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개같은 심리학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게 목적인 인간의 심리학이 있다면


누가 더 나은 놈인지 우열을 가리는 개같은 심리학도 있다. 


결국 상대 마음을 얼마나 잘 파악하냐 싸움인 건 마찬가지이지만, 개같은 심리학에선 상대를 물어뜯어야한다. 


#1 


내가 자주가는 도서관에는 늙은 사서가 한 명 있다. 


그 노인네 싸가지 없다는 말을 옆자리에서 내가 주워들을 정도로 싸가지가 없다.


그 노인네가 어느 날 내 인사도 안 받아주고 내가 들어가는데 계속 꼬라보는게 아닌가. 


뭐지. 인종차별자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전에 바나나 들고 들어가려다 걸린 일이 생각났다. 


"어이!" 하고 소리지르길래 나도 기분 상해서 얼굴도 안 쳐다보고 바나나 락커에 쳐박고 올라간 일. 


아. 저 인간은 남은 무시해도 자기는 무시받기 싫다는 거구나. 


도서관 3층에서 생각을 마친 나는 다시 로비로 내려갔다. 


"미안해요. 그때 일은."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 하는 노인네. 당황스러운 표정도 보인다. 괜히 옆사람을 쳐다본다. 


정적. 


"됐어요. 못 알아들으면 됐구요." 


ㅋㅋ 쏘리를 못 알아듣겠나.  


이제서야 한숨을 쉬는 노인네. 


그 뒤론 내가 인사해도 잘 받고 내 눈을 못마주친다. 


자기 더러운 속마음이 나한테 걸렸으니까. 


무시당했다고 비겁하게 반응하는 자기 모습이 보이니까. 


바나나 하나 땜에 쫀심 상한 자기 속마음 알아챈 내 얼굴을 보기가 좀 그러니까. 


#2 


친구 한 놈. 


어제 새벽 두시에 벨튀를 했다. 


난 안 자고 있었지만 귀찮아서 안 나갔는데 


10분째 그 지랄을 떨더라. 


결국 룸메이트가 나가서 수화기를 공중에 떨궈놓아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파티에 와서 "어제 누가 벨 누르지 않았냐?" 


"그거 너였구나. 너일줄 알았어" 장난으로 받는 내 룸메이트 


"그거 너였냐?" 정색하는 나


"응" 


"얘는 그때 자고있었어." 룸메이트가 말한다. 


"그때 몇시였냐 씨발새끼야? (motherfucker)" 


"뭐?" 못알아듣는척 하는 친구. 


"몇시였냐고 씨발새끼야" 


"두 시쯤" 내 눈을 마주치지는 못한다. 


"ㅋㅋ 장난 재밌네. 근데 나 자고있었어." 


일부러 내 말을 씹는다. 그러다 가끔씩 날 노려본다. 


"야 니 가방에 있는 내 충전기 좀 꺼내주라." 


"..." 


"고맙다" 


"..."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로 돌아가는 친구놈. 


그동안 이 친구놈이 나한테 이런 류의 짓을 했을때, 


말로나 행동으로나 내 감정 상하게 했을 때 


그냥 씹었다. 


이제는 내가 친구놈을 씹는다. 그럼 상대방은 욕을 먹고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혼자 씩씩댄다.


고작해야 내 뒷담이나 까겠지. 니가 모자라서 남 깎아내리고 싶어하는거 나는 알지. 


내가 똑똑한거 속으로 존나게 질투하는 것도 나는 알지. 



#3 


러시아 소수민족인 나이 많은 친구. 


10년동안 학사를 하는, 거기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는 친구다. 


아시아계 출신이라 나이를 권력으로 아는 타입. 


알맹이도 없는 말을 계속 늘어놓기에 옛날같았으면


듣는척 하고 말았을텐데 이제는 끊는다. 


"야 내 모국언데 당연히 알지." 


"blah blah blah." 


"야 알아들었다고 3초전에 말했잖아." 


기분 상한것 같은 놈. 결국 놀다가 일찍 떠났다. 


오늘 우리집 앞에서 얼쩡거리는 친구. 


반갑게 인사하는게 정상인 상황. 


근데 내 표정부터 살핀다. 


자기 기분 상한걸 간접적으로밖에 표현 못했거든. 


그걸 알아들었으면 어떡하나 걱정되거든. 


"너네집 여기 아니야? 아 여기였구나"


"나 오는 줄 몰랐어? 표정이 왜그래?" 


"아 어제 너무 취했었어." 


무미건조하게 인사하는 날 보고 당황한다.  


무표정으로 눈마주치며 대꾸하는 나. 


"운동하고 와서 피곤해서." 


거실로 같이 들어간다. 


한동안 놀다 부엌으로 가는 놈. 


아 맞다. 너 어제 내 룸메이트 충전기 뜬금없이 나보고 가져오라고 시켰지. 


난 너가 왜 그런지 알지. 


나이로 깝치고 싶어서 "넌 여기 사니까 여기 있는 물건 어딨는지 알꺼 아냐." 라는 논리 들이밀다가 


같이 있는 애들한테 빈축 산 것도 알지. 


결국 내가 꿈쩍도 안 해서 더 맘상한거 알지. 


"야 미안한데 나 물한잔만 떠주라." 


"..." 


결국 난 앉은 자리에서 물을 받아먹고 파티에서 자리를 일찍 뜬다. 


개같은 심리학. 


상대 처지를 생각하고 이성적, 논리적으로 판단하면 


상대보다 감정에 우위에 있을 수 있다. 


이성과 논리는 어려운게 아니다. 왜 저 인간이 이 상황에서 저런 표정을 짓고 저런 말을 할까 생각을 해보면 쉬워진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우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면 비겁하다고 하고.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 공간 내 시간 내 감정 내 개뼉다구 내가 지켜야한다. 


사람의 심리학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좋은 감정을 나누는게 목적이라면


개같은 심리학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이겨먹어야된다. 


안그럼 진다. 안 그럼 도서관 사서가 날 노려볼때 눈깔고 지나가야되고 


콤플렉스 투성이인 친구놈이 날 조롱하고 무시하는 발언을 공공연히하고 새벽 두시에 벨튀를 해도 장난으로 웃어넘겨야한다. 


독일까지 와서 나이로 이겨먹으려는 놈 말 들으며 충전기 가져오라면 가져와야되고 지루한 소리 계속 늘어놔도 가만히 들어야한다.  


요새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감정을 가지고 하는 카드게임 같다. 


윈-윈이든 윈-루즈든 나는 항상 윈이어야 한다.


---


여기서 '심리학'은 좀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줬으면. 학문이 아니라. 감정놀이 쯤? 

 



7개의 댓글

2016.06.25
재밌네
0
2016.06.25
@너나암?
Ty
0
2016.06.25
ㅆㅂ 마지막에 "사람과 사람'간'의"
0
2016.06.25
읽으면서 느낀생각은 어줍잖게 심리학을 알면 세상살기 불편할거같다

상대의 행동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물론 의미는 있겠지) 조목조목 분석하려고하고

객관적이여보이나 결국엔 주관적인 결론으로 혼자 생각해버리면 여러모로 불편할거같다.

난 시력이 0.5라 썩 잘보이진 않는데

안경써서 2.0이 되도 쓸데없는게 너무 많이보여 머리아프더라

가끔은 약간 흐리멍텅하게 보이는게 좋을때도 있다
0
2016.06.25
@TEDD
나도 안경쓰고 이런 생각하기 시작. 사람들 표정이 보이니. 추리 과정은 오류가 많겠지. 근데 결국 #1,2,3 다 내 좋은 쪽으로 됬잖아?
0
2016.06.25
@TEDD
그래도 틀리더라도 실수 계속 하더라도 계속 생각하고 검증하고 해야되는 부분 아닌가. 결국 사람과 사는 세상인데.
0
2016.06.26
2, 3번 이야기는 알겠는데 1번 이야기는 글의 내용상으로는 약간 의문이 드네.
내가 주변 상황이나 늙은이 표정, 말투, 태도를 직접 볼 수 없으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글 내용만 놓고 보면 그냥 '막 부르고 꼬라본 것에 대한 미안함과 네가 먼저 사과한 것에 대한 무안함' 정도로 그러는 걸로 보이지, 바나나 일로 너에게 불만을 품은 그 '더러운 속마음'이 걸려서 그런 것 같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상대가 나를 무시한 것에 불만을 품는 것 자체는 딱히 문제가 없거든. (물론 그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은 또 다른 경우지만.)

왜냐하면 [자기 더러운 속마음이 나한테 걸렸으니까. 무시당했다고 비겁하게 반응하는 자기 모습이 보이니까. 바나나 하나 땜에 쫀심 상한 자기 속마음 알아챈 내 얼굴을 보기가 좀 그러니까.]라는 표현에서,
얼굴도 안 쳐다보고 바나나 락커에 쳐박음[상대가 나를 무시함] -> 인사 안 받고 꼬라봄[더러운 속마음의 표현, 비겁한 반응, 쫀심 상한 상태] 라고 해석이 되면
"어이!" 하고 소리지름[상대가 나를 무시함] -> 얼굴도 안 쳐다보고 바나나 락커에 쳐박음[더러운 속마음의 표현, 비겁한 반응, 쫀심 상한 상태] 라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그 늙은이도 ["어이!" 하고 소리지름]과 [얼굴도 안 쳐다보고 바나나 락커에 쳐박음]의 상관관계를 알 건데 네가 그걸 딱히 부끄러워하지 않듯, [얼굴도 안 쳐다보고 바나나 락커에 쳐박음]과 [인사 안 받고 꼬라봄]의 상관관계를 파악했다고 그 늙은이가 그걸 부끄러워 할 것 같지는 않다.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눈을 못 마주친다기보다는 안 꼬라본다라고도 예상이 되는데, 이거야 순수하게 내 추측일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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