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디저트 타임(평가 부탁)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 설탕을 양껏 넣고 거품기로 섞는다. 조개껍데기를 찍어내 만든 그럴싸한 팬에 마가린을 바른 후 뿌리는 밀가루에서는 아기 분 냄새가 난다. 반죽을 짜 넣은 뒤 190가량의 오븐에 팬을 넣으면, 이제는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다.

 

태양계와 외부 은하의 시간차, 과학이 어지간히 발전한 이 우주 세기지만 아직까지 은하단위 전송이 가능한 것은 소소하고 작은 물건들뿐이다. 사람 개인은 고립되고, 행성들간의 소통수단은 모스 부호가 유일한 시대. 흔치 않은 손님이 직접 비행정을 타고 방문했다.

나는 작년 여름, 1000년 전 유행한 성간 잡지를 보고 혹해 작게 마련해놓은 야외 테라스로 다과들을 준비해 가져갔다.

드디어 시간이 생겼네요. 이곳까지 오는데 40년은 족히 걸리셨을텐데

한 세기의 반을 우주에서 보냈지요. 우주 유일의 디저트를 굽고 계시잖습니까, 이해합니다. 제가 취재한 기사를 낼 때쯤이면, 디저트는 누구도 맛볼 수 없는 전설이 되어있겠죠. 그럼 제 기사의 가치도 올라갈 겁니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금세 부글부글 끓는 물.

고마워요. 기자님은 디저트를 만들게 된 일화가 궁금하셔서 지구까지 오셨다고요?”

예 부디, 디저트의 기원부터 오늘 날에 이르게되는 과정을 취재하고 싶습니다.”

기자는 노트와 펜을 쥐어 들었다. 이 시대에 노트와 펜이라니 뭐람. 아무튼, 그가 준비된 것 같아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사람과 처음 만난 건 100년 전, 이 변두리 행성의 사막이었어요.”

디저트의 일화 이야기가 아닙니까?”

한껏 흥분했던 기자는 내 서두에 머리를 긁적인다. 퍽 내 시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 변두리 행성의 사막이었어요. 당시 전 라발의 군인으로서 18차 세계 대전에 참전 중 적군의 공격에 좌표가 어긋나 그 변두리 행성에 불시착했지요. 저는 타들어 가는 더위 속에서 한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피아씨가 굽는 디저트를 만드는 방법은 이 행성에서 만남 그 남자에게서 배운 건가요?”

그는 자신을 우주의 마지막 파티시에라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무언가를 물으려 입을 벌렸다. 그 벌린 입에 재빨리 쿠키 하나를 넣어주었다.

이 낡은 행성에서 재료를 찾고 있다고 했었죠. 어떤 재료를 찾느냐고 물었더니 의미를 모를 말만 하더군요. 나는 내 비행정을 복구할 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그가 피아씨가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군요?”

그는 비행정을 고치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저에게 쉽게 내어주진 않았죠. 그는 자신이 찾는 재료들의 수집을 도와주면 고장 난 비행정을 고칠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입이 말랐기에 미지근하게 식은 홍차를 약 삼키듯 목구멍에 밀어 넘겼다.

우린 4년 동안 함께 행성을 전부 돌았어요. 남자와 함께 여행한 4년은 제가 이 행성을 사랑하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 우주는 142억 년 동안 전쟁 속에 삼켜지고 있었는데도 행성의 초원에서 올려 보는 밤하늘은 별과 항성의 행렬이 강처럼 흐르더군요. 광활한 광경이었어.

그즈음 전쟁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그때 찍은 사진은 아직도 난로 위에 걸려있어요.”

 

기자가 걸어간 벽의 한 면 전체에, 4년 동안 남자의 구식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내 추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재료를 한 아름 풀어놓은 날, 남자는 그날 저녁 자신은 이 행성을 떠난다고 말하더군요.”

어디로 떠나며, 떠나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쿠키를 좀 더 드시죠. 저는 저와의 약속에 관해 물었죠. 그 남자는 대답 대신 자신이 지금까지 모은 재료로 갖가지 디저트를 만들어 저에게 선물했어요.”

혹 파티시에란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을 칭하는 명칭입니까? 그래서 디저트를 당신에게 만들어준 것이고 말이죠. 하지만 그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답변은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날밤, 남자는 제 옆에서 잠들었고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어요. 그는 죽었어요.”

내 말을 받아 적던 기자는 펜을 멈추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기자는 사진 몇 장을 가지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어째서죠? 인류는 죽음을 극복했습니다.”

그에게 죽음이란 극복할 대상도, 선택의 요소도 아니었어요.”

그가 죽음을 신봉하는 시대에 뒤처지는 급진적인 광신도였습니까?”

그들은 죽음을 종착지로 보잖아요. 아니요. 그는 돌아오겠다고 했어요.”

유감스럽게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돌아올 수 없지만요!”

그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답 없이 홍차를 홀짝이자 그는 침묵을 깨려는 듯, 나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더 해소하려는 듯이 펜을 휘저었다.

 

디저트의 기원은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하지요. 피아씨에게 디저트란 무엇입니까?”

저는 제가 만든 디저트를 맛보고 우주 어딘가에 있을 그가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에게 디저트란 그에게 전하는 제 실시간 좌표 알림이죠.”

정말로 그가 돌아올 거로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가 저에게로 돌아오면, 기자님에게 가장 먼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죠.”

난 테이블에 놓여있는 디저트 중 가장 좋아하는 달달한 에그타르트를 입에 물었다.

기자는 이내 수첩을 덮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와 함께 한 장의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가 돌아갈 저녁이 되었고 나는 기자를 배웅하기 위해 솔을 두른다. 가을의 지구는 쌀쌀하다.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피아양 덕분에 특집 기사를 완성할 수 있겠습니다.”

출발 전, 기자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종류의 쿠키를 한 봉지 포장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옛 역사극에서 나오는 신사처럼 모자를 들어 감사인사를 한다.

만약 사진이 도착하면 재회한 두 분에게 어울리는 꽃을 들고 꼭 재방문하겠습니다. 부인.”

기자를 태운 비행정이 날아오른다.

날아가는 비행정과 지구의 노을의 조화를 아름답다고 느낀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내 나온 종이, 흔들었더니 금세 작은 사각형 안에 풍경이 담겼다.

 

기자가 태양계를 벗어나 쿠키를 먹을 요량으로 디저트 봉지를 열었을 때, 봉지 속에 들어있는 두 장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장의, 사진 모두 남자가 여자로부터 떠나기 전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한 장은 오랜 시간이 지나 푸석했고, 한 장은 인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명했다.

기자가 돌아보았을 시점에는 이미 태양계가 작은 점처럼 멀어져 있었다.

 


----------------------------------

엽편으로 쓴건데 평가받고 싶어서 올려본다. 

8개의 댓글

2016.07.25
두번 읽었어!!

피아는 죽었던 파티시에가 살아 돌아와서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과 100년전 찍은 사진을 함께 전송한거지?
파티시에가 죽고 살아돌아 온 것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이해가 잘안간다.

궁금해서 잠이 안와요! 설명해줘ㅎㅎ
0
2016.07.25
@마치
궁금증을 유발했다면 반은 성공한 것 같아!
“저는 제가 만든 디저트를 맛보고 우주 어딘가에 있을 그가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에게 디저트란 그에게 전하는 제 실시간 좌표 알림이죠.” 가 하나의 힌트였고 이야기 내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파티시에는 피아에게 돌아왔고, 또 다시 약속을 하고 떠나갔어.

표현 방식을 조금 더 보드랍고 직관적이게 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당! 덧글 고마와얌!
0
2016.07.25
@구겨진 영수증
어떻게 돌아온지가 궁금해ㅠ

나는 남자의 죽음을

'저 시대에는 인간이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그게 당연한 일인데
남자는 그걸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다.'로 이해했거든

아니면 이런 모호함 또한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려나?
0
2016.07.25
@마치
표현하고 싶었던 건 기다린다는 것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

그가 과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돌아올 수는 없지만 피아는 계속 기다리는 거지. 그리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벽면에 걸린 사진엔 피아만이 사진의 주체로 찍혀있었어.

피아가 봉투안에 넣어 둔 사진은 피아와 남자가 함께 찍힌 사진이였고, 두 사진 모두 '남자'가 찍혀 있었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기자가 피아가 기다린 남자가 아니였을지, 아니였을지 그것도 궁금할 수 있는 부분이고 , 피아가 어쩌면 새로운 기다림을 시작하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끝의 끝에 와서는, 판단과 상상의 가능성은 역시 독자의 몫으로 애매하게 남기고 싶었어.

읽어줘서 고마움
0
2016.07.25
웅 이제 어떤 의도인지 조금 알것같다. 나도 그래서 첨에는 "이거 기자가 파티시에네!? 캬! 좋은 이야기다!" 라고 생각했었거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게 좀더 여운있어서 그냥 그렇게 생각할래!
재밌는 글 땡큐
0
2016.07.25
@마치
굿 낫,굿 밤-
0
2016.07.26
디저트 타임이라니 너무 귀여워요.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상냥하고 귀여운 여성이 빙글빙글 기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어요.
나는 이 글의 등장인물들이 좀 더 살아있는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대사와 대사로 이어지는 사이에 그들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모습을 들려주었으면 해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 귀여운 디저트들을 묘사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생겼으며, 입에 넣으면 무슨 맛이 나는지, 얼마나 부드러운지! 아 생각만 해도 너무 기분이 좋아요..
물론 이것들은 제 바람일 뿐! 이렇게 댓글 달아놓고 다음에 또 읽으러 올게요.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었어요
0
2016.07.26
@히익
고마와요!! 디테일 적인 면을 고려해서 전진할게용!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조회 수
32448 [그림] 자세를 창작해서 그리는건 힘드네 뿔난용 1 9 시간 전 42
32447 [그림] 코하루 모작 연습 뀰강정 2 13 시간 전 48
32446 [기타 창작] 3D 븜 열심히 진행중 1 에오리스 4 14 시간 전 42
32445 [그림] ddsdsdsds 7 구파 10 1 일 전 70
32444 [그림] 블렌더 배경연습 한장 6 끠자치킨 6 1 일 전 94
32443 [그림] 플러스터 토마+포세이혼 3 뿔난용 5 5 일 전 116
32442 [그림] 플러스터 토마+포세이혼(스케치) 뿔난용 1 5 일 전 55
32441 [그림] 오랜만에 샤프 낙서 장윈영 2 6 일 전 109
32440 [그림] 야밤 동탄 3 프로수간충 7 6 일 전 337
32439 [그림] 플러스터 간+기가듈 뿔난용 1 6 일 전 49
32438 [그림] 플러스터 간+기가듈(스케치) 뿔난용 1 6 일 전 25
32437 [기타 창작] 개다, 요루시카 권주가 1 6 일 전 52
32436 [그림] 플러스터 간+테라 뿔난용 3 7 일 전 72
32435 [그림] 플러스터 간+테라(스케치) 뿔난용 1 7 일 전 29
32434 [그림] 스윽 5 구파 9 7 일 전 97
32433 [그림] 플러스터 간+바로제 뿔난용 4 8 일 전 55
32432 [그림] 플러스터 간+바로제(스케치) 뿔난용 1 8 일 전 39
32431 [그림] 스압) 죽음이 보이는.manhwa 1 띠굼아 5 8 일 전 124
32430 [그림] 플러스터 토마+가브리온 뿔난용 2 9 일 전 51
32429 [그림] 플러스터 토마+가브리온(스케치) 뿔난용 1 9 일 전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