 소대장이 눈을 깜빡이며 자기 턱을 만져보려고 했으나 곧 쓰러졌다. 무전병 역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너무 놀라 굳어버린 그 찰나에 목을 탄이 관통하고 지나가며 동맥을 끊었다.

 오른쪽의 공세는 지뢰가 문제였다. 도로에 박격포를 두 세 차례 수정하며 참호선 까지 때렸다. 이것으로 지뢰와 장애물이 어느 정도 개척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안심하지 않았다 M1 전차 앞에 달린 급조된 지뢰지대 개척 장비가 땅을 헤집었다. 급하게 공세를 준비하느라 미클릭을 가져올 수 없었다. 6대의 전차는 좁고 불편한 길목에서 왼쪽보다는 적은 수의 장갑차와 보병의 지원을 받으며 전진했다. 전차 연막이라도 뿌리면서 전진했다. 대전차 지뢰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도로를 타고 3대가 전진했고 지뢰지대를 개척하면서 이동하는 전차 뒤로 나머지 두 대가 붙었다.

 지옥도 같은 풍경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쪽을 맡은 3소대는 완전히 사기가 곤두박질 쳤다. 길가에 바짝 붙어 산에 매복한 소대원들이 장애물을 폭파하는 적을 방해하려 사격 할 때마다 전차포가 여지 없이 날아와 참호와 같이 하늘로 날려 보냈다. 재수 없게도, 병사 한 명이 전차의 고폭탄 사격에 축제용 불꽃처럼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건 달빛을 받아 분명하게 보였다. 사지가 찢어진 채 솟구쳐 허공에서 허무하게 분해되어 비처럼 쏟아지는 그 광경에 모두 넋을 잃었다

 M113들이 참호에서 머리를 내밀려고 시도 하는 병사들에게 기관총 사격을 가했다. 참호에서 고개를 들어보려고 하는 병사는 이제 더 없었다.

 날카로운 소리와 요란하고 큰 총성이 들렸다. 산에 설치한 중기관총이 M113을 향해서 사격을 가했다. 50구경의 탄환이 M113의 측면을 물렁한 것을 관통하듯이 가볍게 뚫었다. 기관총을 잡던 사수는 그의 무릎이 완전히 으깨지는 것을 느꼈다. 격통과 함께 주저 앉으면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계속 가해지는 사격이 내부에 쓰러져 있는 그에게 엄지만한 구멍들을 만들어 주었다. 조종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필이면 탄이 관통하면서 두 눈알을 꿰뚫어 버렸기 때문에 그는 일 순간 정전이 된 것처럼 세상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얼굴을 감싼 손가락 사이사이로 피가 쏟아져 흘렀다.

 “잘 했다. 씨바 존나 잘했다!”

 살짝 고개 들어 그 광경을 보던 3소대의 1분대장이 소리쳤다. 전차를 믿고 피해를 최소화 하려차근차근 공세 해오던 적은 약간 기세가 꺾였다. 그들은 중기관총이 있는 방향을 향해 사격했다. 전차포는 안타깝게도 닿지 않았다. 제일 앞 전차의 기관총을 잡고 있는 병사가 멍청하게 전차의 기관총을 중기관총이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가 정면의 참호에서 날아온 총에 쓰러졌다.

 운이 좋았다. 지뢰를 개척하던 전차가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지뢰를 파괴하지 못하고 궤도 밑에서 대전차 지뢰가 터져버렸다. 땅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굉장한 소리가 들렸다. 흙먼지가 피어 올랐다. 산 기슭에 매복해 있던 알피지를 든 대전차조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덤벼 들었다.

 아니었다. 전차는 파괴된 것이 아니라 궤도만 나가 주저 앉아 있었다. 그들이 날린 알피지가 전차 스커트를 때렸다. 순간 반짝였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거 뭡니까?”

 부사수가 말했다. 주저 앉은 전차를 앞질러서 오던 전차가 알피지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한방 갈겼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자리가 움푹 파이면서 흙과 나무가 무너져 내렸다. 오르막길과 복잡한 지형상 전차가 참호에 유요한 포격을 가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전차를 잡을 방법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배운대로 전차를 향해 열심히 일단 총격을 가하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더욱 그들을 좌절시켰다. 무의미한 일이라고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거야.”

 윤아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어떻게 죽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지켜보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죽고 있다. 윤아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적은 예상보다 쉽게 참호선에 도착했다. 바로 앞까지 뛰어 오니까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참호 밖에 총만 내놓고 사격했다. 눈 먼 총에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잔뜩 고양된 적 들은 무개호에 뛰어 들었다. 엎드리고 있는 병사들의 등짝을 총검으로 한번씩 찍어주거나 갈겼다.

 간혹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손을 들고 참호에서 기어 나오려고 하는 병사도 있었다. 보통 죽었다. 반사적으로 총격을 가해버렸다. 그들은 아차 싶기는 했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유개호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곳에나 총격을 가하고 있었다. 이내 곧 사각지대에서 접근한 분대에 의해서 수류탄 두 세개로 간단히 격파되었다. 분위기는 참담했다. 총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전장은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가야 해.”

 그가 벌떡 일어났다. 더 늦어 버렸다가는 길 가운데의 작은 풀숲에 고립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불쾌한 기분이 잔뜩 들었다. 장갑차가 뒤따라 들어오면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일일이 피하지 않고 밟고 지나갔다.

 “천천히 가. 못 따라가겠어.”

 윤아가 뒤에서 작게 말했다. 조금만 더 늦으면 완전히 마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마을 사람들을 전부 소개시키면서 짐들을 마을 회관에 쌓아 놨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훔쳐갈 것이 걱정되어 아무도 못 들어 가게 했지만 이제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

 뒤따라 오던 윤아가 짧게 소리치면서 바닥을 굴렀다. 덕분에 앞서 뛰어가던 그도 윤아와 함께 넘어질 뻔 했다. 나무를 붙잡고 돌아보니 윤아가 쇄골 부분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VSR전투복이 그쪽에서부터 동그랗게 번져왔다. 그는 마음이 급해졌다.

 “미안하지만, 아파할 시간이 없어. 빨리 가지 않으면 안돼.”

 그가 아파하는 윤아의 팔을 잡고 당겼다. 팔이 힘없이 당겨졌다. 너무 세게 당겼는지 윤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윤아 위에 올라타서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어디서 어떻게 맞았는지는 몰라도 한 발 날아온 것 이외에 다른 총격이 가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오발탄이 날아왔다던가, 쏴 놓고 오해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소리내면 죽어.”

 그가 말했다.

 벌써 박명이다. 터오는 햇빛이 얼굴을 비췄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눈빛이다. 그는 그런 눈빛을 읽었지만, 그 때문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보아하니 상태가 좋지 못하다.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도무지 데리고 도망 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누가 오는 것 같아.”

 멀리서 풀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여기에 있을 건 적뿐이다. 마음이 흔들렸다. 어차피 아군도 버렸다. 이제 와서 여자 하나 버리는 것 어렵지 않다. 어차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 여자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냥 두려워서 잠깐 같이 있었던 것뿐이지. 처음에 도망치자고 했던 건 이 여자가 아닌가, 죽기 싫어서 도망치고 싶었던 사람이니까 그냥 자신이 필요 했던 것일 테다. 혼자서 도망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냥 필요해서 본 사람이다. 처음부터 상대도 할 수 없는 적을 맞아 싸우는 것은 완전히 개죽음이다. 이렇게 죽느니 살아서 뭔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설마 저항할 의지도 없는 여자를 막 죽이겠는가?

 윤아가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고 있다. 그는 윤아의 입술에 키스했다. 말랐던 침이 다시 분비되며 뒤섞였다. 그녀는 짧게 숨쉬면서 신음을 뱉었다.

 “여기 잠깐만 있어, 내가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올게.”

 그는 진지한 눈으로 윤아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 두려움이 스쳤지만 약 오 초간 말없이 눈을 마주치고 나서 그를 믿기로 했다.

 “빨리 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뛰어 내려갔다.

 

그는 곧바로 마을회관까지 달렸다. 화약냄새와 새벽의 물안개 냄새가 진동했다. 아직도 뒤에서 드물게 저항하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건 다 국가의 잘못이니까 내가 여기서 죽을 필요 없어. 자유진영이니 공산진영이니 아무데도 끼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가운데서 잘 줄을 탔어야 했어. 이 전쟁은 다 국가 탓이니까. 중대도 버렸는데 사람 한 명 못 버릴 것 없어. 그는 한발도 쏘지 않은 총을 아무데나 집어 던져버렸다. 

 마을 회관의 창문을 깨고 들어가서 떨리는 손으로 아무 짐이나 풀어 해쳐서 전투복을 전부 벗어 던졌다. 평소에 잘만 풀리던 벨트가 풀리지 않아 조급했다. 옷을 갈아 입고 나서 돌아보니 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있었다. 작은 가방 하나에 닥치는 대로 비싼 보이는 물건을 쑤셔 박고 갈아 입은 흔적을 없애기 위해 전투복을 구석에 쑤셔 넣었다.

 도망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그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마을을 떠나 사라졌다.


4개의 댓글

[삭제 되었습니다]
2016.10.22
@오늘부터그림왕
아무튼 감사해줘서 고마움
1
2016.10.22
원래 제목이 콩쿠르스와 파곳 아니었냐?
0
2016.10.22
@1011CON
걍 대충 지은 건데..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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